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16화>
웅크린 놈의 앞다리 사이, 심장이 있는 곳을 노리고 멸세폭이 작렬했다.
콰아앙!
놈의 거체가 공동 벽까지 밀려가 처박혔다.
반동으로 내 몸도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크으윽……!’
상체의 뼈가 산산조각 났다가 초재생에 의해 다시 조립되는 게 느껴졌다.
입에서 튀어나오려는 신음을 꽉 눌러 참고 인벤토리를 뒤져 포션을 꺼냈다.
백작에게 받아 온 질 좋은 포션은 초재생과 더불어 몸의 회복 시간을 단축시켜 주었다.
몸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증기가 멎을 즈음, 벽에 처박혔던 드레이크가 몸을 일으켰다.
심장에 타격이 있는지 입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쿠아아아아-
분노에 찬 포효가 놈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드래곤의 피어처럼 특별한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위압적이었다.
온몸이 저릿저릿할 정도의 포효가 끝나기 직전.
놈의 머리 뒤로 솟아오르는 그림자가 있었다.
쾅-
루스가 손을 망치로 변형시켜 놈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클로로 놈의 비늘을 뚫기 어렵다고 판단한 듯했다.
놈의 머리가 아래로 휘청했다. 분노에 휩싸인 놈의 꼬리가 루스에게 휘둘러졌다.
하지만 루스는 공격이 끝나자마자 즉시 자리를 이탈한 상황.
지체 없이 이동한 덕에 루스는 놈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루스가 물러나자 이번에는 놈의 뒤쪽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꼬리를 휘두르는 틈을 노려 뒤쪽으로 접근한 휴고가 놈의 뒷발을 해머로 내리친 것.
비늘이 썩어 떨어진 곳을 노려 친 것인지, 발등에서 피가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이번에도 꼬리가 휘둘러졌다. 그러나 휴고도 역시나 바로 자리를 옮긴 덕에 피해 없이 피할 수 있었다.
‘잘하고 있군.’
이 모든 건 전투 시작 전 미리 주문한 움직임이었다.
놈을 상대로 치고받으며 싸울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놈의 힘이 너무 강력하다. 또한 저 정도 크기라면 질량 자체가 무기가 된다.
그렇다고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
나 역시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놈에게 쇄도했다.
목표는 역시나 심장.
드레이크의 입에서 흐르는 피의 양을 봤을 때, 심장에 한 방만 더 먹이면 전투를 끝낼 수 있다.
거기다 놈은 얼굴 근처에서 재빠르게 돌아다니는 루스에게 신경이 팔려 있다. 나의 접근을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상태.
그런데 조용히 달려들어 심장에 일격을 가하려는 찰나, 꼬리가 날아왔다.
‘젠장!’
아무래도 이쪽을 완전히 잊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너무 깊숙이 들어온 탓에 피할 틈은 없다.
‘어쩔 수 없다!’
마력을 잔뜩 주입한 칼로 놈의 꼬리를 막는다.
카가각-
놈의 꼬리와 부딪친 칼이 비명을 내질렀다.
언브레이커블이 아닌 일반 검이었다면 진즉에 부러졌을 것이다.
나는 튕겨 나가려는 힘을 이용해 몸을 뒤로 날렸다.
꼬리 공격을 막아는 내었지만 충격이 있다.
한 번의 격돌로 몸에서 다시금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났다.
‘역시 부딪치면 안 돼.’
초재생도 한계는 있다. 신체의 에너지가 바닥이 나면 더 이상 재생할 수 없다.
‘두 방 정도면 리타이어겠군.’
남은 멸세폭은 두 방. 그 이상은 몸이 버티질 못한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하는 사이, 루스는 여전히 드레이크의 머리 주변을 얼쩡거리며 주의를 끌고 있었다.
휴고는 놈의 뒤를 잡아 보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좀 전과 달리 놈의 꼬리에 견제를 당해 유효타를 먹이지 못하는 상황.
놈이 이쪽을 계속 신경 쓰고 있다면 심장에 공격을 가하기는 어렵다.
‘방법이 없으면 만들어야지.’
나는 놈의 정면으로 돌진했다. 일부러 놈에게 잘 보일 경로를 골라 움직였다.
‘와라, 이 도마뱀 자식아!’
놈이 달려드는 나를 인식하고 고개를 돌렸다.
놈의 아가리가 쩍 벌어지며 팔뚝만 한 이빨이 머리 위로 내리꽂혔다.
마주 달려들며 놈의 턱을 향해 검을 올려쳤다. 혼신의 힘을 다한 공격.
‘멸세폭.’
콰앙-
멸세폭의 반동으로 몸이 바닥에 처박혔다. 전신으로 퍼져 나가는 극통을 참아 내며 휴고에게 소리쳤다.
“휴고, 심장이다!”
멸세폭에 맞은 드레이크의 머리가 천장까지 치솟았다. 이내 중력에 의해 떨어지며 몸이 뒤집힌 상태.
놈이 미처 일어나기 전 휴고가 돌진했다. 어금니를 꽉 깨문 결연한 표정.
전력을 실은 휴고의 일격이 놈의 가슴을 강타했다.
콰광!
갈비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고 놈의 거체가 바닥에서 경련한다.
몸을 일으키려는 듯 몇 번이고 움찔거렸지만, 이미 심장이 터진 상황.
일어날 수 없을뿐더러 드레이크의 질긴 생명력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죽었을 것이다.
휴고는 공격 후 충격으로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물러나!’
소리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드레이크의 마지막 기운이 꼬리에 담겨 휴고의 머리로 떨어졌다.
휴고는 사령술사에게 얻은 반지 덕에 운신은 가능하지만, 고통 때문에 공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놈의 꼬리가 휴고의 몸을 짓이겨 버리기 전, 뒤에서 나타난 그림자가 휴고를 밀쳐 내었다. 때맞춰 루스가 움직인 것.
그 자리로 굉음이 울리며 꼬리가 떨어져 내렸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휴고가 놀라는 것이 보였다.
루스가 휴고를 향해 소리를 내질렀다.
“이 돼지야, 정신이 가출했어? 아파도 정신은 차려야지!”
이름을 지어 주고 먹을 것을 주면서 나에게는 고분고분해진 루스였다.
하지만 휴고에겐 아닌 모양.
“그, 그래, 미안하다.”
휴고가 멋쩍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어째 루스만 멀쩡하군.’
거의 죽었다고 볼 수 있는 드레이크, 전투 불능의 환자인 휴고.
나도 몇 번이나 멸세폭을 쓰며 온몸이 삐걱거렸다.
“주인, 나 저거 먹어도 돼?”
“아직 안 죽은 거 같은데. 죽이고 먹어라.”
“응, 얼른 죽일게.”
신나서 달려가는 루스를 보며 휴고가 질겁했다.
“설마 저걸 다 먹는 겁니까?”
“시간만 충분하면 다 먹을걸.”
나는 떨떠름해하는 휴고를 두고 걸음을 옮겼다.
루스가 막 드레이크의 심장을 짓이겨 완전히 부순 상태. 그러고도 모자라, 클로로 눈을 찔러 뇌를 헤집어 놓았다.
그제야 드레이크이 숨이 완전히 끊겼다.
그때 드레이크의 사체 옆으로 무언가 떨어졌다.
[하급 용인화 비약(S. 비약)]
- 용의 힘이 담긴 비약. 육체를 용의 것과 같이 강하게 만들어 준다.
이것은 신체를 아주 강하게 만들어 준다.
피부는 도검에 쉽게 잘리지 않을 정도로 질겨지고, 근육도 압도적인 탄력을 얻는다.
뼈도 정련한 강철처럼 단단해진다.
물론 진짜 드래곤만큼 강한 육체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하급인 것이 좀 아쉽지만, 멸세폭 사용에 큰 도움을 주겠지.’
굳이 멸세폭이 때문이 아니더라도 굉장히 도움이 되는 비약이었다.
루스가 드레이크를 흡입하는 동안 구석에 자리 잡고 용인화 비약을 마셨다.
우두둑-
뼈가 뒤틀리고, 피부가 찢어졌다 붙기를 반복했다. 그 가운데 초재생이 작용해 몸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뼈가 부러지는 고통과 상처가 회복되는 간질간질한 느낌이 반복되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변화가 끝났다.
‘키가 좀 커진 것 같군.’
원래 180센티미터 정도였던 키는 이제 185센티미터는 될 것 같았다. 거기에 온몸에는 압도적으로 압축된 근육이 뼈를 감싸고 있었다.
제자리에서 몇 번 뛰고, 주먹도 뻗어 보았다.
쎄엑-
주먹 끝에 파공성이 울렸다.
“좋군.”
마음에 든다. 훨씬 강력해진 육체가 느껴진다. 하급인 것이 진한 아쉬움이 들 정도로.
‘나중에 더 높은 등급의 것도 구해 봐야 되겠어.’
성장을 기꺼워하며 모처럼 상태창을 확인했다.
[정해수]
근력 : 72(B)
민첩 : 73(B)
체력 : 78(B)
마력 : 87(B)
스킬
- 랜덤 영웅 소환 (1970/2000 코인)
- 호문쿨루스 소환
- 초재생
- 인벤토리
- 인식 밖에서
- 멸세폭
그사이 많이 성장했다.
암흑 교단과 싸움에서 스탯이 제법 올랐고, 사령술사와 드레이크를 잡으며 대폭으로 상승했다.
‘코인이 조금 아쉽군.’
30코인만 더 있었으면 영웅을 소환할 수 있는 상황.
처음에 공짜였던 소환이, 두 번째는 1천, 세 번째는 2천으로 올랐다. 매번 소모량이 두 배로 증가하는 코인 때문에 영웅을 대거 소환할 수가 없었다.
다만 상태창에 나타나지 않지만 용인화로 인해 신체가 압도적으로 강해졌으니, 전투력은 표시되는 것 이상이라고 봐야 한다.
성장세가 나쁘지 않다.
회귀 전처럼 S급 영웅을 끌고 다니는 것은 스스로 포기했지만, 본신의 무력은 훨씬 높다.
계획한 대로 몇 번 더 던전을 돌면 스탯을 A급 이상 올릴 수 있을 터.
루스도 착실히 성장 중이고, 휴고도 과거를 생각하면 발목 잡지는 않을 것이다.
내심 만족스러워하며 적당히 휴식을 취한 후 던전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마차를 타고 이동 중에 완전히 회복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루스를 불러 남은 드레이크 고기를 인벤토리에 넣었다.
휴고도 몸을 일으켜 나갈 준비를 한 상태.
그렇게 둘을 데리고 들어온 길을 거슬러 입구 쪽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던전의 입구가 나오기 얼마 전, 복도에 들어섰을 때.
무언가 날아오는 것을 느낀 순간, 루스가 앞을 가로막았다.
쾅-
눈앞에서 굉음이 터져 나오며 루스가 튕겨져 나갔다.
“안녕들 하신가? 플레이어 여러분.”
복도 맞은편에서 음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암흑 교단의 사제복을 입은 놈이 말을 걸어온 것이었다.
암흑 기사단 여럿이 암흑 사제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놈의 목소리에 대답할 틈이 없었다. 루스의 상태가 심각했다.
“휴고, 앞을 막아라.”
휴고에게 지시 후 루스를 챙겼다.
온몸의 뼈가 박살이 났는지 허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입으로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는 상태.
“정신 차려라, 루스!”
포션을 끼얹으며 이름을 불렀지만, 대답이 없다. 초재생이 계속 발동되는데도 상처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스킬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대미지를 순식간에 입은 상황.
바드득-
이가 저절로 갈린다.
반대편을 흘끔 보자 루스를 그렇게 만든 것들이 서 있었다.
‘어보미네이션.’
놈들도 루스와 같은 키메라의 일종이다. 온갖 괴물의 육체를 누더기처럼 기워 만든 거인.
5미터는 되어 보이는 괴물이 침을 흘리며 서 있다.
무슨 수법을 부렸는지 루스의 후각에도 걸리지 않고 어보미네이션 세 마리가 기습을 해 온 것이다.
포션을 먹여 좀 나아지긴 했지만,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내 앞을 막아서다 이 모양이 되었다.
이대로 죽게 둘 수 없다.
‘내 거다. 죽이건 살리건 내가 정한다!’
“대답할 생각이 없나요, 플레이어 여러분? 저희는 암흑 교단입니다. 아시죠?”
한 번 웃은 놈은 순간 표정을 굳히며 말을 이었다.
“요전번에 저희 일을 방해하셨더군요.”
암흑 사제의 말이 계속해서 들려왔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오로지 루스를 살리는 데 집중한다.
우선 검을 뽑아 손바닥을 찢었다. 루스에게 피를 먹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초재생 스킬 때문에 금세 아물어 피가 나오지 않는다.
서걱-
잠시 고민하다, 약지와 소지를 아예 잘라 버렸다.
어차피 초재생 스킬에 의해 다시 재생될 것이다.
목이 잘리는 등 압도적인 피해를 순간적으로 입으면 죽는다.
하지만 그 외의 경우 어떻게든 재생할 수 있다. 물론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제야 주르륵 흐르는 피를 루스의 입에 억지로 흘려 넣었다.
피가 좀 넘어가자 정신이 드는지 루스가 눈을 떴다.
“주인…….”
흐릿한 목소리.
“입 벌려라!”
강제로 루스의 입을 벌리고 잘라 놓은 두 개의 손가락을 목구멍으로 쑤셔 넣었다.
“읍, 읍…….”
루스는 내 손가락인 것을 알자 삼키지 않으려 했다.
“뱉지 마! 삼켜!”
억지로 녀석에게 손가락을 먹였다.
손가락에 담긴 신체 에너지와 용인화의 기운이 루스의 입으로 넘어갔다.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 삶보다는 죽음에 더 가까운 상태. 이대로 두면 분명 죽는다.
‘쯧, 그새 진짜 정이라도 든 건가. 죽게 두고 싶지 않다.’
누구도 믿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루스를 이렇게 잃고 싶지는 않았다.
비록 소환된 존재일지라도, 녀석만은 믿어 보고 싶었다.
흐릿한 루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절대로! 배신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