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114
수만의 관중들이 둘러싼 거대 경기장.
그 안에는 전세계의 내로라하는 마법 신예들이 모여 있었다.
각 지역 및 집단의 대표들이 한 데 모여 각축을 벌이는 축제.
골든스태프였다.
“지오르 마탑이 이번에도 우승이다!!”
“아카데미 마법사들은 한물갔잖아! 우우우우!”
“아르킨 부족의 힘을 보여다오, 자이룬!!”
“제국의 영광은 꺾이지 않는다고, 말렌 디에켈 솟아올라라!!”
귀족과 평민,
신분 고하를 막론 하고 모든 이들이 자신들 소속의 마법 신예들을 응원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물론 론의 가족들도 있었다.
“아빠, 근데 셋째 오빠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귀찮음이 가득 실린 목소리.
론의 동생 레비였다.
“뭐 저들 중 어딘가에 있지 않겠느냐?”
“그래, 레비 좀 더 기다려보자꾸나.”
눈을 껌뻑이며 두리번거리는 에레드와 레비를 쓰다듬는 그녀의 엄마 쉬르카.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들도 역시 궁금한 건 마찬가지였다.
아카데미 방학을 한 달여 남짓 남기고 갑자기 여행을 떠난 론.
그런데 방학이 끝나갈 때까지 돌아오기는커녕 새 학기가 시작하고 나서도 깜깜무소식이었다.
그러다가 연락이 닿은 게 바로 한 주 전.
수련하느라 정신이 없었단다.
한때는 스펜서 포션 건을 비롯해 아카데미 차석, 왕실 간담회 등 그 나이대에 보이기 어려운 모습으로 가문의 사람들을 당황케 하더니, 이제는 그 수준을 넘어 된통 사고를 치지는 않을까 걱정하게 된 그들이었다.
‘론, 대체 어디 있는 게냐?’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려 했던 에레드였으나, 결국 초조함이 그 얼굴에 조금씩 묻어났다.
여러 대에 걸쳐 불의 마법을 다뤄온 가문 스펜서 남작가.
변경의 조그만 영지라 하나 위대한 선대들의 유지와 업적이 있었기에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었다.
그리고 당대,
열여섯이라는 어린 나이에 화인(火人)의 경지에 오른 그의 아들이 있었다.
천재라 불리는 둘째 드락사도 열여섯에는 고작 3서클일 뿐이었지만, 론은 그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 6서클에 닿았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론에 대해 떠올리고 있던 에레드는 이내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아니,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 대회를 빛내 줄 전세계의 신예들을 맞이해 주십시오!!”
바로 골든스태프 본선의 시작,
개회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말로는 선별식.
마나의 저울이라는 독특한 방식을 통해 출전자들을 가려내는 것은 오랜 전통이었다.
경기장 내 한명 한명이 각 지역 및 집단의 내로라하는 신예들이었지만, 당연히 수준 차는 있을 수밖에 없기에 본선 무대의 정원은 정해져 있었다.
단, 스물두 명.
때문에 경기장 내에 있던 이들이 모두 혼신을 다해 마나를 출력하기 시작했다.
방출한 마나의 양에 따라 출전자들의 높이 위상이 변하고 있었는데, 그 방식은 수많은 이들이 있는 만큼 다양했다.
서서히 오르는 자들,
처음에는 좀 오르지만 이내 멈춘 자들,
단계적으로 높이를 올리는 자들,
허나, 그 많은 출전자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이는 역시 정해져 있었다.
가장 높이 떠오른 사람.
출전자들 가운데 유독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있어 그 정체를 가늠할 수 없는 자였는데, 이내 바람과 함께 그 후드가 넘어갔다.
후우우웅.
선명하게 드러난 붉은 머리카락.
관중석에서 경기장 내부까지 상당한 거리가 있었지만, 마나를 통해 안력을 높인 에레드는 정확히 볼 수 있었다.
익숙한 그 머리카락을.
‘론! 그래, 역시 네가···!’
아무리 귀족 전용 관중석이라지만, 수많은 이들이 있는 곳이었다.
최소한의 체통을 지키며 속으로 감탄을 지르던 에레드였는데, 순간 그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붉은 머리카락 못지않게 멀리서도 눈에 훤히 들어오는 한 가지.
바로 검은 안대가 론의 머리에 씌워져 있던 것이다.
불과 당장 일주일 전만 해도 잘 지내고 있다는 편지를 보내온 아들 녀석이었는데, 안대가 웬 말인가.
조금 전까지 에레드의 심중에 자리 잡고 있던 초조함, 흥분, 벅찬 감정들이 사그라들고 이내 불안과 걱정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
구후우우우웅.
우우우웅.
수많은 이들이 한데 모여 마나를 방출하는 광경.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저 마나의 저울 마법으로 인해 출전자들의 위치가 바뀌는 것 외에는 볼 게 없다.
때문에 관중들은 그 치솟는 정도를 보며 환호를 질렀는데, 론이 보는 모습은 조금 달랐다.
시각을 잃은 후 마나의 흐름과 열감지에 치중된 그의 감각은 출전자들이 마나를 출력하는 모습을 누구보다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아···.”
가히 장관.
저 멀리 라리사의 마나도 느껴졌다.
‘잘 지냈구나.’
마셔스 수림에서의 마지막 여정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불과 몇 개월 사이였지만, 사티넬과 크루딘을 비롯해 모두가 단단해져 있었다.
시전자의 생각과 의지가 고스란히 담기는 마나.
때문에 개개인들이 뿜어내는 마나는 모두 그 고유의 특징을 지닌다.
태어난 곳, 살아온 환경, 함께한 이들, 경험하고 깨우친 것들 등 다양한 생의 결과물들이 여과 없이 담기는 것이다.
감히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고유성.
그 아름다움에 푹 빠진 론이 손을 뻗었다.
‘경쟁을 떠나 생의 아름다움이구나.’
자연에 퍼져 있는 마나들의 그의 의지에 반응했다.
골든스태프 개회식 규정대로라면 불러온 마나를 본인의 저울대인 바로 그 밑바닥에 방출해야겠지만, 론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조화.
론은 손에 닿은 모든 마나들을 모조리 쏟아부었다.
그의 바닥이 아닌 경기장 내부 전체에.
쿠구구구구궁.
“뭐, 뭐야 저게?”
“뭐가 잘못된 거 아냐? 왜 다 같이 솟아올라?”
“마나의 저울은 개개인의 마나 보유량에 따라 높낮이가 결정되는 거 아녔어?”
“마나의 저울 마법이 잘못된 거 아냐?”
“허···. 골든스태프 대회를 수십년 봐왔건만 이건 처음이구먼···.”
“그래도 저기 저 맨 위에 있는 사람은 역시 안 바뀐다.”
수많은 관중을 당황케 만든 광경.
경기장 내 출전자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높이 치솟아 버렸다.
***
“허···! 그럼 그게 사실이었다고···?”
“예, 확실합니다. 붉은 머리에 안대와 후드, 그리고 십대 후반의 나이. 모두 일치합니다.”
“새파랗게 어린놈이 대체 어떻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탑주님?”
대형 경기장이 훤히 보이는 실내 공간.
이번 골든스태프 대회의 주최 측 대표이자 지오르 마탑주의 얼굴이 수심에 잠겼다.
얼마 전 있었던 브래들리 영지의 참사를 그도 들어 알고 있었다.
외부에는 그저 가주 승계권을 두고 벌어진 후계 싸움으로만 알려졌지만, 그 실상은 마인 세력들의 완전한 궤멸이었다.
동부 세력의 중추였던 성좌 에드원 브래들리의 사망은 물론이고, 핵심 아티펙트인 반타 블랙까지 모조리 지워져 버린 사건.
백년대계를 위해 바쳐온 그간의 노력이 한순간에 사라졌기에 그만큼 위중한 사안이었고, 동부를 제외한 세력들이 단합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그 동부를 궤멸시킨 용의자의 신위가 상상 이상이었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십대에 불과한 나이임에도 이미 7서클 이상의 마법 수준과 정령술을 다룬다고 하였는데,
지금 경기장에 펼쳐지는 광경을 보자면 이는 허언이 아니었다.
수백 년간 단 한번도 오작동이 없었던 마나의 저울이다.
헌데 고장이라도 난 듯 모든 출전자를 밀어 올렸다.
물론 그중에서도 높낮이가 나뉘었지만, 역사적으로 이렇게 모든 이들이 높게 치솟은 적은 없었다.
“탑주님···? 탑주님?”
신체를 다 바쳐 이미 마인이 된 지오르 마탑주였지만, 왠지 모르게 밀려오는 죽음의 공포에 사고가 굳어갔다.
“뭘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저놈이 저 동부를 싸그리 없애버렸다는데! 죽여! 무조건 죽이라고!!”
희열이든 공포든 뭐든지 간에 광기로 물들어 버리는 마인의 습성은 이번에도 여과 없이 드러났고, 누구보다 쥔 것이 많은 지오르 마탑주는 그 초조함이 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경기장 밖으론 한 발자국도 못 나오게 완전히! 죽여버려. 대기 중인 마인들을 다 끌어와서 반드시 죽이란 말이다!”
브래들리 영지를 함락시킨 용의자가 남부 세력의 핵심지인 이고르 왕국에 온 만큼 확실히 할 필요가 있었다.
‘설마··· 이곳에 온 이유가···.’
지오르 마탑주는 저도 모르게 천년 역사의 마탑이 무너지는 상상을 했다.
‘절대, 절대 그래선 안 된다···.’
주문처럼 속으로 되뇌는 그였으나, 상황은 그의 마음처럼 굴러가지는 않았다.
**
골든스태프의 연원이 오래되긴 했지만, 마나의 저울대 위에서 출전자 전원이 이렇게 높이 떠오르는 건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
보통 마나 출력량이 적으면 2~3미터가량 솟아오르고, 순위권에 있는 이들은 10미터 정도까지 솟아오르는 게 일반적인데, 지금은 백여 명 모두가 10미터 이상까지 솟아올랐다.
물론 그중에서도 높낮이 차이는 분명 존재했다.
추정 높이만 대략 50미터.
경기장을 둘러싸며 대각선으로 배치된 관중석의 높이마저 완전히 넘어선 위치에 떠 있는 자.
관중석의 모든 이들이 우러러보는 자는 당연히 론이었다.
‘아름답다.’
수많은 출전자 가운데 우뚝 솟아올라 관중석의 사람들의 마나까지 하나하나 살피며 론이 감탄에 젖었다.
감각의 지평은 날로 발전을 거듭해 이제는 한 번에 수십 수백의 사람들 마나를 살필 수 있었다.
그런데 감탄에 잠기는 것도 잠시,
[론!]
‘응, 알아.’
수도 곳곳에 흩어져 있던 마인들이 갑자기 경기장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뭐야? 뭘 꾸민 거야?’
순간 떠오른 브래들리 영지의 참상에 론은 저도 모르게 관중들을 훑었다.
자그마치 수만에 이르는 인원이었다.
“와아!! 정말 대단하군요! 과연 역대급 골든스태프 대회입니다! 이번으로 네 번째 사회를 맡아보는데, 출전자 전원이 이렇게 높이 떠오른 모습은 처음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본선 무대 티켓은 정해져 있지요.
단, 스물두 명!
그렇다면, 그 스물두 명의 출전자들을 여러분 앞에 공개하겠습니다!”
허나 뭐라 대처할 새도 없이 사회자의 진행이 이어졌고,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경기장 바닥의 마법진이 변하기 시작했다.
마나 출력량에 따라 출전자들의 중력 계수를 낮춰 높이 띄우던 마나의 저울 마법이 상위 스물두 명을 제외하고, 본래의 중력 계수로 되돌렸다.
“어어?”
“뭐야, 몸이 내려가는데?”
“아···. 탈락이라니!”
“떨어졌구나···.”
오랜 역사 그대로 진행된 골든스태프 개회식인 만큼 출전자들은 갑작스런 위상 변화에 대해 정확히 이해했다.
그렇게 선별된 최종 22인.
모두가 그들을 향해 시선을 모으고 있었는데, 가장 높이 솟아 있던 론이 그들 시야에서 이내 사라졌다.
콰아아아앙!
그리고 그 자리를 강력한 폭음이 대신했다.
“대체 뭔 일이야?!”
“아이고오···. 주최 측은 뭘 하길래!”
“뭐야, 이러다 다 죽는 거 아냐?!”
“어떤 미친놈이 뒤질려고, 이 행사에···.”
“주최 측인 지오르 마탑이 가만히 안 있을 텐데···.”
하지만 그것이 주최 측의 결정이었다.
수만에 이르는 관중이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기어코 마인들을 집결시키며 내린 결정 말이다.
‘허···. 정말 이렇게 나온다고?’
지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상공.
론이 차가운 얼굴로 대형 경기장을 바라봤다.
브래들리 영지에서 마주한 대마수에 필적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 수만큼은 확실히 배 이상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위치한 곳은 영악하게도 관중들 사이사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