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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가 마법사의 회귀-113화 (113/115)

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113

살아가며 마주하는 수많은 일들.

그 가운데 머릿속에 길이 남는 것들은 모두 저마다의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오래도록 반복된 일상이라든가, 아니면 충격적인 소식이라든가, 또는 가슴 아픈 얘기라든가, 혹은 생애 꼽을 만한 기쁜 일이라든지 등등.

그런데 아카데미 총장실이 론에게는 그와 같은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나 보다.

‘그대로네.’

총장실 문 앞에 선 론이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왕실간담회 건으로 이곳에 처음 면담을 온 것부터 해서 같이 브뤼센 영지에 갔던 기억까지.

회귀 전에는 럼블 총장과 거의 일면식도 없었는데, 이번 생에는 그런 총장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이 질투할 정도로 말이다.

나름 열심히 살았던 일들에 대해 떠올리고 있자니 안에서 부스럭부스럭 인기척이 들렸다.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

“밖에서 서 있지만 말고 들어오거라.”

아들렌 아카데미 총장 럼블이었다.

‘알고 계셨구나.’

똑똑.

“론 스펜서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친히 안주인이 들어오라 하기에 들어간 총장실.

그런데 막상 그 장본인은 상당히 놀란 듯 눈이 아주 동그랗게 커졌다.

“허···. 정말 네가 론이라고?”

한동안 왕실간담회 건으로 같이 붙어 다녔던 럼블이다.

때문에 론이 지닌 마나의 느낌이라든가 크기, 서클 등의 것들을 제법 잘 알고 있었는데, 무언가 바뀌어도 너무 많이 바뀌어 있었다.

게다가 푹 눌러쓴 후드는 무엇이란 말인가.

갑작스런 변화에 럼블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예, 맞습니다. 보시다시피.”

그리고 그런 럼블의 심중에 화답하듯 후드를 벗는 론.

익숙한 붉은 머리가 럼블을 안심시키는 것도 잠시 그 아래 자리한 검은 안대가 그의 눈살을 절로 찌푸리게 했다.

“뭔 일이 있었던 게냐, 대체.”

이미 사티넬에게 한 번 설명했던 탓인지 론은 보다 쉽게 얘기를 풀어낼 수 있었다.

마셔스 수림에서 있었던 일,

마인과 물의 정령왕의 대면,

브래들리 영지가 반파되다시피 한 일.

물론 중간에 고대 괴수의 봉인을 없애고 시엘을 거둬들인 일이 있었지만, 이는 생략했다.

론이 세세히 설명하기에는 모호했으니까 말이다.

“허···. 그러니까 정령사가 된 것도 모자라 전설 속에서나 언급되는 정령왕을 만나고, 그 정령왕을 이 땅에 소환시키기까지 했다 이 말인 게냐?”

“예, 맞습니다.”

모르는 이가 들었다면 당연히 허황된 소리라며 일축했을 얘기.

하지만, 론의 기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럼블은 마냥 넘길 수가 없었다.

고작 두 달 만에 2서클에서 3서클로 오른 그였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거기에 골든스태프 선발전에서 또다시 일을 내버렸었다.

4서클의 마법을 즉시 시전에 가깝게 펼친 것.

세기의 현자라 불리는 럼블도 가늠하기 벅찬 재능이었다.

“그리고 그 대가가 체내에 있던 서클과 두 눈이었다, 이거냐?”

“예, 맞습니다.”

여전히 못 미더워하는 럼블을 위해 론은 결국 안대를 벗어주었고,

“허···.”

곧 드러난 유백색 의안에 럼블은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이어진 긴 침묵.

론이 그 틈을 타 홍염과 시엘이 잘 있는지 확인했다.

오색찬란의 시각 세계가 사라지고, 오로지 마나와 열(熱)로서 만물을 인지하는 세계는 익숙해지니 나름 편리하다.

구조물 너머의 것들도 느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심지어 홍염의 공감각을 통해 느끼던 열감지는 이제 혼자서도 제법 펼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사티넬, 홍염, 시엘이 어울려 있는 모습에 집중하고 있자니 곧 럼블이 말했다.

“쯧쯧, 이미 그 실체가 눈앞에 있는데 따진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고. 그래, 그래서 골든스태프 대회는 참여할 수 있겠느냐? 아니, 참여는 할 것이냐?”

현 상황을 끝내 받아들이고 나자 럼블은 론이 걱정됐다.

아무리 천재라지만, 성인도 안된 나이다.

그런데 체내의 서클과 함께 두 눈이 사라졌다.

정신적 충격이 상당하지 않을까 싶었다.

“예, 참가해야지요. 그토록 기대한 대회인데.”

젊은 마법사들의 장.

그 나이대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고, 전세계 마법 신예들의 마법을 마주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기득권층 입장에서는 현 마법 트렌드의 중심이 어디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대회.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론은 자연스레 회귀 전 골든스태프 대회를 독식하던 마탑의 모습이 그려졌다.

오랜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자 아이블 마탑은 마계에 손을 뻗쳤고, 그렇게 얻은 힘으로 마탑 세력을 규합해 땅을 어지럽혔었다.

결국 그 시발점이었던 골든스태프.

온갖 인사들이 몰려올 터였다.

‘당연히 그중에는 탐욕에 찌든 마인도 있을 테고.’

때문에 참가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 네 생각이 그렇다면야. 그래도 약 일주일간의 시간이 있으니 몸조리 좀 하거라. 그나저나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여기로 온 거면, 이제 스펜서 영지로 가는 것이냐?”

“음···. 가문에 다녀오기에는 아무래도 빠듯한 시간이라서 말입니다.”

사실 텔레포트를 쓰면 하루 만에라도 갈 수 있지만, 굳이 그 사실을 드러낼 필요가 없었다.

가뜩이나 체내 서클이 사라진 상태다.

그런데 그런 상태로 대표적인 6서클 마법을 시전한다면, 아주 럼블 입장에서는 미치고 펄쩍 뛸 일일 것이다.

“편지 정도만 보내고, 이고르 왕국으로 갈 생각입니다.”

“흐음? 아카데미에서 좀 더 머무르는 게 아니고?”

“예. 머물러 봐야 그리 좋은 상황이 벌어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론이 생각하는 건 간단했다.

역대 최고이자 최연소라고 뽑힌 아카데미 선발자.

헌데 막상 드러난 실상은 두 눈을 잃은 맹인 마법사에다가 서클까지 없어진 게 드러나면, 아마 교내 상황이 아주 시끌시끌할 게 뻔했다.

“후우···. 그럼 이제 다음에 보는 건 골든스태프 대회 때인 게냐?”

“아무래도 그렇지요.”

“허허···.”

이제 열여섯 살인 2학년생이었다.

그런데 그런 론이 마주한 세계는 단순히 아카데미 내의 것들 아닌 세상 밖의 것들이었다.

전부터 궁금했던 의문의 세력에 대해 마인들이라 확정 짓는 모습에서 럼블은 더 이상 그를 학생으로 보지 않았다.

그리고 론이 말했던 정령왕.

일생을 마법에 바쳐온 럼블이었기에 정령사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지만, 그래도 이제껏 살아오며 적잖이 만났었다.

세상의 이치와 순리에 순종하는 자들.

정령사.

그 특유의 여유와 분위기가 론에게서도 조금씩 묻어났다.

“그래, 알겠다. 그럼 가보거라.”

“예,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론은 다시 후드를 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왔던 길 그대로 돌아가는 그의 모습에 럼블을 혀를 내둘렀다.

맹인도 지팡이를 짚으며 주변 지형지물을 파악한다.

헌데 론은 그런 지팡이도 없이 일반인처럼 걸어 나갔다.

그리고 그 이유라 말할 수 있는 밀도 높은 마나가 그의 주위로 뻗어있을 뿐이었다.

서클이 없음에도 주위의 마나를 자유롭게 다루는 경지.

‘설마 네가 그 체외 서클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고?!’

충격에 눈만 껌뻑거리는 럼블을 뒤로한 채 어느새 론은 총장실에서 사라졌다.

***

일주일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론은 가문의 식구들과 편지를 나누고, 자신만 빼고 만났다며 아쉬워하던 크루딘과도 해후를 나눴다.

두 눈을 잃었다는 사실에 누구보다 마음 아파한 그의 반응에 괜스레 론의 마음이 따뜻해졌다.

생을 거듭하며 거창한 목표도 세워보고 회귀 전에는 꿈도 못 꾸던 숭고한 희생도 해보았지만, 그를 가장 기쁘게 만드는 것은 이제껏 함께해온 이들과의 만남이었다.

메말라 있던 론의 마음 가운데 단비가 촉촉이 적셔들 무렵,

론과 사티넬, 그리고 크루딘.

즉, 다시 모인 론의 일행은 다 함께 이고르 왕국으로 향했다.

전세계 마법사들의 대축제.

마법 생도들에게 있어서는 꿈의 무대이자 생에 단 한 번밖에 없는 영광의 순간.

바로 골든스태프 대회가 이고르 왕국의 수도에서 개최됐다.

“와아, 밖에 봐봐! 아주 사람들 바글바글이야!”

“그 얘기 하려고 부른 거예요?”

이고르 왕국 수도 번화가에 자리 잡은 고급 여관.

귀족 전용은 물론이고, 엄청난 고가의 숙박료를 요구하는 곳에 론의 일행이 머물렀다.

그리고 지금 사티넬과 크루딘이 모인 이곳은 바로 론의 방이었고.

새애애애액!

시엘이 아침 댓바람부터 시끄럽게 한다며 크루딘에게 한마디 쏘아붙였다.

“어이어이, 꼬맹이 백사야. 거 나만 너무 싫어하는 거 아냐? 우쭈쭈, 이리 와 봐.”

시엘의 언짢아하는 반응은 안중에도 없는지 크루딘이 서슴없이 다가가 손을 뻗었다.

콰득!

“아아아악!!”

어김없이 내지르는 크루딘의 비명.

요 며칠 새 적잖이 봐온 광경이었기에 론의 입가에서 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런 론에게 사티넬이 다가갔다.

“본선 당일인데, 컨디션은 괜찮으세요? 저희가 괜히 와서 불편하게 한 건 아닌지···.”

가족들도 대회 후 만나자고 한 마당이었기에 사티넬이 눈치를 봤다.

“네, 컨디션은 좋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혹시 다칠 수도 있으니···.”

“예,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론의 골든스태프 대회를 도와준답시고 수업까지 빼가며 론의 숙소에 찾아왔던 두 사람.

허나 그 결과는 변함이 없었다.

바로 무서클.

정령왕을 소환한 대가로 두 눈과 체내의 서클을 잃은 지 거의 한 달이 되어가고 있었는데, 론은 심장에 서클을 만들지 않았다.

자연 속에 퍼져 있는 마나들을 흡수에 자신만의 것으로 가공하고, 운용하는 서클.

대부분의 마법사는 이러한 서클이 있기에 마법진에 맞춰 마나를 공급할 수 있었는데, 론은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외부의 마나를 편히 다룰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론.]

그렇게 그간의 일들에 대해 떠올리고 있는데, 홍염이 론을 상념 속에서 끄집어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많아지는 거 같아.]

‘그렇네.’

이고르 왕국의 수도.

그 중심 번화가 머무르고 있는 론은 주위에 퍼져있는 마기들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대륙 동부 세력의 핵심지 브래들리 영지를 완전히 밀어버린 론이다.

때문에 그 외 세력들도 어느 정도 반응을 보일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까지 특별한 무언가는 없었다.

납치 혹은 살인, 그리고 제물 소환의 낌새는 없었기에 론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괜히 조무래기들을 건드렸다가 대어를 놓치면 그 자신만 손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론과 어둠의 세력.

둘 사이의 묘한 대치가 이뤄지는 가운데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

“신사숙녀 여러분, 모두 반갑습니다. 드디어 5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마법사들의 대축제! 골든스태프 대회의 날이 찾아오고야 말았습니다!”

“““와아아아아!!!”””

거대한 함성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이고르 왕국 수도 외곽에 새워진 커다란 경기장.

브래들리 영지에 있었던 원형 검투장의 배는 될 법한 거대한 구조물 안에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렇다면 이 대회를 빛내 줄 전세계의 신예들을 맞이해 주십시오!!”

바로 골든스태프 본선의 시작,

개회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말로는 선별식이었다.

전세계에 펼쳐진 수많은 왕국 및 소수 부족, 특정 집단들은 그 수가 백을 가뿐히 넘긴다.

즉, 아무리 선별과정을 통해 뽑힌 자들이라 할지라도 인원이 너무 많은 것이다.

때문에 약 200년 전부터 도입된 방식이 바로 이 선별식이었다.

이름하여 마나의 저울.

보통의 저울이 무게가 많이 나가는 쪽으로 기우는 반면, 이 마나의 저울은 그 반대였다.

출력 마나가 많은 사람은 위로 올리고, 적은 사람은 도리어 내리는 방식.

즉, 경기장 내부에 설치된 이 마법식 메커니즘이 저절로 학생들의 마나의 양에 따라 선별자들을 가려내는 것이었다.

“역시 이건 그대로군.”

그리고 이에 대해 잘 알고 있던 한 사람.

론이 지체없이 주위의 마나를 한데 모으기 시작했다.

“와아!! 뭐야, 쟤! 미쳤는데?”

“쟤 누구야?! 너무 독보적인데?”

“아니, 저럴 수가 있나?”

“저 정도의 격차면 역대급 아닌가?”

“입은 옷을 보면 그 지오르 마탑의 유망주는 아닌데···.”

그리고 그 수많은 사람의 관심과 환호 속에서 솟아오른 이는 당연히 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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