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73
“소리··· 말입니까?”
어떤 묘한 느낌도 아니고 소리란다.
이제껏 대화를 주도하고, 단숨에 알까지 사버린 그녀의 행동들이 이해되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더욱 궁금했다.
무슨 소리를 들었다는 걸까.
“네. 저···. 론님. 더 집중해서 들어보고 싶은데, 다시 숙소로 돌아가면 좀 그럴까요?”
“예, 뭐 당···.”
엘프의 후예인 사티넬이 무언가를 들었다는데, 그 부탁을 못 들어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론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
이제껏 한 번도 본 적 없던 사티넬의 간절한 눈빛에 그의 심장이 요동쳤다.
‘그, 그렇게 쳐다보면···.’
**
다그닥 다그닥.
여행객이 많은 고국의 수도라 그런지 돌아다니며 호객하는 마차는 꽤 많았다.
덕분에 두 사람은 금방 마차를 잡아탈 수 있었는데, 올라탄 이후로 그녀의 시선은 줄곧 아래로 고정되어 있었다. 바로 상자에 담긴 알 속에.
‘참···. 그게 그렇게 좋은가?’
아련한 사티넬의 눈빛을 떠올리며 론도 덩달아 의문의 알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티넬이 고개를 획 든다.
“예?”
갑작스런 그녀의 행동에 론이 움찔했다.
“이거 제가 만져봐도 될까요?”
“아, 예 그렇죠. 뭐 이제 사티넬 꺼니 하고 싶은대로 하셔도 되지요.”
“아아! 맞다, 그렇네요!”
어지간히 신경 쓰이는가 보다.
늘 똑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던 사티넬이 허둥대니 괜히 론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고 있자니 곧 그녀가 무릎 위에 올려진 상자 안에 있는 조그만 알을 꺼내 들었다. 아니, 드는 순간이었다.
덜컹!
돌부리 위를 지나치기라도 한 건지 마차가 들썩였다. 그리고 사티넬의 손 위에 있던 알도.
“꺄아아악!!”
“헙!”
거금과 더불어 두 사람의 온갖 기대가 담겨있던 의문의 알, 그것이 튀어 오르자 두 사람의 시선이 똑같이 따라간다.
지름 10에서 15센치의 타원형 알.
그것이 공중에 그리는 궤적을 놓치지 않기 위한 초집중이 마치 시간을 늦추는 듯했다.
그리고 그 시선을 뒤따라 두 사람의 손이 미친 듯이 쫓아가더니,
착!
마침내 사티넬이 잡았다.
그녀는 다시는 놓치지 않으려는 듯 양 무릎까지 끌어올려 알을 꼬옥 끌어안았다.
“휴우. 괜찮아, 괜찮아···.”
눈을 감은 채, 마치 알과 대화라도 하는 듯 사티넬이 읊조렸다.
‘뭔가, 어미 새 같네···.’
그 모습은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다.
알 수 없는 기운이 느껴지는 의문의 알. 아까 거래하며 잠시 대화를 나눠보긴 했었지만, 과연 태생부터 신수로 정해지는 생명체가 정말 있을까 싶었다.
신수라 하면 보통 생물이 아니다.
남다른 육체 능력은 물론이고, 특유의 고유능력이 있다고 전해지는 게 그들이다.
‘정말 신수일까?’
론의 의문이 무색지 않게 숙소에 도착한 사티넬은 다행히 여자들의 방으로 가지 않았다. 론이 묵는 방으로 온 그녀가 그대로 바닥에 앉았다.
그러기를 한참.
“뭐가 좀 들립니까?”
“분명하진 않고 희미해요.”
“그렇군요···.”
자신은 못 듣는 걸 들은 그녀였기에 내심 기대했었다. 오래전 질서의 수호자였던 엘프의 후예와 신수의 만남. 대충 두 이름만 나열해 봐도 그럭저럭 뭔가 나올듯한 조합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런 사티넬도 잘 모르겠단다.
“그래도 생명체인 건 확실해요.”
“생명체요?”
“네, 미세한 울림이 느껴져요. 그리고 제 목소리에 반응하는 거 같기도 하고요···.”
사티넬은 사실 처음 봤을 때부터. 아니, 처음 들었을 때부터 좀 의아했다. 그것은 마치 오래전 언젠가 들었던 것 같은 소리 혹은 익숙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 알 수 없는 향수 때문에 그녀는 결국 두 번째 봤을 땐 냉큼 사버렸다.
그때 판매자를 통해 알게 된 것은 딱 하나였다. 그 사람도 잘 모른다는 것. 즉, 오랜 시간 봐 온 일반인도 모른다는 말이었는데, 그랬기에 더 알고 싶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도 있었고.
바로 자신처럼 이 알의 생명체도 태생적 외로움을 공유할 존재는 아닐까 하고. 그래서 더 마음이 갔던 것 같다. 수중에 있는 돈을 다 털어 살 정도로 말이다.
“그렇군요···.”
어느 새부턴가 달라진 그녀의 분위기에 론은 그저 고개를 끄덕여 줄 뿐이었다.
자신도 모르는 무언가를 감지한 사티넬이다. 그런 그녀가 모른다는데 일단 기다려 봐야 하지 않겠는가.
점심을 숙소에서 해결하고서도 알을 끌어안은 채 가만히 있는 사티넬을 보며, 론은 홀로 경매사에 다녀왔다.
크리소더 경매사에서 모집한 임상실험자는 두 분류였다. 내상 환자와 외상환자. 판매할 물품이 다 줄 순 없기에 차도 여부만 확인할 수 있도록 소량씩 복용하게 했다.
“연락처를 남겨주시면 차도가 나오는 대로 바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오후 경매사 일정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일행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다만, 그중에 한 명이 세상 편하게 누워 자는 바람에 다른 이들이 궁금하다는 듯이 방금 막 들어온 론을 쳐다봤다.
“어이구, 숙녀분을 숙소에 홀로 재워놓고 어딜 갔다 오셨을까?”
라리사가 어서 말해보라는 듯 턱짓한다.
“잠깐 크리소더 경매사에 다녀왔습니다.”
“크리소더 경매사?”
딱히 숨길 일이 아니었기에 론은 트리마이어 셀럽 등급의 혜택과 사티넬이 가진 포션, 그리고 거기서 알까지 샀던 것까지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러니까 네 말을 요약하면, 뭔지도 모를 저 알을 사티넬이 전 재산을 탕진해서 샀다고?”
“예, 뭐 그렇습니다.”
제삼자의 직설적인 요약.
듣고 보니 좀 터무니 없긴 했다.
“이야, 사티넬한테 이런 모습이 있을 줄은 몰랐네. 항상 논리정연한 모습만 보이던 애가 웬일이래?”
늘 함께 다니던 크루딘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항상 그가 앞뒤 안 가리고 행동할 때마다 조곤조곤 논리적으로 설명하던 사티넬이었기 때문이다.
“뭐 지켜봐야죠.”
론이 팔짱을 낀 채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사티넬을 바라봤다. 대체 알에서 뭘 들었길래 자는 와중에도 저렇게 꼭 끌어안고 있는 걸까.
‘잠깐. 근데 누가 내 침대에 올린 거야?’
그런 의문에 답하기라도 하듯 라리사가 말했다.
“어머! 쟤 봐 쟤 봐! 론, 너 그 눈빛 뭐야? 뭔데 그렇게 음흉해?”
“예?”
“침대에 올려진 숙녀를 뚫어지게 쳐다본다고?! 꺄아아악!!”
“오우야. 론, 그건 좀···.”
“뭐, 뭔 소립니까!”
장난칠 때만큼은 그 누구보다 죽이 잘 맞는 두 사람. 그들 때문에 론의 입에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
다음 날은 네 사람이 같이 다니며 수도의 명소를 구경했다.
사티넬이 놀림 받는 게 부끄러운 건지 아니면 둘이 있는 게 불편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녀의 주장대로 일행은 하루 종일 같이 돌아다녔다.
물론 그 의문의 알도 함께였다.
사티넬의 허리춤에 메인 조그만 가방 셔틀레인에 쏙 들어가는 크기였기에 이동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파브렌 고원을 그냥 최단 루트로 가자고?”
숙소 인근의 한 레스토랑.
저녁을 먹으며 시작된 이야기가 자연스레 탐방으로 이어졌다.
“예, 아무래도 예정지만 일고여덟 군데다 보니, 그때그때 상행 일정에 맞추다가는 한 달 안에 다 못 둘러봅니다.”
“뭐 바로바로 가는 것도 재밌겠네.”
론의 대답에 크루딘이 끄덕였다.
“그렇다 해도 파브렌 고원은 그 자체로 명소이고, 그 옆으로는 마셔스 수림까지 있으니 오가는 사람들이 꽤 될 겁니다.”
“마셔스 수림이 아마 대륙 서부 최대의 늪지대였죠?”
열심히 고국 본토 음식을 입에 넣던 사티넬도 한 마디 했다.
“오우, 뭐야. 사티넬 말할 줄 아네?”
하루 종일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조용히 있던 그녀가 입을 열자 일행들이 모두 쳐다봤다.
“그러니까 말야, 무슨 먹성 좋은 어미새인 줄로만 알았는데, 어떻게 대화할 수 있으시네요?”
“먹성 좋은 어미새래, 푸하하하!”
“두, 두고 보세요! 분명 부화할 거니까!”
얼굴이 새빨개진 사티넬이 라리사와 크루딘에게 소리쳤다.
“눼에 눼에~”
그 후 일행들은 디저트 카페까지 들러가며 얘기를 나누다 숙소로 돌아왔다.
이틀간은 마음 편히 돌아다녔지만,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탐방이다. 고대 신앙의 흔적을 조사하고, 거기서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는 탐방.
그리고 그 첫 목적지는 파브렌 고원이었다. 처음이니만큼 몸도 풀 겸 접근성, 이동 난이도, 위험성 등이 상대적으로 쉬운 쪽으로 골랐는데, 그러다 보니 예정지 중에는 중요도가 좀 떨어지는 곳이었다.
‘뭐 그래도 다들 할 땐 하니까···.’
창가로 스미는 달빛을 보며 론도 슬며시 잠이 들었다.
***
오랜 역사가 담긴 그레고리 고국.
덕분에 당연히 볼거리는 넘쳤고 수도 이외의 지방 영지도 관광객들이 많았다.
그 때문에 워프게이트가 없는 지역이라 할지라도 상행마차나 여행 마차들이 계속 오갔기에 지체없이 고국 서부로 갈 수 있었다.
“그런데 과거에는 마땅한 운송 수단이 있던 것도 아닌데, 어떻게 파브렌 고원같이 고지대에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 수 있었을까요?”
“그러니까 말야. 예전에 이쪽 사람들이 대체로 좀 힘이 쌨었나?”
모든 걸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사티넬이었지만, 파브렌 고원은 그녀에게도 의문이었다.
해발 2,000미터 높이에 있는 파브렌 고원. 그곳에는 1미터에 이르는 벽돌들을 쌓아 올린 건물들도 있다고 했다. 그 이해할 수 없는 풍경에 지금도 매년 수많은 관람객과 연구가들이 방문한다.
“혹시 모르지. 바위 술사라 불리는 테레지아 일족일지도.”
마법 혈통 일족답게 라리사는 마냥 허황된 일은 아니라는 듯 말했다.
“맞습니다. 아무리 오래전 과거라 하나, 그 당시에도 마법 혹은 특수한 혈통의 존재들은 있었을 테니까요.”
론이 맞장구치며 사티넬을 쳐다봤다. 수천 년 전 인간과 비슷한 외모이되 초월적인 힘을 지녔던 엘프도 분명히 존재 했었으니까 말이다.
이런 복합적인 이유로 일행들의 마음은 싱숭생숭했다. 이미 수많은 연구자가 오고 간 고적이지만, 자신들이 그곳에서 어떤 미지의 무언가를 발견하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지.’
론은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게 일행 중 한 명은 오랜 과거 이 땅의 질서의 수호자 불리던 엘프의 후손이었으며, 또 한 명은 세상 귀하다는 마법 혈통 일족 중 한 명이다.
그 사실이 은연중에 론을 들뜨게 했다.
“아아. 게티아 도시 때처럼 어디 망나니 같은 애들 없나? 이런 모험에 한 번씩 나와주고 해야 멋이 사는데···.”
“······”
그렇게 일행들은 저마다의 상상을 펼치며 달리는 마차에 몸을 맡겼다.
약 이틀에 걸친 긴 이동이 끝나고,
마차에서 내렸을 땐
더 이상 고국 수도처럼 고풍스러운 양식의 건물들은 없었다. 오지 특유의 건물들이 그들을 반겼다.
“혹시 길잡이가 필요하십니까?”
수많은 관람객이 오고 가는 마차장 주위로 열심히 호객하는 길잡이들. 그 중 한 명이 말을 걸어왔다.
다만, 과연 길잡이가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머리가 희끗희끗하다는 점이었는데,
“에이, 멋지고 아름다운 나으리들. 나으리들께는 저처럼 빠릿빠릿한 젊은 길잡이가 낫지 않겠습니까? 제가 최근 파브렌 고원 외곽까지 다니고 있어서 모르는 곳이 없습니다요. 믿고 맡겨주십시오!”
아니나 다를까.
이어서 젊은 길잡이들이 노인을 밀쳐가며 호객행위를 해댔다.
“길잡이가 있으면 좋을 거 같긴 한데, 다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론이 일행을 쳐다보며 물었다.
“있으면 뭐 당연히 좋지. 우리가 모르는 것도 잘 알려줄 거 아냐.”
“찬성. 현지 사람들만 아는 게 분명 있을 거라고. 어이, 근육 마법사 웬일로 니가 옳은 얘기를 다하니?”
“뭐래는 거야. 원래 나는 옳은 말만 했구만.”
“푸훕!! 니가?!”
“이 아줌가 또 시작하네?”
“내가 분명 그 말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렇게 또다시 시작된 두 사람의 말싸움. 론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이내 사티넬을 쳐다봤다. 아무래도 이 중에는 제일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들었다.
“저 혹시 아말렉 부족에 대해 아세요?”
론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
늘어선 길잡이들을 보고 사티넬이 말했다.
“아말렉?”
“그게 누구지?”
“너 들어봤어, 아말렉 부족?”
길잡이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내 그중 하나가 말했다.
“저···. 나으리, 아우이스 부족이랑 혹시 헷갈리신 건 아니신지요?”
“맞습니다, 나으리. 파브렌 고원은 역시 아우이스 부족이지요. 이 공중 도시를 지었던 아우이스 부족에 대해서는 제가 잘 설명해드리겠습니다! 하하하.”
기대했던 답변이 안 나오자 사티넬의 아랫입술이 삐죽 나왔다. 아카데미 도서관에서 여러 자료를 찾아본 결과 이 파브렌 고원은 지금의 공중 도시가 세워지기 전, 어떤 두 부족이 영토 전쟁을 벌인 곳이라 했었다.
당연히 역사서에는 승자인 아우이스 부족에 대해서만 대부분 서술되곤 했는데, 전쟁을 벌인 또다른 부족이 있었다는 건 사실이었다.
헌데 이들에게는 아무래도 중요치 않은 정보인 듯했다. 그도 그럴 게 현재 파브렌 고원이 이렇게 인기가 많은 이유는 그 후에 아우이스 부족이 지은 공중 도시 때문이지, 그 전의 역사 때문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정말 오래전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누군가 말했다.
“껄껄걸, 혹시 이 파브렌 고원의 공중 도시 이전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겁니까? 아가씨.”
처음 론 일행에게 말을 걸었던 노인. 그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채 사티넬을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