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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가 마법사의 회귀-75화 (75/115)

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75

이 땅에는 오래전부터 많은 초월적인 힘들이 존재해 왔다.

초인의 신체 능력을 발휘케 하는 오러, 자연의 근본에 이르러 상식을 무너뜨리는 마법, 세상을 움직이는 교감 능력의 정령술, 영혼을 묶어 조종하는 강령술 등등.

이러한 힘들은 인간에게 압도적인 힘과 희귀성을 부여하기에 지금까지도 수많은 이들이 그토록 염원하고 소망한다.

하지만 그런 모든 힘이 고대 때부터 쭈욱 이어져 온 것은 아니다. 오랜 세월 인간의 손을 타고 변화와 재정립을 거쳐온 현대의 것들과는 달리 중간에 소실되고 잊혀진 것들도 많았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바로 태초의 권능이다. 단순히 자연 현상을 다루고, 초월적인 파괴력을 가지는 수준을 넘어 가히 창조에 이르는 수준.

인간의 기원보다 훨씬 이전이기에 잊혀질 수밖에 없었던 그런 힘.

허나 고대 인류 중에 이를 놓치지 않은 자들도 있었다. 아직 신의 권능, 신의 자취, 신의 향기가 남아있던 시기, 이를 염원하고 마침내 다다른 자들이 있었다.

바로 아말렉 부족.

그들은 땅의 숨결을 느꼈고 생명의 섭리를 깨달았다.

당시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지위를 누렸고, 그들은 가장 높은 곳에 올라 그들만의 거처를 만들고 세상을 다스렸다.

주위에 있던 모든 부족이 공물을 바치며 신의 축복을 얻고자 소망했다.

그런데, 어느 날 찾아온 한 부족.

그 모습은 여느 부족과 다를 바 없이 공물을 바치고 축복을 소망했다. 하지만 아말렉 부족장을 마주하는 순간, 그들은 계획을 실행했다.

경외를 담던 눈에는 서늘한 안광이 어렸고, 한껏 허리 숙여 내민 공물 중 하나인 세공한 돌도끼를 집어 들었다. 아말렉 부족장을 비롯한 고위 계층들이 갑작스런 변화에 당황하는 사이, 그들의 다리는 빠르게 치고 나아갔다.

아말렉 부족장의 머리는 그 자리에서 쪼개져 버렸고, 지도층 인물들까지 단숨에 죽어버렸다. 수뇌부가 사라진 아말렉 부족, 이방인들의 공세에 제대로 대항하지도 못하고 무너졌다.

오랜 권력 집단치고는 허무한 말로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었고, 그 후 아말렉 부족은 파브렌 고원에서 다시는 볼 수 없었다.

그러고 나서 유유히 파브렌 고원을 차지한 자들.

바로 아우이스 부족이었다.

그들은 고원 땅을 차지하고 정말 놀랐다. 대관절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인지 해발 천 미터가 넘는 파브렌 고원은 웬만한 평야보다 땅이 비옥했다. 심는 곡식마다 풍성한 소출을 내놓았고, 고원의 풀을 먹으며 자란 야마(고원지대에 서식하는 낙타과 동물)들은 왕성한 번식을 이루며 그들의 의식주를 책임져 주었다.

당연히 아우이스 부족은 그대로 고원에 눌러앉았고, 그들 특유의 괴력으로 이 일대를 장악했다. 아말렉 부족과는 또 다른 느낌의 최고 권력이 생긴 것이었다.

“그렇게 평생 갈 것 같던 아우이스 부족이었지만, 얼마나 갔는지 아십니까?”

긴 설명을 하던 코르빌이 론 일행을 쳐다보며 물었다.

“책에서는 백 년을 겨우 넘겼다고 하던데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쉽게 말해 터를 잡고, 이제 좀 살만한 때에 어찌 된 일인지 그들은 이 땅에서 사라졌습니다. 말들이 많았지요. 아말렉 부족이 이곳을 떠나기 전 저주를 내렸다느니, 신의 부족을 밀어냈으니 신의 분노를 받았다느니 등등.

그 때문에 후로도 다른 부족들은 이곳에 얼씬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세월이 흐르고 이곳을 발견한 후대인들은 있었지만, 그저 오랜 과거 유적지로만 생각할 뿐 거처로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오오, 그럼 정말 저주라도 있었던 거야, 할아범?”

“껄껄걸, 정말 저주가 있었다면 지금 저희도 이곳에 관람을 오면 안 되겠지요.”

“아, 그렇긴 하네. 큭큭큭.”

“이유야 간단했습니다. 아우이스 부족이 물러날 당시에는 저주니 뭐니, 말이 많았다해도, 후대에 발견한 사람들은 단순히 이 고원에 이점이 없었기에 거처로 삼지 않았던 겁니다.”

“이점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과거 아우이스 부족이 살던 그때의 비옥한 땅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단순히 고산지대인 것이죠. 저기 보십시오.”

그러면서 코르빌이 가리킨 곳은 과거 계단식 농경지라고 설명했던 곳이었다.

“저곳에서는 더 이상 풍성한 소출을 내주지 않았습니다. 기후마저 바뀐 건지 대부분의 곡식류가 자라지 못하게 된 건 덤이었지요.”

“흐음···. 그러니까 유적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란 말인가.”

“그렇지요.”

그 후 코르빌은 생활 구역별로 안내하며, 아우이스 부족의 건축 방식에 관해 설명했다. 밝혀지진 않았으나 범인(凡人)을 능가하는 힘을 가진 건 틀림 없었다는 둥 이런저런 얘기를 덧붙였다.

허나 사티넬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아우이스 부족은 고대 마법이나 땅의 성수와는 거리가 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전에 설명한 아말렉 부족이 더 신빙성이 있었다.

‘아말렉 부족, 그들이 가진 힘이 정말 잊혀진 고대 마법이라면 어떻게 복원할 방법이 없을까?’

‘그들은 고대 마법을 어떻게 깨우쳤던 걸까?’

‘이 땅속에 파묻힌 지하수로는 정말 마법진일까?’

‘곡식이 풍성하고, 생물이 번성하고, 생기가 넘치는 땅···. 그들이 궁극적으로 바랐던 건 뭐였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사티넬의 머리에서 멈추지 않았다.

“여기는 파브렌 고원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곳입니다. 바로 전망대죠. 조심해서 올라오십시오.”

인간의 거주 공간이 대부분 낮은 지대여서 그런지 높은 곳에서 보여주는 전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감탄이 나오게 한다.

그리고 곧이어 오른 전망대.

“와아···. 과연 고지대는 고지대라 이건가.”

“괜찮네.”

일행의 눈앞에는 푸르른 땅들이 펼쳐졌다.

“이곳은 몬스터도 없는데 왜 사람들이 개발하지 않은 겁니까?”

잠자코 보고 있던 론이 물었다.

“아마도 저 수림 때문이지 않을까요?”

코르빌이 가리킨 곳은 과연 나무들이 빽빽할 정도로 우거진 숲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수풀이 우거진 곳이지만, 내부는 늪지대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반경을 넓혀가고 있지요. 때문에 고국도 포기한 땅입니다. 개간해도 소용이 없으니 말이죠, 껄껄껄.”

“늪지대? 혹시 그러면 저기가 마셔스 수림이에요?”

“그렇습니다, 아가씨.”

사티넬의 질문에 그가 대답했다.

‘비옥한 땅, 생물들의 번성, 생기가 넘치는 곳···.’

뭐라 콕 짚어 설명할 순 없지만, 사티넬의 직감은 저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마셔스 수림, 아말렉 부족···. 그리고 고대 마법, 땅의 성수···.’

그렇게 사티넬은 구경하는 것도 멈추고 떠오른 생각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별안간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철거덕 거리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등장한 무리. 병사들이었다. 그들은 저마다 종이를 펼치더니 사람들의 얼굴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무엄하게 뭣들 하는 짓이냐!”

다짜고짜 사람들을 검문하던 병사들에게 한 사람이 호통쳤다. 당연히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고급스러운 복식에 품위가 느껴지는 긴 수염, 그리고 정돈된 머리카락과 살짝 들려진 턱. 귀족의 표본이었다.

“귀하신 분을 몰라뵀습니다. 죄송합니다.”

“천한 것들 아니랄까 봐, 격 떨어지는 것들이 감히!”

“죄송합니다, 나으리. 그런데 여기 스타프 자작령의 영주님께서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영지에 마약을 뿌리고, 민생을 어지럽힌 흉악범을 즉시 잡아들이라고 말입니다.”

“마약?”

“예, 그렇습니다. 거듭 죄송하지만 잠시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자극적인 단어에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마약.

마취 작용을 일으키는 것으로 장복(長服)하면 중독증상을 일으키는 약이다. 본래는 치료용으로 쓰이나 악용해 자극적인 환각제로 쓰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영지병들은 그 후자 때문에 이렇게 단호히 나서는 것이었고.

‘마약은··· 딱히 기억에 없는데.’

론은 골똘히 생각해 보았으나, 떠오르는 기억은 없었다. 그저 과거에 마약으로 인해 한 나라가 크게 패망한 후 각국에서는 엄격히 관리한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당장에 고국의 땅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허나 어찌 됐든 일의 경중을 느꼈는지 예의 호통치던 귀족도 한 발짝 물러났다. 왕가는 물론이고 귀족가에서도 엄히 금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영지병들은 곧이어 파브렌 고원의 곳곳에 흩어져 종이를 펼치더니 출입하는 사람들을 대조하기 시작했다.

“아직 잡혔단 소식이 없더니만, 결국 이렇게까지 오는군요.”

“으음? 할아범, 영지병들이 이렇게 수사를 벌인 게 꽤 됐나 보네?”

코르빌의 한탄에 크루딘이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벌써 한 달이 넘었지요. 시작은 아마 아, 때마침 여기서도 보이는군요. 저기입니다. 저기.”

“저기?”

“마셔스 수림이요?”

“예, 그렇습니다. 수림 초입에 있던 산샤 마을이 온통 난리가 났었다고 합니다. 폐인이 되는 건 물론이고, 죽어 나간 주민들 때문에 지금도 마셔스 수림 앞이 휑합니다. 바로 길잡이 마을인데 말이죠.”

코르빌의 설명이 끝나자 사티넬의 고개가 내려갔다. 바로 그녀의 셔틀레인, 바로 알이 있는 곳을 향해서.

‘이 알도 분명 마셔스 수림에서 발견했다고 했었는데···.’

마셔스 수림.

뭐라 설명할 순 없지만, 그녀는 반드시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그런데 그런 깊은 늪지대를 안내할 길잡이 마을이 사라졌다니 순간 멍해져 버렸다.

그리고 이는 비단 사티넬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마셔스 수림은 꼭 가봐야 하는데···.’

론 또한 이번 그레고리 고국과 고대 신앙, 그리고 땅의 성수에 대해 조사를 벌일 때, 그가 의아하게 생각했던 곳 중 하나가 바로 이 마셔스 수림이었다.

인간의 문명이 닿지 않은 곳.

몬스터가 가득한 곳도 아닌데, 인간이 점령치 못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값진 연구 대상이었다. 그래서 일행들에게 일정을 설명할 때 파브렌 고원 이후 마셔스 수림을 얘기했던 것인데, 이렇게 꼬일 줄은 몰랐다.

“흐응, 그런데 말야. 저기 마셔스 수림이라는 곳, 꼭 길잡이가 있어야 돼?”

라리사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물었다. 그녀는 론 일행만큼 스펙터클하진 않더라도 꽤나 여러 곳을 홀로 여행 다녀 본 경험이 있었기에 굳이 길잡이에 얽매일 필요가 있었나 싶었다.

“까놓고 얘기해서 무슨 몬스터가 득실대는 곳도 아니잖아.”

“음? 그건 또 그렇네. 큭큭.”

라리사의 쿨한 발언에 코르빌이 껄껄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에는 아가씨처럼 다들 그런답니다. 허나 이제껏 마셔스 수림에 길잡이 없이 무사히 다녀온 사람은 얼마 없습니다.”

“그 정도야, 할아범?”

“예, 도련님과 아가씨들께서도 분명 조사하면서 들어보셨을 겁니다. 마셔스 수림이 살아있는 숲이라고요.”

“아, 들어봤지. 워낙에 생기가 넘쳐서 식물들이 엄청 잘 자란다며.”

“그냥 잘 자라는 정도가 아닙니다. 쉬운 예를 하나 들자면, 수림에 불이 나면 숲은 스스로 공기를 차단합니다.”

“뭐?”

순간 일행은 잘 못 들은 줄 알았다.

“그래서 대충 길을 잃으면 나무를 베고 불을 피워서 어떻게든 해보면 되겠지 하다가는 오히려 더 고립되기 십상입니다.”

꿀꺽.

누군가의 침 삼키는 소리가 선연히 들렸다.

“그, 그 정도면··· 그냥 숲이 몬스터인 수준 아냐?”

“껄껄걸, 그래서 길잡이가 있고, 길잡이들이 거주하는 산샤 마을이 있었던 거지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말입니다.”

코르빌이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찼다.

“아씨··· 우리 그럼 어떻게 해?”

크루딘이 표정을 구기며 일행을 쳐다봤다. 헌데 반응은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아니면 이 늙은이를 데려가십시오. 수십 년 길잡이 생활을 하면서 수림도 적잖이 오갔었습니다. 주의사항이나 필수 지식은 그래도 여기, 다 있으니 없는 것보단 나을겝니다.”

코르빌이 자신의 머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에이 할아범 뭐야, 그런 건 빨리 말했어야지! 당연히 환영이라고!”

“오, 정말 다행이네요!”

“흐응, 괜찮네 그럼.”

그런데 그런 일련의 상황들 속에서 론은 조용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이 위화감은···.’

고국 수도에서 마주했던 아이블 마탑의 마법사, 그리고 때마침 전복되다시피 한 마셔스 수림의 초입 마을.

허나 일행들은 다행이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전망대를 빠져나갈 뿐이었다.

‘그래, 내가 너무 예민한 건지도 몰라.’

그렇게 론도 이내 일행들을 따라 전망대를 빠져 나려 했는데, 그만 그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죄송하지만,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영지병들이 꺼내 들고 일일이 확인하는 수배지에 익숙한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알... 팔았던 사람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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