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 마법사의 회귀-67화 (67/115)

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67

어둠 혹은 흑마법 세력.

단순히 열심히 해서는 어쩔 수 있는 자들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당대 7서클 대마도사였던 럼블도 소리소문없이 사라졌겠는가.

놈들이 몇십 년 전부터 계획을 짜고 움직였던 것처럼, 똑같이 계획을 짜고 사전에 털어야 했다. 덜떨어진 놈은 보내더라도 잘나고 위험한 놈들은 사전에 반드시 조져야 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위험하다 할 수 있는 최악의 괴수. 본 드래곤, 히드라, 스콜피온 킹.

흑마법사들이 네크로맨시를 이용해 놈들을 조종하기 전에 싹을 잘라야 했다. 제단의 성물을 훔치든, 사체를 훼손하든 간에 말이다.

“인생이 참···.”

회귀 전에는 유물과 유적을 보존하는 데 그리 헌신을 했었는데, 이번 생은 그런 유물들을 훼손하는데 전력을 쏟아야 할 판이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삶이 아닐 수 없다.

‘그럼 이왕 이렇게 된 거 방학 때 그레고리 고국부터 들려봐야 하는 건가.’

만약 보어헨 교수가 말한 낭설대로라면, 히드라는 봉인이 풀리기 전에 조치를 취할 수가 있다. 놈들의 전력을 상당히 깎아내는 것이다.

물론 그 낭설이 아직 사실인지, 그리고 땅의 성수가 실존하는지, 불멸을 꺾는다는 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등 확인해봐야 할 게 산더미였지만, 상당히 그럴듯한 정보임에는 틀림없었다.

때문에 론은 저녁 마법 수련도 잊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일행들이 아쉬워하긴 했지만, 그래도 세계의 존망이 걸린 일인데 어쩌랴.

그렇게 홀로 찾아온 도서관.

곧장 2층의 역사 서적 코너로 가려 했는데 웬 도서관 직원이 붙잡았다.

“론 스펜서님 맞으시죠?!”

“아, 예···.”

“최종 선발전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도서관 직원들도 가서 봤었거든요, 헤헷. 대회 본선 때도 응원할게요!”

“아아, 네. 감사합니다. 그럼.”

“아차차, 제일 중요한 걸 깜빡할 뻔했네요!”

“예? 뭐가 있습니까?”

“다름이 아니라 스펜서 영지에서 론님 앞으로 우편 보낸 게 있어서요.”

“우편···. 아!”

생각해보니 연락 올 때가 되긴 했었다.

왕실 간담회가 있고 난 후,

론은 당시 국왕과 얘기 나눴던 특제 포션에 관해 편지를 보냈었다. 왕실 독점 납품 사안은 상당한 이슈였기에 지체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 하루 만에 답장이 왔었다.

가족들의 온갖 칭찬과 격려가 담겨있던 편지와 더불어 포션 사업의 실질적 경영자나 다름없던 머라이센의 글도 있었다.

『 매우 좋은 소식이군요. 이를 잘 활용하면, 단번에 해외 시장도 뚫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사업 진행도에 따라 종종 편지드리지요. 』

직업병인지 훨씬 어린 론에게도 존대하던 머라이센의 사업 수완. 출시한 지 이제 겨우 두 달이 되어가는데, 해외 시장 얘기까지 해버리는 바람에 괜히 론의 심장이 두근댔었다.

‘과연 어떤 편지가 왔으려나.’

일단 그간에 보고 받은 내용은 아들렌 왕실 앞으로 상품 등록 및 특허권 등록과 더불어 왕실 담당 인사가 오고 간 결과 독점 납품이 승인됐다는 것까지였었다.

론은 빈 테이블에 가서 직원에게 받은 서신의 실링 왁스를 서둘러 뜯었다.

『 론, 요새 골든스태프 대회다 뭐다 해서 어수선할 텐데, 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아무리 선발전을 치른다 해도 3학년들의 기량이 높은 건 어쩔 수 없으니 그러려니 하거라. 너는 그저 네 길을 가면 된다. 그런데 방학에는 집에 오는 게 어떻겠···.』

일단 첫째 형 드로고의 안부 편지.

피식.

론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최종 선발전이 엊그제였던 만큼 소문이 퍼져나가기엔 좀 일렀나 보다.

‘내가 출전권을 따낸 걸 알면 어떻게 되려나···.’

그렇게 미소를 띤 채 론은 편지들을 넘겼다. 가족들의 안부와 레비의 장난 어린 글들. 그리고 마지막에는 역시 머라이센의 서신이 있었다.

『스펜서 포션 사업 보고서』

‘으음?’

회귀 전 유적관리단의 부단장 직위까지 있었던 론이다. 웬만한 보고서는 다 경험했었는데, 눈앞의 것은 대충 허투루 만든 게 아니었다.

‘과연 부르카 일가라 이건가.’

론의 아버지 에레드가 머라이센의 부르카 일가에 대해 몇 번 얘기한 적이 있었기에 어느 정도 기대는 했었는데, 일단 시작부터 나쁘지 않았다.

모든 일에 있어 규와 모를 갖추는 것은 번거로울지라도 임하는 자세와 전문성을 갖추게 만들기 때문이다.

론은 고개를 끄덕이며 해당 서신의 페이지를 넘겼다.

공사보고서, 계약보고서, 매출보고서, 상황보고서. 주제별로 정리가 되어 있었고, 항목별 지출 사항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금액표시까지 되어 있었다.

‘어우, 이 사람 보게. 시작부터 아주 제대로구먼.’

론은 자신이 학생인 것도 잊고 마치 잘나가는 귀족이라도 된 듯 꼼꼼하게 보고서들을 살폈다.

‘제조장은 확실히 완공이 됐나 보군.’

‘모든 원재료 수급과 포션 유통은 부르카 상단에서 담당하고···.’

‘크으, 지출 비용 봐라. 역시 포션 사업만큼 수익성 높은 게 없다니까.’

빠르게 매출보고서까지 넘어간 론은 상위에 표시된 지출 항목들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오르파 잎, 심층수석, 랄펜 거미의 독, 다프라네스의 이빨 하나같이 값싼 재료들이었다. 보고서대로 수백 킬로에 해당하는 양을 샀지만, 그 비용은 채 20골드를 넘지 않았다.

‘음? 잠깐만. 뭔데 벌써 삼백 킬로, 사백 킬로씩 재료를 사는 거지? 벌써 주문이 그렇게 많이 들···.’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하던 론은 그 끝부분에서 눈이 부릅떠지고 말았다.

‘파, 팔백 골드?!’

“허, 허어···.”

아직 두 달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총매출액이 자그마치 팔백 골드가 넘었다.

프리미엄 이미지 고착화를 위해 머라이센은 회복 포션 중 가장 신용 받는 라우리카 포션보다 값을 더쳐서 출시했었다. 그리고 그 금액은 개당 2골드 50실버.

초반에 당연히 말이 많았었다.

하지만 여러 차례의 설득이 있었고, 결국 머라이센의 손을 들어주었었다. 그런데 그가 그것을 가지고 이렇게까지 판을 벌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왕실 군부를 비롯해 크고 작은 부서에 납품하기로 한 개수만 200여 개였다. 그런데 머라이센은 한 발짝 더 나아가 왕실 독점 납품권을 빌미로 해외 분쟁국 및 내전을 겪는 국가에도 손을 뻗쳤다.

마도왕국 아들렌에 독점 납품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신용과 그 효력을 보장하는 것이었기에 적잖은 국가들이 계약에 응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얻은 포션 대금과 계약 선수금이 총 팔백 골드에 육박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의 종지부.

『 이익 배분 계약 조항대로 론 스펜서님의 계좌(트리마이어 국제은행)로 328골드 40실버 17쿠퍼를 입금해드렸습니다. 영수증은 밑에 첨부했습니다. 』

“허···.”

320골드면 웬만한 영세 영지의 한 해 수익은 가뿐히 넘는 수준이었다.

실감이야 당연히 나지 않았다.

본가를 비롯한 방계 가문들도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수익을 봤을 것이다.

투자 대비 엄청난 고수익.

그 후로 론은 연신 입을 뻐끔거리며 머라이센의 보고서를 읽는 둥 마는 둥 한 장 한 장 넘겼다. 그리고 마지막 장. 그의 아버지 에레드의 편지가 있었다.

『 론, 먼저는 포션 사업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구나. 당대 가주로서 기쁘기 그지없다···.』

긴 서론과 안부, 그리고 칭찬 등등이 지나가고,

『 그런데 말이다. 재료는 그렇다 쳐도 제조법의 기밀 때문에 지금 첫째 녀석과 나, 둘이서만 제조하고 있는 실정이다. 근데 머라이센 저 녀석은 미친 듯이 자꾸 주문을 받아와! 물론 사업 수완이 대단하단 말이다. 네 도움이 필요할 것 같구나. 지금 구두 계약한 것까지 치면 수백 병이다. 방학 때 꼭 오거라. 』

“크흠, 흠···.”

편지 중간에 펜으로 북북 그은 것을 잘 살펴보면 분명 욕인 것 같았다.

‘일이 잘 풀려도 문제네. 참···.’

포션 사업도 잘 풀리고, 생전 만져보지 못한 돈도 쥐어보는 등 경사임은 틀림없었다.

허나 론은 지금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어둠의 세력.

누가 알아주는 것도, 성공하면 어떤 큰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회귀 후 스스로 결정한 일이었다. 어둠의 세력은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수익 지분을 드리든가 해야겠군.”

제조자의 임금 상향 안과 더불어 론의 수익 지분의 일부를 본가에 양도한다는 답장을 서둘러 쓰고는 바로 우편 전송기를 통해 보냈다.

‘아! 그러고 보니 골든스태프 최종 선발전에 뽑혔다는 건 깜빡했네.’

편지를 보내고 나오며 론이 괜히 입맛을 다셨다.

“뭐, 본선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으니까.”

**

2층 역사 서적 코너로 돌아온 론.

그는 두 가지를 키워드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땅의 성수와 그레고리 고국.

사실 성수라는 용어는 사람들에게 꽤나 친숙한 단어다. 당장 수도에 나가 성직자나 교단을 찾아가면 어렵지 않게 그 용어를 들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론은 그 외에도 하나 더 알고 있는 게 있었다. 바로 원시 신앙.

회귀 전 유적관리단에 있다 보니 오랜 유물과 기록들에 관해 연구할 수밖에 없었는데, ‘성수’라는 말은 교단과 같은 근현대 신앙이 아닌 원시 신앙에서도 그 연원을 찾아볼 수가 있다.

오랜 과거,

나약한 신체 능력으로 겨우 생존을 연명하던 인간이 어떻게 만물의 영장(靈長)이라는 위치에 오를 수 있었을까.

인간은 어느 새부터인가 이지(理智)를 갖추기 시작했고, 집단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끝내는 강한 짐승과 몬스터까지도 제압했다.

이지와 집단생활.

그 시초가 바로 원시 신앙이다.

나약하던 인간은 거대하고 강맹한 자연을 숭배했고, 그런 절대 존재에 대한 믿음의 공유는 집단을 구성케 했다. 그렇게 집단을 움직이는 규율이 만들어지고, 그 규율 안에는 당연히 그들이 섬기는 자연물, 토템 또한 존재 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성수’였다.

자연에 대한 강렬한 믿음과 염원으로 힘을 얻었던 고대인들.

론은 그들을 떠올리며 생각했었다. 그들이 바로 마법사의 시초는 아니었을까 하고.

뭐 어쨌든 지금은 그런 원시 신앙 중 성수를 토템으로 삼은 집단에 대해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한 곳 중 히드라와 연관이 있는 곳···.’

이미 지역적으로는 그레고리 고국이라는 단서가 있었기에 수많은 원시 신앙, 고대 전설 중에서 상당량을 추릴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 그레고리 고국, 성수, 히드라와 교집합을 이루는 것은,

“없네?”

정말 없었다.

그레고리 고국과 성수는 그 땅에 있는 이콰타 폭포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었지만, 고대 괴수 히드라에 대한 정보는 어디에도 겹치지 않았다.

“하···. 그러면 히드라에 대한 것까지 찾아서 대조하는 식으로 해야 하는데···끄흥···.”

어떻게 보면 그게 당연한 수순이고 정석이었다. 다만, 론은 낭설을 듣고 단번에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 괜히 낭설이 아니었다.

결국 밤이 깊도록 론은 플라델의 미로도 가지 않은 채 독서 삼매경에 빠졌다.

사락.

사락.

사락.

학생들이 하나둘 돌아가고,

론의 책장 넘기는 소리만 가득한 도서관 2층.

그래도 론이 회귀 전 유적관리단에 있으며 쌓은 내공이 허상은 아니었는지 대략적인 정보는 찾아냈다.

태초,

이 땅에 생명의 에너지가 충만할 때, 서서히 그 형상을 갖춰간 자연과 달리 혼돈으로 갑작스럽게 생겨난 존재들도 있었다. 바로 마계의 주인이 될 자들.

그런 존재들의 파편이자 피조물 중 하나가 바로 고대 괴수 히드라였다. 자연의 형상을 입되 그 품은 성정은 땅의 것이 아니었다.

끝없은 혼돈의 파편답게 히드라는 땅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파괴했다. 그렇게 온 땅이 혼돈으로 머물 거라 예상한 순간, 신들은 혼돈과 그 파편들을 이 땅에서 몰아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자연의 형상을 취한 몇몇 피조물들은 이 땅에 그대로 남겨뒀다고 했다. 봉인한 채로 말이다.

“후우···.”

뭔가 끝맛이 애매했지만, 이것이 관련 자료였다.

론이 눈을 감고 고개를 젖혔다.

사실 땅의 성수라는 직접적인 명시도 없었고, 봉인이 어떻게 이뤄졌는지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도 없었다.

다만 쓰인 표현 중에 ‘땅’이란 말은 적잖이 등장했다. 그리고 그 ‘땅’이 의미하는 것은 이 땅의 유한함과 질서를 의미했고.

“결국···. 시도해 봐야 안다는 거군.”

사실 정확한 답을 바라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정말 쉬운 답이 있었으면, 왜 히드라가 이제서야 부활했겠는가. 진즉에 세상에 나타났어야 했다. 즉 어둠의 세력들도 모호한 정보들 속에서 한참을 헤맸단 얘기다.

다만 여기 있는 론은 회귀를 통해 그 정보를 역으로 쥐고 있다는 게 특이점이었지만.

봉인 해제 혹은 봉인 강화에 대한 정보는 당연히 없었다. 허나 땅의 성수라는 정보와 놈이 봉인된 장소는 알고 있었기에 충분히 가 볼만 했다.

대륙 북동부의 알펜샤 왕국.

당시 히드라는 봉인이 풀리자 수천 년간 자신을 짓눌렀던 알펜샤 왕국의 땅을 송두리째 밀어버렸다.

맹독과 지옥의 불이 떨어진 그 땅은 회귀 전 론이 죽을 때까지 불모지가 되었었기에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전에 봉인 마법이나 좀 확인해 봐야겠군.”

“봉인?”

‘음?’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감겨 있던 론의 눈이 떠졌다.

라리사다.

그녀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론이 테이블 위에 펼쳐놓은 수많은 책을 살펴봤다.

“뭐 어디, 조사라도 가시게요?”

“어···. 그러게 말입니다. 하하···.”

“나도 참 유별나단 소리를 많이 듣긴 했는데 넌 정말 대단하다. 골든스태프 대회 본선이 코앞인데, 이렇게 옛날이야기나 찾아볼 시간도 있고.”

“칭찬이죠?”

그러면서 론은 품에 있던 회중시계를 확인했다. 벌써 미로에 들어갈 시간인 자정이 됐나 싶었던 것이다.

“자정 맞아. 그래서 저기 애들도 오고 있잖아.”

라리사의 말대로 곧이어 사티넬과 크루딘도 도착했다.

“뭐야, 론. 무슨 급한 일 있는 줄 알았는데, 고작 도서관에서 책 보는 거였어?”

“예, 찾아볼 게 좀 있어서.”

“그레고리 고국, 원시 신앙, 땅의 토템, 알펜샤 왕국의 역사, 고대 괴수의 전설···.”

책들을 하나하나 살피는 사티넬.

밖에서 마법 수련을 꽤나 열심히 했는지 그녀의 체취가 은근히 풍겨온다. 킁킁.

“혹시 론님, 방학 때 탐방 갈 곳 알아보고 있던 거예요?”

고개를 획 돌린 그녀가 동그란 토끼 눈으로 쳐다본다.

‘귀, 귀엽네.’

“크흠, 흠. 예 뭐.”

아이 같은 피부와 조각 같은 이목구비에 론은 괜히 침을 꿀꺽 삼켰다.

“뭐야? 너 왜 갑자기 얼굴을 붉히고 난리야? 설마 사티넬 좋아해?”

“옛, 예?!”

순간 론이 엉덩이를 들썩였다.

팔십 먹은 노인네와 열여섯 소녀!

‘헙!’

그는 마치 범죄라도 저지른 것마냥 당황했다.

“흐응? 얘, 놀라는 거 봐라. 푸훕! 맞네, 맞어! 어머, 사티넬 이거 실화니? 좋겠다, 얘. 어머~”

“넷?!”

라리사의 호들갑에 론과 사티넬의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큭큭큭, 역시 1학기 때 론이 기사 서약을 할 때부터 알아보긴 했지. ‘사티넬, 내가 널 지켜줄게!’ 아마 이랬었지? 푸하하하하!”

“무, 무슨 기사 서약입니까!”

“어머, 뭐야! 론, 너 의외로 낭만적인 구석도 있구나! 그래서 사티넬 받아줬어? 응? 받아줬어?”

“극, 그, 그런 게 아니에요!!”

사티넬이 고개를 푹 숙이며 소리를 빽 질렀다.

“정숙 해주세요. 도서관입니다.”

시끄러워진 2층에 결국 도서관 직원이 나타났다.

“예에.”

“네, 죄송합니다아~”

킥킥킥.

큭큭큭.

직원이 가고 나서도 크루딘과 라리사는 소리죽여 웃어댔다. 어째 이럴 때는 또 죽이 잘 맞는 둘이다.

“그나저나 론, 나는 네가 가자고 하는 데면 무조건 찬성이야. 그레고리 고국? 난 무조건 가능.”

“예?”

“큼, 흠. 그럼 저도 같이 가요.”

어느새 얼굴색이 돌아온 사티넬도 한쪽 손을 번쩍 들며 동의했다. 본인은 전혀 생각도 안 했는데, 크루딘과 사티넬은 벌써부터 같이 갈 기세다.

“뭔데 그렇게 다들 찬성하고 난리야?”

“뭐긴. 플라델 대선배님께서도 하셨던 마법 수행이지.”

“엥?”

“겨울 방학 때도 셋이 남부지역에 탐방 갔었거든요, 도시도 구경하고, 유적들도 보고, 몬스터 토벌도 하고 그랬는데, 정말 재밌었어요! 배우는 것도 많았고요!”

사티넬이 활짝 핀 얼굴로 말했다.

‘저기요, 피에타 유적에서 다들 죽을 뻔했던 건 잊었습니까?’

두 사람의 호평에 론은 의외라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잊은 게 아니었다.

오히려 똑똑히 기억하고 있기에 그런 것이었다. 그런 위험한 일이 있었지만, 크루딘과 사티넬은 얻어 가는 게 훨씬 많았다. 어린 나이에 동료애는 물론이고, 크루딘은 선천병을 해결했으며, 사티넬은 제 조상의 힘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위험한 건 맞지만, 그 모험이 그들을 더 성장케 함을 알기에 그러는 것이었다.

“아아, 너네 한창 유명했던 그 외부활동 보고서가 그거야?”

“아 네, 맞아요.”

“호옹, 그으래?”

“네!”

라리사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뭔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나도 정했어.”

“예?”

“결심했다고.”

“뭐, 뭘 말입니까.”

“너네가 가는 거기, 나도 같이 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