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109
짙은 탈력감.
그것은 곧 무게감으로 이어진다.
“하아, 하아···.”
거친 호흡을 내뱉는 론.
그는 내딛는 발걸음이 상당히 무거워졌음을 느꼈다.
체내 마나의 소진, 체외서클 운용, 화인(火人)이라는 고위 마법, 정령과의 일체화 등으로 정신적 피로감은 말이 아닌 상태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했건만, 결국 마인들의 계획을 막지 못했다는 점이다.
제물소환진은 기어이 발동됐고,
미지의 마수를 토해냈다.
물론 소환된 마수가 즉시 영주성의 높은 곳으로 쏘아졌기에 제대로 볼 새도 없었다. 허나 그럼에도 부인할 수 없는 건 상당한 마기를 품은 존재라는 사실.
그리고,
콰아아앙!
콰앙.
무언가 부수고 터지는 소리가 저 멀리 영주성 높은 곳에서 울려 퍼졌다.
‘무슨 또 미친 짓을 하려고?!’
수백 명의 인간이 제물로 바쳐지는 걸 코앞에서 목도한 론이다.
상식을 뒤엎는 게 마법이라면,
이들의 행태는 아예 상식 밖의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 소름 돋는 마의 실체가 저 멀리서 또다시 무언가를 벌이고 있었다.
‘멈춰야 돼···.’
조금 전의 그 참상이 론의 몸을 이끌었다.
[론, 괜찮겠어?!]
누가 봐도 기력을 다한 그의 모습에 홍염이 걱정했다.
하지만, 론의 퀭한 눈동자는 폭음이 울리는 영주성에 똑바로 고정되어 있었다.
“무조건, 무조건 막아야 돼.”
한 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수백의 인간을 취한 마수. 그렇다면 그다음에는 무엇이란 말인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론은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나아가야 했다.
그런데,
“어이, 네놈이 그 조율자 흉내를 내는 놈이냐?”
일단의 무리가 론을 막아섰다.
“저새끼 저거 힘이 빠진 거 같은데? 그 찌릿찌릿하던 기운도 지금은 아주 밋밋하잖아.”
“씨발, 저 애송이 때문에 우리 전부를 소집한 거라고?”
“생긴 건 저래도 저놈이 캬밀을 비롯한 외성 수비대 놈들을 다 없앤 놈이다. 방심하지 마라.”
“이 씹새가 무슨 부하 취급하네? 개소리 말고 저 애새끼나 잡아.”
“하아···. 저런 앳된 소년이라니. 네 품에 오거라, 아이야.”
상당한 마기를 품은 마인들.
그 한명 한명이 모두 사도급의 상당한 전력이었다.
“후우···.”
론이 호흡을 골랐다.
탐식의 마수 하나를 제거하기도 벅찬 상황에 마인들까지 상대해야 했다.
‘언제까지 타오를 수 있을까.’
동부의 성좌를 비롯한 놈들의 본거지를 한 번에 지워버리려던 계획이 얼마나 무모했던 것인지 론은 뼈저리게 느꼈다.
자그마치 수십년을 음지에서 준비한 자들이었다. 이를 무시한 그의 잘못이었지만, 돌이킬 순 없었다.
놈들을 불사르거나,
아니면 자신이 불타 사라지거나.
생각이 정리되고 해야 할 것이 명료해지자 론의 기세 또한 변하기 시작했다.
주위의 공기, 그리고 마나들이 그에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음? 갑자기 웬 바람이?”
“하···. 됐고, 빨리 처리하자. 위에도 뭔 난리가 났다고. 난 괜히 잔소리 듣고 싶지 않아.”
몇몇 마인들 또한 심경의 변화가 있는지 서둘러 움직이길 원했는데, 론의 불길이 조금 더 빨랐다.
화르르륵.
짙은 탈력감에 마나서클을 건드리는 것조차 버거운 상태였지만, 론은 기어이 화인(火人) 마법을 시전했다.
“이, 이새끼 또 성화다! 물러서!!”
허나 론에게는 더 이상 뒤가 없었다. 실시간으로 폐가 쪼그라들고, 뇌가 녹는 듯한 고통이 동반했지만 기어이 돌진했다.
콰아아아앙!!
스스로가 원소마법이 되어서.
마법진에 새겨넣던 회전, 압축, 속도 등등의 마법식들이 화인이 된 론에게 그대로 새겨졌다.
“미친! 시발, 그러니까 잔말 말고 내가 빨리 잡자고 했잖아!! 끄아아아악!! 내 발! 내 바아알!! 커억!!”
“으아아아악!! 불이! 불이 안 꺼진다고!!”
“시, 시발! 난 영주님 보좌하러 간다!”
마인에게 있어서는 절대 상성의 힘.
그 자연의 극치로부터 비롯된 힘이 일대를 점령해버렸고, 내성 광장에는 다시 한번 성화의 불길이 치솟았다.
오합지졸이 된 마인들은 당연히 와해해버렸다.
다만,
[론! 뭔가 이상해!]
다시 한번 성화를 피우기 위해 론은 스스로의 생명을 내다 바쳤다. 바람 앞 등불처럼 나약하게 흔들리는 그의 생명력에 홍염이 당황했다.
론이 화인 마법을 시전하면 자연스럽게 일체화하는 그였기에 누구보다 론의 상태를 잘 알 수 있었다.
[머, 멈춰! 론!]
‘안 돼!’
콰아아아아앙!!
허나 론은 홍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내 쏘아졌다.
애초에 목적했던 한 가지.
수백의 인간을 집어삼키고 이 땅에 나타난 마수, 놈을 잡기 위해 영주성 높은 곳으로 성화의 불길이 그어졌다.
**
브래들리 영주성의 영주 집무실.
구구구구구궁.
지진이 난 듯한 굉음이 지나간 뒤 실내는 고요했다.
에드원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던 마인들이 모조리 쓰러졌다. 뇌는 박살 나고, 척추는 끊어져 버렸다. 죽은 것이다.
“키에에에에···.”
희열에 찬 탐식의 마수가 괴성을 조그맣게 흘렸다. 마음 같아서는 광광 날뛰고 싶었지만, 이미 뱃속에는 이제껏 먹어본 적 없는 상급 마인이 들어있었다.
바로 에드원 브래들리.
시시각각 소화되며 마기로 치환되는 양이 실로 어마어마했다.
이지(理智)를 상실한 마수임에도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늘 상위 개체들의 눈치를 봐가며 겨우 연명하는 마계와는 달리 이곳은 정말 풍족한 곳이라는 걸.
뱃속의 에드원을 소화하고 나면, 눈앞에 쓰러진 중급 수준의 마인을 그대로 삼키면 되는 것이었다.
“키르르르···.”
생애 처음 느껴보는 풍요로움.
그것이 오히려 마수의 소화능력을 더욱 촉진시켰다. 미친 듯이 뱃속의 에드원을 분해 섭취해 나갔다.
그런데 순간 이질적인 기운이 마수의 신경을 간질였다. 수많은 이질적인 것들이 존재하는 이 땅에서 유독 꺼림칙한 기운, 마수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것이 마기와는 전혀 다른 상극의 힘이라는 걸.
온 신경이 소화하는 것도 잊은 채 이질적인 기운에 감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는데, 이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콰아아아아앙!
그 실체가 당도해버렸다.
모든 마(魔)를 불사르는 멸마의 불꽃.
론이었다.
**
도착하고 나서의 첫 감상.
그것은 어지러움이었다.
‘뭐, 뭐야···?’
화인 마법을 통해 신체가 불로 치환된 론은 물리적 공격으로부터 제법 여유로운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가 서 있는 곳은 그런 물리적인 힘 너머의 무언가가 짓누르고 있었다.
구구구구구궁.
실체를 가늠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방대한 그 무언가를 도착 후 한참 뒤에야 론은 깨달았다. 엄청난 양의 마기가 이곳을 장악한 것이었음을.
“키에에에에···.”
이성과 이지(理智)라고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마수. 허나 그럼에도 그들이 마계에서 멸종하지 않고, 마인 종(種)들과 자웅을 겨룰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부재한 이성과 이지(理智)를 커버할 정도의 본능과 신체적 능력이 있기 때문.
그리고 지금 탐식의 마수는 론이 나타나자마자 감각적으로 인지해냈다. 화인 상태의 론이 주변환경과 어떤 상호작용을 이루고 있는지 말이다.
이는 바로 주변 공기와의 화학적 반응.
때문에 탐식의 마수는 보유한 그 짙은 마기로 일대를 점거하며 공기를 차단했다.
에드원의 능력을 흡수하자마자 바로 써먹는 것이었다.
[론! 정신 차려!]
홍염이 멍하니 있는 론에게 외쳤다.
‘아!’
마셔스 수림에서 마주한 코르테즈 이후로 이렇게 압도당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일단 이 무거운 마기부터 어떻게 좀!’
걷어낼 수 없다면,
그 자리에서 벗어나는 게 맞다.
콰앙.
남은 힘을 쥐어짜 영주성 건물 밖으로 튀어나왔다.
“하아, 하아, 하아···.”
중압감이 사라지자 안심하기는커녕 만신창이가 된 몸이 곳곳에서 비명을 질러댔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하지···?’
허나 올곧은 멸마의 의지와는 달리 론의 몸뚱이는 하강할 뿐이었다.
본래라면 바람 마법을 통해 허공에 떠서 성내 상황을 살피려 했는데,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화인 마법은 이미 벌써 풀렸고, 오히려 살아있는 게 기적이었다.
한계에 다다른 육신이 끊임없이 정신을 허물어뜨리려 했다.
“아···.”
[론! 론! 정신 차려!!]
홍염의 소리에도 그저 막막할 뿐이다.
이제껏 어떻게든 위기를 모면한 론이었지만, 지금만큼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지막지한 마수 앞에서 7서클의 깨달음도, 고대 정령과의 일체화도, 물의 정령왕이 건네준 물의 이치도, 그 무엇도 답이 되지는 못했다.
하나둘 떠오르는 객관적인 현실.
그 하나하나가 의지를 짓누른다.
삐이이이이이.
그리고 결국 론의 육신이 제 몸의 회복을 위해서 끝내 정신을 끊어버렸다.
**
간만에 느껴보는 달콤함이었다.
마치 날씨 좋은 어느 날, 한가로이 즐기는 낮잠만큼이나 포근한 숙면.
‘숙면?’
돌멩이 하나가 고요한 호수에 파문을 일으키듯 달콤함 속에 울려 퍼진 한 의문이 의식을 흔들었다.
‘숙면··· 숙면···.’
엄청 중요한 걸 놓친 것 같은 느낌.
포근함도 잊은 채 한참을 머릿속을 뒤적이던 론은 기어이 떠올려냈다.
“마수!! 으으윽···!”
정신이 돌아오기 무섭게 지독한 두통이 머리를 옥죄었다.
[론! 정신이 들어?!]
새액! 새애애애액!!!
그리고 옆에서 걱정하는 두 녀석.
홍염은 그렇다 쳐도 시엘은 그가 내성 광장에 놔둔 채 영주성으로 향했었는데, 어느새 그의 옆에 있었다.
그 위화감에 빠르게 주위를 둘러본 론은 그제야 온전히 기억이 되돌아왔다.
“아···.”
차마 어쩌지 못했던 그 마수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그 마수, 지금 외성으로 갔어!]
아니나 다를까,
홍염이 마수에 대해 브리핑했다.
츄릅.
츄릅.
시엘이 가느다란 혀로 론의 얼굴을 핥으며 걱정했지만, 결국 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난 생의 아쉬움, 후회, 미련이 지금의 론을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서 포기한 채 돌아서는 것은 회귀 후 그가 걸어온 길이 절대 아니었다.
“시엘, 미안.”
여전히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바라보는 시엘이었지만 가야만 했다.
“잘 성장해라.”
론이 몸을 돌렸다.
정신을 잃기 전보다 더욱 강력한 마기를 내뿜는 마수를 향해서.
어느새 날은 새벽 어스름.
캄캄한 어둠이 조금씩 물러나고 아침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마치 그 찬란한 태양의 신호탄이라도 되는 듯 론의 텔레포트가 반짝였다.
그리고 그 텔레포트의 빛이 멈춘 곳.
그 상공에서 론은 똑똑히 지켜볼 수 있었다. 미친 그 마수가 벌이는 참상을.
“크헤에에에에에엑!”
에드원을 완전히 흡수하고, 대마수로 진화한 놈은 그 외형부터 달라져 있었는데, 문제는 그런 외적인 것이 아니었다.
포식의 방식이 바뀌어버렸다.
놈이 허공에서 내뿜은 수많은 마기가 외성에 거주하는 수많은 인간들 몸에 꽂혔고, 그대로 모든 피를 빨아들였다.
하늘 위의 한 점으로 모이는 새빨간 선들.
거악 그 자체였다.
“아···.”
자연의 순리, 조건 대 대가, 자정작용, 섭리의 법칙.
이제껏 론이 경험하고 깨달아 온 그 모든 것들을 어그러뜨리는 한 존재.
두려움이 드는 거야 당연했다.
허나 이미 죽다 살아난 론은 초연했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것.”
이 땅의 존재로서 할 일을 다 하는 것.
각각의 부족함이 만들어 낸 개성은 상호작용하며 자연의 순리를 이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의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스스로 할 수 없다면,
더 큰 자연을 불러오면 될 뿐이다.
콰과과과과광.
론은 이제껏 간직해 오던 모든 깨달음과 힘을 다 바쳐 단 하나의 존재를 떠올렸다.
물의 정령왕 오비니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