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11화>
나는 뒤로 물러나 검을 바람처럼 휘둘러 화살을 쳐 내었다.
마위니도 예의 그 반구형 막을 만들어 화살을 방어하는 상황.
루스도 손을 방패로 만들어 화살을 막고 있었다.
쎄에엑-
순간 날카로운 바람 소리와 함께 맨 스콜피온의 꼬리가 쏘아져 왔다.
목표는 이번에도 마위니였다.
꽈앙-
꼬리와 마위니의 스킬이 부딪치는 순간, 굉음이 터지더니 마위니의 막이 사라졌다.
꼬리도 끝이 녹아 바스러진 상황.
맨 스콜피온은 꼬리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심한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잠시 후, 화가 난 놈이 낫과 집게발을 미친 듯이 휘두르기 시작했다.
마위니는 활에 오러를 씌워 놈의 낫과 집게발을 막아 내었다.
놈의 거센 공격이 마위니를 향하는 동안, 나는 옆으로 우회했다.
마위니에게 공격을 퍼부으며 맨 스콜피온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 덕분에 뒤쪽에 공간이 조금 난 상태.
그곳으로 재빨리 몸을 옮겨 간 후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서걱-
최선을 다한 일격에 맨 스콜피온의 꼬리 끝이 잘려 바닥에 떨어졌다.
끼에에엑-!
놈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맨 스콜피온이 몸을 돌려 나를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마위니의 활대가 놈의 낫을 걸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사이 나는 다시 한번 놈의 꼬리에 칼을 휘둘렀다.
서걱-
맨 스콜피온의 꼬리가 몸통 근처까지 바투 잘려 나갔다.
놈이 분노에 차 억지로 고개를 돌렸다.
신체 구조상 뒤를 보기 힘든데도 불구하고 상체가 나를 마주 보고 있었다.
곧이어 놈이 낫을 들어 나에게 휘둘러 왔다.
그에 나는 바닥에 엎드리듯 자세를 낮췄다. 수평으로 날아오던 놈의 낫이 머리 위를 스쳐갔다.
그 틈을 노려 재빨리 놈의 등으로 올라갔다.
놈이 다시 낫을 휘두르려는 순간, 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놈의 상체가 내 쪽으로 푹 숙여졌다.
방어하는 집게발을 치워 낸 마위니가 공격을 성공시켰다. 나를 공격하느라 내보인 놈의 등을 활대로 후려친 것이다.
그 덕에 내 눈앞에 놈의 정수리가 훤히 노출되었다.
절호의 기회.
나는 단검을 역수로 잡고 뛰어올랐다.
그리고 떨어지는 힘을 빌려 칼날을 내리 꽂는다.
마력이 가득 담긴 오러 소드가 놈의 머리로 파고들었다.
콰직-
오러가 놈의 머릿속을 곤죽으로 만들었다.
놈의 몸이 부르르 경련했다.
풀썩-
바퀴 빠진 짐마차가 주저앉듯이 놈이 바닥으로 무너졌다.
“후욱, 후욱…….”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마위니를 바라본다.
마위니도 나를 마주보고 있다.
힘겨운 싸움을 끝낸 동료 간의 우정이 시선에 담겨 있다.
내 얼굴에도 미소가 어린다. 마위니의 뒤를 덮쳐 가는 그림자를 보며.
푹-
루스의 클로가 마위니의 옆구리를 꿰뚫었다.
깜짝 놀란 마위니가 활대를 휘둘러 루스를 후려쳤다.
하지만 미리 대비하고 있던 루스는 방패로 놈의 공격을 막으며 뒤로 물러섰다.
“크윽, 네놈! 이게 무슨 짓이냐!”
마위니의 노호성이 방을 쩌렁쩌렁 울리는 순간.
나는 이미 마위니의 등 뒤에 도착해 있었다.
혼신의 힘이 담긴 오러 소드가 놈의 옆구리를 찔러 들어간다.
이미 마위니는 루스의 클로에 당해 피가 줄줄 흐르고 있는 상황.
나는 놈의 몸에 뚫린 부위를 노리고 칼을 쑤셔 박은 후 재빠르게 휘저었다.
놈에게서 빼앗은 스킬, ‘인식 밖에서’가 발동되었다. 내장이 강력한 충격에 짓이겨지는 것이 칼끝으로 느껴졌다.
그때 놈의 사방에 오러의 막이 생겨났다.
얼른 칼을 들어 놈의 스킬을 막으며 물러섰다.
“도대체 왜 이런…… 쿨럭!”
비통한 모습으로 말을 하던 놈의 무릎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힘이 풀려 버린 놈의 손에서 활이 떨어지며 스르륵 사라진다.
“기다리고 있으면 알게 될 날이 올 거야.”
저승에서.
서걱-
검을 휘둘러 마위니의 목을 잘라 내었다.
잘려진 머리가 발치에 멈춰 섰다.
의문과 경악이 담긴 눈이 감기지 못하고 나를 바라본다.
웃으며 마주 봐 주었다.
놈이 저절로 사라질 때까지.
“주인! 나 저거 먹어도 돼?”
오래 참는다 싶었다.
루스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죽은 맨 스콜피온이 있었다.
“그래, 먹어라. 천천히 먹어도 돼.”
어차피 이곳에서 하루 쉬어 갈 생각이니 시간은 많다.
나는 식사 중인 루스를 지나쳐 맨 스콜피온이 튀어나온 벽으로 향했다.
퍽-
통로가 생겼던 부분을 발로 걷어차자 구멍이 뚫렸다.
쭉 따라 들어가니 제단 위에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여긴 이미 회귀 전에 와 본 곳. 함정 따위는 없으니 마음 놓고 상자를 열었다.
[언브레이커블(A. 장검)]
- 명장의 솜씨와 마도사의 실력이 합쳐져 만들어진 검. 높은 수준의 충격흡수 마법이 내장되어 있어, 마력이 주입되는 동안은 결코 손상되지 않는다.
채앵-
손가락으로 검신을 튕기자 청아한 소리가 통로를 가득 메웠다.
‘좋군, 이 정도면 한동안은 걱정 없겠어.’
메인 디쉬는 따로 있었지만, 이것도 목적 중 하나였다.
단검을 종아리 쪽에 옮기고 언브레이커블을 허리에 찼다.
통로를 돌아 나오니 루스는 여전히 식사 중.
나는 루스에게로 다가갔다.
“주인도 뭐 좀 먹어야지, 배 안 고파?”
웬일로 기특한 생각을 다 하는군.
“천천히 먹어도 돼. 어차피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출발할 거야.”
“응, 주인도 굶지 말고 먹어!”
급한 허기는 달랜 건지 녀석이 남은 것을 천천히 즐기고 있었다.
나도 옆에 앉아 식량 자루를 꺼내 들었다.
막 자루를 뒤져 먹을 것을 꺼내려는 찰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마위니가 죽은 곳에 떨어진 검은 천 조각.
다가가보니 마위니가 쓰던 망토였다. 바닥에 펼쳐져 있어 이제야 발견하게 된 것 같았다.
[그림자 망토(A. 망토)]
- 검은색의 망토. 특수한 재질로 만들어져 움직임에 방해되지 않는다. 인식 교란 마법이 내장되어 있어 암살자나 저격수가 사용하기에 좋다.
‘아이템이 떨어져?’
하긴 회귀 전에는 소환 영웅을 죽여 본 적도 없고, 죽는 걸 본 적도 없다.
그러니 아이템이 떨어지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다만 포이즈너 때 아무것도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매번 나오는 것은 아닌 모양.
‘어쨌든 이득이군. 아이템까지 주고 가다니 고맙구나, 마위니.’
나는 마위니가 들으면 이를 갈 생각을 하며 망토를 걸쳤다.
* * *
루스와 나는 던전에서 하루를 보내고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아베나스탄, 제국 10대 도시 중 한 곳이었다.
다음으로 튜토리얼을 끝낼 플레이어들이 나타날 곳이기도 했다.
산길을 꾸준히 걸어 아베나스탄으로 향했다.
루스는 중간중간 맛있는 냄새가 난다며 자리를 비우곤 했다. 아마도 근처에 몬스터를 사냥해 먹는 것 같았다.
미노타우루스에 이어 맨 스콜피온까지 먹어치운 녀석은 부쩍 성장해 있었다.
[호문쿨루스 - 루스(A. 키메라)]
소유자 : 정해수
근력 : 12(B)
민첩 : 10(B)
체력 : 99(B)
마력 : 3(B)
스킬
-신체 변형
-포식
-초재생
모든 능력치가 B급에 이르렀고, 체력은 머지않아 A급이 될 상황이었다.
다만 마력이 높은 놈들을 잡아먹지 못하다 보니 마력만은 비교적 낮은 상태였다.
‘등급이 높아서 그런지 많이 먹어서 그런지 잘 크는군.’
루스는 여전히 나보다 스탯이 높다.
언제쯤 제대로 교육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요즘은 말을 썩 잘 듣기는 하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꾸준히 걸은 결과, 사흘 만에 아베나스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은 제국 10대 도시답게 사람이 많았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일일이 검문하지 않는 모습.
수상한 사람만 따로 잡아낼 심산인지 경비병 몇 명이 눈을 부라리며 서 있었다.
혹시나 검은 머리와 눈동자가 문제가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림자 망토의 인식교란 스킬을 사용하여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루스의 경우, 작은 체구와 앳된 외모 덕인지 주의를 끌지 않았다.
검문을 마치고 난 뒤, 난 잠시 멈춰서 과거를 떠올렸다.
‘튜토리얼 며칠 차에 끝내고 나왔었지?’
이쪽에서 나올 자들에 대해 기억해 두기 위함이었다.
회귀 전, 옛 동료 놈이 떠들고 다녔던 무용담을 바탕으로 기억을 더듬었다.
이곳의 튜토리얼이 끝날 때까지 얼추 열흘 정도 남은 것 같았다. 일단 근처에 방을 잡기로 했다.
지난번에 벌어 둔 돈으로 간신히 여관방을 잡았다.
대도시답게 물가가 비쌌다.
이번에도 던전에서 나온 장비들을 처분해서 돈을 마련해야 될 것 같았다.
“어디서 그런 놈 하나 더 나오면 좋겠는데.”
저번에 잘 부려 먹었던 뒷골목 건달 대장을 생각하며 혼잣말을 했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루스가 반응해 왔다.
“누구?”
“왜 저번에 부려 먹었던 집 주인 있잖아. 건달 두목.”
“뒷골목에 가면 많지 않을까? 내가 금방 찾을 수 있는데.”
루스의 감각이라면 비슷한 놈을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도시니 만큼 뒷골목 조직들도 만만찮을 터. 괜히 귀찮은 일이 생길 수 있다.
“됐다. 그냥 직접 움직이자.”
“응! 나는 뭐든 좋아.”
루스는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녀석을 데리고 여관방을 나서 번화가로 향했다. 장비 상점을 찾아 아이템을 팔 생각이었다.
한참 걸음을 옮기는데 루스가 멈춰 섰다.
“왜 그러냐?”
“저번에 그놈들이랑 같은 냄새야.”
루스가 가리키는 곳에는 상인 차림의 중년인이 서 있었다.
“그놈들? 누구?”
“냄새가 썩은 놈들!”
암흑 교단인가. 상인처럼 꾸미고 뭐 하는 거지?
이쪽 신전에 대한 습격은 기억에 없다. 옛 동료 놈의 무용담에도 없었고.
그렇다는 말은, 습격이 아니라 그냥 염탐이라는 소린데.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기에 나는 결정을 내렸다.
“따라 가 보자. 안 놓치게 냄새 잘 맡아.”
“응, 주인. 걱정 마!”
장비 처분은 뒤로 미루고 암흑 교단 놈을 따라 갔다.
놈은 신전 주위를 한참 얼쩡거리더니 발길을 돌려 어딘가로 향했다.
놈을 따라 걸어갈수록 주위 풍경이 허름해져 갔다.
‘빈민가로 가는군.’
루스는 거리의 냄새가 마음에 안 드는지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슬슬 거리에 사람이 적어지자 놈이 눈치챌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스킬을 사용해 몸을 감출 거야. 넌 최대한 뒤에서 따라와라.”
“알았어, 주인.”
나는 곧바로 인식 교란 스킬을 사용한 후 놈의 뒤를 바짝 따랐다. 놈은 그다지 실력이 뛰어나지 못한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놈은 빈민가에 접어들고서도 한참을 더 가 낡은 건물 앞에 도착했다.
문 앞에 선 놈이 안쪽을 향해 뭐라고 얘기하는 것이 들려왔다.
내용이 영 이상한 것이, 암호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쯧, 가지가지 하는군.’
아무리 인식 교란 마법이 있더라도 집 안으로 따라 들어가기는 힘들다.
그래서 나는 뒤쪽에 서서 문이 열리는 것을 살펴봤다.
문틈으로 보이는 것은 중년 남성 한 명.
문이 금방 닫혀서 방 안을 자세히 볼 틈은 없었다.
보다 자세히 염탐하기 위해 조용히 지붕에 올라간 후 엎드렸다. 귀를 기울이자 말소리가 들렸다.
“그래, 알았다. 나는 내려가 볼 테니 너는 문을 잘 지켜라.”
“예, 걱정 말고 얼른 가 보십시오. 사제님이 아까부터 기다리십니다.”
말이 끝나자 드르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비밀 통로가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루스가 지붕 위로 따라 올라왔다.
“아래쪽에 몇 명이나 있는지 알겠어?”
안쪽에서 듣지 못하도록 루스에게 속삭였다.
“응, 한 명만 있어.”
고개를 갸웃한 루스가 말을 이었다.
“쫓아온 놈은 어디 갔나 봐. 냄새가 옅어졌어.”
짐작대로 비밀 통로로 이동한 것 같았다.
암호는 엿듣고 외워 놓기는 했는데, 어쩌면 좋을까.
이런 놈들의 특성상 암호가 자꾸 바뀌기도 하고, 소수다 보니 목소리만 듣고도 정체를 들킬 수가 있었다.
그 때문에 잠시 고민하다 생각을 정했다.
“루스, 너 벽 뚫을 수 있겠냐?”
루스가 손을 클로로 만들어 지붕을 살짝 찔러 보았다.
“응, 될 거 같아.”
“그래, 준비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