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1화>
은색 마법진이 빛나고 그 위로 수많은 실루엣이 스쳐 지나갔다.
빛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
번쩍-
금빛 번개가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떨어져 내렸다.
잠시 후, 그 자리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매의 부리를 본뜬 투구를 쓰고 사자의 갈기 같은 망토를 걸친 남자는 영웅의 기상을 줄기줄기 내뿜고 있었다.
“소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스터.”
내가 뽑은 S급 영웅이 내게 말했다.
“그래, 반갑다. 그리고…….”
푹-
내 칼이 놈의 심장을 꿰뚫었다.
“잘 가라.”
“어, 어째서…….”
놈이 피를 뿜으며 절규했다.
“난 너희가 싫다.”
그리고 너희의 경험치가 좋다.
* * *
칼이 내 심장을 꿰뚫었다.
높은 스탯 덕에 아직 목숨이 붙어 있지만, 살아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어떻게?”
왜냐고 묻진 않았다.
배신의 이유를 묻는 것보다 훨씬 궁금한 것이 있었으니까.
[란슬롯(S. 검의 주인)]
-충성도 : 100(충성도가 낮으면 배신할 수 있습니다.)
충성도가 100인 영웅의 칼이 내 심장을 찌르고 있었다.
“당신에겐 너무 과분해. 당신은 우리의 주인이 될 자격이 없다.”
주위를 둘러싼 것은 나의 소환 영웅들.
그리고 나의 동료들.
그들은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잘 가게, 뒤는 걱정 말고.”
황제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일의 전말을 알 것 같았다.
황제의 간교한 혓바닥에 다들 넘어갔겠지. 자리에 걸 맞는 힘도 가지고 있으니 나보다 믿음직해 보였을 테고.
하지만 여전히 내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배신의 이유가 아니다.
어떻게 시스템에 충성도 100으로 표시되는 영웅이 배신 할 수 있냐는 것이다.
하지만 궁금증을 풀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몸에서 힘이 빠진다. 입을 열어 더 물어볼 수가 없다.
그때 둘러선 자들의 뒤쪽이 소란스러워졌다.
[캐서린(S. 성녀)]
-충성도 : 100(충성도가 낮으면 배신할 수 있습니다.)
나의 또 다른 소환 영웅.
다른 이들이 그녀를 막으려 하자 황제가 손을 들어 막았다.
“그냥 두게. 어차피 성녀라도 살려 내진 못해.”
그녀를 막던 이들이 물러나자, 성녀가 내게 달려왔다.
그녀의 손이 내 가슴에 닿는다.
하지만 그녀의 뛰어난 치유력으로도 날 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대로 끝나선 안 돼요.”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이미 눈을 뜰 힘조차 없어 그녀를 볼 수 없었다.
그때였다.
“돌아가서 바로 잡으세요, 마스터.”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감겨 버린 내 눈꺼풀을 뚫고 강력한 빛이 쏘아져 들어온다.
“무슨 짓이야!”
“막아!”
황제와 배신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더 이상 신경 쓸 수 없었다.
나는 죽었다.
* * *
웅성웅성-
주위가 소란스럽다.
캐서린의 목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린다.
“돌아가서 바로 잡으세요.”
동시에 나는 눈을 떴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런 뜻이었나.”
언젠가 이 세계에 처음 끌려왔을 때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주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영문 모를 표정으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튜토리얼로 돌아오다니…….’
다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캐서린이 정확히 무엇을 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과거로 돌아왔다.
조금 있으면 머릿속으로 이곳에 끌려온 이유와 튜토리얼 진행 방식에 대한 정보가 들려올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빌어먹을 황제 놈과 소환 영웅 놈들을 어떻게 하면 다 죽여 버릴 수 있을까.
오로지 그 한 가지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내가 가진 스킬은 단 하나, 랜덤 영웅 뽑기뿐.
어째서인지 뽑을 때마다 S급 영웅만 뽑힌다는 것이 특이 사항이다.
하지만 충성도 100을 채우더라도 결국 배신한다는 것을 알았으니 놈들을 다시 키우는 것은 바보짓이다.
‘생각해라. 나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방법은 분명이 존재한다. 기억해 내라.’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 듯이 중얼거린다.
생각 중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플레이어 여러분들은 이 세계를 구할 용사로 초대되셨습니다. 초대에 응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튜토리얼을 통과하고 세 번의 재앙에 맞서 열심히 싸워 주세요. 시작하기에 앞서, 몇 가지를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나는 스팸 메시지를 잘못 클릭하는 바람에 끌려와 억지로 용사가 되었었지.
이곳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나와 같은 신세.
그리고 각자 이 세계로 끌려오면서 특별한 능력들을 가지게 된다.
도우미의 설명이 계속될수록 웅성거림이 더 심해진다.
소란은 설명이 끝나도록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혼란을 못 이겨 옆 사람과 싸우기도 할 테지.
하지만 머지않아 거대 쥐들이 덮쳐 오면서 현실 부정은 끝이 나고 그 자리를 공포가 채우게 될 것이다.
눈을 번쩍 떴다.
“찾았다.”
빌어먹을 소환 영웅 놈들을 갈아 마셔 버릴 방법을.
* * *
혼란한 틈을 타 군중 속에서 빠져 나왔다.
저 속에 섞여서 거대 쥐나 때려잡고 있을 때가 아니다. 도우미의 음성도 어차피 다 아는 내용이니 굳이 집중해서 들을 필요도 없다.
바삐 걸음을 옮겨 숲으로 들어섰다.
이곳 숲은 며칠을 걸어도 다 둘러보지 못할 정도로 넓다.
이 세계에 적응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인 이곳에는 몇 가지 히든 피스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중 한 가지를 얻는 것이 내 계획의 첫 걸음이다.
막 숲속 깊은 곳으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뒤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당신. 어디 가는 거지?”
뒤를 보자 머리를 바짝 깎은 덩치가 따라오고 있었다. 팔뚝과 목덜미에 그림이 가득한 것을 보니 뭐 하는 사람인지 알 만했다.
내가 빤히 바라보자 놈이 가늘게 눈을 뜨며 말을 이었다.
“가만히 눈감고 있다가 벌떡 일어나더니, 숲으로 들어오더군. 너 수상해. 뭔가 알고 있지?”
내 모습을 지켜본 건가.
혼란스러운 상황이라 눈에 띄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 틀린 모양이었다.
“이 새끼가, 사람이 말을 하면 대답을 해야지.”
순식간에 ‘당신’에서 ‘너’가 되더니 급기야 ‘새끼’로 격하되었다.
‘처리하고 가야 되겠군.’
괜히 이런 놈을 뒤에 달고 가고 싶진 않았다.
내가 가진 단 하나의 스킬을 사용한다.
‘랜덤 영웅 소환.’
첫 번째 소환은 공짜, 코인이 필요 없다.
내 눈에만 보이는 마법진이 빛을 발하고, 곧이어 하나의 인영이 나타난다.
“처음 뵙겠습니다, 마스터.”
외알 안경을 끼고 몸에 작은 플라스크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모습의 영웅이 소환되었다.
[포이즈너(S. 연금술사)]
-충성도 : 50(충성도가 낮으면 배신할 수 있습니다.)
소환 영웅의 상태창은 아주 간략하다.
보이는 것은 이름, 등급, 직업뿐.
그들이 무슨 스킬을 가지고 있는지, 신체 능력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죽여 버리고 싶군.’
놈을 보자마자 살의가 치솟았다. 이놈도 내가 죽을 때 나를 둘러싸고 서 있던 놈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마음을 감추고 말했다.
“그래, 반가워. 저놈 좀 처리해 주겠나.”
건달은 갑자기 나타난 포이즈너의 모습에 당황하고 있었다.
“명하신 대로.”
내게 짧게 고개 숙인 포이즈너가 건달에게 손을 뻗었다.
푸슛-
손에서 연녹색의 연기가 쏘아져 건달의 얼굴을 뒤덮었다.
“뭐, 뭐야, X발…… 컥!”
건달은 조금의 반항도 못 해 본 채 바닥에 쓰러졌다.
잠시 후, 죽어 버린 건달의 시체에서 한 가닥 기운이 솟아나 내 몸으로 빨려 들었다.
‘상태창.’
[정해수]
근력 : 12(F)
민첩 : 10(F)
체력 : 14(F)
마력 : 2(F)
스킬
- 랜덤 영웅 소환 (1/1000 코인)
간략한 상태창이 떴다.
그리고 건달의 몸에서 빠져나온 스탯이 내게 흡수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초기 스탯이 얼마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확실한 것은 마력이 1부터 출발한다는 것이다.
‘마력이 흡수되었군. 코인도 하나 벌었고.’
숫자 옆의 알파벳은 등급을 나타낸다.
가장 낮은 것이 F급.
모든 스탯은 100이 되는 순간 다음 등급으로 올라가며, 그 뒤에 1부터 다시 올려야 된다.
두 번째 영웅 소환에는 1000코인이 필요하다.
건달을 처리하고 1코인이 흡수된 상태.
“처리했습니다, 마스터.”
내가 잠시 스탯을 확인하는 동안 포이즈너가 말을 걸어왔다.
“수고했어. 북쪽으로 가야 되니 앞장서. 방향은 내가 지시하도록 하지.”
“명하신 대로.”
앞장서 걷는 포이즈너의 등을 칼로 찌르는 상상을 하며 그의 뒤를 따라 목적지로 나아갔다.
광장 인근 숲에는 거대 쥐부터 시작해서 고블린, 코볼트 등의 약한 몬스터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놈들은 S급 영웅인 포이즈너의 손짓에 반항 한 번 해 보지 못하고 쓰러져 녹아내렸다.
그리고 사체에서 흘러나온 기운은 스탯이 되어 내게 흡수되었다.
‘옛날 생각이 나는군.’
회귀 전에는 첫 뽑기로 전사형 영웅이 소환되었고, 나는 튜토리얼 내내 하는 일 없이 그 뒤만 따라다녔다.
튜토리얼이 끝나갈 무렵, 소환 영웅을 제외하고도 같은 지역 플레이어 중에 나보다 강한 자는 없었다.
‘완전히 버스만 탔지. ……그래서 배신한 건가?’
그래도 튜토리얼 이후엔 늘 최전방에서 싸웠다. 부하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등을 보여 주기 위해 이 악물고 노력했었다.
그러나 돌아올 것은 배신.
심지어 시스템 창에 적힌 문구에도 배신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충성도가 낮으면 배신할 수 있다라…….’
하긴 ‘충성도가 높으면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다.’라고 적혀 있지는 않으니 거짓말은 아닌가.
어쨌든 이번에는 달라질 것이다. 눈앞에 걷는 저놈은 더 이상 내 아군이 아니니까.
놈들이 배신하기 전에 내가 이용해 먹고 죽인다.
걷는 동안 꾸준히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생각했다.
소환 영웅들을 죽이고, 황제를 죽인다.
세 번의 재앙을 막는 것은 후순위다.
황제를 죽이려면 제국과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려면 강해져야 된다. 압도적으로.
한참을 걸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절벽 아래 덤불로 가려진 동굴.
사람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뒤덮인 길을 포이즈너가 억지로 덤불을 쳐 내 가며 입장하자 메시지가 들려왔다.
[숨겨진 던전에 입장합니다. 난이도가 높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던전에는 트롤들이 나왔다. 현재 내가 결코 이길 수 없는 상대.
포이즈너는 내 앞을 가로막고 성실히 트롤을 정리해 나갔다.
S급 영웅의 위용 앞에 튜토리얼의 몬스터는 추풍낙엽과 다를 바 없었다. 트롤의 재생력도 포이즈너의 독 앞엔 무용지물.
그렇게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아 동굴의 끝에 다다를 수 있었다.
던전의 보스는 일반 트롤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엘더 트롤이었다.
놈의 팔목에 매여 있는 팔찌가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이다.
부하들의 죽음에 화를 내던 엘더 트롤은 포이즈너의 손길에 버티지 못하고 결국 한 줌 핏물이 되었다.
놈이 죽고, 스탯이 흡수되고 난 후 팔찌가 땅에 떨어졌다.
[해적왕의 우정(S. 팔찌)]
: 수많은 동료를 모아 결국 해적왕이 된 누군가를 기리며 그의 동료가 만든 팔찌. 동료의 힘을 랜덤으로 빌려 사용할 수 있다. 영구 귀속.
설명에는 빌린다고 되어 있지만, 한번 빌린 능력은 영구적으로 사용 가능하다.
팔찌를 착용한 후 바로 팔찌의 능력을 사용했다.
[스킬 전이가 시전됩니다. 대상을 정해 주세요.]
[지정 가능 대상 : 포이즈너]
‘포이즈너.’
[스킬 ‘호문쿨루스 소환’이 전이됩니다.]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며 살짝 놀랐다.
‘호오, 이런 스킬을 가지고 있었군.’
포이즈너는 회귀 전에도 전방에서 활약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워낙 쟁쟁한 멤버들이 존재했던 터라, 특기를 살려 후방 지원이 주 임무였다. 그래서 그의 스킬은 모두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해적왕의 우정은 회귀 전 어느 살인마의 소유였다.
놈은 원래 얼굴의 모양을 바꾸는 스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팔찌를 손에 넣음으로써 굉장한 강자로 거듭났다.
이 팔찌의 스킬은 길드나 파티원은 물론, 소환수에게도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살인마는 얼굴 변형을 이용해 파티원의 스킬을 빼앗고 죽이기를 반복했다. 파티를 바꿀 때마다 놈은 다양한 스킬을 획득했다.
나중에 비밀이 밝혀졌을 때, 살인마는 이미 굉장한 강자가 된 후였다. 당시 그를 처리하기 위해 제국 기사단 수백 명이 나섰었다.
어쨌든 해적왕의 우정을 획득함으로써 복수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갖추었다.
포이즈너에게 스킬을 빼앗았으니 더는 살려 둘 필요가 없다. 하지만 정면으로 싸워서는 이길 수 없는 상대.
나는 놈을 처리하는 일을 능력치를 좀 더 키운 뒤로 미루었다.
동굴을 나와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튜토리얼에 있는 3마리의 네임드 몬스터가 나의 목표였다.
지금 시점에서 개인이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나는 가능하다.
S급 영웅을 앞세워 최대한 몬스터를 독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