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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가 마법사의 회귀-89화 (89/115)

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89

어린 소냐와 대형견 레브.

그 둘의 만남은 평범했다.

집을 자주 비우는 부모와 소원한 형제자매 관계 속에서 외로움을 타던 소냐가 어느 날 말했다.

‘밖에서 커다란 개를 봤어. 나도 개 키우고 싶어.’

그녀가 본 것은 바로 북부의 썰매견.

말들이 쉬이 적응할 수 없는 북부의 설원지대에는 이들을 대신한 동물들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썰매견들이었다.

인간에게 우호적이기도 하고, 자식의 보호용으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소냐의 아버지 대니 모리츠는 그 자리에서 바로 허락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썰매견 중에 가장 영리하다고 알려진 엘리아툰 새끼 한 마리를 구해왔다.

흰 바탕에 검은색 무늬가 그려진 조그만 강아지.

‘아빠! 얘는 그 커다란 개가 아니잖아!’

소냐는 시장에서 봤던 그 커다랗고 순둥순둥해 보이는 모습이 아니었기에 대놓고 실망했었다.

‘소냐, 개들은 원래 어릴 때 데려와 교감을 쌓는 거란다. 네가 시장에서 봤던 큰 개들은 이미 제 주인과의 교감이 두터운 상태인데, 어떻게 너를 따르겠니.’

‘치이···.’

당연히 싫은 내색을 그대로 표출한 소냐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그만 강아지 레브는 소냐를 잘 따랐다.

‘앉아!’

‘손!’

‘기다려.’

‘응, 쉬야는 요기서 싸야 해. 잘했어.’

어디를 가든 곧잘 따르는 레브.

처음에는 소냐가 귀찮아 했으나 나중에는 오히려 그녀가 매일같이 꼭 데리고 다녔다. 한때 그녀의 마음속에 드리워졌던 외로움을 그 작은 강아지 레브가 어느새 걷어준 것이었다.

그렇게 1년, 2년 시간이 흐르고 레브는 성체가 되어 소냐보다도 훨씬 덩치가 커져 버렸다.

‘왕 크니까, 왕 귀여워!’

소냐는 당연히 도시의 아이들에게 그런 레브의 귀여움을 자랑하고 다녔는데, 그만 문제가 터져버렸다.

여느 때와 같이 도시 외곽의 오래된 가건물에서 장난을 치고 있었는데, 하필 그날이 바로 한밤에 눈이 내리고 난 다음 날이었다.

폭설이 아니었기에 그리 걱정을 하지 않았던 아이들의 생각과는 달리 가건물의 상태는 많이 안 좋았고, 결국 그대로 내려앉아 버렸다.

무사히 피한 아이들도 있었지만, 소냐를 비롯한 너덧 명의 아이들이 그대로 건물 더미에 파묻혔다.

추운 겨울.

대피한 아이들이 도시의 어른들을 불러오기까지 레브가 홀로 건물 더미를 파헤치며 아이들을 구했다.

무거운 나무판자와 기둥들을 혼자 낑낑대며 파헤치고,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던 아이들을 물어다 밖으로 구출했는데, 그게 아이들의 눈에는 다르게 느껴진 듯했다.

‘사람을 무는 개야!’

‘저 개가 물은 랑크는 죽을 뻔했다니까!’

‘어쩌면 지금도 우릴 보면서 입맛을 다실 수도 있어···.’

‘나 그때 생각만 하면 정말 무서워!’

좋은 일을 하고도 오히려 질시를 받은 레브.

그 모든 게 아이들의 시기 질투로부터 시작된 일이었으나, 어린 소냐는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허나 그래도 다행인 것은 소냐가 예전처럼 홀로 지낸 건 아니었다는 점.

오히려 레브와 둘이서 더욱 끈끈히 붙어 다녔는데, 그것이 레브에게 있어서는 엄청난 기회였다. 종(種)의 수준을 뛰어넘은 짙은 교감과 당시 레브 또한 상처 치료를 위해 복용했던 포션의 시너지로 레브는 진화했다.

영물(靈物)로.

신수(神獸)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종(種)으로서 가지는 유전적 한계를 뛰어넘어 마나를 다루는 동물들.

월! 월월!

그런 레브가 커다랗게 짖는다.

“응? 아아, 미안미안. 아고, 딴 데로 가는 줄도 몰랐네.”

레브를 뒤따르던 소냐가 힘들어 고개를 떨군 채 땅만 보며 걷고 있었는데, 어느새 레브의 곁을 벗어나 있었다.

헥헥.

소냐 옆으로 다가온 레브가 비비적댄다. 자신의 등에 타라는 얘기였다.

“아냐, 괜찮아, 레브. 그 사람도 걸어갔다고 했잖아. 나도 걸어가 볼래.”

츄릅 츄릅.

정말 괜찮냐는 듯 소냐의 뺨을 핥는 레브.

“응, 정말 괜찮아.”

월월!

그렇게 소냐는 고집을 꺾지 않고, 그 붉은 머리의 사내가 그런 것처럼 기어이 제 발로 산을 올랐다. 정상까지.

**

“흐응? 레브. 무슨 일이 생긴 것 치고는 너무 평온한데? 저 봐, 저기 저 사람 아주 누워 있잖아.”

으울.

고개를 갸웃거리는 대형견.

분명 정상에 오르기 전 엄청난 마나의 파동을 느낀 레브였는데, 막상 정상에 오르고 나니, 주변은 평온했다.

사브작 사브작.

봉우리 정상에 쌓인 눈들을 밟으며 소냐가 여전히 누워있는 사내에게로 다가갔다.

선명할 정도로 붉은 머리의 남자.

론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존재.

[어? 어어?! 어떻게 하지?! 론! 론! 일어나! 어제 봤던 큰 개랑 꼬마 여자애야!! 일어나!]

홍염이 열심히 론에게 외쳤지만, 론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함부로 정체를 드러내지 말라고 했는데···.]

홍염이 하급 정령으로 진화를 하고 스스로 현신할 수 있게 되자 론이 했던 당부.

‘사람들 앞에 먼저 정체를 드러내지 말자.’

적에게 있어서는 전력을 숨기려는 의도였고, 외부인들에게는 불필요한 소란을 없애기 위함이었는데, 지금의 상황에서는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는 홍염이었다.

[으으···. 공격하기만 해 봐!]

론의 얼굴 위에 떠서 잔뜩 경계 태세를 취한 홍염.

허나 정작 상대편의 얼굴은 악의는커녕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다가와 무릎까지 꿇은 채 쳐다보는 여자아이와.

츄릅.

“히익! 레브 핥으면 어떻게 해!”

[뭐야?! 왜 혀를 날름거려?!]

레브가 론의 뺨을 핥자 소냐와 홍염이 동시에 놀라 외쳤다.

으울.

역시나 왜 그러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레브. 자기 딴에는 걱정이 돼서 그런 건데 분위기가 영 아니다보니 당황한 것이다.

“레브, 그래도 모르는 사람한테 핥으면 안 돼.”

월!

알았다며 소냐와 같이 설원에 폭삭 앉은 레브. 북부의 썰매견답게 눈 덮인 땅이 시원한지 그새를 못 참고 뒹굴뒹굴 거렸다.

“아악! 레브, 눈 튀잖아! 이익! 너도 맞아봐!”

[······]

조금 전까지 론에게 관심을 두던 이들 맞나 싶을 정도로 딴짓을 하는 저들. 홍염도 어느새 이전의 경계는 지워버렸다.

**

정령사의 찬가.

이 호흡법을 직접 사용하는 론은 이것이 가지는 사기성에 대해 일찍이 인지하고 있었는데, 근래에 들어 또다시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이유인즉 바로 마나 고갈로 인한 탈력감에 빠졌을 때였다.

마법사들이 적지 않게 겪는 마나 탈력감. 체내의 마나를 모두 소진하여 신체가 무기력해지는 현상인데, 이는 서클의 마나가 어느 정도 복구될 때까지는 계속 지속된다.

그런데 정령사의 찬가로 다져진 론의 서클은 마나 고갈 이후 복구하는 그 과정이 엄청나게 짧았다.

보통의 마법사들이 하루를 꼬박 쉬는 것과 달리 그의 서클은 고작 시간 만에 복구가 되었다. 때문에 론도 이를 알기에 서슴없이 체외 서클 훈련을 한 것인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평소와 달리 소란스러운 주변.

감각을 자극하는 소음과 진동이 끊임없이 전해져 온다.

츄릅 츄릅.

그리고 중간중간 느껴지는 이 축축한 느낌은 무엇이란 말인가.

평소 같지 않는 상황.

론의 미간이 찌푸려지며 눈이 떠졌다.

“오! 눈을 떴어!”

월! 월!

론은 순간 꿈인 줄 알았다.

항상 자신을 반기던 홍염이 아니었기에.

웬 모르는 사람과 개라니.

“꿈···인가?”

[꿈, 아니야···.]

‘어?’

분명 홍염의 생각이 들렸다.

‘홍염, 너 맞아?’

특유의 그 쾌활한 분위기가 아니라 좀 의아하긴 했지만, 분명 홍염이 맞았다.

[응, 맞아! 그런데 얘네들 나쁜 애들 같지는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 말을 들은 론은 그제야 주변에 있는 이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가문의 막내 동생 레비보다도 어려 보이는 여자아이와 커다란 개.

“어? 이 큰 개, 분명···.”

츄릅.

“윽!”

축축하고 말캉말캉한 혓바닥이 그의 뺨을 핥고 지나가자 그의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며 킥킥거리는 소냐.

“그만해, 레브. 이제 정신 차렸어.”

월! 월!

얼마나 우렁찬지 코앞에 있던 론의 귀가 얼얼했다.

“너희, 여긴 어떻게 온 거야?”

장난치는 모습에서 제 동생 레비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일까. 론의 입에서는 제법 친숙한 말투가 튀어나왔다.

“깊숙한 산이라 어린 애들이 오기에는 위험해.”

“흐응···.”

소냐가 눈을 가늘게 뜨며 론을 쳐다봤다.

“너도 엄청 어른 같지는 않은데···.”

“···. 크흠! 일단 내려가자.”

‘홍염, 잘 참았어. 나쁜 애 같지는 않네.’

어린아이들을 못 믿는다기보다는 그들의 순수함이 때로는 생각지 않은 일을 불러올 수 있다. 때문에 론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홍염을 내심 칭찬했다.

[흥! 뭐 이 정도야.]

다시금 돌아온 홍염의 분위기.

그 모습에 론이 피식 웃으며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

“그럼 뭘 더 하려고? 산지 깊숙한 곳의 봉우리라 서둘러 돌아가지 않으면 해가 질 거야.”

평소라면 충분히 여유로운 시간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저 아이 앞에서 순간이동, 텔레포트 마법을 보일 순 없었으니까 말이다.

현재 대륙의 내로라하는 천재들도 겨우 이르는 경지가 6서클이다.

그런데 고작 성년도 안 된 소년이 6서클의 텔레포트를 시전한다? 아주 전세계가 뒤집히고 팔짝 뛸 일이었다.

“그리고 해가 지면 산속은 위험하니까.”

이유는 충분했다.

그렇게 홍염과 둘이 올랐던 산행은 내려갈 때가 돼서는 그 일행이 늘었다. 사람 둘에 정령 하나와 개 한 마리로.

그런데 그 개 한 마리는 역시나 보통 개가 아니었다.

‘확실히 일반적인 짐승이 아냐.’

7서클에 이르는 깨달음과 마나 컨트롤을 가지게 된 론에게는 분명히 느껴졌다. 커다란 개의 체내에 흐르고 있는 선명한 마나가.

결국 궁금함을 참지 못한 론이 먼저 입을 뗐다.

“론이야.”

“응?”

“내 이름 말야. 너는?”

“아, 나는 소냐!”

‘론···.’

누워있을 때부터 쭈욱 보긴 했지만, 곱상한 얼굴에 희귀한 붉은 머리카락. 그리고 특유의 차분하면서도 어른스러움이 소냐의 호감을 자극했다.

으울?

월! 월!

그리고 이런 감정의 변화를 놓치지 않는 레브.

“레브, 괜찮아.”

소냐는 자신의 얼굴이 붉어진 지도 모른 채 옆에서 따라 걷고 있는 레브의 옆구리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그 개, 정말 크다. 특별한 종(種)이니?”

“아아, 레브는 엘리아툰 종(種)인데, 아빠가 그랬어. 영물(靈物)이라고! 레브는 영물이야! 내 말을 알아들어!”

“오오.”

신수와 영물.

일반인들에게 제한된 정보는 아니긴 했지만, 꼬마 아이의 입에서 술술 나오니 제법 대화가 쉬이 풀릴 것 같았다.

‘뭐 내가 악용하려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그런 론의 예상대로 소냐는 아무렇지도 않게 제 이야기를 풀어냈다. 어릴 적 레브와의 첫 만남부터 영물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 이야기까지.

어린아이 특유의 과장된 표현이 있긴 했지만, 회귀 전 평생 신수는커녕 영물과는 연이 없던 론에게는 귀한 이야기였다.

덕분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소냐의 이야기를 듣던 론은 해 질 무렵 도시 외곽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무너진 건물에서 사람들을 구하다니. 정말 착한 영물이네. 레브.”

론이 레브를 칭찬하며 쓰다듬었고,

월! 월!

헥헥.

이를 알아들은 레브는 우렁찬 소리로 화답했다.

“맞아, 우리 레브는 정말 착해!”

“그래, 그리고 좋은 주인도 있고 말이야. 좋은 얘기 들려줘서 고마워.”

“뭐, 진짜 사실이니까. 헷.”

평범했던 동물과 인간의 짙은 교감.

그리고 그로부터 일어났던 진화.

지극히 아이다운 시각에서 순수하게 이야기를 전해준 소냐에게 감사를 표했다.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보자.”

“으, 응?!”

도시 외곽을 지나 어느새 당도한 여관 앞.

그 앞에서 론이 이별을 고했다.

“어어···. 음···.”

그런데 어째서인지 묘한 표정을 짓는 소냐. 헌데 이윽고 들린 소리에 론의 표정도 덩달아 바뀌었다.

“나, 나도 여기서 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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