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108
소망을 코앞에 두었을 때의 설렘.
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초조와 긴장이다.
창가에 서 있던 에드원은 자신의 입가가 떨리는 지도 모른 채 밖을 응시했다.
‘이기겠지···. 이겨야만 해.’
‘그래도 거대 제물소환진인데···.’
‘조율자에 버금간다 해도 거대 마수가 질 리가 없다.’
‘이왕이면 박 터지게 싸우다 겨우 이기는 게 제일 좋고.’
수천 년 역사의 아틀란샤 대륙.
오랜 세월이 담긴 곳이지만 의외로 마계에 관한 이야기는 많지 않다.
지상계와는 구분된 곳이다 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이나 간혹 언급되는 민담 혹은 전설에서는 항상 들려오곤 한다.
마의 출현은 늘 이 땅에 재앙이었다고.
마기는 땅을 오염시키고, 마인과 마수는 모든 생명체를 살육해버렸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시발점이 되었던 제물소환진.
그중에서도 거대 제물소환진은 그 기록이 거의 없다. 당시의 피해가 어마어마했기에 선대들은 아예 기록에서마저 지워버린 것이다.
“어떤 놈이 튀어나올지···. 그나저나 놈을 흡수하면 나도 마족이 되는 건가?”
마족.
마인과 마수보다 위에 선 존재들. 그들은 하위 개체들의 한계를 아득히 넘어선다고 전해진다.
오랜 과거, 이 땅에 신마 전쟁이 벌어진 연유도 바로 그들 때문이었다. 계(界)의 율법을 어그러트릴 정도의 존재. 그것이 바로 마족의 힘이었다.
“하아···. 어서! 어서 채워 넣으란 말이야!!”
에드원이 눈을 깜빡이는 것도 잊은 채 충혈된 눈동자로 내성 광장에 펼쳐진 제물소환진에 시선을 고정했다.
대계의 조약을 깨버린 만큼 반드시 상위의 존재, 마족으로 거듭나야만 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초조함을 달래듯 에드원 휘하 마인들이 미친 듯이 사람들을 납치해 날랐다.
곳곳에서 비명과 저항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기를 수십여 분.
중간에 론의 저지가 있었지만, 피의 소환진은 기어이 수백의 인간을 흡수했고, 그 결과물을 토해냈다.
두근! 두근!
마치 인간처럼 심장박동 소리를 내는 조그만한 덩어리.
당연히 거대한 마수를 기대한 에드원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예상과는 전혀 다른 전개였던 것이다.
“뭐야!! 뭐가 어떻게 돼가는 거야?!!”
쾅!!
수백의 내성 귀족들을 갈아 넣었는데, 그 결과가 고작 꼬마 아이 정도만한 크기에 지나지 않았다.
“이새끼들아, 가만히 있지 말고 쳐 나가서 알아가지고 와!!!”
“옛, 영주님!!”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마인 기사들이 전부 뛰쳐나갔다.
그런데 순간,
그 새빨간 덩어리가 갈라졌다.
‘음?!’
“키에에에에에에엑!”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굉음에 주위에 있던 이들이 주저앉아 버렸다.
“윽! 이, 이게···.”
에드원의 집무실이 내성 중앙 광장에서 좀 떨어져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광장에서 쓰러진 이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음파의 공명을 에드원이 중간에 끊어버렸다.
“소리 쪽 능력인가?”
그런데 생각할 틈도 없이 창가가 터져나갔다.
콰아아앙!
**
“커헉!!”
영주 집무실에서 보기 좋게 나뒹구는 이.
브래들리 에드원이었다.
‘허···.’
내성 중앙 광장에서 영주 집무실까지의 거리는 약 오백여 미터. 그 짧지 않은 거리를 단번에 주파해버렸다.
덩치는 작을지 모르나, 가진바 그 힘은 확실히 무시할 수 없는 마수인 것이다.
에드원에 놀란 얼굴로 주위를 빠르게 두리번거렸다.
‘아···.’
그리고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호위 기사들을 조금 전 내보냈다는 것을.
물론 곧 있으면 돌아올 테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니었다.
“샤아아아아아···.”
괴성을 흘리는 마수.
코앞에 있는 만큼 그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인간과 같은 팔다리가 있으나 그 몸통이 이상했다. 머리는 없고, 몸통은 주둥이 그 자체였다. 쉽게 말해 거대한 입 주위로 팔다리가 붙어 있는 격이다.
“확실히 이지(理智)가 없다고 하는 마수답구나. 짐승보다 못한 게 감히 주인을 물려고 하다니.”
마계가 아무리 본능과 쾌락에 치중된 곳이라지만, 이성과 이지(理智)는 그 본능과 쾌락 등을 더욱 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해준다.
때문에 에드원은 눈앞의 마수를 짐승보다 못한 생물체처럼 깔보며 마기를 흩뿌려 나갔다.
‘이렇게 된 이상, 바로 흡수다.’
에드원이 손을 뻗자 그의 마기가 마수를 옭아맸다. 짙은 농도의 마기는 강철보다도 강력했고, 마족에 준하는 마기 지배력이 주위를 완전히 통제해버렸다.
“키, 키르륵···. 키이익···.”
괴성으로 주변인들을 압도하던 괴수도 저항할 수 없었는지 떨리는 음성을 흘리며, 에드원 앞으로 끌려왔다.
“괴수는 괴수라 이건가? 멍청하기 짝이 없군.”
동부의 성좌라 불린 에드원의 능력은 마기 통제. 단순히 그가 지닌 마기만이 아니라 그의 마기가 닿는 모든 외부의 마기들까지 통제했다.
즉, 아무리 강대한 마기를 품은 괴수라 할지라도 에드원의 마기에 닿는 순간 족쇄를 찬 거나 다름없는 것이다.
통제 수위를 높일 필요도 없었다.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몸에 괴수는 적잖이 당황했는데, 그 감정을 에드원은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그만 오너라.”
적과 대신 싸울 말로써 소환한 것이었는데, 그 효용이 사라졌다. 즉, 오래 살려둘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에드원이 손가락을 까딱이자 괴수가 코앞까지 당도했다.
“키에에에에엑···.”
사시나무처럼 떨어대는 괴수.
“마인처럼 지성을 지닌 존재도 아니고, 그렇다고 괴수 특유의 파괴력을 지닌 것도 아니고···. 네놈은 그저 내 먹이나 되거라.”
에드원이 양손을 뻗어 괴수의 몸통을 쥐었다. 마기 통제로 몸은 고정시킨 채 마기만을 빼내려는 것이다.
“하아···!”
그리고 이윽고 그의 생각대로 괴수의 마기가 넘어오기 시작했다.
과연 마족에 준하는 마수라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이 놈이 지닌 마기의 양은 심히 방대했다. 이제껏 경험한 적 없는 그 크기에 에드원은 심취해버렸다.
허나 그는 알지 못했다.
그것이 바로 마수가 원하는 순간이었다는 걸.
찌이이이이익.
몸통이 가로로 조금씩 벌어지는가 싶어니 단숨에 그 주둥이가 에드원을 집어 삼켜버렸다.
**
“뭐, 뭐야···.”
“영주···님?”
뒤늦게 영주 집무실로 돌아온 후작가 기사들. 한명 한명이 사도급 수준의 마인들이었다.
에드원이 수많은 마인들 중 고르고 골라 선별한 재원들이었는데, 그런 그들임에도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집무실에서 풍기는 마기는 분명 에드원의 그것이 맞지만, 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존재하는 거라곤 눈앞에서 꿀렁거리고 있는 커다란 마수 한 마리.
처음 소환됐을 때는 어린 아이만 한 덩치였는데, 지금은 집무실 천장에 닿을 정도로 그 크기가 비대해졌다.
물론 이유는 당연히 에드원을 집어삼켰기 때문이었는데, 이를 알 리 없는 기사들은 그저 당황한 눈빛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둥! 두웅!
단단한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
그것이 마수로부터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에 맞춰 점점 표정이 굳어가는 기사들.
“네, 네 놈 설마···.”
가장 앞쪽에 있던 기사 뵈링이 말을 더듬었다. 마인으로 거듭난 후 줄곧 에드원을 곁에서 호위해 오던 기사였다.
때문에 그 누구보다 에드원의 마기에 대해서는 잘 인지하는 그였는데, 그런 그가 몸을 떨었다.
불길한 예감이 현실이었기에.
“미친! 모두 공격해!! 저 새끼 몸통을 어서 갈라!!”
포악과 본능, 살육과 쾌락.
그 혼돈의 존재인 마인에게 딱히 거창한 충의 같은 게 있지는 않다.
그저 힘 아래 굴복하고 따르는 것뿐인데, 적어도 지금 그들이 살길은 하나였다.
마수의 배를 갈라 에드원을 빼내고 함께 싸우는 것.
그 외에는 죽음밖에 없었다.
쿠구구구구궁.
그런데, 그런 뵈링의 생각이 이내 짓뭉개져 버렸다.
“윽···.”
온몸을 짓누르는 거대한 기운.
그것은 에드원이 가끔씩 마인들을 제압할 때 쓰곤 하는 그의 고유 능력, 마기 통제였다.
“여, 영주님?”
**
이성과는 거리가 먼 존재 마수.
그런 그들이 마계를 비롯해 지상에서도 강력한 위력을 드러낼 수 있는 이유는 강렬한 본성이다.
논리와 지식, 그리고 경험을 통해 특유의 메커니즘을 쌓고 힘을 키워나가는 지성체들과는 달리 마수는 오로지 본성에 치중된 존재들이다.
그리고 지금 이 브래들리 후작성 영주 집무실을 침입한 마수는 하나의 본성에 치중되어 있었다.
바로 폭식(暴食).
가뜩이나 소환 직전 론으로부터 적잖은 방해를 받아야 했던 녀석이었기에 그의 공복감은 극에 달해있었다. 그런데 이 땅에 소환되자마자 그 근처에 묵직한 마기가 있었으니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마수는 피아식별도 잊은 채 에드원에게 달려들었다.
마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種) 중 하나인 탐식의 종(種). 참고로 마계는 지상계처럼 타고난 외형 및 골격을 두고 종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 본성을 통해 구분 지었는데, 이 탐식의 종(種)들은 그 이름만큼이나 먹고 소화하는 데 있어 특화된 부류다.
그리고 지금 에드원을 집어삼킨 마수는 그중에서 마족에 준하는 상위 개체.
전투 능력은 어떨지 몰라도 일단 집어삼키기만 하면, 그 탐식의 능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었는데, 에드원은 방심했다. 고유 능력으로 마수를 통제한 뒤 마기를 추출하려던 그는 도리어 먹혀버렸다.
둥! 두웅! 둥!
마기를 분출하며 미친 듯이 발버둥 쳤지만, 마수의 입속에서의 모든 행동은 무의미했다.
환술자가 환술 안에서는 신이나 다름없듯 탐식의 마수도 뱃속의 생명체한테만큼은 신이었던 것이다.
육신을 부식시키는 강력한 산성 액체가 에드원을 녹이기 시작했다.
뱃속의 모든 걸 마기로 환원시킨 뒤 그대로 흡수하는 것. 그것이 바로 탐식의 종(種)들이 오래도록 이어 온 특징이자 생존 능력이었다.
“미친! 모두 공격해!! 저새끼 몸통을 어서 갈라!!”
물론 뒤늦게 나타난 에드원의 기사들이 막으려 했지만, 탐식의 마수는 아쉽게도 그저 먹고 삼키는 하위 마수가 아니었다.
쿠구구구궁.
섭취한 존재의 능력을 흉내 낼 수가 있었는데, 당황스럽게도 그것이 바로 에드원의 고유 능력 마기 통제였다.
숙련도 면에서는 부족할지라도 이미 마기의 양에서는 압도하는 탐식의 마수였기에 하등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심지어 그 마기의 양도 에드원을 흡수하면서 점점 더 커지고 있었고 말이다.
“여, 영주님···? 크흑···!”
“윽!!”
한명 한명이 먹음직스러운 마기 덩어리였지만, 탐식의 마수는 먼저 소화해야 할 게 있었다.
때문에 탐식의 마수가 한 것은 생을 끊어버리는 것.
구구구구구구궁.
퍼억!!
수천 톤에 이르는 마기의 압력이 마인들의 뇌와 척추를 박살 내버렸다.
단말마도 지르지 못한 채 쓰러진 마인들. 탐식의 마수는 그저 흡족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그르르르르.”
마계와는 전혀 다른 지상계. 처음에는 그 변화에 절로 위축한 놈이었지만, 이내 마계 못지않은 마기 덩어리들 덕분에 그 탐식을 감추지 못했다.
탐식의 마수가 실시간으로 소화되고 있는 에드원과 쓰러진 마인들에게 온 신경을 쏟는 동안,
한 사내가 영주성으로 향했다.
[론, 괜찮겠어?!]
“괜찮고 말고 따질 게 아니라 무조건 해야 돼.”
몇 시간 새 눈에 띌 정도로 수척해진 론의 얼굴. 그럼에도 그의 의지는 확고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그 크기를 키워나가는 마계 존재가 있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