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99
“다, 당신이 이 땅의 조, 조, 조율자입니까?”
얼마나 당황했는지 제대로 말조차 꺼내지 못하는 사내. 아이러니하게도 이곳 프라하 도시에서 가장 커다란 마기의 소유자였다.
‘이놈이구나.’
론의 무심한 눈동자가 그의 얼굴을 훑었다. 대형 검투장에 관전하러 갔을 때, 귀빈석 중앙에 앉아 시합을 구경하고 있던 사내다.
프라하 도시의 행정관.
나이르의 극진한 섬김을 받던 주인.
브래들리 후작가의 유력 후계자.
바로 프라비츠가 브래들리.
담담히 그의 신상에 대해 생각하던 론은 손을 뻗었다. 물론 그 손은 화인화(火人化)를 통해 불길로 변한 손이었다. 또한 그 불은 멸마의 불꽃이었고.
치이이익.
“끄아아아악!!”
그가 이 도시에서 가장 방대한 양의 마기를 소유했을지라도, 범인과는 궤를 달리하는 마인이 되었을지라도 프라비츠가 또한 하나의 생물체였다.
그 압도적인 상성 우위의 존재는 그에게 있어 재앙이었고, 공포 그 자체였다.
“젯, 제발! 제발 끄아아아악!! 살려, 살려주십시오!!”
시시각각 타들어 가는 그의 팔뚝.
마기는 점점 소각되어 갔고, 그것으로 오염된 신체 조직 또한 타들어 갔다.
그대로 두면 결국 멸마의 불꽃이 온몸으로 번져 놈을 통째로 소각시킬 것이다.
온몸이 불타는 화인 상태였으나, 론이 차가운 눈빛으로 프라비츠가의 눈을 마주쳤다. 그러고는 잠시 그의 팔뚝을 놔주었다.
“반타 블랙에 대해 말해라.”
“바, 반타 블랙 말입니까···?”
“되묻지 말고.”
치이이익.
“으아아아아악!!”
명색이 고문이었다.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고 맞추는 그런 협상 자리 같은 게 아니란 말이다.
때문에 론은 일말의 여지도 주지 않았다. 그저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으면 힘을 가할 뿐이다.
그렇게 잠시 동안 고통의 시간을 보내게 한 뒤 론은 다시 그의 팔을 놔주었다.
“말해.”
아주 조용한 목소리.
딱 코앞의 프라비츠가만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소리였다.
하지만, 그는 신체가 타들어 가는 고통보다도 강력한 공포가 각인되어버렸다.
한껏 움찔댄 프라비츠가는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달달 떨었다.
“바, 바바, 반타 블랙은 마계의 토, 통로입니다!!”
“마계의 통로···.”
프라비츠가를 대면하기 전 론이 박살 내고 왔던 건물, 그곳에서 그는 분명 그것을 보았었다.
시커먼 액자.
엄청난 마기를 품고 있던 그것은 계속해서 그 힘을 응축하는가 싶더니 돌연 한 번에 쏟아냈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양의 마기였기에 론은 생성해 놓았던 체외서클의 힘을 모두 끌어다 폭발시켜버렸었다.
그렇게 겨우 없애버린 그것.
나이르를 통해 얼핏 듣긴 했는데, 그 주인이라는 자에게서 새로운 정보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옛, 예?!”
“분명 되묻지 말라 했을 텐데.”
치이이이익.
론이 다시 한번 프라비츠가의 팔뚝을 움켜쥐었다.
“크아아아아아악!! 죄송, 죄송합니다아아악!!!”
그의 오른팔이 다 타버려 소각될 때까지 론은 그 손을 놓지 않았다. 확실한 각인.
“마계의 통로, 그리고 말해라.”
“하악, 하아악, 하아악···. 사, 사람을 바쳐서··· 마기를 가, 가져왔습니다하아···.”
침을 질질 흘리면서도 정신없이 대답했다.
“사람을 바쳤다라···. 왜지?”
“사, 사, 사람이 가장 큰 에너지였습니다하아!! 제발, 제발 살려주십시오!! 나으리!! 시, 신이시여!!”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허나 론의 심문을 멈추지 않았다.
생애 처음 듣는 정보였고,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했을 때 알아두면 더없이 좋을 정보였다.
“그래서 검투 시합을 통해 노예들을 들이고, 인간과는 수준이 다른 마인을 그 시합에 내보냈던 건가?”
“마, 맞습니다!! 원하시는 모든 걸 드리겠습니다!! 아, 제가 곧 있으면 이 브래들리 후작가의 주인이 됩니다!! 저를 믿어주십시오!! 제가 다 해드리겠습니다!”
죽음의 공포 때문인지 프라비츠가가 쓸데없는 말들을 주절댔는데, 론의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혹시나 했던 추측.
그런데, 사실이었다.
그저 단순히 노예들의 1할 정도만 마인화 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그를 제외한 모든 이들을 저 마계의 구렁텅이에 내던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인원수만 대략 이천여 명.
“하···.”
이제껏 심문자로서 굳은 표정을 유지하려 했던 론인데, 결국 그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래서, 반타 블랙의 최종 목적이 뭐냐?”
“그것의 최, 최종 목표는···. 스스로 마기를 생성할 정도의 마, 마족이 되는 것입니다!!”
“마족···.”
“그, 그렇습니다!”
“마족이 되어 뭘 하려는 거지?”
“오래도록 이 땅을 지배하는 썩은! 기득권들을 지워버리는 겁니다!! 그 더러운 새끼들이 아주 이 땅이 지들것인 마냥 독식하는 걸 기어코 빼앗아야지요!!”
어이가 없었다.
그 얘기인즉, 다른 누군가가 오래도록 군림하는 걸 못 참아 자신이 그 위에 서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상대는 더럽고 나쁘고, 자신은 옳다는 것이었다. 아주 탐욕에 미친 인간이었다.
‘내가 대체 뭘 바란 거지···.’
인간적인 무언가를 바라는 것 자체가 사치였다.
생각을 정리한 론이 추가로 확인해야 할 것들을 머릿속에서 추려냈다.
“반타 블랙은 또 누가 갖고 있지?”
“제 아버지와 형제들이 갖고 있습니다!”
“그 출처는.”
“그, 그것은···.”
치이이이익.
“끄아아아아악!!! 죄송합다아아악!!”
여전히 머리를 굴리려는 모습에 론이 예외 없이 그의 왼팔을 가져갔다.
순식간에 프라비츠가의 양팔이 다 타고 없어져 버렸다.
“죄송, 죄송합니다!! 살려주십시오!! 추, 출처는 제물 소환진! 제물 소환진입니다!!”
“하아···.”
결국 참고 있던 론의 탄식이 새 나왔다.
처음부터 끝까지 탐욕이었고, 이 땅의 것들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조율의 여지는커녕 이 땅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만, 사라져라.”
화아아아악.
모든 힘을 끌어다 놈 앞에 불을 피워냈다.
“이게 끝인가···.”
프라비츠가와 그 일당들이 이 땅에, 그리고 수많은 사람에게 저지른 악행은 너무나도 컸다. 그런데 그 죗값은 고작 몇 분간의 고통과 순간의 죽음이 끝이라니.
허무했다.
5서클의 몰아(沒我)와 6서클의 전아(全我)까지 경험한 그였으나, 그 인생관에 다른 이들의 삶까지 포함시키니 생각이 무거워졌다.
[그래도 이렇게 없애지 않으면,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누군가는 죽어 나갈 거야.]
그런 론의 마음을 위로하듯 홍염이 말했다.
“그렇네.”
어두운 밤.
아직 해가 뜨려면 한참이 남은 시각이었지만, 론은 죽은 이들을 위해 잠시나마 애도의 불길을 이어갔다.
**
하룻밤 만에 프라하 도시가 뒤집혔다.
약 5년 전, 대형 검투장 설립을 시작으로 유례없는 성장과 부흥을 이어간 도시. 그 중심에는 당연히 프라하 도시의 행정관이 빠질 수 없었다.
분기마다 축제처럼 신경 써 준비했던 무한 검투 시합으로 수많은 사람을 유치했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아이고···. 이게 뭔 일 이래···.”
“간밤에 무슨 폭발 소리가 들리긴 하던데···.”
“큰일이야! 큰일! 행정관 나으리 저택이 박살이 났다고!!”
“대형 검투장은 아예 무너졌어! 이게 무슨!!”
“난리도 난리가 아니군···.”
간밤에 있었던 일을 요약하자면,
행정관 관저의 검투 노예 병동 파괴, 마인이 된 검투 노예들 화형, 행정관 화형, 대형 검투장 파괴 등등 이었다.
실은 행정관 프라비츠가를 완전히 소각시켜 버린 뒤 바로 프라하 도시를 뜨려 했으나, 떠나는 론의 발걸음을 멈춘 게 있었다.
건립 목적부터 아주 부적절했던 그것.
텔레포트로 이미 상공에 오른 그였지만, 결국 기어이 돌아와 그 건물을 박살 내버렸다.
경고였다.
지금도 각지에서 검투 시합을 이어가며 인간을 제물대에 올리는 자들을 향한.
그렇게 사람들이 하룻밤 만에 무너진 건물들을 보며 당황할 즈음, 론은 이미 다른 도시에 다다라 있었다.
프라하에서 가장 가까이 느껴지던 또 다른 마기의 진원지.
“여기도 프라하 거기와 별반 다를 바 없군.”
브래들리 후작가의 남부 영지라는 것 외에는 아는 게 없었다.
“아, 도시 이름이 아마 플로라라고 했던가.”
플로라.
고대어로 꽃밭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 이름에 걸맞게 도시 곳곳에는 화분들이 즐비했다.
프라하에서 그랬던 것처럼 인근 숲에서 텔레포트를 멈추고, 도시로 스며든 론은 광장의 벤치에 앉아 그 모습을 구경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대놓고 론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도 있었는데, 바로 광장 한가운데 걸려있는 현수막이었다.
[무한 검투 시합 참가자 모집]
이곳 플로라 도시의 시합 일정은 약 2주 뒤부터 시작이었다.
‘도시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고, 그중 프라하 도시의 시합이 제일 빠르다고 했었지···.’
프라하 도시에서 론에게 구구절절 설명하던 노인.
‘지금쯤 다들 놀라 당황하고 있겠군.’
프라하의 행정관은 물론이고, 그 관저에 검투장까지 박살 난 것을 보면 아마 어안이 벙벙하리라.
그러면서 문득 드는 생각은 이 브래들리 후작이 정말 영악하다는 것이었다. 악의 가득한 무한 검투 시합임에도 불구하고 평민들 사이에 필수적인 문화로 자리 잡게 만들어 버렸다.
승리 시 작위 수여라는 매력적인 보상과 인간이 벌이는 검투는 사람들의 본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시작한 지 몇 년도 지나지 않아 도시의 축제로 잡은 것을 보라.
때문에 해당 검투장을 부수고 온 론의 심정은 착잡했다.
“자네, 그 얘기 들었나? 프라하의 대형 검투장이 무너졌다는군.”
“으잉? 그게 뭔 소리여? 대형 검투장이 무슨 소꿉장난하는 흙집도 아니고. 말이 되는 소리를 혀!”
“아니, 진짜래두!”
“하루아침에 폭삭 주저앉았다는데! 내가 아까 서기관 조수한테 들었다니까!”
광장에 앉아 있었기에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는 쉬이 들을 수 있었다.
그 검투장의 실체도 모른 채 걱정하는 평민들.
‘얼마 뒤 이곳의 검투장이 무너지면 어떻게 될까.’
아주 못 된 흉악범이라며 낙인이 찍힐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해야겠지.”
이 모든 걸 구상하고 이뤄낸 브래들리 후작이 신물 났지만, 그게 바로 론의 할 일이었다.
모두를 위한 일이었으나, 환영받지 못하기에 조용히 밤을 기다리는 론. 그런데 그런 그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아저씨, 이거 받으세요.”
와인색 머리카락에 주근깨가 가득한 얼굴. 가문의 막냇동생 레비보다도 훨씬 어려 보이는 꼬마였다.
‘아, 게티아 도시의 이샤 정도 되려나.’
“행운이 담겨 있는 레번클리버에요. 아저씨도 곧 굶주림에서 벗어나실 수 있을 거예요!”
“그, 그래···. 고맙다, 꼬마야.”
생각지도 못한 발언에 론은 고개가 절로 떨구어졌다. 그리고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누더기. 아니, 허름한 옷.
프라하 행정관을 처리한 뒤 저택에서 대충 길이가 맞는 옷을 주워 입고 나왔었는데, 생각보다 많이 허름하긴 했다.
‘하인들 옷이긴커녕 그냥 버리는 옷이었던 건가···.’
“제가 레번클리버 드렸으니까, 대신 기도해주세요!”
“음? 뭐를···.”
“오빠가 검투 시합에 참가한대요! 제발 꼭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기도해주세요!!”
티 없이 맑은 눈동자가 하염없이 론을 쳐다봤다.
무한 검투 시합.
그곳에서 무사히 돌아오는 방법은 단 한 가지다. 마지막까지 지지 않는 것. 즉, 우승이다.
그 외에는 모두 노예가 되어 반타 블랙의 제물 혹은 마인이 될 뿐이었다.
“그래. 반드시 돌아오게 해줄게.”
플로라 도시에 온 뒤로 줄곧 무겁기만 하던 론의 표정이 어느새 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