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3화>
* * *
포이즈너는 죽었다.
내가 그랬듯 배신당한 채, 비참하게.
놈들에게 당한 것을 조금이라도 갚아 주었다고 생각하니 입가에 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흐흐흐…….”
놈에게서 흘러들어 온 압도적인 기운은 신경 쓰지도 못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또라인가?”
그때 들려온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어깨 정도 오는 키에 빨간색 긴 머리를 부스스하게 늘어트린 소년이 서 있었다.
하얀 피부에 적당히 마른 몸만 보면 귀한 집 자식 같았다.
하지만 살짝 비틀어진 입매와 번들거리는 눈빛이 어딘가 꺼려지는 인상을 만들었다.
“이봐, 주인. 왜 실실 쪼개고 그래?”
손가락을 머리 옆에 대고 빙글빙글 돌리는 녀석의 위로 상태창이 떠올랐다.
[호문쿨루스(A. 키메라)]
소유자 : 정해수
근력 : 45(C)
민첩 : 37(C)
체력 : 58(B)
마력 : 12(C)
스킬
-신체 변형
-포식
-초재생
‘소유자? 충성도는 없고?’
스탯과 스킬도 보인다.
소환 영웅 때와는 확연히 다른 상태창.
게다가 반복적으로 소환할 수 없다는 것이 직관적으로 느껴졌다.
한 번 잃으면 끝인 스킬이었다.
내가 생각에 잠기자 녀석이 중얼거렸다.
“어, 진짜 좀 모자라는가 보네. 아씨, 걸려도 하필 모지리가 걸려서는…….”
그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녀석에게 말했다.
“어이, 꼬맹이. 주인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냐?”
“어, 정신 돌아왔네? 주인, 혹시 한 번씩 왔다 갔다 하는 거야?”
녀석이 제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내 말에 대꾸했다.
‘어처구니가 없군.’
소환 영웅들은 대부분 정중했다. 기질이 거친 놈들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깍듯했다.
근데 이건 뭐지? 호문쿨루스라 좀 다른가?
하기야 말버릇 따윈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믿을 수 있는가.’
소유주가 명시되어 있다는 것이 흡족했다.
소환 영웅들과 달리 충성도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이미 한 번 당했던 몸, 완전히 믿을 수는 없다.
‘결국 일반적인 인간관계랑 똑같은 건가.’
어차피 시스템조차 믿지 못한다면, 남은 것은 대상과의 인간적인 신뢰뿐.
연금술로 만들어진 인조인간에게 인간적인 신뢰를 바란다는 것이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앞으로 행동을 보고 판단하는 수밖에.
“포이즈너와는 무슨 사이냐?”
“포이즈너? 아, 좀 전에 죽은 놈? 방금 처음 봤는데.”
포이즈너에게 흡수한 스킬이라 혹시나 했지만, 다행히 상관없는 것 같았다.
“주인, 이제 뭐 할 거야? 배고픈데 뭐 먹을 거 없어?”
녀석은 사방을 살피며 먹을 것을 찾았다.
먹을 것에 굉장히 집착하는 듯한 태도였다.
‘그러고 보니 스킬 중에 포식이 있었지. 그것과 관계 있는 것인가?’
하지만 주위에 먹을 거라고는 전혀 없었다.
가다가 몬스터라도 잡아 먹여야 될 판이었다.
한데 말을 하는 중에 포이즈너의 시체가 스르륵 사라졌다.
그로 인해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소환 영웅이 죽으면 저절로 사라지는군.’
회귀 전을 포함해 내 소환 영웅이 죽은 것은 처음.
스킬로 불러낸 대상이라 그런지 몬스터와 다르게 저절로 없어졌다.
그 와중에도 호문쿨루스는 먹을 것을 내놓으라고 계속 칭얼거렸다.
‘일단 시작 지점으로 가야겠군.’
어차피 그곳으로 가서 처리할 일도 있었다. 가는 김에 먹을 것도 좀 구하기로 하고.
“조금만 가면 사람들 모인 곳이 있다. 가서 음식을 구해 주지.”
“응, 맛있는 거!”
신나서 대답하는 녀석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시작 지점에 가서 밥을 먹겠다는 녀석의 계획은 틀어졌다.
찹-찹-
이미 시작 지점에 가기도 전에 녀석은 식사를 하고 있었으니까.
슬라임 킹의 둥지를 벗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놀 무리가 습격해 온 것이다.
놈들은 손을 칼날처럼 변형시킨 호문쿨루스에게 금세 찢겨져 나갔다.
그리고 뼈까지 모조리 호문쿨루스의 입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꺼억-. 먹긴 했는데 영 부실하네. 영양가가 별로 없어.”
녀석이 트림을 하며 말했다.
“그만큼 먹고 영양가 타령이냐…….”
어이없어하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 있어 녀석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그렇군, 이런 식으로 작용하는 스킬이었어.’
아니나 다를까, 녀석의 스탯이 성장해 있었다.
아마도 스킬 ‘포식’의 영향을 받은 듯, 몬스터를 섭취하는 것으로 능력치가 오르고 있었다.
‘영양가가 없긴 없었나 보군.’
녀석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10마리나 먹은 것치고는 오른 수치가 미미했다.
“맛있는 거, 맛있는 거!”
맛있는 것 타령을 하는 녀석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맛있는 걸 어떻게 먹여 줘야 하지?
녀석의 기준이라면 시작 지점에 가더라도 썩 맛있는 게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어쨌든 시작 지점에 볼일이 있으니 가기로 했다. 가다 보면 녀석의 배를 채워 주는 것은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길을 걷다,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 있어 팔찌의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 전이가 시전됩니다. 대상을 정해 주세요.]
[지정 가능 대상 : 호문쿨루스]
‘역시 되는군.’
‘동료’를 대상으로 하는 스킬. 소환 영웅이 되었으니 호문쿨루스도 될 것이란 내 예상이 맞았다.
녀석의 스킬은 세 가지. 신체 변형, 포식, 초재생.
직접 확인한 건 포식의 효과뿐이었지만, 나머지는 스킬 이름만으로도 추측이 가능했다.
‘뭔가 인간이 쓰기에 썩 모양새가 좋지 않아 보이는데.’
그래도 갈 길 바쁜 입장에서 공짜 스킬을 마다할 생각은 없다.
호문쿨루스를 선택하고 팔찌를 발동시키자 스킬이 전이되는 것이 느껴졌다.
[스킬 ‘초재생’이 전이됩니다.]
“다행이군.”
포식이나 신체 변형은 영 꺼림칙했는데.
“뭐가?”
내 혼잣말을 듣고 녀석이 물어 왔다.
“아니다, 얼른 가자.”
“진짜 정신이 왔다 갔다 하나…….”
녀석이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날 잡고 한번 교육시켜야 되겠군.
물론 녀석이 아직 나보다 강하니, 이 일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
한참을 걷자 시작 지점이 눈에 들어왔다.
“오 저긴가 보네, 맛있는 거!”
녀석은 아직도 맛있는 것 타령 중이었다.
나는 못 들은 척 시선을 앞으로 고정했다.
시작 지점에는 전투의 흔적이 여실했다.
목책 곳곳이 파괴되어 있었고, 처리하지 못한 시체가 길거리를 굴러다녔다.
‘많이 죽었군.’
처음 며칠은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간다.
몬스터와 싸워야만 되는 상황에 적응하지 못한 자들이 가장 먼저 죽는다.
그다음은 몸이 약하고 가진 스킬이 약한 자의 차례다.
그렇게 며칠 걸러 내고 나면 뭐가 되었든 살 만한 능력을 가진 자만 남는다.
지금은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시기.
‘아직은 어수선하겠지.’
혼란한 상황은 나에게 썩 나쁘지 않다.
안으로 들어서자 흘끔거리는 눈길이 느껴졌다. 그래도 당장 다가오는 자는 없었다.
내 허리에 매달린 귀해 보이는 단검과 호문쿨루스의 몸에 묻은 핏자국이 다가오는 것을 막는 중일 것이다.
‘너무 안 다가오니 좀 곤란하군.’
이곳에서 사람을 찾아야 한다.
대상은 회귀 전 시작 지점부터 나와 함께한 동료.
회귀 전 내가 소환 영웅의 버스를 탔다면, 놈은 내 버스를 탔다. 내가 아니었으면 튜토리얼에서 살아남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배신당해 죽어 갈 때, 놈은 비릿한 얼굴로 날 비웃고 있었다.
이번에는 놈이 튜토리얼을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녀석을 찾기로 마음먹고서 나는 사람들 사이를 살피며 더욱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놈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시작 지점 깊숙한 곳, 오두막들이 위치한 지점까지 가도 나에게 다가오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쯧,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야겠군.’
그렇게 생각을 하고 대상을 물색했다.
주위를 둘러보다가 기억 속에 있는 얼굴을 발견했다.
짧게 자른 머리에 거친 인상과 큰 덩치.
머지않아 사람들이 서로 무리 짓기 시작하면, 그중 한 곳의 우두머리가 되는 자였다.
‘뒷골목 출신이던가? 하여튼 거친 녀석이었지.’
오래된 일이라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았다.
어쨌든 나는 녀석에게 다가갔다. 녀석 주위엔 벌써 몇 명의 사람들이 부하처럼 모여 있었다.
“뭐요?”
녀석 옆에 있던 놈이 앞으로 나서며 말을 걸어왔다.
나는 덩치 큰 녀석을 흘끔 보고는 앞으로 나선 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차피 답을 얻을 수만 있다면 누구든 상관은 없다.
“질문 좀 하고 싶은데, 혹시 윤격수라고 아십니까?”
이름이 특이하니 기억하는 자가 있지 않을까.
“윤격수? 그게 뭐요? 이름이요?”
“내가 격수는 몰라도 잘 아는 수비수는 한 명 있는데.”
놈들이 웃으며 떠들기 시작했다. 질문하는 입장이니 화내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시간 낭비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윤격수 아시는 분? 없어요?”
혹시나 해서 한 번 더 물었지만 여전히 저희들끼리 떠들어 대느라 정신이 없다.
어쩔 수 없지. 직접 발품 팔며 찾는 수밖에.
그렇게 생각하며 돌아서려는데 덩치가 말을 걸어왔다.
“당신 처음 보는 얼굴인데, 뭐 하는 사람이지?”
“나도 당신들 같은 플레이어야. 클릭 한 번 잘못해서 끌려온 처지지.”
“그런가. 근데…… 그건 어디서 얻었지?”
녀석에 내 허리춤에 메인 단검을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눈빛에 욕심이 어려 있는 것이 보였다.
“밖에서.”
굳이 더 말 섞을 필요가 없어 짧게 대답하고 돌아섰다.
그렇게 몇 걸음 걷는데 뒤에서 다시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 이야기 좀 자세히 듣고 싶은데?”
결국 탐욕에 눈이 먼 건가?
싸늘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놈이 의외의 말을 해 왔다.
“어떻게 얻었는지 알려 주면 내가 책임지고 윤격수라는 놈을 찾아주지.”
그래도 한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었던 이유가 있었는가.
녀석은 욕심에 눈이 멀어 덤벼드는 대신 거래를 제안해 왔다.
“좋아. 그리고 음식 있으면 좀 얻고 싶은데.”
“많이는 못 줘. 하지만 너희들 둘이서 한 끼 배불리 먹을 정도는 주지. 따라와.”
놈은 앞장서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집 안은 구석에 놓인 자루 몇 개를 제외하면 텅 비어 있었다.
‘식량을 제법 차지했군.’
시작 지점에는 아침마다 식량 자루가 지급된다.
밤의 습격을 견뎌 낸 보상으로, 한정된 양이라 실력이 없으면 저 정도를 확보하긴 불가능했다.
바닥에 마주 앉자 놈이 입을 열었다.
“진형기요. 당신 이름은?”
“정해수. 음식부터 좀 얻을 수 있을까? 얘가 좀 굶주려서.”
호문쿨루스를 가리키며 말하자 놈이 부하를 시켜 식량 자루 하나를 가져다주었다.
호문쿨루스가 자루에 머리를 처박고 음식을 흡입하는 동안 진형기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 칼, 어떻게 얻었는지 이제 듣고 싶은데?”
“이곳 시작 지점 바깥에는 몬스터들이 많아. 밤에 습격하는 놈들뿐 아니라 다양한 놈들이 있지. 더 멀리 나가면…….”
네임드 몬스터를 만나 처치하고 아이템을 얻는 과정을 적당히 각색해서 들려 주었다.
즉, 호문쿨루스와 힘을 합쳐 겨우 해치웠다는 식으로 말이다.
말을 다 들은 진형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다른 질문을 해 왔다.
“그렇군. 그 네임드라는 놈이 얼마나 강하지?”
“어제 밤에 고블린이 쳐들어왔지? 고블린 열 마리가 한꺼번에 덤벼도 네임드한테는 못 이겨.”
표정이 딱딱해진 놈이 말했다.
“그럼 당신은 굉장히 강하겠군.”
“왜, 시험해 보고 싶어?”
피식 웃으며 그렇게 묻자, 놈은 손을 내저었다.
“사양하지. 괜한 일이 목숨 걸고 싶진 않아.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지.”
놈이 마른침을 삼키더니 말을 이었다.
“우리가 그 네임드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나?”
못 잡는다. 턱도 없지. 단번에 몰살이다.
“힘들 것 같은데. 잡더라도 희생이 클 거야. 할 거면 밤을 몇 번 더 보내고 해.”
밤의 습격을 견뎌 내고 성장한 후에 도전하란 말이었다.
진형기는 잠시 생각한 후 입을 열었다.
“알았어, 그렇게 하지. 윤격수는 애들 시켜서 찾아볼 테니 저녁쯤에 이쪽으로 와.”
놈과의 대화를 마쳤을 즈음, 호문쿨루스의 식사도 끝나 있었다.
순식간에 자루 하나를 비워 버린 식성에 질린 듯, 주위에서 호문쿨루스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오, 이거 맛있다! 영양가는 없지만. 이런 걸 불량 식품이라고 하는 건가?”
“헛소리 그만하고 가자. 일어나.”
나는 헤실거리는 호문쿨루스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상태창을 확인해 보니, 녀석의 말대로 영양가가 없었는지 스탯이 오르진 않았다.
일반적인 음식으로는 능력치의 성장이 없는 것 같았다.
밖으로 나오자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윤격수를 직접 찾아 나설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대가를 치르고 일을 맡겨 놓았으니 발품 팔고 싶지 않았다.
“가만히 서서 뭐 해? 또 정신이 가출한 거야?”
호문쿨루스가 버릇없이 보채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빨리 강해져서 교육을 시키든지 해야지.
“가자, 따라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