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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5화 (5/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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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5화>

문을 열자 문 앞에 공손한 자세로 서 있는 윤격수가 보였다.

“뭐지?”

“저, 그것이…….”

놈이 주위를 살피며 주저하는 것이 느껴졌다.

“들어와서 얘기하지.”

문 앞에서 슬쩍 비켜서자 놈이 얼른 오두막 안으로 들어왔다.

바닥에 마주 앉자 놈이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까 싸우시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래서?”

“호, 혹시 저도 일행으로 좀 받아 주실 수 없는지…… 뭐든지 하겠습니다.”

회귀 전보다 내 인상이 강해서 그런지 놈은 한결 비굴한 자세로 말했다.

나는 무감정한 표정으로 놈을 바라봤다.

“그래서 나한테 무슨 이득이 있지?”

“진짜 뭐든지 하겠습니다. 하인처럼 부리셔도 좋습니다. 전 여기서 죽고 싶지 않아요.”

놈이 간절하게 말했다. 저것은 아마 놈의 진심일 것이다.

살고자 하는 마음은 문제가 없다.

놈의 잘못은 날 따라다닌 것이 아니라 은혜를 저버린 것이다.

내가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 불안해졌는지 놈이 다시 말했다.

“제 스킬은 근력 강화입니다. 조금만 성장하면 꼭 도움이 될 겁니다. 제발 따라가게 해 주십시오.”

호오, 스킬까지 공개할 정도로 간절한 건가.

하지만 놈의 스킬은 타인에게 걸어 줄 수 없고, 효율도 좋지 않다.

게다가 놈의 전투 센스는 최악. 시간이 흘러도 놈이 도움 될 일은 없다.

물론 그 전에 놈의 시간이 멈추겠지만.

“흐음, 그럼 이곳의 상황을 말해 봐. 내가 초반에 밖으로 나갔었다 보니 여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거든.”

이쯤에서 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명분을 만들기 위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정보를 물었다.

희망을 봤는지 놈이 필사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처음 시스템 메시지가 들려온 이후로…….”

놈의 이야기가 길게 이어질 동안 적당히 듣는 시늉을 하며 다른 생각을 했다.

어딘가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었던 탓이다.

‘생각보다 너무 간절해 보이는데…….’

원래 이놈이 이렇게 대놓고 부탁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주위를 맴돌면서 어떻게든 얼굴을 익히고 은근히 접근하는 것이 놈의 방식이었다.

놈에게 회귀 전과 바뀐 것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던 나는 곧 한 가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의 존재 유무였다.

회귀 전에는 첫 습격 때부터 내 옆에 바짝 붙어 입속의 혀처럼 굴던 것이 윤격수였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S급 영웅의 보호를 받았고, 버스도 얻어 탔었다.

‘하지만 지금은 양복 패거리에 속해 있지.’

머릿속으로 몇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하지만 곧 털어 냈다.

별 상관없겠지. 어떤 경우라도 나에게 손해는 없으니까.

이미 튜토리얼에서 활보할 만한 전력은 충분히 갖추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나는 내일 아침 다시 오라고 말한 후 윤격수를 돌려보냈다.

저놈이랑 한 방에서 지낼 생각은 결코 없었다. 밤새 살의를 참는 것도 고역일 테니까.

“냄새가 별로야.”

루스가 윤격수가 나간 문을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당연하지. 더러운 놈이니까 신경 쓰지 마라.”

“나쁜 놈이야? 근데 왜 같이 다니기로 했어?”

루스가 의아한 말투로 물어 왔다.

“쓰레기에게 어울리는 최후를 만들어 주려고 그러지. 내일 놈한테 괜한 소리 하지 마라.”

“응. 재밌겠다.”

천진난만하게 웃는 루스를 보며 잠을 청했다.

* * *

다음 날 아침, 윤격수가 찾아왔다.

“해수 님, 식량 자루 챙겨야 될 시간입니다.”

식량 배분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시작 지점에는 아침마다 광장에서 식량 자루가 생겨난다.

결코 부족한 양이 아니지만 어딜 가나 적당히 만족 못 하는 족속들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식량은 늘 모자란 것처럼 느껴진다.

윤격수가 안내하는 곳으로 걸어가자 식량 자루더미 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진형기와 양복 놈도 패거리를 이끌고 서 있었다.

‘각 무리의 우두머리들이 나서서 나누나 보군.’

천천히 걸어 식량 자루 더미 앞으로 갔다. 주위의 시선이 모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말없이 세 개를 어깨에 들쳐 메고 천천히 되돌아 나왔다.

“저, 저 새끼…….”

뒤에서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상관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결국 광장을 빠져나올 때까지 날 불러 세우는 소리도, 막아서는 행동도 없었다.

윤격수에게 식량 자루를 던져 주고 마을 밖으로 방향을 잡았다.

윤격수가 물어 왔다.

“저, 어디로 가시는 건지?”

“마을 밖으로 간다. 히든 피스를 얻을 거야.”

놈이 깜짝 놀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눈알을 굴리며 우물쭈물하던 놈이 입을 열었다.

“저, 저기 제가 큰 일이 급해서 그런데, 잠시만 다녀오면 안 될까요? 5분 안에 오겠습니다.”

연기가 서툴러. 슬슬 내 예상이 맞아 들어가는 것 같군.

난 모른 척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빨리 다녀와.”

놈은 식량 자루를 바닥에 내려놓더니 부리나케 달려갔다.

“많이 급한가 보네.”

루스의 말에 생각했다.

‘많이 급하긴 하겠지. 5분이면 광장까지 다녀오기 빠듯할 거야.’

잠시 후, 놈이 땀을 흘리며 뛰어왔다.

“헉, 허억……. 다녀왔습니다.”

“출발한다.”

헐떡이는 놈을 이끌고 동남쪽으로 향했다.

이번 목표는 좀 까다롭다. 그냥 들어가서 때려 부수기만 해서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저놈을 데려가는 거지.’

땀을 뻘뻘 흘리며 따라오는 윤격수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목책 밖으로 나선 지 얼마 안 되어 오크 무리가 나타났다. 나는 앞장서서 달려드는 루스에게 말했다.

“하나만 남겨라.”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오크들은 고깃덩이가 되어 버렸다.

한 마리만이 루스의 발에 차여 장난감처럼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

“주인, 한 마리 남겨 뒀어. 근데 뭐 하려고?”

루스의 말에 나는 윤격수를 보며 명령했다.

“가서 싸워 봐. 얼마나 하는지 보게.”

움찔하던 윤격수는 허름한 단검을 뽑아 들고 앞으로 나섰다.

그 후로 오크와 윤격수의 지루한 싸움이 한참을 이어졌다.

루스는 심심했는지 아예 옆에 앉아 오크 다리를 뜯어 먹는 중이었다.

“겁쟁이네.”

루스가 윤격수를 보고 내린 평가였다.

거기에 대해서는 나도 동의한다.

회귀 전에도 놈은 늘 안전 지향적으로 움직였다.

결코 앞에 서는 법이 없었고, 모험하는 적도 없었다. 동료를 위해 나서는 경우도 없었다.

‘그러고도 어떻게든 빌붙어 자기 잇속은 챙기려 들었지.’

며칠 버티며 쌓은 스탯 덕에 분명 오크보다 강한데도 윤격수는 과감하게 공격하지 않았다.

야금야금 오크에게 데미지를 입히며 저절로 쓰러질 때 까지 피해 다녔다.

‘천성이 변하진 않는군.’

사람이 달라질 리 없지. 회귀 전에도 진작 배신하지 않은 것은, 내 옆이 가장 안전했기 때문이리라.

30분이나 걸린 끝에 오크가 쓰러졌고, 윤격수가 숨을 헐떡이며 다가왔다.

“헉헉, 끝냈습니다.”

“전투 스타일이 지나치게 소극적이군.”

내 말에 놈이 주눅 드는 게 느껴졌다.

“앞으로 전투 시엔 뒤로 빠져 있어라. 경험치는 챙겨 주지.”

“예!”

대답하는 놈의 표정이 밝았다.

속으로 호구 하나 물어서 꿀 빤다고 생각하겠지. 어차피 얼마 못 갈 테지만.

다음부터 나타나는 몬스터는 루스가 도맡아 처리했다.

번개가 무색할 스피드로 뛰쳐나가 순식간에 몬스터를 찢어 버리는 모습.

“저기, 저분은 뭐 하는 분이신지?”

굳이 필요 없을 것 같아 여태 소개도 안 시켜 준 상태.

굳이 자세히 말할 필요도 못 느꼈기에 그냥 대충 설명해 주었다.

“내 부하야. 아군이니까 신경 쓸 것 없다.”

“……예.”

놈의 표정이 뭔가 복잡해졌지만 무시하고 걸음을 옮겼다.

아마 나와 뒤따라오는 놈들을 저울질 중이겠지.

저놈 생각이야 뻔하다.

* * *

그렇게 몇 시간쯤 걷다가,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루스가 배고프다고 칭얼거리기 시작했기 때문.

식량 자루를 열어 적당량을 루스에게 덜어 주고 나도 식사를 시작했다.

“하나 다 줘!”

“안 돼. 시작 지점에 돌아갈 때까지 아껴 먹어야 되니 좀 참아라.”

루스가 시무룩하게 밥을 먹다가 갑자기 고개를 갸웃했다.

“냄새나. 맛없는 냄새.”

‘슬슬 따라올 때가 되었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루스를 다독였다.

“괜찮다. 신경 쓰지 마라.”

루스가 다시 먹기 시작하는 것을 보며 나도 식사를 마저 했다.

단어가 많이 생략된 탓에 윤격수는 무슨 말이 오간 건지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식사가 끝나고 자리를 뜰 때까지 나타나는 놈들은 없었다.

‘사냥이 끝나고 나서 사냥감을 빼앗겠다는 생각인가?’

그것도 재밌겠군.

윤격수가 이쪽 전력을 보고 나서 어떤 판단을 할지도 궁금하다.

다시 몇 시간쯤 더 걸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뛰어라.”

폭포 앞에 도착한 후 나는 밑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그게 무슨…….”

첨벙-

루스는 이미 신나서 뛰어든 상태.

망설이는 윤격수를 걷어차 빠트려 버리고, 나도 뛰어들었다.

폭포 아래는 물살이 굉장히 강했다.

힘을 빼고 가만히 있자 몸이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몸이 물 밖으로 밀려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윽고, 몸 전체가 물 밖으로 나왔다.

이곳은 폭포 아래 용소를 통해서만 도착할 수 있는 동굴이었다.

루스는 이미 땅에 올라 물을 털고 있었고, 윤격수는 물가에 엎어져 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윤격수의 뒷덜미를 끌고 뭍으로 올라갔다.

[숨겨진 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 난이도가 높습니다. 주의하세요.]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역시나 자세한 정보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다 아는 곳이니 상관없지만, 정말 불친절하군.’

시스템 메시지도 믿을 수 없다. 늘 무언가 정보를 감추는 느낌. 왜 저렇게 정보를 제한하는 것일까.

용사를 육성하려면 좀 더 친절해도 될 텐데.

‘뭐, 그것도 언젠간 알게 될 날이 오겠지.’

윤격수를 툭툭 쳐 정신 차리게 만든 후 동굴을 따라 들어갔다.

이번엔 S급 영웅이 없으니 난이도가 좀 더 올랐다.

하지만 루스도 있고, 포이즈너를 죽여 흡수한 스탯도 있다 보니 크게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주목적은 던전이 아니지.’

포이즈너와 함께 슬라임 킹에게 가던 날처럼 기대감이 마음을 채운다.

비틀려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단속한다.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이곳은 팔찌를 얻었던 던전과는 콘셉트가 다르다.

그곳이 트롤이라는 강력한 몬스터를 바탕으로 한다면, 이곳은 각종 트랩을 기반으로 꾸며진 곳.

물론 몬스터도 있다.

꾸에에엑-!

곰의 몸에 올빼미의 머리를 한 아울베어가 죽어 가고 있었다.

루스가 놈의 머리를 잡고 더 이상 돌아가지 않을 때까지 돌려 버린 것.

무려 540도 정도 돌아가고서야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나며 놈이 무력화되었다.

“주인, 이거 빙글빙글 잘 돌아가!”

아울베어를 가리키며 자기 머리도 180도쯤 빙글 돌린 루스가 말했다.

“너까지 그러지 마라.”

옆에서 윤격수가 기겁하는 것을 보며 루스에게 주의를 주었다.

신체 변형 스킬을 이용해 손을 무기처럼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저렇게 사용할 수도 있는 모양.

그렇게 몇 번의 트랩을 해체하고 몬스터를 처리하며 보스 방 앞까지 도착했다.

가파르게 경사진 좁은 복도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 위에서 커다란 바위가 굴러 떨어졌다.

“허억!”

놀란 윤격수가 근처 바위틈으로 몸을 숨겼다.

‘역시 재빨라.’

이곳에서 몸을 숨길 곳은 딱 한 군데, 놈이 들어가 있는 바위틈뿐이다.

다 죽고 한 명만 살아서 보스 방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 이 트랩의 목적.

윤격수를 한번 힐끔 본 나는 달려들려는 루스를 뒤로 물리고 단검을 뽑아 들었다.

마력이 온몸을 휘돌아 손끝으로 모였다가 단검으로 흘러 들어갔다.

우웅-

검 표면에 노란 기운이 어리는가 싶더니 쑥 하고 자라나 칼날이 되었다.

코앞까지 굴러 내려온 바위를 향해 오러 소드를 휘둘렀다.

콰앙-!

굉음과 함께 먼지가 피어올랐다.

잠시 후 먼지가 가라앉은 곳엔 산산조각 난 바위의 잔해가 널려 있었다.

하지만 트랩이 파괴되었음에도 복도 끝에 위치한 보스 방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당연하지, 피가 없으니까.’

이 트랩은 바위에 깔려 죽은 자의 피가 바닥에 스며들어야 열리는 구조였다.

윤격수의 멱살을 잡아 바위틈에서 끌어냈다.

“죄, 죄송…… 혼자 피해서 죄송합니다. 깜짝 놀라서 그만…….”

“아니야.”

그런 건 상관없어.

“죄송합니다.”

“아니라고.”

멋진 표정으로 보답하면 돼.

그제야 내 말투의 이상함을 느낀 놈이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죄송하단 소리는 전생에 했어야지.

곧바로 단검을 휘둘러 놈의 양쪽 다리를 베어 버렸다.

“크아아아악-!”

놈이 벌레처럼 바닥에 구르며 고통스러워한다.

“흐흐흐.”

입꼬리가 저절로 당겨 올라가며, 나도 모르게 입술을 비집고 웃음이 새어 나온다.

“흑, 흐윽, 갑자기 왜 이러는 거요?”

놈이 울먹이며 물어 왔다.

나는 말없이 칼을 뻗어, 놈의 피가 흘러가는 곳을 가리켰다.

복도 끝에 위치한 구멍으로 흘러 들어간 피는 벽면을 거슬러 올라, 보스방 문에 그려진 마법진으로 스며들었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윤격수가 절규했다.

“이 개새끼, 나를 이용했구나!”

기분이 좋다. 놈의 억울해하는 얼굴이 천상의 미주보다 감미롭다.

“물론 너를 이용했지. 하지만 너도 다른 꿍꿍이가 있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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