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6화>
내 말에 놈이 당황하는 것이 느껴진다.
“뒤에 꼬리를 잔뜩 달고 왔더군. 어느 쪽에 붙을지 계속 고민하던데, 이제 결정은 했나?”
이미 다리를 잘라 놓고 할 말은 아니었다.
내가 조롱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놈이 소리쳤다.
“개새끼! 너도 곧 죽을 거다.”
“과연 그럴까? 궁금하면 거기서 지켜봐.”
말을 마친 후 놈의 두 팔을 짓밟아 부러트려 버렸다.
“끄아아-!”
놈이 쓰러져 벌레처럼 버르적거리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고양된다. 심장이 뛴다. 피가 미칠 듯이 끓어올라 혈관을 내달린다.
“하아-.”
입에서 저절로 숨이 새어 나왔다.
그때였다.
“저, 저게 뭐야?”
“저 새끼가!”
우리 격수가 기다리던 친구 분들이 오셨군. 그럼 격수에게 더 깊은 절망을 안겨줘 볼까.
굳이 더 말이 필요 없다.
나는 걸음을 옮겨 놈들에게 다가갔다. 루스도 웃으며 내 옆을 걷고 있었다.
“흐흐흐…….”
자꾸만 입에서 웃음이 새어 나온다.
상관없겠지. 곧 죽을 놈들 앞에서 굳이 표정 관리할 필요는 없으니까.
놈들에게 다가가는데 양복 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이라도 그 칼 내려놓고 꺼지면 보내 주지.”
저놈은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걸까.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놈이군.
아니, 저놈뿐만이 아니라 놈들은 지금부터 자기들이 당할 일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일의 가치에 비하면, 이딴 D등급 단검 따윈 아무것도 아니다.
“흐흐흐.”
즐겁다.
나를 배신한 놈들, 내 뒤통수를 치려는 놈들. 그놈들이 흘릴 피가 나를 즐겁게 한다.
“미, 미친 새끼…….”
“그냥 처리하죠. 제정신 아닌 거 같아요.”
놈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칼에 마력을 불어넣는다.
“저게 뭐야?”
“X발!”
오러 소드를 보며 놀란 놈들이 비명처럼 소리 지른다.
달린다.
그리고 가장 앞에 있는 놈의 목에 칼을 휘두른다.
서걱-
잘린 목이 붕 떠올랐다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잠시 동안의 정적, 그리고 비명.
“으악-!”
“X발, 뭐야! 죽여!”
루스도 이미 놈들 사이에 섞여 날뛰고 있었다.
나도 다시 달려들었다.
오러가 담긴 검은 단 한 번도 가로막히지 않고 모든 것을 베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주위엔 시체로 가득했다.
그 사이로 양복 놈이 도망치는 것이 보였다.
‘대장이 도망치면 쓰나.’
나는 양복에게 일직선으로 달려들었다. 그 앞을 가로막는 놈은 아무도 없다.
촤악-
사선으로 베어 내린 칼날이 놈의 등을 길게 갈랐다.
그리고 놈이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싸움이 끝났다.
고개를 돌리자 쓰러진 놈들의 목을 하나하나 꺾어 놓고 있는 루스의 모습이 보였다.
철벅철벅-
흐르는 핏물을 밟고 윤격수에게 다가갔다.
놈은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괴……물.”
놈의 말이 들려왔다.
“너희가 날 이렇게 만들었다.”
“무슨 말을 하…… 컥!”
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단검을 놈의 목젖에 쑤셔 박아 버렸다.
“가서 자리 잘 잡아 놔. 모조리 보내 줄 테니까.”
들뜬 기분을 애써 가라앉힌다.
‘이제 시작이다.’
소환 영웅들, 동료였던 놈들…… 그리고 황제.
아직 갈 길이 멀다.
나는 루스를 보며 말을 툭 내뱉었다.
“잠시 쉬자.”
“응, 주인. 근데 여기 너무 냄새가 나빠.”
복도를 따라 오르막을 올랐다. 그리고 보스방 문 앞에 주저앉아 휴식을 취했다.
아래쪽에 보이는 경치가 썩 마음에 들었다.
루스에게 먹다 남은 식량 자루를 던져 주고, 나도 간단히 요기했다.
식사를 마치고, 죽어 나자빠진 윤격수를 감상하다가 깜빡한 것이 생각났다.
‘실수했군.’
놈에게서 스킬 흡수를 하지 않았다.
효율이 나쁜 스킬이라고는 하나, 얻어 둬서 손해 볼 것은 없었다.
하지만 복수에 마음을 빼앗겨 잊어버리고 말았다.
‘앞으로는 주의해야 되겠군.’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싸우느라 체력이 조금 빠진 상태. 보스와는 기왕이면 만전의 상황에서 만나는 것이 낫다.
1시간쯤 쉰 후 보스 방으로 입장했다.
쇠창살 반대편에 던전의 보스가 보였다.
킹 아울베어.
일반 아울베어보다 두 배는 큰 크기에, 쇠꼬챙이 같은 털이 온몸을 뒤덮고 있다.
앞발에 달린 손톱은 강철도 찢어놓을 것같이 날카롭다.
‘저놈은 꼭 잡을 필요는 없는데.“
사실 스탯 말고는 크게 탐나는 것이 없다. 저놈이 주는 아이템도 그다지 필요한 종류가 아니고.
“맛있는 냄새나. 나 저거 먹어도 돼?”
옆을 보니 루스가 입맛을 다시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 잡으면 네가 먹어라.”
내 말에 루스가 좋아하며 킹 아울베어에게로 몇 걸음 다가가자, 가로막고 있던 쇠창살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들은 킹 아울베어가 몸을 일으켰다.
놈의 눈이 시뻘겋게 불타오른다.
“광폭화를 쓰는 놈이다. 고통을 거의 느끼지 않고 굉장히 난폭하다. 조심해라.”
“응, 걱정 마!”
과자 상자를 앞에 둔 어린애처럼 잔뜩 신난 목소리로 루스가 대답했다.
녀석은 당장이라도 달려갈 듯 발이 들썩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킹 아울베어가 돌진해 왔다.
트럭만 한 덩치가 쏜살같이 달려와 앞발을 휘두른다.
목표는 루스.
하지만 루스는 바닥에 턱이 닿을 듯이 자세를 낮추어 머리 위로 공격을 흘려 내었다.
칼날로 변한 루스의 손이 놈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챙-
그런데 쇳소리가 울려 퍼지며 루스의 손이 튕겨져 나왔다.
이건 예상 밖이었다. 생각보다 킹 아울베어가 강한 모양.
‘그렇다면 이렇게 놀고 있을 때가 아니지.’
나는 마력을 끌어 올리며 놈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루스에게 정신이 팔린 놈의 측면으로 돌아가, 어깨를 향해 오러 소드를 휘둘렀다.
촤악-
놈의 털가죽이 베이며 피가 터져 나왔다.
단검을 감싼 오러 소드의 길이가 충분치 않아 어깨를 완전히 잘라 버리지는 못한 게 아쉬웠다.
그때 고통스러워하던 놈이 고개를 돌려 내 쪽을 쳐다봤다. 이어 놈이 멀쩡한 앞발을 휘둘러 나를 후려쳐 왔다.
부우웅-
재빨리 옆으로 몸을 굴려 공격을 피해 냈다.
퍽-
그 순간, 놈의 머리가 무엇인가에 맞아 아래로 내리꽂혔다.
놈의 시선이 내게 쏠린 틈을 노린 루스의 공격이었다.
칼날 손톱이 통하지 않자 손을 커다란 해머 모양으로 바꿔 놈의 머리를 내리 찍은 것이다.
후두부를 정확히 가격당한 놈이 정신을 못 차리고 비틀거렸다.
그 틈을 타서 나는 단검에 마력을 최대한 불어넣고 놈의 목을 향해 날렸다.
서걱-
철판 같은 놈의 털가죽이 베이고 두터운 목이 삼분의 일쯤 잘렸다. 피가 분수처럼 새어 나왔다.
캬아아악-
광폭화 상태임에도 극심한 상처에 고통을 느끼는지 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때 놈의 털이 가시처럼 빳빳이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피해!”
루스에게 경고하고 곧바로 몸을 뒤로 날렸다.
순간, 놈의 털이 화살처럼 사방으로 발사되었다.
나는 더 거리를 벌려 몸을 피한 후, 거기까지 날아오는 털 화살은 검으로 쳐 내었다.
루스는 양손을 방패 모양으로 만들어 화살을 막아 내고 있었다.
회심의 일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놈은 분노해 날뛰었다.
‘이제 다 되었군.’
이미 피를 지나치게 흘린 상황.
날뛰어 봐야 바뀌는 것은 없다. 오히려 체력만 소모될 뿐.
루스가 해머 모양의 손을 휘두르며 다시 달려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오러 소드를 끌어 올려 공격에 가담했다.
쿠웅-
몇 분 후.
결국 버티지 못한 킹 아울베어가 쓰러졌다.
놈의 한쪽 어깨는 완전히 떨어져 나갔고, 머리도 반쯤 짓이겨져 있었다.
“잡았어, 주인!”
“그래, 수고했다.”
놈이 쓰러지며 아이템이 나왔다.
킹 아울베어의 앞발을 본 딴 클로(Claw)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쯧, 이래서 별로 잡고 싶지 않았는데.’
저것은 A등급의 무기. 히든 피스 보상인 만큼 상당히 질이 좋다.
하지만 저런 형태의 무기는 다뤄 본 적이 없다. 쓰고 싶은 생각도 그다지 들지 않았다.
저런 기형 병기에 익숙해지는 것은 좋지 않다.
나중에 더 높은 등급을 구할 방법도 없고, 다른 무기를 사용하는 데 좋지 못한 버릇이 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루스에게 주기에는 신체 변형의 이점이 사라진다.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스탯을 흡수했으니 손해는 아니었다. 전투 중에 큰 어려움도 없었고.
“주인, 나 저거 먹을래!”
“그래, 마음대로 해라.”
루스의 말에 대답한 후 좀 쉬려고 앉을 자리를 찾는데…….
와작와작-
루스가 클로를 씹어 먹고 있었다.
“그걸 먹겠단 소리였냐?”
“응, 더 강한 손톱 필요해! 아까 안 통했잖아.”
먹으면 사용할 수 있는 건가.
어느새 클로를 다 먹은 녀석은 자기 손을 클로로 변화시켰다. 그 후 킹 아울베어의 사체에 다가가 휘둘렀다.
서걱-
“이제 잘린다, 히히.”
그러더니 잘린 조각을 들고 또 씹어 먹기 시작했다.
나는 녀석이 킹 아울베어 한 마리를 모두 먹어 치울 때까지 벽에 기대 앉아 상태를 확인하기로 했다.
[정해수]
근력 : 6(C)
민첩 : 2(C)
체력 : 4(C)
마력 : 9(C)
스킬
- 랜덤 영웅 소환 (1011/1000 코인)
- 호문쿨루스 소환
- 초재생
킹 아울베어를 잡으면서 모든 스탯이 C급이 되었다.
‘포이즈너를 잡은 후가 D급 최고 수준이었지.’
히든 던전의 보스를 잡고 C급에 겨우 올랐으니 튜토리얼에서는 더 이상 스탯을 올리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희소식도 있었다.
킹 아울베어를 클리어하며 두 번째 영웅 소환에 필요한 코인이 다 모인 것이다.
‘어떻게 할까.’
지금 여기서 소환해서 루스와 함께 기습하면 죽일 수 있을까.
굳이 소환하자마자 죽일 필요가 있을까.
좀 더 부려 먹다가 결정적일 때 등을 콱 찔러 주는 것이 더 통쾌하겠지.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 간다.
‘그나저나 어떤 놈이 뽑힐까?’
다음에 나올 복수의 대상을 상상하자 흥분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그 날의 원한을 다 되갚아 줄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그날이 떠오르자 자연스레 성녀의 모습이 생각났다.
‘캐서린…….’
나의 유일한 아군. 그녀만은 믿을 수 있다. 미래가 그녀의 마음을 보장한다.
하지만…….
‘그녀가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흥분되었던 마음이 가라앉는다.
저기 몬스터를 먹고 있는 나사 풀린 호문쿨루스야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좋다고 따라다니지만 캐서린은 어떨까.
머리가 복잡하다.
‘소환하는 건 일단 시작 지점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봐야겠군.’
지금 움직이기에는 날이 너무 늦어, 오늘은 이곳에서 하루 쉬기로 했다.
어차피 던전 밖에 나가 봐야 자다가 몬스터들에게 습격이나 받을 것이다.
* * *
보스 방에서 밤을 보내고 시작 지점으로 돌아왔다.
어젯밤의 습격이 만만치 않았는지 어수선한 모습이었다.
목책을 넘어 들어오는 우리를 사람들이 흘끔거렸다.
밖에서 들어오는 모습이 의아해서 그런가 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옷을 좀 갈아입어야 하나.’
튜토리얼 중에 식량 자루 말고는 아무런 지원이 없다. 생활용품들이 없기 때문에 다들 꼬질꼬질한 모습.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싸웠다고 할 수 있는 나와 루스는 모양새가 심각했던 탓이었다.
하긴 온몸에 핏자국이 없는 부분이 없다.
입고 있던 티셔츠는 진작 검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거기에 요번 전투로 죽인 사람만 30명이 넘다 보니 이제 머리카락까지 피에 절어 있었다.
몬스터를 뜯어먹는 루스는 말할 것도 없는 상태.
‘옷을 구해야 되겠군.’
당연히 이곳에 새 옷은 없다.
뺏어 입거나 죽은 자의 것을 벗겨야 된다.
‘벗겨 놓은 것을 뺏는 방법도 있지.’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떠올리고는 목표를 정했다.
“도, 돌아왔군.”
“그래, 나도 너무 반가워.”
진형기의 떨떠름한 표정을 보며 말을 이었다.
“옷 두 벌만 가져와 봐. 대가는 주지.”
그렇게 말하며 진형기에게 돌아오는 길에 덤벼드는 몬스터를 잡고 얻은 무기를 던져 주었다.
모두 E, F급 장비들.
루스가 먹지 않으려 해서 버리려고 하다가 식량으로 바꿀까 하고 가지고 온 것이었다.
나에게는 하찮은 것들이지만 시작 지점에서 구하기는 쉽지 않은 물건이었다.
“좋군. 저기서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가.”
놈이 가리키는 곳에는 옷과 신발 등 각종 의류가 쌓여 있었다.
입을 만한 것을 골라 바로 갈아입고, 루스의 것도 골라 주었다.
“냄새 구려!”
루스의 사소한 반항이 있었지만, 본인의 냄새가 훨씬 지독하다는 것을 인식시켜 갈아입도록 했다.
그렇게 옷을 갈아입고 나자 그새 점심때가 되었다.
나와 루스는 진형기 패거리와 같이 식사를 했다.
진형기는 영 소화가 안 되는 표정이었지만, 내가 먹고 가겠다니 별수 있나.
나를 힐끔거리는 시선을 느끼며 한편으로는 나 역시 진형기를 가늠했다.
‘처음 볼 때부터 유독 경계심이 강하단 말이야. 이놈 스킬이 그런 쪽인가.’
상대방의 강함이나 위험도를 본능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스킬도 있다.
또 타인의 상태창을 볼 수 있는 스킬도 존재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내게는 아무 상관도 없었지만.
‘뭐, 알아서 조심해 주면 나쁠 거 없지.’
식사를 마친 후 식량 자루 속의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모처럼 단맛이 들어가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놈들은 어찌 되었소?”
그때 진형기가 꺼림칙한 표정으로 물어 왔다.
“그놈들? 아, 그 양복 패거리 말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