# 19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19화>
문밖에서 보기엔 평범한 방. 하지만 안으로 들어섰을 때 갑자기 주위의 모습이 변했다.
모종의 마법적 장치가 되어 있었던 모양.
순간적으로 사방이 꽉 막힌 사각형의 공간이 되었다.
“다른 놈은 다 죽이고, 저건 잡아 놔. 키메라 같은데 신기하군.”
분명 노인은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는데 어디선가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키메라 연구 시설의 일원답게 루스를 보고 뭔가 느낀 듯했다.
드드득-
맞은편 벽이 올라가며 암흑 기사들이 나타났다. 이쪽 전력을 아주 무시하는 것은 아닌지 10명이 넘었다.
‘그래 봐야…….’
저 정도는 휴고 빼고는 혼자서 처리하지 못하는 이가 없었다.
먼저 바간이 당연하다는 듯이 앞으로 나섰다.
놈의 행동을 볼 때마다 치솟는 살심을 누르며 나도 칼을 뽑아 들었다.
노인이 암흑 사제인 것인지, 암흑 기사들은 이미 광신의 상태였다.
충혈된 눈으로 휘두른 검이 바간의 방패에 튕겨 나갔다.
그리고.
콰직-
모닝스타에 맞은 암흑 기사의 두개골이 단번에 으스러졌다.
나 역시 그 뒤를 따라 전투에 가담했다.
마력을 잔뜩 주입한 언브레이커블이 우웅 하고 떨었다.
서걱-
나는 곧바로 마주 달려오던 암흑 기사 둘의 허리를 동시에 베어 냈다.
튜토리얼을 나온 후에도 꾸준히 스탯이 올랐다. 이제 암흑 기사 정도는 몇 명이라도 상대할 수 있다.
루스도 이미 진작부터 날뛰고 있었다. 승격의 비약을 먹고 S급에 오른 체력 스탯의 위력이 돋보였다.
웬만한 공격은 막지도 않고 몸으로 그냥 튕겨 내는 중.
손을 방패로 만들지 않았는데도 칼날이 통하지 않았다.
고전하는 것은 휴고뿐. 녀석은 암흑 기사 둘을 맞아 고군분투 중이었다.
멸세폭을 함부로 쓸 수 없다. 결국 스탯과 본신의 기량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무기술이 아직 모자라군.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회귀 전에는 스킬을 제외하더라도 뛰어난 기량을 가진 휴고였다.
머지않아 충분히 제 몫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휴고도 상대를 처리했다.
암흑 기사들이 손쉽게 전멸당했다.
“네놈들은 도대체 누구냐?”
어디선가 또다시 노인의 말이 들려왔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는지 아까와는 달리 목소리가 무거웠다.
“가자.”
굳이 대답할 필요를 못 느껴 일행을 이끌고 움직였다.
“머, 멈춰라, 이놈들!”
노인의 소리쳤지만 무시했다.
그렇게 들어선 곳은 긴 통로. 그 앞에는 양쪽으로 쇠로 된 문들이 늘어서 있었다.
“여기서 흩어진다. 휴고는 바간과 가고, 루스는 나를 따라와라.”
나는 말을 마치고 바로 옆의 철문을 베어 버리며 안으로 들어섰다.
크르르르-
짐승의 으르렁거림과도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큰 방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것은 사람도 짐승도 아닌 무언가.
인간에게 몬스터의 육체를 덕지덕지 이어 붙인 키메라였다.
‘후우, 던전 대신 이쪽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군.’
복수라는 지상 과제를 뒤로 미룰 생각은 없다. 하지만 천인공노할 짓을 목도하고 그냥 넘길 마음도 없었다.
“루스,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자.”
“응.”
루스도 웬일로 차분한 말투. 흘끔 보니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위협하는 소리를 내던 키메라가 기어코 이쪽으로 달려들었다.
검에 마력을 집중해 단번에 목을 베어 갔다.
순간 놈이 팔을 들어 오러 소드를 막아 냈다.
퍼걱-
부러지는 소리가 나면서 놈의 팔이 꺾였다. 하지만 강한 내구도를 가지고 있는지 베어지진 않았다.
놈이 다시 움직이려는 찰나. 옆으로 돌아간 루스의 클로가 뻗어 나갔다.
푸욱-
루스의 양손이 놈의 목을 찌르고 들어갔다.
목이 찔린 상태에서도 놈은 움직였다.
놈이 막 부러진 팔을 휘둘러 루스를 치려 할 때.
콰직-
루스가 양손을 확하고 벌려 놈이 목을 뜯어내었다.
데구르르.
놈의 머리가 방구석으로 굴러갔다.
“주인, 나 기분이 안 좋아.”
그래, 그게 당연하지.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장난을 쳐 놓았다. 그것을 보고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게다가 키메라인 루스에게는 더 불쾌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괜찮다. 그게 정상이야. 너무 흥분하지 말고 빨리 처리하자.”
“응.”
복도로 나가 다음 방으로 향했다. 휴고 쪽도 싸우고 있는지 멀리서 전투음이 들려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번에도 비슷한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이어 붙인 종류가 달랐는지 몸에 비늘이 잔뜩 돋아나 있었다.
루스가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
그리고 곧바로 키메라의 손톱과 루스의 클로가 맞부딪쳤다.
챙-
놀랍게도 키메라의 손톱은 잘리지 않았다.
심상찮음을 알아차린 나는 루스와 대치 중인 놈에게 다가가며 칼을 휘둘렀다. 다급해진 놈이 꼬리를 휘둘러 막아왔다.
서걱-
꼬리는 손톱만큼의 내구도가 없는지 오러 소드에 쉽게 잘려나갔다.
놈이 고통에 차 비명을 내질렀다.
순간 틈을 발견한 루스가 자세를 낮췄다.
아래에서부터 솟아오르는 공격.
미쳐 놈이 반응할 틈도 없이 클로가 키메라의 턱 아래에 박혀들었다.
끄륵-
피 끓는 소리를 내던 놈이 스르륵 무너졌다. 턱을 파고든 클로가 뇌까지 헤집어 놓은 때문이었다.
나와 루스는 지체하지 않고 다시 방문을 돌아 나갔다.
반복적으로 문을 열며 키메라들을 처치해 나갔다.
이윽고 복도 한 쪽을 다 처리했을 때 맞은편에서 휴고와 바간이 나타났다.
“이쪽도 끝났습니다, 마스터.”
바간은 멀쩡한 모습이었지만, 휴고는 곳곳에 생채기가 나 있었다.
‘그러면서 성장하는 거지.’
애초에 튜토리얼 이후 제국과 함께하지 않은 휴고였다.
지난 생에서 그의 실력은 오롯이 그의 오리지널.
구르고 터져 가면서 익혀 낸 그만의 기술이었다.
아마 머지않아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할 것이다.
일행이 다 모이자 복도 끝의 벽으로 다가갔다. 이곳이야 말로 암흑 교단 놈들이 있는 곳.
발에 잔뜩 힘을 주고 벽을 걷어찼다.
쾅-
숨겨진 문이 부서지며 모종의 시설이 보였다.
키메라 연구와 연구원들의 생활을 위한 공간이었다.
실험체가 다 죽어 버렸으니 지금쯤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것이다.
바깥에서부터 소란을 일으켰다면 실험체를 빼돌려 마법진을 가동했을 터.
하지만 안부터 처리한 덕에 이제 연구 성과를 다 잃었으니 남은 것은 전투뿐이었다.
몇 걸음 옮겨 안으로 들어가자 처음에 봤던 노인이 나타났다.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
그것은 마치 분노에 가득 차 이성을 반쯤 상실한 걸로 보였다.
“네, 네 이놈들! 절대로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
“나랑 마음이 잘 통하는군. 나도 같은 생각이거든.”
이를 바드득 가는 노인의 옆으로 어보미네이션이 나타났다. 수는 단 한 마리.
다만 저번에 봤던 것과는 피부색이 좀 달랐다. 놈은 칠흑같이 검은 색이었다.
나는 놈을 알고 있었다.
‘음, 저건 벌써 나올 놈이 아닌데.’
회귀 전에는 좀 더 시간이 지나서야 등장하던 놈이었다.
아마도 위기 상황이 되자 실험 중이던 것을 그대로 동원한 것 같았다.
노인이 뒤로 빠지고 검은 어보미네이션이 달려들었다.
이번에도 바간이 먼저 튀어 나갔다.
나는 바간의 등을 잠시 응시하다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이긴다는 보장도 없고.
순간 바간과 어보미네이션이 맞붙었다.
쾅-
이번에도 절대불변이 발동된 방패가 어보미네이션의 주먹을 막아섰다.
그런데 엄청난 굉음이 들린 후 나타난 모습은 지난번과 달랐다.
바간이 밀려나지 않은 것은 전과 똑같았다. 하지만 어보미네이션 또한 다친 곳이 없었다.
굉음으로 미루어 봤을 때 큰 힘이 충돌한 것은 분명했다.
그럼에도 상처가 없다는 것은 어보미네이션의 강력한 방어력을 증명하는 것.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나는 지체 없이 몸을 날리며 칼을 휘둘렀다. 오러가 실린 공격이 어보미네이션의 정강이에 직격했다.
카각-
긁히는 듯한 소리가 나며 놈의 정강이에 생채기가 생겼다.
‘예상보다 더 단단하군.’
피부와 뼈가 아주 단단하다. 급소를 노리지 않으면 상처를 입히기 힘들 것 같았다.
그때 어보미네이션의 뒤쪽에서 루스가 나타났다.
루스는 벽을 밟고 뛰어올라 어보미네이션의 귀에 클로를 찔러 넣었다.
그러나.
카득-
귓구멍을 찌른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 슬쩍 찍힌 자국만 남았다.
순간 휘둘러진 어보미네이션의 주먹. 루스는 어보미네이션의 몸을 발로 밀어내며 공격을 피해 내었다.
쾅-
바간의 모닝스타가 어보미네이션의 무릎을 후려쳤다. 저번과 같은 패턴의 공격.
하지만 이번엔 통하지 않았다.
어보미네이션이 몸을 휘청하긴 했지만, 뼈에는 이상이 없었다.
이번에는 어보미네이션의 주먹이 바간에게 휘둘러졌다.
역시나 이번에도 바간의 방패는 어렵지 않게 공격을 막아 내었다.
‘이래서는 끝이 없다.’
일단 어보미네이션을 일행에게 맡겨 놓고 노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멀찌감치 물러나 손에 지팡이를 들고 무언가 웅얼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놈이 어보미네이션에게 주문을 걸고 있군. 비정상 적인 내구도와 관계가 있을 거야.’
그때 휴고가 노인에게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어보미네이션과의 싸움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고, 노인을 공격하려는 것 같았다.
“조심!”
막 휴고에게 경고하려는 찰나, 일이 벌어졌다.
쾅-
휘둘러진 휴고의 망치가 노인 앞에서 무언가에 부딪쳤다.
순간 터져 나온 충격파가 휴고를 날려 버렸다.
뒤로 튕겨 나갔던 휴고는 오른팔에 피를 흘리며 벌떡 일어섰다.
어금니를 꽉 깨문 표정을 보아, 제몫을 못하는 것이 못내 분해 보였다.
“휴고, 물러나라.”
의욕만 앞서는 휴고를 뒤로 물렸다.
“……예.”
주저하던 휴고가 뒤로 물러나 포션을 사용하는 것이 보였다.
노인의 몸 앞에 펼쳐진 것은 일종의 보호 마법이었다.
이곳 시설에 설치된 것으로, 보호와 반격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저것은 마법진이 가진 출력 이상의 공격으로만 파괴가 가능했다.
‘저놈을 제거하는 것이 해답인 것 같은데.’
노인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짧은 순간 몇 번을 생각해 봐도 그것이 가장 빠른 길이었다.
노인에게 다가가며 검에 마력을 끌어올렸다.
오러 소드만으로는 아마 쉽지 않을 터.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멸세폭을 쓴다.’
다가가는 중에 노인의 비웃는 모습이 보였다.
휴고가 튕겨 나갈 때부터 뭐가 그리 신나는지 조금 전부터 계속 저 표정이었다.
‘마음에 안 드는군.’
이윽고 노인의 앞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검을 휘둘렀다. 세상을 멸하는 폭발이 터져 나왔다.
콰쾅-
어보미네이션조차 주춤할 정도로 엄청난 굉음과 진동이 울렸다.
먼지가 가라앉고 드러난 광경은 참혹했다.
그 자리에 있던 노인은 없었다.
노인의 두 발만이 바닥에 놓여 있을 뿐.
나는 온몸에서 배어 나오는 수증기를 느끼며 뒤를 돌아보았다.
마법의 영향이 풀리자 어보미네이션의 피부색이 옅어졌다.
시커멓던 피부는 이제 갈색빛이 도는 상태. 그래도 일반적인 놈들보다는 색이 짙었다.
그때, 놈의 변화를 눈치챈 바간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굉음에 움직임을 멈춘 어보미네이션의 무릎에 모닝스타가 직격했다.
퍽-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소리가 울렸다. 어보미네이션의 무릎이 푹 파여 있었다.
순간 고통을 느낀 어보미네이션의 주먹이 바간을 후려쳤다.
하지만 이번에도 바간의 방패가 들어 올려졌다.
쾅-
방패에 부딪친 어보미네이션의 주먹이 튕겨져 나갔다. 주먹이 아픈 듯 다른 손으로 감싸 쥐고 있는 상태.
순간 다시 한번 루스가 놈의 등을 밟고 뛰어 올랐다.
이번에도 귓구멍을 노린 공격.
전력을 다해 찔러 들어간 클로가 귓구멍에 틀어박혔다.
어보미네이션의 몸이 부들거리며 떨렸다. 반사적으로 놈의 주먹이 휘둘러졌다.
루스는 클로가 귀에 박혀 피할 틈이 없었다. 대신 한 손을 방패로 만들며 충격에 대비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루스가 바닥에 처박혔다. 금방 다시 일어나는 것을 보니 문제는 없어 보였다.
‘역시 체력이 S급이라 다르군.’
슬슬 멸세폭으로 다친 몸이 회복되어 갔다. 가담해 볼까 하는 찰나, 휴고가 움직였다.
오른손은 포션을 발라 출혈은 멎은 상태. 왼손에 망치를 든 휴고의 표정이 결연했다.
쾅-!
굉음이 울렸다. 휴고는 이번에도 튕겨져 바닥에 처박혀 있었다.
‘쯧, 마음만 급해서는.’
그러나 성과가 없지는 않았다. 휴고의 멸세폭에 직격당한 어보미네이션의 등허리가 뻥 뚫려 있었다.
그곳에서 기괴한 빛깔의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크르르- 끄윽…….
이상한 소리를 내던 어보미네이션이 서서히 옆으로 쓰러졌다.
나는 놈의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후 휴고에게 다가갔다. 녀석은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실실 웃고 있었다.
“흐흐, 대장. 저도 한몫했습니다.”
사실 칭찬할 일은 아니었다. 굳이 멸세폭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처리가 가능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웃으며 휴고의 어깨를 팡팡 쳐 주었다.
“그래, 아주 자알했다.”
“엌, 크억. 그, 그만! 대장. 아픕니다. 그만…….”
아차, 멸세폭을 썼으니 부상을 당했겠군.
그래도 기특하니 어깨를 몇 번 더 두들겨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