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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가 마법사의 회귀-78화 (78/115)

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78

사람에 대해 파악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출신과 이름 정도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대상자가 내로라하는 집단의 내로라하는 인물이라면?

이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아들렌 마도왕국의 아카데미.

그리고 그곳의 론, 사티넬, 크루딘, 라리사.

가뜩이나 이번 골든스태프 대회 선발전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대륙 서부 성좌의 계획 일부를 무산시켰기에 동방의 수뇌부들에게도 그 얘기가 퍼졌었다.

그래서 코르테즈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다. 서부 땅에서 실패한 계획을 자신이 재수립한다면 이는 자신의 공적은 물론이고 모시는 상관의 면이 서는 일이었다. 4명의 성좌가 일으키는 알력 다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터였다.

그래서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수발이 되는 자들에게만 마셔스 수림에 매복하라 명했었다.

마셔스 수림.

자연의 보고(寶庫)라 불리는 만큼 차후 아뷔메르의 마족이 강림했을 때, 훌륭한 자양분이 될 땅이었다.

그래서 코르테즈는 일찍부터 사명감을 갖고 수림 독식 계획을 짜 온 것이었는데, 저들 스스로 그 뱀의 아가리로 들어오겠다 하니 막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막상 수림에 진입한 론 일행은 멋대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웬만한 길은 다 꿰고 있는 코르테즈였지만, 묘하게도 그들은 그가 모르는 사각지대로만 움직였다. 즉, 그도 처음 가는 길이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더 가관.

알 수 없는 의문의 동굴이었다.

이미 흑석으로 완전히 흑마법사화 된 코르테즈였기에 두려울 건 없었다. 하지만 미지의 공간을 적이라 판단한 이들과 함께 걷는 건 또다른 문제였다.

그런데, 동굴에 대한 상황 파악이 끝나기도 전에 강력한 파장이 그의 감각을 어지럽혔다.

구후우우웅우웅.

처음에는 그저 동굴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울려 퍼지는 진동이라고 생각했다.

허나 시간이 지날수록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느낌은 진해졌고, 이윽고 코르테즈의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의 파장이 뿜어져 나왔다. 바로 사티넬에게서. 아니, 그녀의 가방에서.

‘대체 뭘 갖고 있는 게야?!’

차분하면서도 묵직한 파장이 그의 심경을 불편하게 했는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사티넬이 그녀의 가방에서 알 형태의 무언가를 조심히 꺼내더니 근처에 있던 웅덩이 옆에 내려놓았다.

“뭐, 뭐야? 정말 부화하기라도 한다고? 신수가?!”

‘신수?!’

이제껏 눈치만 살피고 있던 코르테즈는 크루딘의 발언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신수.

괴수와는 대척점에 서 있는 존재다.

그래서 더욱 잘 알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 눈앞의 둥근 물체가 그것의 알이란다.

“아, 안돼!!”

쩌저저적.

코르테즈가 뭐라 판단할 새도 없이 사티넬의 비명과 함께 알이 깨졌다.

아니 부화했다.

**

툭.

알의 껍데기가 조금 떨어져 나가고 그 내부가 보였다. 짙은 갈색의 생물체가 열심히 꿈틀댄다.

“아아···.”

지금껏 알에 온 신경을 집중하던 사티넬은 자신의 교감이 허상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감격해 무릎마저 꿇고 경건히 바라봤다.

“저거···. 거북이 아냐?”

라리사의 입이 벌어졌다.

어릴 적 일족의 땅에 있는 습지에서 거북이가 번식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저기 저 매끈한 피부와 그 위로 단단해 보이는 껍질은 거북이의 그것이 틀림없었다.

다만 그녀를 놀라게 한 것은 저 거북이에게서 분명하게 뿜어져 나오는 파장이었다. 어릴 적 꽤나 자주 봤던 그런 평범한 거북이가 아니었다.

쩌적.

쩌저저적.

“엑?!”

그런데 거북이는 곧장 알을 다 깨고 나와버렸다. 보통의 거북이들이 알을 깨고 바로 나오는 게 아니라 하루 이틀간 황란을 흡수한 다음 빠져나오는 데 반해 이 거북이는 알을 깨자마자 거의 바로 튀어나왔다.

첨벙.

“아앗!”

그렇게 새끼 거북이가 알을 나와 웅덩이에 퐁당 빠지자 사티넬이 놀라 다가왔다. 순간 물에 빠져 익사하는 건 아닐까 걱정한 것이다.

사티넬이 조심스레 새끼 거북이를 들어 올리자 그녀 옆으로 라리사가 다가갔다.

“잘했어, 사티넬. 얘, 육지거북이야.”

“육지거북이요?”

사티넬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녀가 살던 대륙 북부의 땅에는 거북이가 없었기에 라리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소중했다.

“응, 다리랑 등껍질 봐봐. 물갈퀴 모양이 아니라 발톱이 박혀있잖아. 등껍질도 평평한 게 아니라 솟아있고. 얘들은 바다거북이가 아니라 수영을 못해.”

“아아···.”

“뭐야, 뭔데 그렇게 잘 알아?”

크루딘도 이상한 파장을 내뿜는 거북이가 신기한지 따라 다가왔다.

휘적휘적.

그런데 어째 새끼 거북이는 방금 알을 깨고 나온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생기가 넘쳤다. 쉴 새 없이 다리를 흔든다. 마치 무언가를 강렬히 원한다는 듯이.

“왜, 왜 그래, 아가야···?”

거북이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사티넬이 당황했다.

‘뭐지? 파장이 맞춰지는 거 같은데?’

코르빌을 경계하느라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던 론은 지금 누구보다 집중해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저 거북이가 내뿜는 파장 이외에도 다른 무언가가 저 웅덩이에 있음을.

그리고 이는 마치,

‘저 웅덩이가 무슨 플라델의 미로라도 된다고?’

론의 사고가 결론을 도출해내기 무섭게 라리사가 말했다.

“사티넬, 잠깐 거북이 내려놔 볼래? 뭔가 하고 싶은 게 있나 봐. 그러니까 이렇게 발버둥 치지.”

“아, 네 언니···.”

볼이 빵빵해진 사티넬.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그녀가 거북이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땅에 닿기 무섭게 거북이는 아장아장 나아갔다. 웅덩이를 향해서.

“어, 어어?!”

“음? 뭐야, 바다거북이가 아니라며···.”

화아아앗.

모두가 놀라 쳐다보는 가운데,

조금 전까지 있던 새끼 거북이가 빛과 함께 사라졌다.

“허···.”

잠자코 보고 있던 코르테즈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가 담당하는 마셔스 수림에서 이제껏 듣도 보도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단순히 수림을 점령하라는 말을 넘어 그 이상의 성과를 보고할 수 있는 상황. 그리고 덤으로 아들렌 아카데미의 학생들까지. 그 참을 수 없는 희열에 그의 입가가 미친 듯이 치솟았다.

‘더 두고 볼 필요도 없군. 즉살이다.’

딱!

정적에 쌓인 일행들 사이로 코르테즈가 손가락을 튕겼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돌아갔다.

“나으리들, 아까 제가 마차에서 고개를 지날 때마다 했던 말들 기억하십니까?”

갑자기 웬 생뚱맞은 질문이었지만 일행들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게 아까 코르테즈가 말한 대로 모든 게 이뤄졌었기에 은연중에 이번에도 그의 말에 기대는 것이었다.

그 무의식적인 신뢰가 일행들의 마음 경계를 풀었고, 그 틈이 바로 코르테즈가 파놓은 함정이었다.

“당황하지 말고 천천히 호흡하십시오. 들숨과 날숨 때마다 몸과 마음이 편안해질 겁니다.”

지금 상황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 허나 일행들은 마치 지상 명령이라도 들은 듯 다른 생각은 일절 하지 않고 천천히 호흡에 매진했다.

“후웁, 후우, 후웁, 후우···.”

심연의 환술.

일말의 신뢰와 기대만으로도 상대를 무방비 상태로 만드는 최악의 마계 최면이자 환술이었다.

몇 시간 전 마차에서 론이 느꼈던 불쾌한 기시감은 착각이 아니었다. 크루딘을 비롯한 일행들의 심중에 피어난 작은 믿음. 그곳에 코르테즈 암시가 심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부자연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론 일행은 그저 호흡만을 이어갈 뿐이다. 마계의 에너지 일부가 코르테즈의 환술 암시를 타고 들어가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그래, 그래야 이 몸이 흑마법사가 된 게 보람이 있지.’

코르테즈가 씨익 미소 지었다.

수년 전 5서클 마법사였던 그는 더 이상 나아지지 않은 성취에 절망했었다. 엘리멘탈리스트, 즉 자연 현상을 뛰어넘는 개념 마법에 도달하고 싶었으나 마도사의 길은 그에게 요원하기만 했다.

그런 와중 지금의 성좌를 만났다.

흑석을 통해 마계의 힘을 맛본 그는 마치 새 삶을 얻은 듯했고, 기꺼이 자신을 바쳤다.

가진바 마나 서클을 죄다 포기하고 마계의 힘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다다른 경지.

심연의 환술이었다.

작디작은 믿음과 신뢰만 있으면 상대의 심중에 환상을 퍼뜨릴 수 있었다.

환상 속에서 그는 6, 7서클을 넘어 신이었다. 무엇이든 일으킬 수 있었고, 원한다면 그 대상을 꼭두각시로 만드는 것 또한 가능했다.

“저 의문의 웅덩이야, 성좌께서 알아서 밝히실 터. 너희는 그저 내 노리개나 되거라. 끌끌끌.”

그러면서 코르테즈는 눈앞에 있는 라리사의 몸을 훑으며 입맛을 다셨다.

“제법 그럴듯하게 익었단 말이지. 이리 오너라.”

손가락을 까딱이자, 라리사가 멍한 눈빛을 한 채 그에게 다가갔다.

우우우웅.

“음?”

갑작스레 느껴지는 마나의 파동.

코르테즈의 미간이 줄어들었다.

‘인위적인 파동···. 마법이라고?!’

지금껏 환술에 실패한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더 황당할 수밖에 없었는데, 어쨌든 문제의 발원지는 찾아야 했다. 코르테즈의 고개가 빠르게 돌아갔고, 이내 그의 눈에 한 사람이 포착됐다.

우우웅우웅.

정사면체의 마법진을 만들어 낸 이.

론이었다.

흑마법사가 된 후 마법진 마법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코르테즈였지만, 론이 만들어 낸 마법진 마법 정도는 알아볼 수 있었다.

‘윈드 스피어’

그리고 그것은 목표 방향은 그의 머리였다.

슈아아앙!

꿰뚫어 보기 무섭게 정사면체의 마법진이 바람의 창을 토해냈고,

콰앙!

코르테즈의 뒤에 있던 벽에서 돌들이 후드득 떨어졌다.

“쯧!”

하마터면 저기 떨어지는 게 돌들이 아니라 그의 뇌수가 될 뻔했다.

“네놈!”

이전의 존대하는 말투는 사라졌다.

“어둠에 몸을 판 것답게 아주 저급한 힘이구나.”

꿈틀.

코르테즈의 이마 주름이 깊어졌다. 묘하게 나이 들어 보이는 말투와 마계의 존재에 대해 인지한 듯한 반응이 그의 심중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재밌는 놈이구나, 끌끌끌. 그런데 그런다고 네가 이 환술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글쎄, 그건 두고 볼 일이지!”

후우우웅.

론이 재빠르게 두 손을 가슴팍으로 올렸고, 그 1, 2초 사이에 완성된 복합마법진이 빛을 발했다.

‘스톤월!’

쿠구구구궁.

쿵!

일행들과 코르테즈 사이로 두꺼운 돌벽이 솟아올라 천장에 닿아버렸다.

시야 단절과 강렬한 소음.

론이 환술에 대해 전문가는 아니지만, 지금 일행이 당한 암시 수준은 그리 깊은 상태는 아니었다. 환술의 초기 단계, 심신을 편안케 하고 수용적인 상태로 유도하는 이완암시 수준의 정도다.

“다들 정신 차려!!”

론은 커다랗게 소리 질렀다.

깊은 암시에 빠진 게 아니라면 스스로 충분히 깨고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클클클···.”

그런데 돌벽 너머에 있던 코르테즈는 여유롭게 비웃을 뿐이었다.

“사티넬! 라리사! 크루딘! 일어나라고! 일어나!”

“윽···. 뭐, 뭐야.”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라리사였다. 론이 이어서 크루딘과 사티넬을 미친 듯이 흔들자 그들도 이내 암시에서 벗어났다.

“커헉, 허어···. 뭔데 이거?”

크루딘이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하나하나 다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코르빌이 함정을 팠다. 모두 전투 준비해!”

밑도 끝도 없는 말이었지만, 방금의 몽롱했던 정신 상태는 이를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사티넬과 라리사는 분명히 들었었다. 노리개가 되라 했던 그의 말을.

“할아범이? 할아범이 왜?”

허나 크루딘은 그 짧은 시간에 깊은 암시에 빠지는 바람에 코르테즈의 말을 듣지 못했다.

“클클클, 그래야 봐야 소용없다. 그런다고 내 손아귀에서 벗어날 것 같으냐?”

“뭐?!”

“이미 바람은 들어오고 있지 않으냐.”

“?!”

딴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지금도 선연히 느껴질 정도로 바람은 이미 불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우웅.

동굴의 입구를 비롯해 중간중간 천장에 뚫린 구멍으로 바람이 새들어오고 있었다.

“천장의 구멍으로 새든 빛도 이곳을 밝히고 있고 말야.”

긴 막대기처럼 구멍을 뚫고 들어온 빛이 바닥에 꽂히며 주변을 밝히는 모습은 일행들의 눈에도 훤히 보였다.

당연한 사실들을 그럴듯하게 늘어놓으며 불길한 분위기를 풍기는 코르테즈. 당연히 라리사가 자리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생각처럼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뭣, 뭐야?! 몸이, 윽!!”

“끌끌끌. 그래, 지금 내 목소리도 울리고 있고 말야.”

코르테즈가 여유롭게 계속해서 말을 뱉어댔고 이를 듣는 일행들의 표정은 점점 굳어갔다.

아쉽게도 적대시하는 감정만으로는 환술의 씨앗을 걷어낼 수 없었다.

“끌끌끌···. 고생했다, 아이들아. 이제 이리 오거라.”

그러자 일행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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