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68
‘요 근래 너무 많은 일이 있었나···.’
가문 내 포션 사업 진행,
골든스태프 대회 본선 진출,
300골드가 넘는 금액의 사업 수익,
고대 괴수 히드라에 대한 정보.
하나같이 큼직큼직한 것들이라 그런지 현실감이 좀 없었다.
그런데 거기에 라리사의 동행까지.
물론 아직 결정한 건 없었다. 함께 가는 것부터 맞는지 의문이지만, 일단은 이렇게 믿고 함께 하려는 것 자체가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이것도 인복이라면 인복인가?’
보통 마법사가 아닌 워록의 재능이 있는 크루딘, 엘프의 후예 사티넬, 마법 혈통 라리사.
하나같이 평범한 이들이 아니다.
론의 입가가 괜히 올라갔다.
“뭐야?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딱 말하면 되지, 왜 기분 나쁘게 웃고 난리야?”
“크흠! 그냥 잠깐 입술 움직인 거뿐입니다.”
‘그나저나 같이 가도 되려나.’
솔직히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먼 타국에 미성년자가 홀로 가는 게 더 이상하다.
다만,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한 인재라는 점이다. 당장 이전에 갔던 피에타 유적만 해도 깜빡하면 죽을 뻔하지 않았던가.
‘고대 괴수 히드라, 그레고리 고국의 땅의 성수···.’
골똘히 생각하던 론은 이내 결정을 했다. 히드라의 봉인 무덤이 아니라 그레고리 고국까지라면 괜찮을 듯싶었다.
“흐음. 라리사님뿐만 아니라, 다른 두 분도 솔직히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까?”
“론, 난 무조건 찬성이라니까. 가즈아!!”
“네, 저도요!”
“흐응, 좋아. 재밌겠네.”
론은 테이블에 펼쳐 놓았던 책 중 몇 개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가 가려고 했던 곳은 여기, 바로 그레고리 고국 땅에 존재했다는 원시 신앙의의 자취입니다.”
“원시 신앙?”
“예.”
질문한 라리사뿐만 아니라 다른 두 사람도 궁금하다는 듯이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역사 및 전설서를 보면서 느낀 건데, 이 원시 신앙이야말로 고대 마법의 시초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물론 당연히 대충 주절댄 거였다.
뭐가 됐든 간에 일행이라고 모였는데, 그냥 느낌이 와서 가보고 싶다고 말할 순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아직 드러나지도 않은 어둠의 세력에 대해 언급할 수도 없고 말이다.
“호오, 고대 마법의 시초!”
“차암, 이런 거 보면 론이 괜히 잘난 게 아니라니깐. 아카데미의 틀을 벗어나 떠나는 여정! 마법 수행!”
“...”
“으음, 그렇군요. 색다르긴 하네요. 저도 학기말 시험 준비하면서 틈틈이 알아볼게요.”
역시 그나마 사티넬이 차분하다.
‘다들 그렇게 좋은가?’
세 사람은 책들을 가리켜 가며 신나 떠들었다. 한 번도 안 가본 땅이라는 둥, 동방의 땅이면 덥지 않냐는 둥, 원시 신앙이면 수화를 배운 다음에 가야 되는 거 아니냐는 둥, 혹시 모르니 그레고리 왕실 인사법부터 알고 가자는 둥.
십대의 생기발랄함이었다.
그 나이대 특유의 에너지에 론도 덩달아 젊어지는 듯했다.
“저기, 사티넬.”
“네, 라리사님.”
“론, 쟤 원래 저렇게 가끔 변태 같이 웃어?”
“네? 어···.”
그녀들의 말대로였다.
론은 그들이 플라델의 미로에 갈 때까지 흡족한 미소를 지은 채 바라보았다.
**
캄캄한 어둠.
시청각이 단절된 이 공간만큼이나 생각을 정리하기 좋은 곳은 없다.
바로 플라델의 미로.
론은 그곳에 앉아 향후 계획에 대해 떠올렸다.
‘그레고리 고국, 땅의 성수, 히드라의 봉인 무덤···.’
‘참, 아버지와 형님이 포션 제조 일손이 부족하다 했는데, 뭐라 말해야 하지? 흐음···.’
‘아! 그리고 그 골렘 마스터도! 지금 가면 대충 25년 정도 앞서가는 거니까···.’
하나하나가 큼지막한 것들이다.
세계의 존망이 걸린 것,
수십 수백 골드가 오가는 사업,
돈은 돈대로 미래의 안전은 안전대로 보장할 수 있는 것.
“흐음···.”
골똘히 고민한 결과,
동선과 중요도, 일행 참여 여부 등등을 고려하여 순위를 매겼다.
1순위는 그레고리 고국이었고, 일행들과 땅의 성수까지는 같이 찾아도 될 듯싶었다. 그리고 그다음은 모임 해산 후 바로 히드라의 봉인 무덤, 후에는 골렘 마스터.
“가문 일손 돕기가 마지막이 되어버렸군···.”
허나 어쩌랴.
알아주는 이가 없다곤 해도 다가올 어둠의 세력은 막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이미 결정한바
걱정은 시간 낭비였다.
론은 이내 계획들을 하나둘 머리에서 지워나갔다.
캄캄한 미로만큼이나 머릿속이 고요해져 간다.
‘태초에 어둠을 가르는 빛이 밤과 낮을 구분했고, 낮의 빛은 하늘이 되어···.’
그리고 그 심상 가운데 울려 퍼지는 정령사의 찬가. 미로에 가득한 마나들이 그 노래를 들으려는 듯 서로 앞다퉈 다가온다.
우우웅.
전보다 빠르고 묵직한 공명.
심장에 걸쳐진 세 개의 서클이 찬가에 맞춰 회전한다.
고작 세 개의 서클일 뿐인데 회귀 전 5서클일 때의 마나량은 가뿐히 넘어섰다. 그 정도로 정령사의 찬가로 다져진 서클은 묵직하고 강맹했다.
‘각각의 서클에서 출력하는 마나량도 회귀 전 것에 비하면 훨씬 월등하고 말야.’
서클 개수만 적을 뿐이지 뭣하나 밀리지 않는 상황.
그 여유가 론을 더욱 자유롭게 했다.
일전에 라리사와 졸업시험 준비를 하며 한 발자국 더 나아갔던 소통. 그 깨달음들이 그의 마나에 녹아든다. 아직 자연의 의지와 정령의 구분이 모호했지만, 그 모호함을 함부로 구분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저 느낀 바를 마나에 담을 뿐.
‘마법은 명령, 소환, 발동 등과 같이 딱딱한 식이 아니다.’
우우웅.
우웅.
있는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인식의 지평. 론의 마법은 한 층 더 성장했다.
우우웅우웅.
6서클에 이르기 전 최종 관문.
정팔면체의 복합마법진이 그의 손 위에 펼쳐졌다.
회귀 전후를 통틀어 처음 펼치는 것이었지만, 전혀 버겁거나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저 비어있는 면들에 어떤 마법진을 새길지 고민이었다.
“하, 하하···.”
감탄하는 것도 잠시,
론은 이내 알고 있는 진과 식들을 복합마법진에 새기기 시작했다.
“커다란 공동을 만들어 줘.”
그리고 이를 제대로 볼 수 있도록 미로를 조정했다. 일전에도 커다란 공간이 필요할 때마다 외치곤 했었는데,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미로가 확장되기 시작했다.
구구구구구궁.
얼마 지나지 않아 론의 손 위에 있던 정팔면체도 빛을 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허···. 정팔면체 마법은 처음인데, 이렇게 편해도 되는 건가···.’
정육면체 마법진에 비하면 고작 두 면이 늘어난 것뿐이었지만, 지금 이 안에서는 8개의 식들이 쉴새 없이 상호작용을 하며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원소변환, 중첩, 밀도, 속도, 집약, 폭발, 확산, 융화. 각각의 마법식들이 계속해서 마나를 빨아들인다. 그러고는 이내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정팔면체의 복합마법진은 묵직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론은 멈추지 않았다. 마치 선발전 시험대 위에서 라리사가 그랬던 것처럼.
“명색이 즉발형 마법인데, 광자화는 필수지!!”
그러고는 왼손을 떼어냈다. 덕분에 정팔면체에 진동이 심해졌지만 상관없었다. 자유로워진 왼손으로 재빨리 마나를 모았다. 두 번째 마법이었다.
그렇다.
다중 마법인 것이다.
마법은 발현 방식에 따라 크게 4가지로 나눈다. 투척형, 인도형, 즉발형, 조종형.
각각의 장단점이 있지만, 가장 번거로운 것을 고르라 하면 대부분 마법사들은 즉발형을 꼽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쉬운 예로, 적진 한가운데에 맘 편히 마법진을 만들다가는 파훼 당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즉발형 마법은 광자화 마법과 짝으로 펼쳐야 한다. 즉, 다중 마법이 필수란 얘기다.
“흡···! 간, 다.”
뇌가 분리되는 듯한 느낌과 함께 이내 두 번째 마법이 완성됐다.
슈아아악!
4서클 광자화 마법이 정팔면체 마법진을 단숨에 집어삼키더니 사라졌다.
그리고 그것이 모습을 드러낸 곳.
저 멀리 공동의 천장이었다.
“허억, 허어. 가자, 파이어 레인!”
콰아아아앙!
커다란 폭발과 함께 2서클 파이어 애로우가 빗줄기처럼 미친 듯이 떨어졌다.
쏴아아아.
슈악.
샥.
슈아아악.
“헉···.”
생각했던 것보다 범위가 상당했기에 론은 숨을 고를 새도 없이 허겁지겁 뒤로 물러났다.
콰과과과광.
공동은 아무것도 없는 그저 맨바닥이었지만, 이내 땅이 뒤집히고 터지면서 아주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하아, 하아, 하···. 하! 하하.”
웃는 건지 숨을 내쉬는 건지 모를 소리를 내던 론이 그대로 누웠다.
‘이 정도면 하급 몬스터 정도는 떼로 몰려와도 거뜬하겠구먼.’
회귀 전에도 보면, 고위 마법사인데도 용병 일을 서슴지 않던 이들이 있었다.
평판과 지위를 중요시하는 자들은 이런 이들을 보고 천하다며 무시했었는데, 그런데도 그들이 용병 일을 그만두지 않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만큼이 돈이 되기 때문이다.
몰이사냥.
최적의 지형과 몬스터들을 몰아줄 몰이꾼만 있으면, 떼돈을 버는 게 바로 몰이사냥 마법사다. 비단 몬스터 토벌뿐만이 아니라, 영지전도 및 국가 간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광역 마법을 펼치는 고위 마법사들은 애초부터 그 대우가 다르다.
“1년도 안 돼서 역전···한 건가?”
회귀 전 간신히 올랐던 5서클의 경지.
서클의 개수만 적을 뿐 보유 마나량이나 마법 이해도, 깨달음, 컨트롤, 실력 등이 이미 월등했다.
“참···.”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정말 그 성과가 드러나니 괜히 마음이 먹먹하다.
‘잘하고 있네, 나.’
론은 세상 흡족한 미소를 지은 채 미로에 드러누웠다. 적어도 지금만큼은 그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다.
***
대표 선발전 덕분인지 아카데미에서의 시간은 평소보다 빠르게 시간이 지나가는 것 같았다.
“이제 학기 말이니 다들 시험 준비 잘하도록 하세요. 특히나 실기 시험은 2서클 기초 원소 마법 세 가지입니다. 불합격 시 방학 동안 아카데미에 남아 계속 시험을 쳐야 합니다. 그래도 통과를 하지 못하면, 2학년이 돼서도 1학년들과 시험을 봐야 할 겁니다.”
“예에···.”
“네에.”
티라우스 교수의 엄중한 목소리에 자격 미달인 학생들의 목소리가 다 죽어갔다.
피식.
‘나도 회귀 전엔 저랬지. 더 심했다고 해야 하나···.’
스펜서 가문은 예로부터 불의 원소를 집중적으로 다뤄온 가문이었다. 때문에 아무리 둔재였던 그라도 2서클의 파이어 마법은 어렵지 않게 펼칠 수 있었는데, 그와 상반된다고 할 수 있는 흙의 원소는 아니었다.
덕분에 밤까지 새 가면서 시험 준비를 했었더랬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 실기시험 등록이 가능하니, 가능한 사람들은 미리미리 신청해서 일정이 밀리는 일 없도록 하세요.”
‘아, 실기는 다음 주부터구나.’
실기시험은 특정 장소에서 다 같이 보는 게 아니다. 신청한 순서에 따라 시일을 배정받고 각 시험관에게 증명하면 통과하는 식이었다.
때문에 준비된 이들은 신청이 몰리는 학기 말을 피해 먼저 보라는 얘기였다.
그런데,
어째 강의실 분위기가 묘했다.
스무 명 남짓의 소규모 강의인데, 모든 학생이 론 일행을 힐끔거리며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부럽다. 최종 선발전까지 갔던 쟤들이면, 이 정도 실기는 엄청 쉬운 거 아냐.”
“그러니까. 3서클 아니면 4서클 마법 펼치는 애들인데.”
“1학기 수석이던 플라츠도 떨어져 나가고, 우리 학년은 쟤네가 다 쓸어 먹겠다. 하아···.”
“쟤들 때문에 학년 상위권은 포기해야 겠네. 쯧···.”
“캠벨,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닌 쟤들이 있건 없건 어짜피 하위권이잖아.”
“뭣, 뭐어!?”
피식.
크루딘도 들었는지 씨익 웃으며 출입문을 턱짓했다.
“에고, 이렇게 관심받을 줄은 몰랐네요.”
“그러니까 말야, 큭큭. 그나저나 우리는 바로 신청하자. 교수님 말대로 괜히 늦게 신청했다가 학기 말에 엄청 정신없겠다.”
“예, 저도 동감입니다.”
“좋아요, 저도 그게 편해요.”
그렇게 론 일행은 강의실을 떠나려 했는데, 출입문 앞에는 웬 외부인들이 서 있었다.
고급스러운 복장의 사내들.
남색 코트에 중절모, 그리고 은색의 태양 문양이 인상적이었는데, 그런 그들이 기다렸단 듯이 론 일행에게 다가왔다.
‘저들이···. 여기엔 왜 온 거지?’
자그마치 아들렌에서만 80년을 살았던 론이다. 복장만 봐도 대충 어느 집단인지는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은 론의 의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중절모를 벗으며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트리마이어 국제은행 셀럽 담당관 모라프 세딘입니다. 론 스펜서님 맞으십니까?”
“셀···럽?”
같이 있던 일행뿐만이 아니었다. 강의실 밖을 오가던 다른 학생들도 모두 론을 쳐다봤다.
은행 사업이 귀족뿐 아니라 평민에게까지 뻗어나가면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았다. 막대한 부를 은행에 넣고 융통하는 자들을 은행에서는 셀럽이라고 부르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