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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가 마법사의 회귀-107화 (107/115)

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107

그런 말이 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이미 늦은 거라는.

“뭐, 뭔 짓을 한 거야?!”

론의 발아래 펼쳐진 거대한 마법진.

그것에서 붉은 액체가 솟구쳤다.

슈아아아악.

‘무엇인가’라는 존재 식별을 채 하기도 전에 진한 혈향이 코끝을 찔러왔다.

이곳에 도착한 지 고작 몇 초.

하지만 론은 각각의 감각들이 전하는 정보들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고 있었다.

‘코르테즈의 근거지에서 발견했던 흑마법서에 실려 있던 모양···.’

‘피를 뒤집어쓴 채 쓰러진 사람들···.’

‘채찍을 휘두르며 무언가를 강요하는 마인.’

‘마법을 발동시키는 마법진처럼 기이한 현상을 일으키는 거대한 피의 마법진···.’

그런데 론의 생각보다 피의 마법진,

즉, 제물소환진의 발동이 더 빨랐다.

“으! 으아아아악!!”

“악마다!! 사람 살려!!”

“사람이 죽고 있!! 크윽!! 살려···.”

“사람 살려!! 살려 줘!!”

수십 갈래로 뻗어나간 피의 줄기가 건물들에 파고들었고, 그곳에서 비명이 속출했다. 창가에 피가 튀고,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게 훤히 보였다.

“허! 미친···.”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한 마법.

그런데 론을 더욱 당황스럽게 만든 건 고작 이 피의 줄기가 고작 몇 초 만에 크기를 점점 키워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원리는 누가 봐도 뻔했다.

살육.

주변 건물의 창문을 부수고 들어간 핏줄기는 쉴 새 없이 사람을 죽이고 흡수했다.

회귀 전 어둠의 세력이 벌이는 참상을 적잖이 봤던 론이다. 그들의 만행을 잘 알고 있던 그였음에도 지금의 상황에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론! 점점 크기를 키워나가고 있어! 가만히 있을 거야?!]

보다 못한 홍염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의 주변으로 마나들이 모여들었다.

화르르륵!

그는 순식간에 몸집을 키워냈고, 이내 그 크기가 피의 마법진 절반에 달하는 수준이 되자 홍염은 곧장 땅으로 하강했다.

새액!

품속에 있던 시엘마저 없애버리라며 홍염을 응원했지만, 론의 생각은 달랐다.

“잠깐!!”

거대한 피의 마법진에서 느껴지는 마기는 지금 홍염의 불길을 압도하고 있었다. 치기에 모든 걸 맡길만한 상대도 상황도 아니었다.

콰아아아앙!

허나 홍염은 이미 내리꽂혔고, 결과는 드러났다.

슈아아아악

콰아앙.

서걱.

푸욱.

“으아아악!”

“살려줘!!”

“살려주세요!!”

피의 마법진은 사라지지 않았고, 어떻게 된 일인지 그것에서 튀어나온 피의 줄기들은 전보다 더 미친 듯이 날뛰며 사람들을 죽여나갔다.

[왜··· 안 없어져?]

어리둥절해 하는 홍염.

‘같이 하자.’

어느새 가까운 지붕 위로 착지한 론이 홍염에게 말했다.

상식을 벗어난 흑마법이다.

혼신을 다해야 함을 인지한 론은 체내의 모든 마나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후우우우웅.

체외서클, 화인, 멸마의 불꽃, 땅의 성수 등 그가 가진 모든 걸 끄집어내야 했다.

그런데,

“어이어이, 손님이 주인의 마중도 안 받고 그러면 쓰나.”

한 사내의 말을 끝으로 론의 주변에 적잖은 인형들이 둘러싸기 시작했다.

적나라하게 뿜어대는 기운.

확인할 필요도 없이 마인의 무리였다.

허나, 론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을 제물 삼아 그 몸집을 키워나가는 시뻘건 마물이 난리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두두둥.

잠시 숨 고르는 홍염을 대신해 론이 그의 주변으로 십수 개의 마법진을 만들어냈다.

“뭐, 뭐야?! 다중 마법을 이렇게 빨···.”

마인들이 뭐라 반응할 새도 없이 마법진에 빛이 들어왔고, 이는 곧 마법 출력 준비 완료라는 의미였다.

슈아아아악.

슈악.

슈아아악.

속도와 양을 위해 복합마법진이 아닌 평면마법진을 만들어낸 론이었는데, 그 안에서 나온 마법은 단순한 기초 원소마법이 아니었다.

그 하나하나가 3서클 워터 스피어에 맞먹는 개체가 되어 출력되었다.

퍼억!

치이이이익.

“끄아아아악!! 뭐, 뭐야 이게?!!”

마인 무리의 우두머리인 양 행세하던 사내가 물의 창을 대충 쳐내려 했지만, 단순한 물이 아니었다.

땅의 성수.

닿는 즉시 이 땅의 것이 아닌 것들을 녹여버렸는데, 론의 주위로 펼쳐진 마법진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슈아아아악!

“으아아악!!”

수십 개의 물의 창이 지나갔고, 론을 포위하던 마인들도 결국 다 사라져버렸다.

새액!!

이윽고 시엘이 품에서 뛰쳐나와 근처에 있는 마인들을 가리켰지만, 론에게는 그럴 틈이 없었다. 한껏 풀어낸 마나. 그 한 번에 모든 걸 걸어야 했다.

이제껏 상대하던 마인들의 수준과는 궤를 달리하는 규모. 그 초유의 사태에 론 또한 생각이 단순해졌다.

‘홍염, 최대로 가려는데 괜찮겠어?’

[으, 응···. 해보자!]

어렵대 대답하는 홍염.

조금 전 스스로 힘을 모아 홀로 피의 마법진에 부딪혔으나, 그 미동도 않는 모습에 적잖이 당황한 것이다.

오랜 세월 자연의 섭리로서 지내오던 그에게 있어서 이토록 그 순리에서 벗어난 무언가는 아마 처음이리라.

하지만 불편의 감정도 잠시,

홍염은 이내 가진바 모든 힘을 끌어모았다. 주위로 몰려드는 거대한 마나와 불의 정(精)들.

론은 자신이 풀어낸 마나들과 한데 어우러지게 했다.

단 하나의 구심점.

체외서클이 완성되었고, 그 무한의 마나 속으로 론이 뛰어들었다.

‘화인(火人).’

새애애액 새액!!

옆에 있던 시엘이 상당한 마나의 파동에 놀라 소리치며 물러섰다.

화르르르륵.

건물 지붕에서 시작된 거대한 불길.

론 또한 그 불 자체였는데 그대로 지면을 향해 하강했다. 홍염이 조금 전 그랬듯이. 다만 그 크기는 론이 가세한 만큼 전보다 서너 배는 훨씬 더 컸다.

콰아아아아앙!

돌덩이가 처박히듯 강렬한 충격이 울려 퍼지고,

치이이익.

사라지지 않는 멸마의 불길이 피의 마법진 위에 옮겨붙었다.

확실히 홍염이 부딪혔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결과였다. 규모가 컸던 만큼 불길은 사그라지지 않았고, 주위로 수십 갈래의 핏줄기들이 집어삼키려 했으나 도리어 소각되어갈 뿐이었다.

‘됐다!’

충분했다.

이 기세로 보건대 다행히 밀릴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순간,

주위에 있던 한 마인의 외침이 멸마의 불길을 흔들리게 했다.

“이 미친 새끼들아!! 뭘 꾸물꾸물 가만히 쳐 보고 있어?!! 제물소환진이 파괴되면 다음은 네놈들이야!! 어서 제물을 가져 와!!”

누가 봐도 우두머리로 보이는 마인의 외침에 근처에 있던 마인들이 단번에 흩어졌다.

제물소환진.

론이 놈들의 입을 통해 듣는 건 처음이었으나, 그 원리에 대해서는 대략 눈치채고 있었다.

살육과 흡수.

지금 소환진에서 나온 핏줄기가 불길을 감당하느라 멈춰있었는데, 저 마인들이 대신해서 그 제물인 인간을 수급하겠다는 말이었다.

‘홍염! 서둘러!’

[응!]

마를 멸하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

그 의지가 홍염뿐 아니라 자연에도 동화를 이뤘고, 일전에 외성 외곽에서 마인들을 상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자연의 기운이 넘쳐흘렀다.

론이 딱히 무언가를 치환하고, 이끌어낼 것도 없었다. 이미 마기로 그득그득한 피의 제물소환진 위였기에 론 주위로 모여든 자연의 기운이 절로 성수 혹은 성화로 변해버렸다.

치이이이익!

새액 새애애액!

그리고 저 멀리 있던 시엘도 불을 일으켜 협조하고 있었다. 게다가 신수의 기운이 담긴 그것은 성화와 다를 바가 없었다.

‘좋아, 이대로라면!’

물론 안심하긴 일렀지만, 론은 주위로 피어나는 자연의 기운들에 조금씩 희망을 느꼈다.

하지만, 론은 그때까지 눈앞의 거대 소환진에 정신이 팔려 깨닫지 못했다. 이 넓디넓은 브래들리 영지를 시커먼 마기로 물들인 장본인이 바로 그 내성이 있음을.

**

“전 병력 출동시켜! 놈의 불길이 제물소환진을 지워버리기 전에 무조건 제물을 충족시켜야 한다!! 반드시 마수를 소환해 내란 말이다!!”

브래들리 후작성 최중심부이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영주 집무실.

에드원 브래들리의 커다란 외침이 집무실 밖으로까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예, 영주님!”

대기하고 있던 부하의 부복과 함께 영주성에 대기하고 있던 잔존 병력, 즉 마인들이 전부 내성 주거지를 향해 뛰쳐 나갔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목표는 단순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인간들.

“생각지도 못한 시기지만 어쩔 수 없잖아. 조율자에 버금가는 이가 나타났는데, 그렇다고 내가 죽을 순 없잖아?”

아틀란샤 대륙, 이 땅을 사분할 하여 집어삼키려던 각 지역의 수장들. 즉 성좌라 불리는 그들은 대업을 놓고 시기를 정했었다.

윤리와 도덕, 인륜에서 벗어난 마인들이었음에도 온 땅을 마기로 물들이고 싶은 건 같았기에 가능했던 일. 그리고 무엇보다 마인으로 거듭나며 수명의 족쇄로부터 자유로워진 그들은 긴 대계를 짜냈다.

괜히 섣불리 들켜 전세계의 표적이 되는 일도 피하고, 동조하는 귀족들의 욕심도 채워줄 수 있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름하여 백년대계.

육칠십 남짓 수명의 인간으로서는 감히 짐작할 수조차 없는 대계였고, 지금도 수십년이나 남은 계획이었는데,

동부의 성좌라 불리는 에드원이 제 손으로 그 조약을 깨버렸다.

거대 제물소환진.

제물로 빨아들이는 인간의 수가 수백 혹은 천까지 달할 수 있기에 금기시되었던 그것이 브래들리 후작성 내성에 선명히 그려졌다.

그리고 지금 그것이 발동되어 계속해서 제물을 탐하고 있었고.

에드원이 집무실의 창가에 섰다.

시커먼 밤을 밝히는 불기둥이 코앞, 내성 중앙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적당히 싸우다 뒈지거라. 네 놈의 존재는 내가 흡수해 줄 테니.”

마인이 스스로의 격을 높이는 방법은 단순하다.

마기를 취하는 것.

일전에 론이 완전히 말소시켜버렸던 반타 블랙. 그것을 통해 마기를 공급받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었는데, 그 외의 수단도 있었다.

바로 마기를 품은 존재를 흡수하는 것이다. 마인과 같은 존재 말이다. 실제 마계에서는 흔한 일이었는데, 세력을 구축하려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그런데 마인보다 지능이 떨어지고, 폭력성에 그 특성이 치중된 마수는 꽤나 적절한 흡수 대상이다.

그 때문에 지금 창밖을 바라보는 에드원의 입가는 연신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수백에 달하는 내성 구성원들이 죽어 나가도, 휘하에 거느렸던 마인들의 소실이 있더라도 그 자신의 격이 상승하는 일이었다.

자그마치 자신과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마족급 마수였다.

“그래! 어서 쏟아부으라고!!!”

쾅!

잠자코 보고 있던 에드원이 이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창문을 열어젖혔다.

영주성에서 대기하던 마인들이 전부 빠져나간 지 고작 몇 분. 하지만, 그 한명 한명이 마도사 또는 오러 마스터에 준하는 실력을 가진 만큼 인간들을 데려다 바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아, 안돼!!!”

“으아아아악!!”

입은 잠옷마저 고급스러운 귀족들이 마인들의 손에 이끌려 제물대로 던져졌다.

푸쉭! 서걱! 석!

그렇게 뜨거운 성화의 불길 속에서도 피의 제물소환진은 인간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이윽고 마침내 그것은 인간을 빨아들이기를 멈췄다.

타닷.

수분째 최대출력으로 성화를 끄집어내고 있던 론이 갑작스런 위화감에 제물소환진 위에서 벗어났다.

“커헉, 허억, 허어···.”

[론! 왜?!]

“하아, 하아···. 뭔가 이상해, 뭔가 멈췄어.”

사방팔방 휘젓던 핏줄기의 움직임이 줄어들더니 이내 한 곳에 뭉쳐지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웅.

동그란 형태로 모여든 핏덩이가 직경 1미터가량까지 줄어들자 이내 그것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사람과 같은 심장박동 소리에 절로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는데, 갑자기 그 동그란 핏덩이에 선 하나가 갈라지듯이 쭈욱 그어졌다.

‘뭐가 튀어나오려고···.’

그리고 이윽고 튀어나온 건 역시나 예상 밖의 것이었다.

“키에에에에에에엑!”

처음에는 그저 괴성이구나 싶었던 것이 귀를 간질이다가 이내 강렬한 진동을 동반했다.

“크윽!!”

공명이었다.

퍼억!

생각지도 못한 순간 고막이 터져나갔고, 평행 감각까지 흔들리는 바람에 론은 주저앉으며 귀를 감쌀 수밖에 없었다.

“미친! 뭘 만들어낸 거야?!!!”

콰아아아아앙!!

그런데 뭔가를 식별하기도 전에 눈앞에 있던 핏덩이가 하늘 높이 쏘아졌다.

그리고 그것이 향한 곳은 높게 솟은 영주성의 한 창가. 이곳을 쳐다보는 누군가를 향해 정확히 치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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