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9화>
역시나 곧 문이 열리고, 판금 갑옷을 차려입은 기사가 들어왔다.
슬쩍 쳐다보니 진형기도 곁눈질로 보며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감히 사람을 쳐? 너도 한번 맞아 봐라.”
기사가 들어온 것을 본 진형기가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자신을 밀친 병사에게 달려들었다.
진형기와 병사는 거의 박빙의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 적극적으로 공격할 수 없는 병사가 수세에 몰리는 것은 당연지사.
거기에 진형기의 부하들도 합세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심각해질 기미가 보이자 결국 기사가 나섰다.
쾅-!
발 구르는 소리와 함께 기사의 몸이 진형기에게 쏘아져 나갔다.
“멈춰라!”
‘크게 다치진 않겠지.’
기사의 외침을 뒤로하고 모두의 신경이 그쪽으로 쏠려 있는 틈을 타 문밖으로 빠져나왔다.
대부분의 병사가 플레이어들을 지키고 있는 상황이라 밖은 경계가 거의 없었다.
도시의 외곽에 위치한 빈민가 쪽으로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지금 이대로 나가긴 좀 그렇지.’
이 옷차림으로 성문으로 갈 경우 분명히 검문에 걸린다. 물론 강제로 돌파할 수도 있지만, 굳이 정체를 노출시킬 필요는 없다.
‘추적대가 쫓아올 수도 있고 말이지.’
튜토리얼에서 몇 번 실력 행사를 했었다. 내가 보스를 잡았다는 것도 머지않아 추측해 낼 것이다.
그런 상황이니 굳이 빠르게 행적을 노출시키고 싶진 않았다.
빈민가에 들어서자 이곳저곳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적당히 걸어가다,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누군가 골목으로 따라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루스가 몸을 들썩였지만 제지한 후 상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이거 외지에서 오신 분들이신 것 같은데, 잠깐 인사 좀 할까, 우리?”
건들거리는 모양새로 5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이런 놈들이랑 굳이 긴말할 필요 없다.
말보다 더 좋은 게 있으니까.
나는 바로 단검을 뽑아 들고 마력을 흘려 넣었다.
“헉!”
오러를 본 순간 놈들의 입이 벌어지며 동시에 신음이 튀어나왔다.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려는 놈들에게 말했다.
“모가지 잘라 버리기 전에 앞으로 와라.”
놈들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앞으로 와 일렬횡대로 섰다.
“대장이 누구냐?”
조용한 시선이 한 명에게로 몰렸다.
“재워 놔. 죽이진 말고.”
루스를 향해 중얼거리듯 말한 순간 번개처럼 움직인 녀석이 대장을 제외한 4명의 뒷목을 후려쳤다.
짚단처럼 쓰러지는 부하들을 보며 대장 놈의 무릎이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자, 잘못했습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안 죽일 테니, 앞장 서.”
“어, 어디로?”
나는 불안해하는 대장에게 씩 웃어 주며 대답했다.
“너희 집.”
대장의 집에 도착한 후, 후드가 달린 옷 두 벌을 꺼내 루스와 나눠 입었다.
“이거 가져가서 돈으로 바꿔 와. 먹고 튀면 재미없을 거야.”
그동안 모아 뒀던 낮은 등급의 장비들을 놈에게 줬다.
루스가 먹지 않아 버리려다가 이럴 때를 대비해 놔 둔 것이다.
“안 튑니다. 그런 짓도 사람 봐 가면서 해야죠.”
루스가 툭 하고 끼어들었다.
“그럼 골목엔 왜 따라왔어? 이 똥 덩어리야.”
“…….”
놈의 냄새가 마음에 안 드는지 호칭이 지저분했다.
대장 놈은 할 말이 없는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얼른 다녀와. 빨리 안 오면 찾아간다.”
“예, 얼른 다녀오겠습니다.”
잠시 쉬고 있자, 곧 놈이 돌아왔다.
놈에게 돈을 건네받은 후 그중 삼분의 일 정도를 돌려주었다.
“수고비다. 쓸데없이 입 놀리지 말고.”
“아이구, 감사합니다. 제가 또 입 하나는 정말 무겁……지요.”
놈이 말을 하다 움찔하는 것을 느껴 옆을 보았다. 루스가 손가락을 칼날로 만들어 목을 긋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저 정도면 충분히 알아들었겠지.
뭐, 굳이 끝까지 입 다물 필요도 없다. 그냥 당장 떠들고 다니지만 않으면 된다.
그 뒤에 할 일이 있어 나는 루스와 함께 곧장 집을 나섰다.
시장 쪽으로 향하려는데 루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한 곳을 쳐다보며 코를 씰룩이는 모습.
“왜 그러냐?”
“영양가는 있어 보이는데, 냄새가 너무 나빠. 먹고 싶은데 안 먹고 싶은 느낌이야.”
인상을 팍 쓰며 대답하는 루스를 보다가 그 시선을 따라갔다.
3명의 남자가 어디론가 바삐 가고 있었다. 시커먼 로브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것이 척 보기에도 수상해 보였다.
‘발걸음을 보니 제대로 단련을 한 놈들인데…….’
잠시 고민을 하다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혹시 그놈들인가.’
깜빡하고 있었는데 내일 밤쯤 습격이 있다.
튜토리얼을 마치고 나온 플레이어들을 노린 것.
하지만 때마침 도착한 기사단에 깔끔하게 막히면서 플레이어들에겐 전혀 영향이 없었다.
‘습격이 있었다는 소리만 들었지, 저놈들 얼굴은 못 봤었지.’
저놈들은 첫 번째 재앙을 섬기는 사도였다.
재앙을 막기 위해 이계에서 용사들을 소환한다는 소문이 진작부터 돌았다.
그렇기 때문에 놈들도 신전을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국의 대비도 만만치 않아, 결국은 실패하게 된다.
‘마스터급을 보낼 줄은 몰랐겠지.’
가만 보니 굳이 애쓰지 않아도 성 밖으로 나갈 기회가 올 것 같았다. 내일 밤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럼 굳이 직접 애쓰지 않아도 되겠군.’
지금 돌아다니는 것은 오히려 시간낭비란 생각에 다시 몸을 돌렸다.
“커, 컥-.”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자 술을 마시던 대장 놈이 깜짝 놀라 마시던 걸 뿜었다.
“왜 그리 놀라? 무슨 죄 지었어?”
“무, 무슨 그런 말씀을. 저는 죄라고는 지어 본 적이 없습니다.”
엄마도 안 믿을 소리를 지껄이는 놈에게 말했다.
“내일까지 여기 있을 거니까 그렇게 알아 둬.”
놈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내 알 바 아니었다.
루스도 옆에서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주인, 배고파!”
그래, 오래 참았지.
나는 인벤토리에서 식량 자루 하나를 꺼내 루스에게 던져 주었다.
허공에서 갑자기 물건이 나타나자 대장 놈이 깜짝 놀라 흘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 시선을 무시하고 놈에게 말했다.
“어이, 먹을 것 좀 없나? 계속 건량만 먹었더니 영 안 좋아.”
놈이 떨떠름해하며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빵과 스튜를 가지고 나왔다. 자기가 먹으려고 준비해 놓았던 모양이었다.
놈의 음식을 뺏어 먹고 나서 놈에게 말했다.
“넌 밥 안 먹냐?”
그러자 놈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왜 그러는지는 알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돈을 적당히 꺼내 놈에게 쥐어 주며 말을 이었다.
“나가서 먹고 와라. 1시간 안에는 돌아오지 말고.”
놈을 내보낸 후에 자리에 앉아 마음의 준비를 했다.
‘슬슬 뽑아 볼까.’
루스에게는 이미 영웅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얘기해 놓은 상황. 이제 소환하기만 하면 된다.
나는 한 번 심호흡을 한 뒤에 죽이고 싶은 놈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스킬을 사용했다.
‘랜덤 영웅 소환.’
바닥에 마법진이 나타나고, 얼마 후 그 자리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마스터.”
X 까고 있네, 개새끼가.
튀어나오려는 욕을 참으며 반갑게 인사했다.
“나도 만나서 반가워. 앞으로 잘해 보자.”
뒈질 때까지 말 잘 들어라.
그리고 그날 최대한 괴로운 표정 부탁해.
[카를로스 마위니(S. 저격수)]
-충성도 : 50 (충성도가 낮으면 배신할 수 있습니다.)
자그마한 덩치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남자, 카를로스 마위니.
놈은 뛰어난 저격수다.
자신의 키보다 더 큰 활로 까마득한 곳에 있는 적을 처리하는 모습은 감탄을 자아냈었다.
놈은 저격수답게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었다. 충성도가 오르면서 전투 때마다 조언을 해 오곤 했다.
‘단 한 번도 네놈의 의견을 무시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죽어 가던 순간, 놈이 나를 무시하던 싸늘한 시선이 떠올라 살심이 치솟는다.
나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애써 억눌렀다.
아직은 아니지.
좀 써먹다가 때 되면 보내 주마. 처절하게.
속으로 이를 갈면서 놈에게 말했다.
“넌 저격수로군. 안 그래도 장거리 공격이 부족했는데 잘됐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마스터.”
“혹시 전투 중에 충고할 것이 있으면 스스럼없이 얘기해 줘. 새겨듣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마스터.”
대답과 동시에 놈의 충성도가 10 상승했다는 메시지가 떴다.
‘쉽게도 오르는군. 지금 생각하면 이상한 부분이 많아.’
예전이나 지금이나 충성도는 쉽게 오른다.
능력을 보여 주거나 재앙을 막는 데 앞장서면 쉽게 100을 만들 수 있다.
그렇다고 100 이상의 단계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수를 써도 100 이상은 오르지 않는다.
게다가 충성도가 오른다고 영웅들의 태도에 큰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처음 소환할 때부터 놈들은 충분히 정중하다.
또 충분히 충성스럽다. 배신하는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그냥 시스템에 적혀 있으니, 으레 그렇듯이 높으면 좋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분명히 충성도에는 무언가 있다.’
어쩌면 충성도만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에 무언가 있다.
그것을 밝혀내면 놈들의 목적과 배신의 이유를 알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잠시 놈과 대화를 하고 루스를 소개했을 즈음, 집 주인이 돌아왔다.
“엇, 이분은 또 누구신지?”
“신경 쓸 거 없고, 잠자리나 준비해라.”
집엔 침대가 하나뿐이라 여분의 잠자리가 필요했다.
대장 놈이 툴툴거리며 이불을 가져와 2명분의 자리를 더 마련했다.
그러고서 문앞에 서서 인사를 했다.
“저는 나가서 자고 오겠습니다요.”
이해가 갔기에 나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같이 지내기는 불편하겠지.
허락이 떨어지자 대장 놈은 기다렸다는 듯 밖으로 나갔다.
머지않아 해가 지고, 다들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자리에 누워 팔찌의 스킬을 시전했다.
[스킬 전이가 시전됩니다. 대상을 정해 주세요.]
[지정 가능 대상 : 카를로스 마위니]
‘카를로스 마위니.’
[스킬 ‘인식 밖에서’가 전이됩니다.]
[인식 밖에서]
: 상대가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공격할 경우 공격력 상승, 치명타 확률 상승.
‘좋군, 딱 좋아.’
놈의 등을 찌르기에 알맞은 스킬이 나왔다. 그날을 꿈꾸며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집 주인이 돌아왔다. 놈은 집을 점거당한 상황이 마음에 안 드는 눈치.
하지만 별다른 수작을 부릴 낌새는 없었다.
‘오러 소드를 봤으니, 자신 없으면 수작 부리지 않겠지.’
대장 놈을 부려 점심까지 얻어먹고 해질녘이 된 후에야 집에서 나왔다.
“이번엔 진짜 간다. 너무 억울해하지 마라.”
수고비 삼아 대장 놈에게 남은 돈 중 절반 정도를 던져 줬다. 어차피 푼돈이라 얼마 되지 않지만, 뒷골목에선 적지 않은 금액.
“아이고, 뭘 이런 걸 다.”
그제야 대장 놈의 인상이 조금 펴졌다.
“잘 살아라. 오늘 밤엔 밖에 나다니지 말고.”
괜히 습격에 엮일 수 있으니 한마디 해 줬다.
조금이라도 수작을 부리려는 낌새가 있었으면 처리해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시키는 대로 일을 잘했으니 조금의 호의를 베푼 것.
놈의 표정이 굳더니, 무슨 생각인지 꾸벅 인사했다.
“안녕히 가십시오.”
놈의 인사를 받으며 집을 나섰다.
외곽 쪽으로 나아가 성벽을 따라 걸었다.
먼발치에 성문이 보이는 곳에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성밖으로 나가실 생각이십니까?”
마위니가 물어 왔다.
“그래. 내가 신분 증명이 안 되는 상황이거든. 그래서 해가 지면 나갈 생각이야.”
“경비 상태가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차라리 제가 제압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튜토리얼이 클리어되는 바람에 경비가 강화되었다. 위에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경비병들의 태도가 이등병 같았다.
하지만 걱정은 하지 않는다.
“괜찮아. 좀 있으면 틈이 생길 거야.”
마위니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대충 얼버무렸다.
놈도 내게 무슨 방법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더 물어 오지는 않았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거리에 사람의 모습이 드물어 질 즈음.
쾅- 콰쾅-!
신전 쪽에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슬슬 준비할까.”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일행에게 말했다.
“주인, 이제 가는 거야?”
“그래.”
루스의 천진한 물음에 대답한 후 성문 쪽을 주시했다.
그 와중에도 신전 방향에서는 폭음과 무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마나 지났을까, 선임 병사로 보이는 자가 나타나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을 이끌고 신전 쪽으로 달려갔다.
“됐다. 가자.”
텅 비어 버린 성문을 지나, 도시 밖으로 나왔을 때 마위니가 질문을 했다.
“어떻게 하신 겁니까, 마스터?”
“널 소환하기 전에 정보들 얻었어. 내가 그쪽 방면 스킬이 있거든.”
적당히 거짓을 섞어 말을 이었다.
“암흑 교단 놈들이 오늘 플레이어들을 노리고 신전을 습격할 거라더군. 제국 기사단이 오늘 도착했으니 걱정할 것도 없고. 그래서 성문을 통과할 기회라고 생각했지.”
놈이 거부감 느끼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꾸며 대답해 줬다.
“그렇군요. 전 마스터가 마술이라도 쓰시는 줄 알았습니다.”
놈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내 대답이 썩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카를롤스 마위니의 충성도가 10 상승했습니다.]
이번에도 충성도가 올랐다.
나는 놈의 태도를 꼼꼼히 살폈다.
단서가 있는지 생각하며 걸음을 옮기다 보니 날이 저물었다.
적당히 자리 잡고 노숙을 준비했다.
그리고 마위니가 모닥불을 피우는 동안 식량 자루를 꺼내 들었다.
“주인, 나 그거 줘! 그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