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10화>
루스가 눈을 반짝였다.
녀석에게 되물었다.
“그거라니?”
“있잖아 그거, 저번에 먹다 남긴 거!”
오늘은 식량 자루 말고 다른 것을 먹고 싶은 모양. 먹다 남은 거라면 아마 이걸 말하는 거겠지.
“여기 있다. 먹어라.”
인벤토리에 보관해 뒀던 미노타우루스의 고기를 꺼내 줬다.
“맛있겠다.”
루스가 냉큼 고기를 받아먹기 시작할 때, 마위니가 감탄사를 터트렸다.
“호오, 미노타우루스 같군요. 직접 잡으신 겁니까?”
“그래, 튜토리얼 보스로 나온 놈이야. 시간이 없어서 인벤토리에 넣어 뒀지.”
“그러고 보니 인벤토리도 가지고 계시군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마스터.”
“그런가?”
놈은 진심으로 감탄하는 듯 말을 이었다.
“튜토리얼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그 정도로 강하시고, 인벤토리도 갖고 계시니 정말 대단한 일이지요.”
튜토리얼에 대해 잘 아는 듯한 말투.
신기하게도 이놈들은 이쪽 세계의 지식과 플레이어에 대해 제법 알고 있는 상태로 소환된다.
나를 이쪽으로 불러온 존재와 관련이 있겠지.
추측만 남겨 둔 채로 난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자는 중에 누가 건드리는 것이 느껴져 눈을 떴다. 불침번을 서던 마위니가 속삭여 왔다.
“누가 다가옵니다.”
옆을 보니 루스는 벌써 일어나 있었다.
“주인, 낮에 봤던 놈들이야. 냄새 지독한 놈들.”
암흑 교단인가.
시간을 가늠해 보니 습격이 실패하고 도주 중인 놈들이 이쪽으로 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다른 냄새는 안 나?”
“응, 그놈들만 있어.”
추적자는 따라붙지 않은 건가. 하긴 플레이어들을 수도로 안전하게 이동시키는 것이 먼저겠지.
“마위니, 저격 준비하고 은신해 있어. 내가 칼을 뽑으면 공격한다.”
“알겠습니다, 마스터.”
마위니가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서더니 스스륵 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아마 숲속 어딘가에서 이쪽을 향해 활을 겨누고 있을 것이다.
잠시 모닥불 근처에 앉아 불을 쬐고 있자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암흑 교단 놈들이 나타났다.
낮에 봤던 것처럼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놈들이 다섯 명. 옷 이곳저곳이 찢어진 것이 낭패한 모습이었다.
“어디서 오신 분들이신지?”
내가 짐짓 모르는 척 말을 걸었다.
놈들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자기들끼리 말을 나누기 시작했다.
“추적자는 아닌 모양이군.”
“벌써 앞질러 오진 못했을 겁니다. 그놈들도 플레이어에 신경 써야 될 테니까요.”
“쯧,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제국의 추적자가 아니라고 생각하자 완전히 무시하는 모습. 어쩔 생각인가 싶어 나도 가만히 보고 있었다.
그들은 잠시 대화를 나누더니 놈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지시를 내렸다.
“굳이 목격자를 남길 필요는 없지. 더스트, 자네가 처리하게.”
더스트라 불린 놈이 고개를 꾸벅이고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모닥불 옆에 앉은 상태.
놈은 내 태연한 모습에 잠시 의아해하더니 상관없다는 태도로 칼을 뽑아 들었다.
놈이 칼을 내리치려는 순간, 몸을 일으키며 오러 소드를 휘둘렀다.
“헉.”
놈이 놀라 소리치며 칼을 들어 막으려 했지만, 뱀처럼 휘어져 들어간 오러 소드가 놈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핑-
거기에 놈들이 미처 대비하기도 전, 숲에서 날아온 화살 한 발이 우두머리의 관자놀이를 파고들었다.
연이어 한 발 더 날아온 화살이 이번에도 명중해 한 명의 목숨이 더 사라졌다.
루스도 어느 틈에 몸을 일으켜 한 놈의 목을 부러트리고 있었다.
이제 위협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더 이상의 화살은 날아오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놈이 덜덜 떨며 물어 왔다.
“네, 네놈들은 뭐야?”
“그런 건 죽이려 들기 전에 물어봐야지.”
굳이 이놈들에게 캐낼 정보는 없다. 어차피 이놈들의 행보는 잘 알고 있으니까.
게다가 암흑 교단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놈들도 아니었다.
‘그러니 플레이어들한테 생채기도 못 내고 실패했지.’
이놈들은 암흑 교단이 날린 잽 같은 것이다. 플레이어가 어느 정도인가 간을 보기 위해 보낸 척후병.
물론 제국의 마스터가 나타나면서 플레이어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도망쳤겠지만.
곱게 죽어 내 스탯이 되어라.
어차피 해치워야 될 적이니 고민할 필요 없이 칼을 휘둘렀다.
서걱-
놈의 목이 땅에 떨어지며 싸움은 싱겁게 끝났다.
수풀이 부스럭거리더니 마위니가 돌아왔다.
놈의 손에는 이제껏 보이지 않던 활이 쥐어져 있었다.
내게는 익숙한, 2미터도 넘는 길이의 장궁.
특별한 기술을 통해 손바닥만 한 아기살을 날려 대는 것이 놈의 주특기였다.
내가 장궁을 보자 놈의 손에서 장궁이 스르륵 사라졌다.
“아공간에 이동되었다가 필요할 때만 나타나는 기능이 있습니다.”
내가 궁금해하는 걸로 착각한 놈이 설명해 왔다.
“신기한 활이군.”
나는 장단을 맞춰, 몰랐다는 듯 대답해 주었다.
퍽-
루스가 죽은 암흑 교단 놈들의 시체를 발로 걷어차 불가에서 치우고 있었다.
“냄새나! 짜증 나는 냄새.”
마왕을 불러내려는 놈들이니 좋은 냄새가 날 수가 없지. 키메라를 만드는 인체 실험도 하는 놈들이다.
투덕거리는 사이, 동이 터 오는 것이 느껴졌다.
모닥불을 정리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목표는 사흘 거리에 있는 도시.
그곳의 신전에서는 또 다른 자들이 튜토리얼을 마치고 나온다.
이처럼 제국 내의 몇몇 신전에서 플레이어가 나오는데, 이번에 목표로 한 곳에 만날 사람이 두 명 있었다.
‘물론 가는 길에 처리할 일도 좀 있지.’
마위니를 슬쩍 돌아보며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단속한다.
이놈은 얼마나 경악한 표정을 보여 줄까.
기대감을 안고 걸음을 재촉했다.
* * *
콰쾅-
폭음이 일고 집채만 한 바위가 터져 나갔다.
그리고 그 뒤에 드러난 것은 기하학적인 문양이 새겨진 철문.
“이걸 도대체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 오는 마위니에게 나는 친절히 설명해 줬다.
“내가 얘기했잖아, 이런 쪽 스킬이 있다고. 나중에 기회 되면 자세히 말해 줄게.”
여전히 의문이 섞인 표정의 마위니. 반면 루스는 태연하다.
“히히, 재밌겠다.”
이곳에서 내가 하려는 일을 짐작하는 듯, 의미심장하게 웃어 보이기까지 한다.
나는 그 웃음을 못 본 척하고 철문에 다가가, 손을 얹고 마력을 불어넣었다.
우웅-
문양이 빛을 발하더니 철문이 저절로 열리기 시작했다.
문 안쪽은 푸르스름한 빛이 사방에서 나는 정방형의 공간.
“가자.”
일행을 이끌고 들어섰다. 철문이 닫히고 맞은편 벽에 통로가 생겨났다.
거침없이 통로로 접어들었다.
통로 안쪽도 처음 들어왔던 곳과 별 차이 없는 네모난 방이었다.
다만 훨씬 좁다.
한 변이 5미터는 될까. 딱 원룸만 한 크기.
일행이 방으로 모두 들어선 순간, 사방에서 구멍이 생겨나며 몬스터가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재빨리 단검을 뽑아 들고 휘두르기 시작했다.
루스도 손을 클로로 바꿔 전투에 돌입했다.
옆을 힐끔 돌아보니 마위니가 좁은 공간에서 힘겹게 화살을 날리고 있었다.
삼각형으로 서서 서로 등을 맞댄 채 몬스터를 상대해야 되는 상황.
마위니의 훤히 드러난 등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조금만 더 써먹고.’
메인 디쉬는 조금 뒤로 미루고, 몬스터를 상대한다.
한 뼘 길이의 송곳니가 입 밖으로 튀어나온 늑대 괴물, 블러드 팽.
놈들은 사방의 구멍에서 튀어나오는 즉시 입을 벌리고 달려들었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재빠르고 끈질겼다.
한 번의 칼질로 하나씩 목을 친다.
오러를 머금은 칼이 깔끔하게 놈들의 피륙을 갈랐다.
루스도 놈들을 상대하는 데 별문제 없어 보였다.
킹 아울베어를 잡고 얻은 클로가 손에 잘 맞는 듯, 신나서 놈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마위니도 아직은 큰 무리가 없었다.
S급답게 말도 안 될 정도의 속사를 보여 주는 중.
몬스터들은 구멍에서 나오는 족족 미간이 꿰뚫려 죽어 갔다.
슬슬 블러드 팽의 사체로 방이 좁다고 느껴질 무렵, 3면의 구멍이 막혔다.
나머지 한쪽의 구멍은 어느새 확장되어 통로로 변해 있었다.
다음 방도 다를 바 없었다. 크기도 구조도 똑같았다.
단 하나, 등장하는 몬스터만 달라졌다.
스파이크 핀드.
몸에 가시가 돋은 대형견만 한 도마뱀이다.
놈들은 구멍에서 나오자마자 등에 돋은 가시를 쏘아 내기 시작했다.
단검을 풍차처럼 휘둘러 쏘아져 오는 가시를 막아 냈다.
루스는 한 손을 방패 모양으로 만들어 막아 내는 중.
마위니는 나오는 족족 쏘아 죽이다가, 물량이 쌓이자 어쩔 수 없이 활쏘기를 멈추었다.
그 대신 날아오는 가시를 활대를 이용해 쳐 내고 있었다.
치명적인 공격은 아니지만, 뒤에 아군이 있으니 피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순간, 마위니가 활에 마력을 불어넣고 크게 휘둘렀다.
구형의 막이 생기더니 앞으로 발사되었다.
반구형의 막은 날아오는 가시를 녹이고, 더 나아가 스파이크 핀드의 몸을 부숴 버렸다.
‘역시 만만치 않군.’
S급답게 상황에 맞는 기술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었다.
나는 오러 소드를 휘두르며 버티고만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방패를 이용해 놈들을 다 처리한 루스가 내 쪽에 가담했다.
곧이어 마위니도 가세한 덕에 이번 방도 얼마 지나지 않아 클리어되었다.
좀비와 스켈레톤이 나오는 방을 지나 스펙터가 나오는 방도 통과했다.
몇 번이나 방을 더 통과하자 이제까지와는 다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통로가 있어야 될 자리에 시뻘건 문이 위치하고 있었다.
여기 들어오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고 말하는 듯한 모습.
문에는 역시나 복잡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번엔 내가 나서지 않고 마위니에게 눈짓했다.
마위니가 나서 문에 마력을 흘려 넣었다.
우우웅-
떨리는 소리를 내며 문이 서서히 열렸다.
비범한 문의 모습과는 달리 방 안은 별다른 것이 없었다.
역시나 정사각형 모양의 방. 다만 이전보다 조금 더 넓었다.
마위니의 등을 보며 한쪽 입꼬리를 스윽 올렸다.
‘최후를 화려하게 불태워 보라고, 마위니.’
방 안으로 들어서자 뒤에서 문이 닫혔다. 동시에 맞은편에서 구멍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상대한 것들 중 가장 큰 덩치를 가진 놈이 등장했다.
맨 스콜피온.
인간의 상체에 전갈의 하체를 가진 몬스터.
놈은 손에 큰 낫을 들고 있었다.
맨 스콜피온은 통로를 통과하자마자 마위니에게 달려들었다.
놈은 보스방 문에 마력을 불어넣은 사람에게 먼저 달려든다. 그것이 이 던전이 가진 사소한 비밀이었다.
마위니도 놈이 나타나자마자 번개처럼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오러에 감싸인 마위니의 화살이 놈의 집게발에 박혀 들어갔다.
상체를 노린 공격이었지만 놈이 집게발을 들어 올려 막은 것.
화살을 막은 동시에 놈의 대낫이 휘둘러졌다.
후웅-
바람 소리를 내며 수평으로 베어져 오는 낫을 보며, 마위니는 어쩔 수 없이 활대를 들어 올렸다.
공간이 협소하다 보니 온 방 안이 사정거리였다.
낫이 쉴 새 없이 휘둘러졌다.
마위니가 피할 경우 뒤에 있는 일행이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
쾅-!
낫과 활대가 부딪치며 폭음이 울려 퍼졌다.
S급답게 밀리지는 않는 모습이었지만, 이런 싸움은 마위니의 특기가 아니었다.
저격수에게 근접전을 강요하는 상황.
‘그래서 이곳으로 온 거야. 즐기라고! 마위니.’
나도 단검에 오러를 씌어 맨 스콜피온을 공격해 갔다.
자세를 낮춰 놈의 앞다리를 노렸지만, 집게발에 막혀 공격이 튕겨 나갔다.
루스가 어떻게든 뒤로 돌아가 보려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방이 좁다 보니 뒤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꼬리에 달린 독침이 언제든 찌르기 위해 대기 중이었기에 뒤쪽을 노리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마위니는 앞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마뜩잖을 상황일 텐데도 불만 없이 전위를 책임지는 모습. 그는 활을 검처럼 사용하여 낫을 막고 있었다.
마위니가 뒤에서 화살을 날릴 수 있다면 훨씬 쉽게 끝낼 수 있는 상황.
하지만 그렇게 둘 생각은 없다.
서로 간에 소득 없이 지지부진한 상황이 계속되던 어느 순간.
사방의 천장에서 작은 구멍이 생기더니 화살이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