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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가 마법사의 회귀-106화 (106/115)

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106

마인과 마기 중독.

둘 다 마기로부터 비롯됐지만, 그 실상은 조금 다르다.

특정 시술을 통해 신체가 완전히 뒤바뀌는 마인과는 달리 마기 중독은 이 땅의 신체로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물질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자극적이고, 파괴적인 기운.

마인으로 거듭나지 않은 자가 마기를 지속적으로 주입 당했을 때의 결과는 하나다.

폐인.

이제껏 살아오며 갖춰진 사고방식이 무너지고, 평소 느끼는 감정의 수백 수천 배에 달하는 자극이 뇌를 진탕 내 버린다.

즉, 한계 이상의 자극으로 인해 뇌기능 체계가 망가지는 것이다.

숨을 쉬고 살아 있으나, 죽음보다 더한 공허가 뇌와 정신을 잡아먹은 상태.

그런데 그런 그들의 마음속에 희망이 피어올랐다.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너무 좋아요.”

“맛있어요.”

줄곧 멍한 눈빛을 내보이던 중독 환자들이 조금씩 말을 하기 시작했다.

“잘했어요!!”

라나였다.

순수함을 가득 담은 그녀의 미소와 몸짓이 주변인들의 마음에도 퍼져나간다.

새액! 새애애액.

[엣헴! 내 불꽃이 대단하긴 하지!]

신수와 정령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론에게도.

요 며칠 본의 아니게 론은 프레드릭의 집에 머물렀다.

본래 계획은 마기 중독 환자들을 잠시 맡기고 곧장 내성으로 향하는 것이었는데, 론은 저도 모르게 그 모습을 지켜봤다.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구후우우웅.

어떤 기운 혹은 진동도 아닌 무형의 파장.

회귀 전의 론이었다면 느끼지조차 못했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허공을 가르는 그것은,

지독한 절망이었다.

“뭐, 뭔 짓을···?!”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밤.

감겨 있던 론의 눈이 떠지고, 그가 허겁지겁 창가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런 그의 고개가 향한 곳은 브래들리 후작성의 중심부. 바로 내성이었다.

[왜 일어났어?]

새애애애액.

평소 같지 않은 모습에 홍염과 시엘의 관심이 론에게 집중됐다. 물론 시엘은 자다 일어나 비몽사몽 했으나, 교감을 이뤘던 자의 심경 변화 정도는 정확히 알아챘다.

“아무래도 당장 가 봐야겠다.”

[응?]

새액?

당연히 홍염과 시엘은 무슨 일이냐는 반응이었지만, 일일이 답할 시간이 없었다.

일전에 폐건물 공터에서 마인들을 마주했을 때부터 론의 감각은 한 층 더 진화해버렸고, 그 감각들이 경고하고 있었다. 점점 더 짙어져만 가는 정말을 말이다.

화아아앗.

어느새 품 안에 파고든 시엘을 안고는 론. 그가 그대로 빛으로 점멸해 사라졌다.

**

“어서 찔러! 찌르라고, 붓쟁이 새끼야!!”

깊은 밤.

내성(內城) 한가운데서 울려 퍼지는 고압적인 목소리.

브래들리 후작가의 총관이었다.

“미, 미안하네!! 흐윽!!!”

총관의 지시는 간단했다.

동족의 피로 제물소환진을 그려야 하는 만큼 인간의 피는 인간이 흘리게 해야 맞았다.

그리고 총관을 비롯한 그 수하들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마인이었고 말이다.

때문에 총관은 보통 사람을 데려와 사람을 찌르고, 그로부터 생긴 상처로부터 피를 받아냈다.

정상적인 사람,

아니, 그냥 사람이라면 감히 저지를 수 없는 패악의 짓거리였지만, 총관은 기어이 하게끔 만들었다.

“어이, 붓쟁이. 네놈 자식들 죽는 꼬라지 보고 싶어? 앙? 빨리빨리 그려, 이 새끼야!!”

납치와 인질.

이 두 가지면 사람들을 꾀어다 쓰기 아주 충분했다.

넓은 광장에 꽂힌 기둥에는 사람이 묶여 있었고, 그 앞에 붓쟁이라 불린 중년인이 붓이 아닌 칼을 든 채 서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내는 총관의 말대로 칼을 들이밀었다.

“이, 이보시오!! 뭐 뭐 하는 겁니까!! 난 죽을 죄를 진 적이 없어! 없다고! 이, 이 봐!!”

“흐, 흐윽! 미, 미안하오!”

푸욱.

“으윽!!”

날카로운 칼날이 발가벗은 한 사내의 허벅지에 파고들었다. 놀란 근육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날카로운 쇠붙이를 꽉 붙잡았지만, 칼을 든 중년인은 피가 필요했다.

슈우우욱.

“으, 으아아악!!”

칼날이 빠져나가며, 그 벌어진 틈으로 피가 새 나오기 시작했다.

제물소환진.

동족의 피로 그려야 하는 만큼 윤리와 도덕, 그리고 법으로부터 어긋난 자가 아니면 불가능했다.

때문에 브래들리 후작은 앞에서와 같은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다.

납치와 인질, 협박, 그리고 살인 교사.

다년간 쌓여온 메뉴얼이었기에 미흡한 부분은 지속적으로 보완되었고, 지금에 와서는 꽤 단순해졌다.

제물소환진을 미리 땅에 파 놓고, 그 파인 곳에 핏물을 흘리는 방식.

천륜을 거스른 인간이 제정신일 리가 없기에 창안해 낸 방법이었는데, 그들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상당한 시간 단축을 이뤄주었다.

그리고 오늘 내성 중앙 광장에는 사상 최대 규모의 제물소환진이 구축된 것이다.

깊은 밤,

돌아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었지만 오가는 사람들을 통제해가며 새긴 소환진에 핏물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이를 가까이서 보고 있던 총관. 그는 초조함을 참지 못하고 외쳤다.

“어이, 붓쟁이. 허벅지 말고 그냥 뒤꿈치 부분을 그어버리라고! 그럼 알아서 피가 줄줄 새니까. 그렇게 하고 나서 피를 뿌리면 편하잖아. 앙?”

인간의 피를 가장 쉽게, 그리고 많이 빼내는 방법을 총관이 재촉했다.

“으, 으아아아악!!”

인간 수십의 피가 필요했던 거대 제물소환진. 다시 해석하면 그만큼의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말이었다.

결국 몇 사람을 못 넘기고 붓쟁이라 불린 중년인은 미쳐버렸다.

절망과 한(恨), 미움, 분노가 피에 스며들었고, 제물소환진에 더없이 적합한 재료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성과 의식의 단계가 무너지고, 광기의 무의식에 접어든 중년인의 행동에 속도가 붙었다.

“으아아아악!! 죽어!! 죽으란 말이야!!! 네놈들을 죽여야 내 자식들이 산다고!!!”

“살려주세요!!!”

“살려주십쇼!!!”

“제발! 난 아니야!! 제발 나 좀 살려 줘!!!”

죄수들의 목소리 하나하나에 괴로워하던 중년인이 미친 듯이 칼을 그었고, 이내 바닥에는 피가 흥건하게 차올랐다.

“그래, 그거지. 좋아,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저기 그려진 소환진 위에 뿌려! 어서!!”

“흐에에에엑!!”

광기와 살육,

그리고 피의 제물이 내성 광장을 집어삼켰다.

**

쿠우웅.

“크윽···.”

깊은 밤,

허공을 점멸하던 빛이 내성 성벽 부근에서 벽에 부딪히기라도 한 듯 멈춰버렸다.

“결계···!”

일국의 왕성 규모를 능가하는 후작성이었다. 당연히 마법 결계 정도는 예상했어야 했는데, 그 정도로 론은 급했다.

“하아, 하아···.”

외부 요인으로 인한 마법 차단과 마나 역류는 고위 마법사인 그에게도 익숙지 않은 현상이었다.

결국 성벽 아래로 추락해버렸다.

물론 마지막에 바람 마법을 통해 충격을 완화하긴 했지만, 매초 텔레포트를 시전하던 리듬이 단번에 깨진 충격은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이거, 경비병까지 오는 건가···.”

두통이 이는 머리를 감싸며 론이 중얼거렸다.

마법 결계가 발동된 것은 확실했기에 내성 당직 근무 마법사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론. 안에서 이상한 기운이···.]

프레드릭의 집에서 영문도 모른 채 따라온 홍염이 그제야 느꼈는지 론에게 말했다.

내성에 이르자 조금 전 느껴지던 그 꺼림칙하던 절망의 기운은 더욱 짙어져 있었다. 단순히 가까워져서 그런 것만은 아닌 듯했는데, 생전 처음 느껴보는 기운에 론은 더욱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마인이야!]

그런데 고민할 틈도 없이 적들이 움직였다.

“젠장!”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고 가까워질수록 더욱 짙어져만 가는 불길함.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런데 마인들까지 상대하고 나면···.’

얼마나 시간이 또 소요될지 몰랐다.

“흔적이 남더라도 어쩔 수 없다.”

호흡법을 비롯한 각자의 방법으로 체내의 마나를 축적하면, 어떻게든 고유의 형질을 지니게 된다.

과거 럼블이 골든스태프 대회 선발 멤버를 뽑을 때, 실시했었던 크립텍스. 그 안에 있던 사브렌 종이가 그 예다. 개개인들이 지닌 마나는 모두 겹치지 않는 고유성을 지닌다.

가뜩이나 침입 방지를 위해 만들어진 마법 결계인 만큼 그것의 최후 기능은 결계를 부수고 들어간 이의 마나를 식별 및 저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론은 그런 것을 재고 따지고 할 시간이 없었다.

‘윈드.’

서둘러 몸을 띄우고 성벽 위 무형의 장막을 향해 론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손바닥에 모든 의식을 집중했다.

회귀 전후를 통틀어 성벽 경계를 허물고 침입하는 건 처음이었지만,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아쉽게도 인간의 마법진 마법을 비롯해 마법진 장치들은 그 한계가 뚜렷하다.

바로 인간의 사고 체계를 거친다는 점.

이 땅의 현상과 원소들은 인간의 사고방식 이전의 것들이다.

과거 신과 태초의 자연이 이 땅에 머무를 적 직접 소통했던 인간들. 그들이 아니고서는 이 땅의 마법은 그저 그림자 수준밖에 미치지 못한다.

즉, 인간의 수준에서 마법을 헤아리고, 그러한 마법을 되돌리는 마법식 장치는 론에게 있어 그리 어려운 결계가 아니란 말이다.

우우우웅우웅.

잠시간의 공명음이 울리는 동안 론은 마법 결계를 전부 파악했고,

파아아앙!

단숨에 파훼해버렸다.

단단히 고정되었던 마나의 장벽이 박살 난 것이다.

[론, 저기!]

홍염이 기다렸단 듯이 결계가 부서지자마자 가리킨 곳. 마인 여섯이 빠르게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다.

“일전에 폐건물에서 봤던 놈들과 비슷하거나, 좀 더 강한 놈들.”

그 한 명 한 명이 풍겨 오는 마기를 면밀히 확인하는 론이었는데, 이어지는 그의 움직임은 서로를 순식간에 엇갈리게 만들었다.

“뭐, 뭐야?!”

“저놈이 그 영주님이 말하던 놈 아냐?”

“사라졌는데?”

“음? 허···! 설마 저 뒤에 느껴지는 저게 그놈이라고?”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듯 일단의 마인들이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봤다. 그들이 왔던 내성 중앙 부근에서 아주 이질적인 기운이 그들을 간질였다.

“조율자인지 뭔지 하는 놈, 마법사인가? 뭐가 됐든 제물소환진은 절대적으로 방해받아서는 안 된다. 무조건 막아!”

“예!”

무리의 대장이 외치자 여섯의 신형이 빠르게 지나온 길을 되돌아갔다.

**

“아니, 이 미친···.”

텔레포트를 통해 순식간에 내성 중앙 광장까지 주파한 론. 그는 그곳에서 벌어진 일들을 공중에서 낱낱이 볼 수 있었다.

“흐아아아아악!!”

“미친 붓쟁이 새끼야! 빨리, 빨리 피를 뿌리라고!!”

차악!

“끄아아아악! 흐! 흐흐···. 흐에에엑!!”

한 마인이 채찍을 휘두르고, 채찍을 맞은 피범벅의 인간은 사람의 발목을 자르고, 이어서 그 흐른 피를 거대한 광장의 바닥에 흩뿌렸다.

그리고 공중에 있던 론의 눈에는 광장 바닥에 새겨진 모양이 훤히 보였다.

거대한 마법진.

그런데 그 안에 새겨진 모양이 뭔가 익숙했다. 회귀 전 수십년을 유적관리단 고고학자로 지낸 론이다. 미지의 것을 접근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아는 것부터 차근차근 나아가는 것이다.

마법진 내 세세한 기호와 문자는 생각지도 않고, 전체적으로 차지하고 있는 도형의 틀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는데,

“허···.”

론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번쩍이듯 지나갔다.

“마셔스 수림의 코르테즈 근거지.”

그곳에서 발견했던 건 브래들리 후작가 문양이 새겨진 타로카드만이 아니었다.

바로 흑마법서.

그 속에 그려져 있던 제물소환진과 상당히 흡사한 형태가 론의 발아래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뭐, 뭔 짓을 한 거야?!”

론의 발아래 펼쳐진 새빨간 피의 마법진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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