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 마법사의 회귀-82화 (82/115)

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82

툭.

론이 보고 있던 서적 사이에서 무언가 떨어졌다.

“음?”

손안에 가볍게 들어오는 직사각형 모양의 카드. 시장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타로카드였다.

『 THE CHARIOT 』

전차를 뜻하는 고대 링글언어.

거기까지만 해도 크게 신경 쓰이는 건 없었다. 허나 그 위로 그려진 그림 속 전차에는 론도 알만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사자 머리에 불꽃 형상의 갈기···.”

브래들리 후작가.

그곳의 문양이 틀림없었다.

알펜샤 왕국을 국경으로 맞대고 있는 티발루 왕국의 변경, 허나 그 변경지가 너무도 방대했기에 결코 무시할 없는 그 땅이 바로 브래들리 후작가였다.

“그나저나 알펜샤 왕국이라···.”

알펜샤 왕국은 다름 아닌 고대 괴수 히드라의 봉인지다. 브래들리 후작가와 알펜샤 왕국.

‘이게 우연일까?’

[왜?!]

론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지자 홍염이 신기한 듯 물었다. 정령이 된 지 얼마 안 됐기에 홍염에게 감정의 변화란 생소하고 신기한 것이었다.

‘그냥 생각보다 놈들의 계획이 상당히 철저히 준비됐던 것 같아서···.’

브래들리 후작.

분명 코르테즈가 이 동부의 성좌라고 했었다. 그런데 무명의 인물도 아니고, 오랜 역사를 가진 가문의 수장이다.

론은 홍염에게 회귀한 사실까지 하나하나 다 납득시킬 수 없었기에 그가 지금껏 어둠의 세력을 만났던 일화들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했다.

아들렌 남부 피에타 영지에서 만난 흑마법사, 아카데미 선발전에 나타난 흑석, 고국 수도 크리소더 경매사 앞에서 지나친 아이블 마탑 마법사 등등.

그리고 이번에는 그들의 동부 지역 수장이라는 놈이 브래들리 후작이란다. 갑작스럽게 커진 스케일. 론의 생각도 깊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구나, 일단 가보자!]

“응?”

홍염의 티 없는 발랄함에 론은 저도 모르게 입가에서 웃음이 샜다.

[자연의 섭리는 무너지지 않아!]

“그래, 뭐 부딪혀 보기도 전에 퍼질러질 순 없지.”

[좋아!]

화르륵.

론이 다시금 전의를 불태우자 홍염도 이에 맞춰 반응했다.

정령으로 거듭나기 전 오래도록 자연의 섭리로 지내 온 홍염. 그 유구한 세월 간 자연의 섭리가 끊긴 적은 없었다.

“뭐가 됐든 가보자고.”

[응!]

그렇게 론은 마저 동굴을 조사하고는 챙길 것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품에 들고나온 건 50여 골드에 달하는 돈주머니와 수림의 지도, 그리고 브래들리 후작가의 문양이 새겨진 타로카드였다.

그럼 네크로맨시가 적힌 흑마술서를 비롯한 그 외의 것들은 어떻게 했느냐?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소각했다. 다른 누군가에게 발각되어서 좋을 게 하나 없는 것들이었으니까 말이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나진 않았네.”

폭포수 밖으로 빠져나온 론은 로브에 있던 회중시계를 꺼내 확인했다. 현재 시각은 3시 41분.

해가 빨리 뜨는 동방의 끝나라지만, 아직 일출까지는 분명 시간이 남아있었다. 론이 수림 지도를 펼쳤다.

“갈 수 있으려나···.”

[어디를?!]

“낮에 갔었던 그 동굴 말야. 좀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어서.”

[아아, 그 성수(聖水)가 있던 곳?]

“응?”

‘아까 그 마계의 기운을 소각했던 그 동굴에 성수가 있었다고?!’

그레고리 고국에 온 이유였다.

생각지 못한 정보에 론이 주위를 두리번 경계하며 속으로 외쳤다.

[응, 맞아!]

순간 그걸 왜 이제 말하나 싶었지만, 생각해 보면 당시 상황이 좀 급박하긴 했다. 그리고 갓 계약한 홍염이 무슨 수로 자신이 땅의 성수를 찾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겠는가.

오히려 지금이라도 해당 단서를 찾았으니 정말 다행이었다.

‘정말 다행이다. 알려줘서 고마워!’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땅의 성수가 실존한다고 생각하니 론은 절로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홍염, 혹시 그럼 그 동굴 위치도 기억해?’

[당연하지! 멸마의 불을 피우고, 소각했던 장소인데 기억하지. 흔적이 남아있어.]

‘다행이다. 그럼 바로 가자.’

[응!]

론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중간중간 곤란한 지형도 몇 군데 있었지만, 홍염이 인식하는 범위가 수백 미터에 달하다 보니 어렵지 않게 쉬운 길을 찾을 수 있었다.

“허억, 허억··· 허엇···.”

현재 시각 4시 21분.

폭포수와 그리 멀리 떨어져 있던 건 아니었는지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론의 기감으로는 딱히 위험 요소로 인식되는 생물체는 없었다.

‘혹시 누가 있는 건 아니지?’

[우리를 쳐다보는 짐승들 말고는 없어!]

‘그래, 그럼 들어가자.’

어제 낮에도 왔었던 그 동굴.

한 번 와보기도 했거니와 갈림길이 없는 일방형 통로였기에 금방 나아갈 수 있었다.

이윽고 비릿한 혈향이 코를 찔러왔다.

론의 일행과 코르테즈가 낮에 흘렸던 핏자국이다. 얼마나 흘려댔는지 바닥 전체가 시뻘겠다.

“어휴···.”

허나 그런 것에 감상에 빠질 여유는 없었기에 코를 막고 서둘러 나아갔다. 그리고 도착한 곳. 거북이가 사라졌던 그 물웅덩이가 있는 곳이었다.

‘이게··· 성수라는 거지?’

[응! 미약하지만 분명 태초의 기운이 머금어져 있어.]

‘태초의 기운?’

론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오래전 태초의 자연이 머물고 있을 때의 정(精)이란 얘기야.]

태초의 자연.

론도 마법의 역사, 대륙의 역사, 창세 신화, 전설 등등을 살피면서 들은 바가 있었다.

태초의 자연은 그냥 현상이 아니라 어떤 존재체 였을거라는 가설. 그런데 홍염은 지금 그 가설이 실제라고 말한 것이다.

‘그럼 세상이 천계와 지상계로 구분되기 전의 시기를 말하는 거야?’

[응 맞아! 잘 아네?!]

‘뭐 역사서나 전설서를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내용이니까. 그런데 사실이었구나···.’

[응!]

희미했던 과거가 밝은 등불로 훤히 비치는 듯했다.

우우웅우웅.

론은 지체할 것 없이 체내의 마나를 풀어냈다. 앞서 알을 깨고 나온 거북이가 파장을 맞추고 이동했던 것처럼···.

우우웅.

우웅.

우우웅.

그런데 예상과 달리 한참이 지나도 론이 원했던 마나 공명은 이뤄지지 않았다.

“뭐지? 왜 안 되는 거지?”

지금 론은 스스로 체감하기에 마나 컨트롤은 이미 5서클을 훨씬 상회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명은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마치 아예 질적으로 다른 듯한 느낌.

[뭐가?]

“아니 어제 거북이가 여기서 파장을 맞추고 웅덩이 안으로 들어갔던 것처럼 나도 따라 하려고 했는데 이게 안 되네.”

[파장을 맞춰?]

“응, 진동이나 세기, 밀도, 감정 등을 서로 맞추는 거야.”

[진동, 세기, 밀도, 감정···?]

“응, 맞아. 후! 다시 한번 해보자!”

다시 한번 결의를 다진 론은 눈을 감고 집중했다.

‘잠깐, 침착하게 생각해 보자. 아까 분명 무언가가 부족한 것처럼 느껴졌었어. 눈앞의 에너지에는 있는 것···.’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론은 이내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우우웅. 어제 들었던 익숙한 공명음과 함께 이마 쪽에 있던 홍염에게서 빛이 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 뭐야?”

[음···. 뭔가, 뭔가 이상해.]

화아아아앗.

점점 빛이 강해지자 론은 무의식적으로 홍염에게 손을 뻗었고, 둘은 순식간에 빛과 함께 사라졌다.

슈우우우욱.

화아악!

“커허억! 허억, 허엇···.”

몸이 광자화 되는 듯한 기분.

공간 전이가 틀림없었다.

툭.

그리고 이윽고 론의 발끝에서 느껴지는 딱딱한 질감. 땅이었다.

[오오! 여기는 처음이야!]

옅은 물안개 같은 것이 사방에 펼쳐져 있었다.

졸졸졸.

솨아아아아.

그리고 귓가를 가득 채우는 물소리.

“여기가···. 허!”

론은 말을 잇지 못했다.

마나호흡법이 아닌 그저 들숨 날숨에도 체내에 마나가 쌓일 정도로 정순한 마나가 가득했다.

바삐 고개를 돌려가며 론은 주위를 확인했다.

[여기··· 나보다도 더 오래된 정(精)이 있는 거 같아.]

“더 오래된 정(精)?”

[응. 엄청, 엄청 거대해! 가보자! 궁금해!]

“지금?!”

[응!]

론은 혹시 몰라 홍염을 현신시킨 채로 이동했는데, 가다 보니 익숙한 생물이 보였다.

“어, 저 거북이···.”

분명 어제 사티넬이 가지고 있던 알에서 부화하고 나온 거북이와 그 생김새가 비슷했다.

위로 솟은 등껍질과 발톱이 박힌 네 발. 다만,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쿵 쿵 쿠웅.

걸음 한 번에 소리가 날 정도로 덩치가 거대하다는 점이었다. 대충 길이만 봐도 약 1미터는 넘었다.

“어제 그 새끼 거북이는 친구들을 잘 만났으려나···.”

커다란 거북이를 따라 조그만 거북이들이 쫄로리 따라가는 게 한 식구 같았다.

[론! 어서 와!]

허나 그러는 사이 홍염은 벌써 저만치 앞으로 나아간 채 론을 채근했다.

“어, 가.”

그렇게 홍염이 이끄는 대로 한참을 따라갔는데, 론은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약 십여 분 정도 걸었을 뿐인데 그동안 론은 수많은 호수와 폭포, 크고 작은 물줄기들을 지나쳤다.

‘물의 궁전···?’

그레고리 고국, 땅의 성수, 고대 신앙 등의 자료를 모을 때 분명 읽은 적이 있었다. 태초에 신이 이 땅을 빚을 때, 가장 심혈을 기울인 곳 중 하나가 바로 물의 궁전이라고 말이다.

당시에는 별 생각 없이 고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커다란 이콰타 폭포를 떠올렸었는데, 그게 아닌 듯싶었다.

지금 이 장소만큼이나 물의 궁전이란 말이 어울리는 곳이 있을까?

수십 개의 폭포와 호수, 갖가지 모양의 물줄기들이 자연과 어우러져 만들어낸 장관은 신비함마저 자아내고 있었다.

“아니 옛날 사람들은 그럼 여길 오기라도 했단 건가? 어떻게 전설로 전해져 온 거지?”

론은 아예 이곳이 물의 궁전이라고 확신한 채 생각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옛날 사람들? 옛날 사람들이 왜?]

“아니, 내가 땅의 성수에 대한 자료를 찾아볼 때 여기와 같은 곳이 있다고 말한 전설들이 있었거든.”

[으음···.]

이에 생각에 잠긴 홍염.

그런데 아쉽게도 둘의 대화를 이어지지 못했다.

[땅의 인간이여, 이곳은 네가 있을 곳이 아닌데 어찌하여 발을 들였느냐.]

육성이 아니었다.

뇌를 흔드는 듯한 강한 진의(眞意).

홍염이 제 생각을 전하는 것과 비슷했지만 훨씬 강력한 강도에 론의 인상을 찌푸렸다.

“윽···.”

[거기에 불의 정령까지 이곳에 들어오다니.]

구후우우웅.

순간 세상이 확대되는 듯했다.

저 멀리 보이던 것들이 당겨진다. 어딘가로 끌려가고 있는 것이다.

[론!]

홍염의 외침에 론이 정신을 바짝 차렸다. 이 상황에 내릴 수 있는 최적의 판단.

‘물의 궁전, 땅의 성수···. 신의 피조물, 태초의 자연, 신, 마계 세력의 대척점···. 그래! 적어도 이곳에서 마계의 기운이 느껴지는 건 아니니까!’

론은 마주한 초월적 존재에 대해 적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때문에 그가 결정한 것은.

“땅의 성수! 땅의 성수가 필요해서 왔습니다!”

론이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길 바라며.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 끌려가던 론의 몸이 멈췄다.

“허억, 허억, 허억···.”

[땅의 성수? 인간에게는 필요치 않은 것인데 어째서 탐하는 것이냐?!]

“커헉···!”

털썩.

[아악···.]

화르륵.

그냥 생각을 전해도 뇌가 울릴 정도인데, 노기까지 실리자 제정신으로는 버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는 홍염도 마찬가지인지 눈앞에 있던 불꽃이 흔들리더니 그 크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정령과 교감을 나누는 자가 사사로이 자연의 섭리를 건드리려 하다니! 말세로다!]

“크윽···!”

말 한마디 한마디가 골을 울려대는 통에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했다.

때문에 론이 악을 쓰듯 소리 질렀다.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이었다. 상대가 저리 강압적인데 어찌하랴.

“그 말세 때문에 찾아온 겁니다! 마계의 힘을 이용해 고대 괴수 히드라를 부활시키려는 어둠의 종자들이 있습니다!”

[뭐라?]

후우우웅.

순간 뭐라 설명할 순 없지만, 거대한 무언가가 짓누르는 듯했다.

“크윽···.”

[흐음···. 겉모습은 아이일 뿐인데 생각보다 올곧은 신념을 지니고 있군···. 그렇다면 불의 정령! 네가 답해라. 너와 교감하는 저 인간의 말이 사실이더냐?!]

후우우웅.

말이 끝나기 무섭게 또다시 짓누르는 거대한 존재감.

론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지금껏 너무 거대해서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는데, 이는 분명 정령의 기운이었다.

[마···. 맞아! 맞다고!! 내가 론이랑 마계의 기운을 소각했단 말이야! 왜 자꾸 뭐라 하는 거야아!!]

콰아아아앙!

다 꺼져가던 홍염이 폭발하듯 치솟았다.

그리고 느껴지는 진한 기운.

바로 멸마(滅魔)의 불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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