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 마법사의 회귀-101화 (101/115)

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101

동부의 성좌.

코르테즈에게 처음 그 마을 들었을 때, 론은 그런 생각을 했다.

회귀 전 어둠의 세력으로 인해 전세계가 뒤집어지다 시피했지만, 유독 대륙의 동부는 그 꼴이 말이 아니었다.

라스카 교국을 제외한 대부분 왕국이 언데드 군단에 함락당했었다. 단순히 흑마법과 마기를 수용하게끔 하는 수준을 넘어 완전한 정복.

‘탐욕이 아주 미쳤었던 건지···.’

화아아앗.

밝은 대낮,

쉴 새 없이 점멸하던 텔레포트의 빛이 사라지고, 론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발을 디딘 곳은 저 멀리 커다란 성채가 보이는 곳. 누가 봐도 브래들리 후작성이었다. 대륙 동부를 뒤집어놨던 그 원흉의 근거지였던 만큼 그 주변은 어떨지 내심 궁금했다.

영지민을 비롯한 수많은 외지인을 반타 블랙, 즉 마계 게이트의 제물로 삼은 자들의 영지는 어떨지 말이다.

당연히 불모지에 걸맞을 정도로 생기 없는 땅으로 예상한 론이었는데, 의외로 후작성은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추수기를 맞이하는 여느 영지처럼 주위의 풍경은 풍요롭기만 했다.

“이게··· 브래들리 후작성이라고? 허···.”

[다른 곳들보다 마기가 들끓고 있어!]

홍염의 말대로 마기가 들끓는 거야 이미 올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마기가 넘치는 지역치고는 주변의 상태가 어그러지고 황폐해지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말문이 막힌 것이다.

“영주님 덕분에 매번 톡톡히 그 혜택을 누리는구먼. 하하하.”

“허허, 4년 전인가 관수 작업할 때 그리 불평해댔으면서 입 싹 닫은 거 보게나.”

“그때는 영주님이 생각이 이리 크실 줄 내 알았겠나?! 앙!”

“그러게나 말이지. 당시에 아무도 그 작업에 대해 좋게 생각한 사람이 없긴 했지.”

“영주님의 생각이 비상하시긴 해.”

간간이 들리는 영지민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과연 인간들을 제물로 바치는 그 극악무도의 마인이 맞나 싶었다.

잠시 멍한 눈빛이 되어버린 론이 걸음을 옮겼다. 아직 후작성 외성에 들어간 것도 아니었다. 고작 성 밖 농경지를 걸었을 뿐이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도착한 민가.

본래라면 플로라 도시에서 그랬던 것처럼 혹은 프라하 도시에서 그랬던 것처럼 곧장 후작성 본성으로까지 한달음에 갔어야 했지만, 생각지 못한 영지민들의 반응에 론의 생각이 무거워졌다.

적당히 숙박 표시가 되어 있는 곳을 찾아 론이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혼자 왔어요?”

후덕한 인상의 중년 여인이 접객하는 여관.

“예, 하루 정도만 좀 묶겠습니다.”

프라하 행정관 저택에서 옷을 주워 입을 때 혹시 몰라 챙겨 찔러 넣었던 왕국 화폐. 챙기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론이었다. 이윽고 대충 계산을 마친 그가 객실로 올라갔다.

새액 새액 새액!!

[어쭈, 꼬맹이 한 번 해보자 이거지!]

시엘과 홍염이 눈치 볼 필요 없는 공간이란 걸 아는지 편하게 움직였다.

휙휙.

화르르륵.

불꽃이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백사는 기민하게 움직이며 그 불꽃을 쫓는다.

잠시동안 그들을 보며 미소 짓던 론이 이내 고개를 돌렸다. 조그마한 창틀 너머에는 한낮의 햇살이 화창하게 비추는 브래들리 영지가 펼쳐져 있었다.

사람들의 표정이나 그 하는 말들도 저 따사로운 햇살만큼이나 푸근하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론의 감각에는 지금도 선연히 느껴지고 있었다. 주변 환경과는 확실히 구분될 정도로 짙은 마기를 말이다.

**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는, 아니 다른 도시들보다 훨씬 평화로운 분위기는 외곽의 민가를 지나 외성 성벽의 출입문에 다다를 때까지 이어졌다.

‘동부의 성좌···. 이제 이 성벽을 지나 내성으로 들어가면 볼 수 있는 건가···.’

출입문 앞으로 길게 늘어선 대기 줄에서 론 또한 하염없이 기다렸다.

이곳 후작성 영내에 오고 나서는 쭈욱 도보로만 이동했기에 어느덧 그 시일은 생명달을 지나 열매달에 이르러 있었다.

론이 스펜서 본가를 나와 알펜샤 왕국으로 향할 때 이미 생명달 말엽이었긴 했지만, 그새 달이 바뀐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아홉 번째 달인 열매달은 아카데미의 1학기가 시작하는 달이기도 했다.

즉, 지금쯤이면 아들렌 아카데미 부지 내에서는 다들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있을 것이었다. 물론 그중에는 사티넬과 크루딘도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라리사는 졸업했구나.’

수많은 아카데미 중 명문이다 보니 아들렌 아카데미의 엘리트들은 각국에 환영을 받는다. 왕국에 그대로 남아 왕실 요직을 꿰찰 수도 있겠지만, 그녀가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바람의 일족이니까.”

한곳에 머물러 있기를 지루해하는 그들. 매번 새로운 곳을 주유하기에 생애 한 번 보는 것조차 행운인 게 현실이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아직 한 번의 만남은 남아 있었다. 바로 얼마 안 남은 골든 스태프 대회 말이다.

그렇게 회귀 후 새롭게 쌓은 인연들을 떠올리고 있자니 대기 시간이 마냥 지루하지는 않았다.

길고 긴 줄도 조금씩 움직였고, 결국 론의 차례가 다가왔다.

“신분증을 꺼내라.”

출입관리병이 앞서 했던 것처럼 론에게 툭 내뱉었다.

사실 지금 몸에 걸치고 있는 옷들도 주워온 마당에 신분증이 있을 리 만무했지만, 특별한 절차 없이도 통과할 방법이 하나 있었다.

일전에 프라하 도시에서 심심해하던 노인에게 듣기도 했었지만, 바로 론의 앞줄에서 수없이 나왔던 사례.

“검투 시합에 참여하러 왔습니다.”

순간 병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귀족 작위라는 달콤한 보상에 눈이 멀어 무한 검투 시합에 참여하는 이들은 분기마다 수도 없이 밀려온다.

게다가 외지인들의 경우 해당 시합이 브래들리 후작성에서만 열리는 줄 알기에 시합 시즌이 되면 이렇게나 사람이 북적이게 된다.

허나 지금 출입 관리병 앞에 선 론의 모습은 그저 누더기를 걸친 청소년에 지나지 않았다. 또한 무기는커녕 이제껏 살아오며 싸움은 해봤나 싶을 정도로 비실비실해 보이는 몸뚱이.

당장이라도 장난치지 말라며 내쫓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상부의 명령이 그의 충동을 억눌렀다.

“끄흐응···. 쯧! 저쪽, 시합 참여자 대기소로 가라.”

“예.”

출입관리병이 뭔가 기분 나빠 보이는 표정을 지었지만, 론은 이를 무시하고는 그가 가리킨 곳으로 걸었다.

딱 봐도 출입관리병을 비롯한 외성 내 순찰병들이 드나드는 위병소와 그와 연결된 꽤나 커다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군.”

새액!

그리고 동시에 머리를 내미는 시엘.

출입 대기줄에 있을 때와는 달리 외성 안의 수많은 인파에 당황한 듯했다.

프라하 혹은 플로라 도시와는 규모가 다른 후작성. 때문에 느껴지는 마기 또한 궤를 달리했다.

해서 론은 그런 시엘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외성 내에 또다시 성벽으로 둘러싸인 곳. 내성, 즉 브래들리 후작이 거하는 본성인 후작성이었다.

후작성의 검투 대회는 그 시초였던 만큼 해당 분기의 말엽에 시행함으로써 그 끝맺음을 담당한다. 대회 종료 후 각 도시의 우승자를 초대해 작위를 수여하고, 축제를 벌이는 것이다.

‘그 축제도 이제 끝이다.’

론의 서늘한 눈동자가 높게 솟은 브래들리 후작성을 똑똑히 담아두었다.

“음?”

그런데 그런 론의 고개가 순간 기울었다.

보통 성채를 짓는 성(城)급 영지가 되면, 물리적 방어 수단인 성벽 외에도 마법 결계를 두르곤 한다. 날붙이와 육탄전만으로 벌이는 시대는 훨씬 지났으니까 말이다.

마법이 평민들에게도 보급된 만큼 군사 전력으로도 널리 쓰였기에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내성 성벽에는 상당한 수준의 마법 결계가 펼쳐져 있었다.

“무슨 왕성도 아니고···.”

올해 초 분기별 왕실 간담회에 참석했었던 그였기에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왕실 결계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6서클 마도사들이 모여 상당한 수준의 결계를 둘러놓은 것이 틀림없었다.

“어이어이. 아무리 브래들리 후작성이 티발루 왕성의 권위를 넘어섰다지만, 그걸 직접 입 밖으로 꺼내면 안 되지.”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론이 생각을 멈췄다. 그리고 뒤이어 나타난 사내.

“반갑다, 내 검투 상대.”

**

“예선전까지는 여기서 대기해라.”

“예.”

“예엡! 저 그런데 병사님, 예선은 언제입니까?”

“일주일 뒤다.”

“아아, 감사합니다!”

출입관리병이 가리켰던 위병소 옆 별관 건물에 도착하자 담당 병사가 당분간 묵을 방으로 인도했는데, 론 옆으로 한 명이 더 딸려 있었다.

이십 대로 보이는 외모에 다부진 신체, 이곳에 들어오기 전 론에게 말을 걸었던 자다. 일면식 없던 론에게 잘도 말을 걸었던 만큼 사내는 병사에게 궁금한 것들을 편하게 물었다.

그렇게 담당 병사가 물러가고, 론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열 개의 침대가 놓인 방.

흐트러진 침구 모양을 봐서는 정원이 꽉 찬 방 같았는데, 어째서인지 실내에는 몇 없었다.

“하아···. 개나 소나 다 받는다더니, 이제는 저 시퍼런 애새끼들까지 오네.”

이미 자리 잡고 있던 우락부락한 사내가 론과 같이 온 자에게 건들거렸다.

‘참···.’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다 내성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어째 그 시작부터 삐걱대는 느낌.

하지만 론이 회귀 전 80년 일생을 살아오며, 한 두 사람만 만난 게 아니었다. 가뜩이나 귀족도 평민도 아닌 애매한 신분이었기에 각종 오해와 불편을 다 겪은 그다.

괜한 감정으로 분란과 불편을 크게 만드느니 한 번 숙이는 게 조용히 그리고 편히 지나가는 길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무엇보다 제법 큰일을 도모하는 때였고 말이다. 괜한 문제를 일으킬 이유가 없었다.

새액 새애액.

[저것들 왜 불만이야?!]

때문에 불쾌한 듯 품에서 중얼거리는 시엘과 홍염의 반응을 애써 잠재웠다.

“거기 아우도 성격 좋네. 엘가딘이야.”

별관 앞에서 마주친 뒤로 쭉 같이 온 사내가 론에게 말했다.

“엘가딘···.”

딱 들어도 평범해 보이지 않는 이름에 론이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이를 의식한 건지 아니면 스스로 얘기하고 싶었던 건지 그는 말을 이었다.

“몰락 귀족의 후손이지. 그래서 검투 시합을 통해서 가문 좀 일으켜 보려고.”

자신감이 충만했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감 또한 근거가 있었는데, 그의 단전 부근에 자리한 마나와 몸 곳곳에 퍼진 마나는 적잖은 단련을 했음을 시사했다.

마법사들이 현상과 자연을 깨우쳐 초인이 된다면, 이들은 극도의 육체 단련과 마나 수련으로 초인의 경지에 오르는 자들이었다.

“예에···. 테르미노입니다.”

아까 출입문 명부에도 대충 휘갈겼던 이름. 론이 적당히 대답했다. 딱히 실명을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괜한 흔적으로 가문에까지 누를 끼칠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런 론과 엘가딘의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아니 그럴 수가 없었다.

저벅저벅.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발소리에 론의 온 신경이 쏠렸다.

선연한 마기.

바로 마인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내 곧 그 실체가 드러났다.

“영주님께서 찾으십니다.”

말끔한 복식의 중년인이 깍듯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머리는 명백하게 론을 향해 있었다.

하는 행동은 누가 봐도 아랫사람이었지만, 그가 입고 있는 고급스러운 복식과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절대 무시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조금 전 론에게 욕을 하던 우락부락한 사내도, 포부를 말하던 엘가딘도 입을 벌린 채 론을 쳐다볼 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