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12화>
암호를 말하는 동안 벽을 뚫고 문지기를 제압한다. 그러면 신호할 틈을 주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굳히고 지붕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루스가 준비하는 것을 보며 문 쪽으로 다가갔다.
노크를 하자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시오?”
“밝은 곳에서 온 사람이오. 어두운 곳으로 가려고 하오만.”
어색한 암호를 천천히 말한다. 루스가 벽을 다 뚫을 때까지.
그런데 암호가 틀리지 않았는데도 한동안 반응이 없다.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군가 나타나자 당황한 듯했다.
“누구요?”
다시 한번 질문.
시간이라도 끌 겸 소리를 빽 질렀다.
“이놈! 문 안 열고 뭐 하는 거냐?”
안에 있는 놈이 주저하는 게 느껴졌다.
그러길 잠시, 퍽 하는 소리가 나더니 문이 열렸다.
“주인, 해치웠어.”
루스가 해맑게 웃으며 문을 열고 있었다.
안쪽을 슬쩍 보니 바닥에는 남자 한 명이 기절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간 나는 잠시 고민하다, 놈의 목을 밟아 버렸다.
콰직.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나며 놈의 숨이 끊겼다.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시체를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루스와 함께 비밀 통로를 찾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루스가 입구를 발견했다.
“이쪽으로 냄새가 이어져.”
루스가 가리키는 곳에는 책장이 있었다.
‘흔한 방식이군.’
책을 몇 번 뽑았다가 끼우자 통로가 열렸다.
“루스, 가자.”
“응!”
비밀 통로를 따라 5분쯤 걷자, 앞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주인, 그놈들이야.”
나는 루스의 말에 인식 교란을 쓰고 놈들이 있는 곳이라 생각되는 곳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좀 더 걷자 통로 한쪽에 문이 있었다.
안에서 회의라도 하는 건지 말소리가 들렸다.
“그쪽 일이 실패라니! 어떻게 된 건가?”
“마스터급 강자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사제님. 플레이어라는 놈들은 얼굴도 못 봤다는군요.”
아마도 우리 쪽 이야기가 전해진 것 같았다.
‘그게 다가 아니었나 보군.’
숲에서 만나 처리한 놈들 말고도 패잔병이 더 있었던 모양.
“흠, 그럼 이쪽도 마스터급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겠군.”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당장 습격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됩니다.”
두 명이 대화를 하는 사이,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아무래도 한두 명이 아닌 듯했다.
“교단의 주 전력이 큰일을 위해 빠져 있는 상황이니 증원 요청도 할 수 없습니다.”
사제라 불린 놈은 고민이 되었는지 말이 없었다.
“그럼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때, 새로운 목소리가 의견을 내 놓았다.
“꼭 쳐들어가서 무력을 확인할 필요는 없지요. 어떻게든 접촉해서 정신 마법을 거는 겁니다.”
“접촉만 할 수 있다면 좋은 방법이겠군. 세뇌 마법을 걸 수 있다면 최상이야.”
“맞습니다. 정 안 될 경우 습격이 아니라 납치를 하는 것도 괜찮다고 봅니다.”
“굳이 정면으로 싸우지 않더라도 전력을 확인할 방법은 있으니까요.”
한동안 회의가 이어졌다.
결국 습격은 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마법을 거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그럼 나는 가서 준비를 해야겠군. 자네들은 여기서 세부 사항에 대해 더 논의해 보게.”
사제의 말이 들린 후 발걸음 소리가 멀어져 갔다.
안에 또 다른 공간이 있는 듯했다.
잠시 생각을 하다 루스에게 속삭였다.
“저놈들은 내가 처리한다. 넌 먼저 나간 놈을 따라가. 할 수 있지?”
“응! 잘할 수 있어.”
“가면서 표시 남기고.”
“응, 걱정 마!”
그렇게 루스와 눈빛을 교환한 후,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놀란 놈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놈들은 누…… 컥!”
들어가자마자 검을 휘둘렀다.
한 놈의 목이 떨어졌다.
“뭐, 뭐냐?”
“제국의 개냐?”
짜증 나는 헛소리를 무시하며 검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루스가 한 놈을 클로로 긁어 버리며 뒤쪽 통로로 달려갔다.
루스에게 당한 놈은 옆구리로 내장을 흘리며 쓰러졌다.
남은 것은 3명.
순식간에 2명이 당하자 놈들의 눈빛에 두려움이 서렸다.
“이놈!”
그때 공포에 질려 있던 한 놈이 고함을 치며 손을 내뻗었다.
배구공만 한 불덩어리가 날아왔다.
암흑 교단이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마법이었다.
사악한 기운이 담겨, 한번 불붙으면 좀처럼 꺼지지 않았다.
‘이것도 오랜만이군.’
암흑 교단과는 첫 번째 재앙을 막기 위해 수도 없이 싸웠다. 그랬기에 이놈들의 수법에는 굉장히 익숙했다.
나는 우선 검면을 부드럽게 움직여 불덩이를 터지지 않게 받아 내었다.
그 후 칼을 휘둘러 왔던 곳으로 돌려보내 주었다.
순식간에 놈의 몸이 불에 휩싸였다.
“크아아아아악-!”
비명이 통로에 울려 퍼지는 동안, 나는 나머지 놈들에게 달려들었다.
놈들은 지위가 낮은 자들로 보였다. 상급자가 당하자 당황하여 어쩔 줄 몰랐다.
칼이 휘둘러지자 놈들이 황급히 피하려 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놓치지 않았다.
서걱-
한 놈의 목이 베여 떨어졌다.
나머지 놈은 칼을 빼어 들고 있었지만 칼끝이 떨리고 있었다.
굳이 시간 끌 것 없다. 가장 높은 놈이 빠져 나갔으니 얼른 처리하고 루스를 따라간다.
마지막 놈에게 달려들었다.
놈은 상대가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등을 돌렸다. 뒤쪽 의 통로로 도망가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의미 없는 일.
나는 놈을 쫓아가며 등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깨끗하게 베어진 상체가 바닥으로 흘려 내렸다.
인벤토리에 넣어 두었던 문지기의 시체를 꺼냈다. 그 후 등잔을 쓰러트려 방에 불을 붙였다.
그러면서 내심 혀를 찼다.
‘너무 약하군.’
엿들은 대로 이놈들은 암흑 교단의 주력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암흑 교단은 마왕의 부활을 위해 주력을 동원한 상황일 터였다.
나는 주변을 한 번 훑어보고는 뒤쪽의 통로로 달려 나갔다. 통로는 밖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바닥과 벽에 클로로 긁은 흔적이 있었다.
몇 분쯤 흔적을 따라가다가, 루스의 모습을 발견했다.
“주인, 그놈이 큰 집에 들어갔어.”
목적지를 확인하고 돌아온 모양.
“큰 집? 어딜 말하는 거지?”
“저기야.”
루스가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저긴 영주성이잖아?’
그곳은 아베나스탄의 영주인 백작의 성채였다.
나는 일단 여관으로 돌아가기로 판단을 내렸다.
당장 영주성에 쳐들어갈 수 없으니, 생각을 좀 정리해야 될 것 같았다.
* * *
아지트를 박살 내고 교도를 다 죽였다. 모여 있던 자들 중 사제만 남은 상황.
그 탓에 놈들이 모의하던 계획은 물 건너갔다.
그러나 사제가 성으로 들어갔다. 백작과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것인데…….
어떤 일을 벌이려는 것일까.
궁금하지만 당장 알아낼 수 없다.
백작 성에 잠입할 경우 일이 커진다.
무리하다가 계획해 둔 일에 차질을 빚을 수는 없었다.
“뭐, 별 상관없나.”
일단은 이쯤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응. 상관하지 말고 밥 먹자! 주인.”
그래, 밥이나 먹자.
궁금한 마음은 미루어 두었다.
일단 계획한 일부터 마무리 짓고 나서 백작가에 대해 알아보기로 결정했다.
한동안 던전에서 주워 온 장비들을 팔고, 계획을 점검했다.
그리고 튜토리얼이 끝날 무렵 신전 근처에 자리 잡고 구경할 준비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슬슬 끝나고 나오나 보군. 혹시 주위에 그놈들 냄새 안 나?”
“그놈들? 암흑 교단 말하는 거면 근처엔 없어.”
루스도 이제 암흑 교단의 명칭을 외웠는지 제대로 부르고 있었다.
“이제 슬슬 재밌어질 거야.”
“뭐가?”
“저쪽 플레이어들은 그렇게 고분고분하지 않거든.”
우리 쪽 튜토리얼은 내가 다 깼다. 회귀 전이건 이번이건 마찬가지.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시작 지점에서 살아남는 데 급급했다.
하지만 이곳의 튜토리얼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 클리어했다.
많은 희생이 뒤따랐다. 하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실력과 독기를 두루 갖추게 되었다.
이윽고 신전이 소란해지기 시작했다. 제국 병사들이 급히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뭔가 부서지는 소리도 들리고, 투덕거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쾅-
신전 문짝이 부서졌다. 동시에 플레이어로 보이는 자들 수십 명이 튀어 나왔다.
“잠깐만 기다리시오! 황제께서 보고자 하신다고 말하지 않았소?”
그 말에 플레이어 중 가장 앞장서 있던 남자가 대답했다.
“황제? 난 민주주의자라서 그런 건 취급 안 하는데? 시스템 메시지에도 황제 부하 노릇 하란 소리는 없었다고.”
“무, 무슨 불경한 소리를 하는 거냐!”
“애초에 공경을 안 하니까, 불경이니 뭐니 하지 말라고.”
남자가 발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재앙만 막으면 되는 거잖아? 각자 열심히 하자고.”
말을 마친 남자가 밖으로 빠져나왔다.
막상 나오긴 했지만, 어디 뭐가 있는지 알 리가 없다.
남자는 한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다가 내친걸음이라고 생각했는지 아무 데로나 걷기 시작했다.
‘웃긴 자식, 진짜 들었던 그대로네.’
녀석은 내 동료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저 녀석을 친구라고 생각했다.
녀석과는 전장에서 마주 쳐 인연을 맺었다.
재앙에 맞서 서로의 목숨을 구해 준 사이.
결국 녀석과 동료가 되는 일은 끝까지 없었다.
‘당장 녀석을 신뢰할 수는 없겠지만 녀석의 인간성은 믿을 만하지.’
이미 과거로 돌아왔으니, 녀석과의 인간관계는 사라졌다.
개인적인 신뢰는 없다. 하지만 녀석이 훌륭한 인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안다.
녀석이 전장에서 동료를 위해 목숨 거는 것을 수도 없이 보았으니까.
‘옛 동료 놈들에 비하면 백배는 괜찮은 놈이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플레이어들을 말리기 위해 병사들이 따라 나왔다.
하지만 병사들로는 막을 수 없다.
기사도 보였으나, 충돌할 경우 사상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것은 제국 측이 원하는 그림이 결코 아니었다.
일단 위치라도 파악해 두자는 생각인지 병사 몇이 뒤따르기 시작했다.
“우리도 슬슬 움직이자.”
“응, 주인. 이따 봐.”
루스에겐 플레이어들의 뒤를 따르라고 말해 두었다.
놈이 무작정 나간 뒤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들은 바가 있었다. 이번에는 미리 좀 도와줄 생각이었다.
나는 신전 안쪽에 볼일이 있다.
인식 교란을 사용한 후 신전으로 잠입했다.
방금 난리가 난 탓인지 들어가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저기 있군.’
한구석에 플레이어들이 모여 있었다.
저들은 방금 뛰쳐나간 자들과는 다른 파벌. 튜토리얼 보스 공략에 비교적 소극이었던 자들이다.
이들은 튜토리얼이 끝난 후 재빨리 제국 측에 붙었다.
‘그중 하나는 내 파티의 일원이 되었지.’
네 번째 복수의 대상.
놈이 웃으며 제국의 기사와 말을 나누고 있었다.
“그놈들은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어차피 이곳에서 살아가려면 순응할 수밖에 없으니, 머지않아 돌아올 겁니다.”
그는 너 같은 놈과는 달라서, 그런 일은 없을 거야.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소. 플레이어들이 모두 당신 같기만 하면 재앙도 얼마든지 물리칠 수 있을 텐데.”
플레이어들이 다 저놈 같으면, 차라리 극단을 차리는 게 나을 것이다. 놈은 말만 번지르르하니까.
놈은 저 말발로 소극적인 파벌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실력도 나쁘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선동 실력.
가만 생각해 보면 옛 동료 중에 제대로 된 놈이 없다.
당시에는 소환 영웅들이 워낙 유능하니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좀 손해 보는 것 같아도, 큰 목표를 위한답시고 그냥 넘기곤 했었다.
하지만 회귀 전에 있었던 일들은 이번 생에 다 돌려 줄 생각이었다.
‘아쉽지만 빠르게 처리할 수밖에 없다.’
놈은 제국 병사들에 둘러싸여 있을 것이다. 그러니 동료로 영입해서 뒤통수를 쳐 줄 수는 없다.
때문에 그냥 조용히 처리하고 자리를 뜰 생각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소란했던 장내가 조용해졌다.
병사들은 자리를 잡고 경계를 시작했다.
그리고 기사는 플레이어들을 데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앞으로의 상황을 설명할 모양이었다.
놈도 기사를 따라 들어갔다.
나는 조용히 뒤를 따라가 지붕에 몸을 숨겼다.
머지않아 기사가 건물을 나왔다.
플레이어들은 저기서 오늘 밤을 보내고, 내일 수도로 이송될 것이다.
해가 지기를 기다려 지붕에서 내려왔다.
경계를 서고 있는 병사에게로 몰래 다가가 기절시킨 후 옷을 벗겨 입었다.
그 후에 곧장 플레이어들이 있는 건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문을 열고 소리쳤다.
“메이에르 님, 잠시 나와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