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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가 마법사의 회귀-111화 (111/115)

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111

다시 돌아온 아들렌.

수도의 워프 게이트를 나오자 익숙한 향이 론의 코끝을 찔러왔다.

시각이 단절되며 그 외 감각들이 배는 민감해졌는데,

“아···.”

그 후각이 옛 기억들을 절로 그려냈다.

‘도련님은 처음인데도 능숙하시군요.’

아카데미 입학을 위해 함께 수도에 왔었던 가문의 하인 나트람.

‘큭큭큭, 사티넬 완전 내 어릴 적이랑 판박이네. 푸하하하! 어이, 사티넬, 네 몸뚱이는 괜찮다고. 걱정하지 마, 위험했으면 벌써 갈아치웠지. 하하하!’

‘그렇긴 하네요, 힛.’

회귀 후 처음으로 사귀었던 이들과의 탐방 여정.

‘왕성에 가는 거 아니었습니까? 간담회에 참석하신다고.’

‘간담회도 가야지. 그런데 그 전에 가볼 데가 있다.’

‘가볼 데라면···.’

‘홉고블린 말이다, 이 녀석아. 딱히 네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1학년 치고는 너무 과했어. 행정 본부도 그렇고 학생들 사이에 말이 많다. 처음 듣는 얘기는 아닐 텐데?’

왕실간담회를 앞두고 벌어졌던 일들.

그 외에도 여러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피식.

따지고 보면 고작 1년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었지만, 론에게는 그 하나하나가 멀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잠시간의 감상을 마치고 론이 주위를 두리번댔다.

홍염의 열감지 공감각을 통해 직원들의 위치를 파악한 것이다.

수도 워프게이트에서의 입국 절차는 처음이 아니었기에 론이 제법 능숙하게 명부 앞으로 갔다.

서명을 하고 본인 인증 절차를 마치려는데,

“론··· 스펜서. 음?! 혹시 그 아들렌 아카데미의 론 스펜서님이십니까?!”

담당 직원이 벌떡 일어섰다.

“예, 맞습니다만.”

워프게이트를 통한 입국 절차.

왕국 내 이동뿐 아니라 해외로도 수없이 다녀본 론이었기에 딱히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헌데 어째서인지 똥 마려운 개마냥 갑자기 어물쩍거리는 직원.

‘뭐야, 왜 불러놓고 말이 없어.’

그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론이 돌아서니, 그제야 직원의 입을 뗀다.

“그! 그···. 지금, 론 스펜서님 앞으로 귀족분들의 호출 요청이 있어서 말입니다.”

“아, 예. 그럼 말씀하십시오.”

‘처음부터 그렇게 말을 할 것이지.’

해외 혹은 먼 타지로 나간 이에게 연락할 수단이 궁할 때 쓰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워프 게이트에 메시지를 남기는 것이었다.

회귀 전 유적관리단 파견으로 곳곳을 쏘다니며 적잖이 경험했던 터라 론은 익숙했다.

“그··· 어···. 죄송하지만, 그런데 본인이 맞으신지···. 죄송합니다!”

담당 직원이 황급히 허리를 숙인다.

“······”

회귀 전후를 통틀어 처음 겪는 상황.

론이 당황해 할 말을 잃었다.

참고로 귀족 사칭은 사형 또는 노예형이다.

즉, 잘못 걸리면 그대로 인생이 종 치는 것이었기에 웬만해서는 저지르지 않는 범죄다.

게다가 수십 년 전부터 각 워프게이트 관리소에는 본인 인증 마력구가 비치되면서 해당 범죄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때문에 이렇게 대놓고 인증을 요구하는 경우는 하나였다.

그만큼 못 미더울 경우.

“하···.”

론이 고개가 흔들릴 정도로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 순간 눈앞에 아른거리는 후드 자락.

‘어? 아···.’

그제야 론은 깨달았다.

자신의 행색이 과연 그럴 만 했다는 것을.

깊게 눌러 쓴 후드와 그 안으로는 눈을 가린 안대.

솔직히 말해서 누가 봐도 의심스러운 행색이 맞긴 했다.

그리고 심지어 해당 이름의 주인공은 한창 아들렌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신예였으니 쉬이 믿을 수 없었으리라.

결국 론이 쓰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그렇게 드러난 찰랑이는 붉은 머리.

스펜서 가문의 상징이다.

허나 여타 가문에도 이와 같은 특징을 띠는 경우도 있기에 보통 스펜서 가문이라 하면 그 외에도 한 가지 특징을 말하곤 한다.

“그··· 스펜서 가문의 특징은 붉은 머리와 푸른 눈동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안대를···.”

과연 출입 관리 직원답게 지역별 귀족 특징을 정확히 꿰고 요청해 왔다.

‘거참, 일 잘하네.’

하는 수 없이 안대를 푸는 론.

적어도 출입 관리 직원의 요구를 거절함으로 인해 귀족 사칭 범죄자로 몰릴 순 없었다.

그렇게 론의 눈동자를 본 담당 직원.

“제가 지금 이래서···.”

“헉!”

침음을 참지 못했다.

왜냐면 푸른 눈동자가 있어야 할 공간이 그저 하얬으니까 말이다.

물의 정령왕 오비니트를 현신시킨 대가로 지불해야 했던 두 눈동자. 때문에 론은 그 빈 공간에 의안을 대신 집어넣었다.

빈 곳을 그대로 두면 얼굴 골격이 무너질 수 있기에 브래들리 후작성에서 적당한 것을 사다 넣은 것이었는데, 역시 이러나저러나 다른 이들에게는 어색한 게 틀림없었다.

“어··· 그···.”

역시나 담당 직원은 당황해 말을 잇지 못했다.

“괜찮습니다. 말하십시오.”

론이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

“죄, 죄송하지만, 마력구 검증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마력구 검증.

까놓고 얘기해 범죄자로 단정 지었을 때나 치르는 절차다.

귀족이라면 정말 수치스러운 일.

피식.

‘대가가 여러모로 씁쓸하네.’

선의를 가지고 브래들리 영지에서 나선 일이었으나. 그 희생의 결과는 차갑기만 하다.

‘이래서 마(魔)에 쉽게 물드는 건가.’

[론.]

론의 씁쓸한 감정을 읽은 홍염이 위로하듯 그의 이름을 불렀다.

‘괜찮아.’

“예, 가져오십시오. 마력구.”

론이 이내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후 절차는 그리 길지 않았다.

본인 인증 마력구.

이는 개개인이 가진 고유의 마나를 확인하는 것이었는데, 론의 경우 트리마이어 계좌부터 해서 아들렌 아카데미 내 특정 물품 사용 내역에도 그 정보가 있기에 금방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조심히 가십시오!!”

담당 직원이었기에 그는 허리를 푹 숙여가며 크게 외쳤다.

귀족에게 그 민망한 인증 마력구를 들이밀었으니 나름대로 사죄의 의미리라.

“다행히 아직 시작은 안 했군.”

예상했던 대로 론 앞으로 메시지를 남긴 이는 그의 아버지 에레드와 아카데미 총장 럼블이었다.

한창 스펜서 포션으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가를 달리고 있는 스펜서 가문의 수장과 아들렌 왕국의 주요 실권자인 아카데미 총장의 전언.

확실히 출입 관리 직원이 까탈스럽게 확인할 대상이긴 했다.

괜한 여유로 잘못 전해지기라도 하는 날엔 그 후폭풍이 작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어쨌든 덕분에 아들렌에 돌아오자마자 궁금했던 골든스태프 소식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론, 대체 무슨 여행을 하고 있는 게냐? 지난번 떠날 때 분명히 그저 단순히 여행이라길래 길어야 한 달일 줄 알았건만. 대체 어디서 뭘 하는 게야? 골든스태프 대회는 그래도 나가는 게 낫지 않느냐?’

‘에레드 남작으로부터 들었다. 네가 여행을 떠났다고. 뭐 네 나름대로 사정이 있으리라 믿는다. 다만, 대회 일정이 열매 달 말엽이니 참고하거라. 장소는 대륙 중부 이고르 왕국이다.’

확실히 골든스태프 대회가 갖는 위상이 상당하긴 했다.

웬만해선 다그치지 않고, 알아서 하라는 식인 에레드부터 그 초연하다는 럼블까지 메시지에서 초조함에 여실히 드러났다.

“열매 달 말엽, 대륙 중부 이고르 왕국이라···.”

회귀 전이랑 같았다.

다만, 굳이 차이를 꼽자면,

회귀 전에는 그저 대회 참관을 위해 이고르 왕국에 갔다면, 이번에는 참가자로서 가게 될 거라는 점.

전세계의 내로라하는 마법 신예들이 모여 스스로의 실력을 뽐내는 자리다.

사실 론의 솔직한 심정은 우승보다는 수많은 개성을 지닌 신예들을 보는 데 마음이 쏠려 있었다.

어린 나이에 스스로의 개성을 개화한 자들.

“재밌겠네.”

새애애애액.

허나 그런 론의 감회는 관심도 없는지 시엘이 관리소를 나오자마자 머리를 빼꼼히 내밀었다.

츄릅 츄릅.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있던 북부 땅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 시엘이 연신 혀를 날름거렸다.

새액 새애액!

온도와 습도, 마나 농도 전부 다른 곳이라며 신기해한다.

“응, 여기가 좀 더 따뜻한 남부 땅이야.”

론이 천천히 시엘을 쓰다듬었다.

후우우우웅.

그리고 때마침 불어오는 초가을의 선선한 바람.

아들렌 수도의 워프게이트는 고지에 있기에 항상 나오면 광활한 전경을 보며 그 바람을 맞곤 했는데, 아쉽게도 론은 이제 볼 수가 없었다.

“뭐 이것도 이것만의 매력이 있는 거니까.”

스멀스멀 올라오려던 칙칙한 감정을 밀어내고 론이 나아갔다.

**

아들렌의 수도는 활기가 넘쳤다.

추수기에 접어들면서 인파는 더욱 많아졌고, 그 열기가 홍염의 공감각을 통해서 여실히 느껴졌다.

[와아,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도 마나가 넘쳐! 신기해!]

새애애액!!

의외로 둘의 반응은 서로 달랐다.

홍염은 흥미로워했고,

시엘은 막상 마주한 수많은 인파가 부담스러웠는지 품 안에 쏙 들어가 버렸다.

피식.

그 모습이 괜히 귀여워 론이 품 안의 시엘을 쓰다듬으며 거리를 걸었다.

마나의 흐름과 홍염의 열감지 공감각이 실시간으로 느껴지니 눈을 뜨고 있을 때와 큰 차이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선연했다.

그리고 심지어 론이 그 감각들에 익숙해진 것인지, 아니면 이 감각들이 진화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범위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브래들리 영지에 있을 때는 멀어야 수십 미터 정도이던 감각이 이제는 백 미터도 거뜬히 넘어버렸다.

그렇게 수많은 인파를 거치고 거쳐, 론은 이내 목적한 곳에 다다랐다.

수도 외곽에 위치한 라울 거리.

마법 용품들을 파는 곳이자 아들렌 아카데미로 가는 길목이다.

‘뭐 이러나저러나 늦은 건 마찬가지니까.’

보통은 마차를 타고 가겠지만, 옛 향수에 젖은 론은 그저 걸었다.

사티넬, 크루딘, 라리사.

아카데미에 가까워질수록 그들을 코앞에서 마주한 것처럼 선연히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런데 순간,

특이한 마나가 론의 감각을 간질였다.

사람의 마나가 각기 다른 개성을 지녔다지만 본디 종(種)이 가진 특질처럼 공통된 느낌이란 게 있다.

때문에 론도 그 공통점을 통해 인간임을 인지하곤 했는데, 지금 저 멀리서 느껴지는 마나는 보통의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생기가 좀 더 가득했다.

‘뭐지, 환상 마법인가.’

그와 같은 마나는 론이 이제껏 살아오며 단 한 번 마주쳤었다.

이번 생에서 바로 사티넬에게.

진한 향수가 론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허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그의 모든 감각이 상대를 사티넬로 확정 짓고 있었다.

‘만나면 뭐라 말해야 할까?’

‘아카데미는 잘 지내고 있는 건가?’

‘크루딘과 라리사는 어떻게 됐을까? 아, 라리사는 졸업했구나.’

‘이 시간에 나오는 거면 오후 수업이 벌써 다 끝난 건가?’

시시각각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들.

허나 그녀와의 거리가 이십 미터 안으로 줄어들자 론의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만이 남았다.

‘내가, 내가··· 아는 체해도 될까.’

마셔스 수림에서 코르테즈의 환상에 당하고 난 뒤 그렇게 매몰차게 헤어졌던 그다.

다시 만나 인사할 면목이 서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 거리가 십 미터 안으로 좁혀졌을 때, 론은 자신이 두건을 쓰고 있음에 감사했다.

‘미안.’

그렇게 론은 조용히 지나쳤다.

탁.

그런데 그의 손이 잡혔다.

그녀에게.

“맞죠, 론님?”

사티넬의 목소리가 론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진 론.

그런 그의 앞으로 사티넬이 다가왔다.

얼마나 지났을까.

온갖 복합적인 감정에 휩싸여 멍하니 있는 론의 두건을 사티넬이 들어 올렸다.

“아···.”

익숙한 붉은 머리가 그녀를 반기는 것도 잠시, 불길한 검은색 안대에 그녀의 손이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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