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18화>
[절대불변]
: 손에 든 장비를 1초 동안 결코 변하지 않게 고정한다. 위치, 재질, 형태 등 존재의 모든 상태가 변하지 않는다.
‘허, 이런 거였나.’
이제야 놈의 비밀이 밝혀졌다.
그 어떤 공격에도 밀려나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단 1초에 불과하지만 존재 자체를 고정하는 스킬. 이것이 일인성채의 비결이었다.
모든 것이 고정된 상태로 변하지 않으니 오히려 공격한 쪽이 충격을 받는다.
어보미네이션의 주먹이 깨어진 것도 이 때문이었다.
‘놈의 밑천을 훔쳐 낸 건가.’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것을 얼른 끌어 내렸다.
이윽고 다들 모여 바간이 가져온 식재료로 식사를 했다. 잔반은 당연히 없었다.
“맛있어!”
며칠 기절했다 깨어났어도 한결같은 것이 있었다.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느낌에 작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거실에 앉아 생각을 정리했다.
발라딕 바간.
놈에게 빼앗은 스킬은 아주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다른 자들을 상대할 때는 물론, 바간을 상대할 때에도.
* * *
나는 회귀 후 영웅을 소환할 때마다, 늘 두 가지의 고민을 해 왔다.
‘캐서린이 소환되면 어떻게 될까.’
왜 캐서린만 나를 배신하지 않았는지, 또 무슨 수로 나를 과거로 돌려보냈는지는 알 수 없다.
캐서린이 나를 도와준 이유는 계속 고민해 오던 문제. 그러나 아직 짐작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녀야말로 나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준 은인이고, 나를 배신하지 않은 단 한 사람이다.
그것만은 직접 겪은 일이니 바뀌지 않는다.
당연히 그녀를 죽일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생의 캐서린은 내가 당한 일과 자기가 행한 일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영웅을 소환해 죽이는 것을 그녀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그것을 납득시킬 수 있을까.
‘일단은 솔직하게 다 말하는 것이 최선이겠지.’
두 번째 고민은 바로 저편에 앉아 있는 놈 같은 경우다.
‘바간…….’
놈은 너무 강하다.
아직 한 번의 진화도 거치지 않았음에도 놈은 회귀 후 만난 가장 강한 존재다.
‘방어력이 너무 뛰어나. 기습이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
사실 S급들 사이에도 분명한 전력의 격차가 존재한다.
물론 소환했을 때 강하다고 끝까지 더 강한 것은 아니었다.
각 영웅은 두 번씩 진화를 할 수 있다. 한 번 진화할 때마다 그들은 더 강해진다.
다만 누군가는 새로운 스킬을 얻고, 누군가는 신체 능력이 강해진다.
또 누군가는 강력한 무구를 얻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더 강한가에 대해서 일괄적으로 순위를 매길 수는 없다.
그런데 바간은 소환 직후 아무런 진화를 하지 않아도 굉장히 강한 경우였다.
‘절대불변이 너무 사기야.’
지금 루스와 휴고를 대동해 기습해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오히려 질 확률이 높다.
놈의 전투 방식을 꿰뚫고 있지 못했다면, 백전백패를 예상했을 것이다.
게다가 휴고에게는 영웅들과 나 사이의 사정을 이야기 하지도 않은 상태. 휴고가 내 일에 가담해 준다는 보장도 없다.
‘어쩔 수 없군. 시간을 좀 들일 수밖에.’
놈을 빠른 시간 안에 처리하는 것은 무리다.
어차피 진화를 하지 않는 한 영웅들은 거의 강해지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충분히 강해질 때까지만 놈을 써먹기로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기분이 더러운 것이 가장 큰 문제군.’
놈의 존재를 인식하는 순간마다 치솟는 살의를 억누르기 위해 턱에 꽉 물어야 했다. 표정 관리도 어려웠다.
놈이 저편에 앉아 있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다른 생각을 하자, 다른 생각.’
억지로 놈에게서 생각을 돌려 앞으로 계획을 점검한다.
원래 계획은 던전을 돌며 전력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 번 습격 이후 생각이 바뀌었다.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암흑 교단을 공격한다.
다행히 나는 회귀 전의 지식으로 암흑 교단이 대륙에 뿌려 놓은 아지트 중 여러 곳을 알고 있다.
첫 번째 재앙이 도래하기 전, 그것을 막기 위해 제국 측에서 기사와 플레이어들을 파견했었다.
그때 선봉장으로 나섰던 것이 나와 영웅들이었다. 우리는 암흑 교단의 아지트를 찾아다니며 놈들을 처치했다.
‘소환 의식은 도대체 어디서 한 걸까?’
문득 지난 생에 가졌던 의문이 떠올랐다.
온 대륙을 이 잡듯이 뒤져 암흑 교단을 박멸했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놈들을 저지하지 못했다.
의식이 이루어지는 위치를 알 수 있다면 마왕이 소환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텐데.
잠시 기억을 더듬다 생각을 바꾸었다.
‘내가 굳이 마왕 소환을 앞장서 막을 필요는 없지.’
어차피 마계로 통하는 차원문은 제국의 수도에 열린다.
제국민들이 피해를 입겠지만, 어차피 황제와 싸울 생각을 했을 때 각오한 일.
그때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제국의 병력이 될 것이다.
‘그건 나에게 기회가 되겠지.’
대충 생각이 정리되자 나는 일행을 불러 모았다.
“내일 아침 여길 떠난다. 준비들 해 놓도록.‘
“주인, 어디 가는 거야?”
“암흑 교단을 친다. 당한 것이 있으면 갚아 줘야지.”
휴고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어 왔다.
“몸은 다 나은 겁니까? 암흑 교단 놈들 강하던데, 괜찮을까요?”
“몸은 멀쩡하다.”
사실 더 강해졌다. 잘랐던 손가락은 초재생에 의해 다시 자라났다.
아직 완전한 상태는 아니지만 머지않아 원래처럼 사용 가능할 것이다.
게다가 바간에게 뺏은 절대불변 덕에 전력은 더 강화되었다.
‘바간에게 노출시킬 수는 없으니, 마음껏 쓰지는 못하겠지만…….’
나는 일행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암흑 교단을 처치하는 것은 비단 재앙을 막기 위해서 만이 아니다. 휴고, 지난 전투에서 사제를 잡고 스탯이 얼마나 올랐지?”
휴고가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더니 말했다.
“음, 사령술사 잡았을 때와 거의 비슷하게 오른 것 같습니다.”
“그래, 놈들은 경험치 덩어리야. 놈들이 먼저 공격해 오지 않았더라면 던전을 돌았을 거야. 하지만 놈들이 우릴 적으로 규정한 이상, 당하고만 있지는 않는다.”
다음번에 또 습격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게다가 암흑 교단을 공격하는 것은 던전 공략에 비해 못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아이템을 먹지 못한다는 것이 단점이지만, 꼭 필요한 것은 중간에 던전에 들러 챙기면 될 일.
잠시 쉬었다 웃으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나는 놈들의 아지트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지.”
“어떻게? 아, 또 그런 스킬이 있어서겠지요? 대장.”
휴고도 씩 웃으며 말해 왔다. 이제 스킬에 대한 진실 여부는 중요치 않은 것 같았다.
어쨌든 내가 가진 정보가 진실이고, 그에 따라 움직이면 성공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막 자리를 파하려는데 묵묵히 듣고 있던 바간이 질문을 던졌다.
“마스터, 우리의 최종 목적은 암흑 교단을 처치하고 마왕을 막는 것입니까?”
“비슷하다. 일단 암흑 교단과 싸운다. 마왕은……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았군. 그게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니까. 제국 측의 의견도 들어 봐야 될 테고.”
최종 목표는 네놈들을 깡그리 죽여 버리는 것이다, 바간.
속에서 올라오려는 말을 억누르며 적당히 둘러대었다.
잠시 생각하던 바간이 다짐 받듯이 재차 물어 왔다.
“재앙을 막으실 생각이 있는 것이지요?”
뭐지? 놈의 태도가 이상하다.
“당연하지. 애초에 이 세계에 온 이유가 그것 아닌가.”
일단 놈이 원할 것 같은 대답을 해 주었다.
그러자.
“저도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마스터.”
[바간의 충성도가 20 상승했습니다.]
바간의 말과 동시에 충성도가 올랐다는 메시지가 들렸다.
‘이상하군.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그래, 앞으로도 잘 부탁하지, 바간.”
말을 마치고 잠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뒤편의 공터에 앉아 바간의 태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뭘까? 회귀 전에 저런 말을 한 적은 없었는데.’
놈들이 원하는 것이 재앙을 막는 것인가. 그럼 왜 회귀 전에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가.
게다가 왜 배신한 거지?
회귀 전에는 튜토리얼을 나온 후 바로 제국 수도로 가 각종 교육을 받았다.
이 세계의 문화와 행동 양식은 물론, 몸을 쓰는 법도 배웠다.
‘정신 교육도 받았지.’
재앙을 막지 못하면 대륙의 수많은 목숨이 사라진다는 소리를 끊임없이 들었다.
설마 그래서인가.
내가 재앙을 막는 데 나서지 않을까 봐 나에게 그런 것을 물어본 것인가.
그렇다면 놈들의 목적은 재앙을 막는 것이란 말인데.
당장 정확한 것은 없다. 캐서린을 소환한다면 조금이나마 정보를 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당장 바간에게 추궁할 수도 없는 문제니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할 수 있는 일부터 한다.’
암흑 교단을 처치해 스탯을 흡수하고, 바간을 죽일 방법을 궁리한다.
* * *
“네놈들! 마신의 저주가 내릴 것이다!”
‘오랜만에 들으니 신선하군.’
눈앞에 가슴이 베여 죽어 가는 암흑 기사가 있었다. 암흑 사제는 일찌감치 제거한 상태.
가장 가까이 위치한 놈들의 아지트를 찾아 박살 내었다.
기습을 가해 사제를 먼저 처리할 경우 지금처럼 손쉽게 놈들을 무력화할 수 있었다.
게다가 바간이 합류함으로써 아주 강력한 전위를 확보한 셈.
기분의 문제를 제외한다면 일행의 전력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별문제 없으면 바로 출발한다.”
굳이 피 냄새 풍기는 곳에서 쉴 필요는 없다. 튜토리얼처럼 몬스터가 쉴 새 없이 덤비는 곳도 아니고.
휴식은 마차에서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마차를 몰아 다음 목표로 향했다.
지금 가는 곳은 키메라를 연구하는 시설 중 하나.
‘거긴 방금 전처럼 쉽지는 않겠지.’
중요 시설인 만큼 방비가 강력하다.
그렇기에 더욱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 * *
마차 이동과 노숙을 반복하며 며칠쯤 지났을 때, 산 밑에 위치한 마을이 보였다.
저곳은 마을 전체가 암흑 교단의 세력이었다.
겉보기에 평화로운 농촌의 모습이지만 실상은 키메라 실험장.
‘놈들 때문에 근처 마을의 사람 씨가 말랐지.’
주위 마을을 돌며 실험에 필요한 인간들을 납치하는 바람에 근처에 폐촌들이 넘쳐났다.
나와 일행은 마차를 구석에 세워 놓고 걸어서 마을 쪽으로 내려갔다.
“여긴 마을 사람 전부가 암흑 교단의 주구다. 손속에 자비를 두지 마라.”
휴고를 의식하며 말했다.
본인에게 한 말이란 것을 알아들었는지 휴고의 얼굴이 굳었다.
“알……겠습니다, 대장.”
튜토리얼부터 함께했던 일행을 잃고 암흑 교단에 분노를 불태우는 휴고였지만, 순후한 본성은 남아 있었다.
아마 이번엔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 되리라.
내가 앞장서 걸었다.
마을은 황량했다. 아무도 없는 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자 웬 노인이 한 명 서 있었다.
“외지 분들이 이곳엔 무슨 일이시오?”
우리의 행색을 살핀 노인이 말을 걸어왔다.
“마차가 부서져서 그런데 하루 묵어갈 수 있겠습니까?”
내가 다가가며 대답했다.
“우리 마을은 외부인을 받지 않는데 이를 어쩌나.”
“근처 마을에 사람이라고는 없더군요. 사정이 급하니 하루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식량도 동이 났습니다.”
다른 마을을 언급하자 노인의 눈빛이 섬뜩하게 빛났다.
“음. 사정이 딱하니 어쩔 수 없지. 그럼 오늘 하루만이요.”
말을 마친 노인은 따라오라는 듯 발걸음을 옮겼다.
노인의 걸음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근처의 집을 놓아 두고 마을 뒤의 산 쪽으로 일행을 인도했다.
‘역시 우릴 키메라 재료로 쓸 생각이군.’
그냥 들이닥쳐 때려 부숴도 되는데 이렇게 처리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곳은 모종의 마법진으로 보호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법진 자체는 강한 위력의 공격으로 파괴할 수 있다.
하지만 마법진이 파괴될 경우, 만들어지던 키메라가 다른 곳으로 공간 이동된다.
회귀 전 이곳을 파괴할 때, 결국 키메라는 이동되고 말았다.
“코가 아파.”
루스가 잔뜩 인상을 쓴 채 속삭였다. 적잖이 불쾌한 모양.
“조금만 참아라.”
루스를 달랜 후 나는 다시 노인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묵묵히 걸었다.
노인을 따라 도착한 곳은 산 초입의 오두막.
문을 열고 선 노인이 먼저 들어가라는 듯이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