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 마법사의 회귀-65화 (65/115)

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65

사람들은 이상(理想)을 꿈꾼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

자신이 목표로 하는 것,

자신이 도달하고자 하는 곳,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 등등.

하지만 원한다고 모두가 가질 수 있는 게 아니기에 이상(理想)이다.

아카데미의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저마다 이상을 품고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왕국의 엘리트를 넘어 세계 최고의, 역사에 남을 최고의 마법사를 꿈꾸면서 말이다.

한명 한명이 치열하게 경쟁했고, 그 속에서 쉼 없이 배우며 갈고 닦은 그들이다.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그런 인재들.

하지만 그런 그들도 압도적인 재능 앞에서는 한낱 범인(凡人)에 지나지 않았다.

‘허···. 방금 뭘 본 거였지?’

‘그냥 자연재해 아니었나···.’

‘케스케이드 일족이 사기인 거야 아니면 저 라리사가 사기인 거냐?’

‘마법 혈통은 원래 나이가 들어가면서 재능을 피우는 거 아니었나? 그래서 대대로 골든스태프 대회에서는 활약 못 한 거로 아는데···.’

‘그러니까. 십대 때는 오히려 마법진 마법사의 수준이 훨씬 높다고 알고 있었는데···. 하아, 근데 십대 때부터 저러면 진짜···.’

적지 않은 학생들이 상대적 박탈감에 허우적댔다.

그만큼 수준 높은 선발전이었고,

많은 이들의 마음 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는 교수들도 반응만 좀 달랐지 마찬가지였다.

“허허···. 앞으로의 마법은 저들이 이끌어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군요.”

“아무리 케스케이드 일족이라지만, 열여덟에 대기의 흐름마저 손댈 정도라니···. 과연 일족의 대표라 이건가.”

“재밌는 건 저 라리사와 론이 최근부터 같이 다녔단 겁니다.”

“잘난 것들은 서로를 알아본다 이겁니까? 껄껄껄.”

“뭐가 됐든 저 둘 덕분에 이번 대회에서는 체면 좀 피겠군요.”

“한 명이 마법 혈통이라는 게 아쉽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대표 선발전은 끝이 났다.

최종 결과는,

1위 라리사 케스케이드

2위 론 스펜서였다.

마지막에 라리사가 쓰러지는 이슈가 있긴 했지만, 럼블이 즉시 확인한바 마나 고갈로 인한 가벼운 탈진이었다. 때문에 출전권을 따낸 최종 2인에는 변동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최종 2인이 있는 곳.

특유의 약품 냄새가 실내에 가득하다.

아카데미 내 치료실이었다.

“선발전 끝났다고 너무 편하게 자는 거 아냐?”

하얀 침대에 누워있는 라리사를 보며 크루딘이 말했다.

말은 저래도 나름 걱정의 표현이다.

아까 시험대 위에서 그녀가 쓰러지자 제일 먼저 달려와 호들갑을 떤 게 바로 그였으니까 말이다.

피식.

괜히 론의 입가가 올라갔다.

“그나저나 라리사님, 정말 대단했어요. 연습할 때와는 너무 딴판이어서 얼마나 놀랐는지.”

“누가 아니래? 하아···. 론도 그렇고, 하여간 있는 것들이 아무튼 더 한다니까.”

그런데 놀란 건 그들 뿐만이 아니었다.

론도 아까 라리사의 마법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었다. 둘이서 따로 연습할 때도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협곡 일대를 뒤덮었던 커다란 적란운.

보통 구름을 형성할 정도의 마법을 일으키려면, 소모되는 마나도 마나지만 광범위한 기압 층까지 건드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게 과연 그녀 수준에서 가능했던 건지 의문이었다.

적어도 요 며칠간의 모습으로 보았을 때는 아니었다.

그리고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적란운에서 내리치던 벼락까지.

론은 분명 자신이 유례없는 흔적을 남겼다고 생각했는데, 라리사의 것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적란운에서 뻗어 나온 벼락은 절벽을 아예 뜯어내다시피 해버렸으니까.

그 때문에 론은 추측했다. 분명 요 며칠 사이에 그녀가 엄청난 깨달음을 얻은 게 아니었을까 하고.

물론 그 실상은 흑석 목걸이로 인한 우연이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가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게요, 점심시간도 다 끝나가네요.”

최종 선발전으로 인한 휴강은 오전뿐이었다. 그래서 점심도 안 먹고 쭈욱 이 치료실에서 죽치고 있었던 것인데, 시간이 다 된 것이다.

“후우. 그래, 면담 잘해라. 끝나고 얘기 좀 해주고.”

“예, 그럼 이따 뵙지요.”

“네!”

반면 론은 총장과의 면담이 바로 잡히는 바람에 이 치료실에서 기다리게 되었다.

두 사람이 강의를 들으러 가고, 조용해진 병실.

“점심시간 끝나고 오신다 했는데 그게 언제려나···.”

기다리는 동안 흑석 목걸이부터 해서 앞으로의 일들을 찬찬히 생각해보려 했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무언가 아까와는 다른 느낌.

론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흠칫.

무감정한 눈빛이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라리사가 일어난 것이다.

“일어났으면 말을 하지 그랬습니까. 조금 전까지 크루딘하고 사티넬이 있다 갔습니다.”

“알아, 근데 놓칠 거 같아서.”

“예?”

서로 다른 질문, 다른 대답을 하는 듯한 붕 뜬 대화에 론이 고개를 갸웃했다.

“마법사와 정령사, 차이가 뭐라고 생각해?”

“...”

마냥 무감정하고 멍한 눈빛이 아니다. 신체활동에 필요 이상의 신경을 쏟지 않은 것이었다. 그녀는 지금 온 신경을 머릿속 생각에 몰두 하는 듯했다.

‘마법사와 정령사라···.’

갑작스런 질문이었지만 그녀의 때아닌 진지함에 론이 아는 바를 풀어냈다.

“둘 다 자연현상을 일으킨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마법사는 직접적인 주체자이고, 정령사는 주체 격인 정령(精靈)과 소통하는 영술사 정도라 해야겠죠.

발현 메커니즘 측면에서는 마법사는 본인의 마나를 매개로 현상을 일으키지만, 정령사는 정신력을 통해 정령과 교감을 하는 차이가 있구요.”

조용히 듣고 있던 라리사가 입을 뗐다.

“일족과 함께 있을 때 어른들이 늘 그랬어. 술법으로 자연의 근원에 다다를 수 있다면 최고의 바람술사가 될 수 있다고. 그런데 난 아까 내 서클의 마나를 다 끄집어낸다고 해도 일으킬 수 없는 바람의 마법을 일으켰어.”

“예 봤습니다.”

“내가··· 내가 닿은 건 그 자연의 근원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그 파편인 정령이었을까.”

라리사가 이불 속에 있던 손을 빼내더니 천장을 향해 뻗었다. 마치 그때의 느낌을 다시 느껴보려는 듯이.

“처음이었어. 게다가 너무 순간이었지. 그래서 벌써 희미해.”

자연의 근원과 정령.

참 모호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회귀 전 언뜻 들었던 것 같다. 마법 혈통들은 정령사들을 우습게 여긴다고.

둘 다 자연과 소통하려는 자들이지만, 마법 혈통은 자연의 근원에 직접 도달하려는 고고한 자들이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자연의 파편으로부터 생긴 정령과 소통하려는 자들을 그 아래 수준으로 치부한다고 들었었던 것 같다.

자연의 근원과

그 자연의 파편으로부터 생긴 정령.

“일전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자연은 마법진과 마법식에 반응하는 걸까 하고. 자연은 인간의 마법 그 이전부터 존재하던 것들이었잖습니까.

흔히들 말하지요.

상식을 넘어선 게 마법이라고.

그런데 그 마법은 어떤 초월적인 미지의 무언가가 아니라, 식과 진이라는 치밀한 법칙이라는 거죠.

그렇다면 그 법칙이란 무엇일까요.

제가 얻은 깨달음은 이름 혹은 약속이었습니다. 오랜 태초의 자연에 대한.”

“태초의···자연?”

“예. 그 머나먼 이름을, 우리 나름의 방식대로 부르는 게 아닐까 하고요.”

지극히 개인적인 깨달음이었다.

태초에 이르지 않는 한 짐작할 수밖에 없는. 과연 저 인간의 방식을 어떻게 허락하고 반응하게 됐는지 등 모호한 건 수두룩했지만, 그게 바로 론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었다.

“태초의 자연, 태초의···.”

라리사는 어느새 편안한 얼굴로 다시 잠들었다. 생각에 잠겨 또 자는 척하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그녀가 던진 화두는 론에게도 분명 생각할 거리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치료실에 다시금 정적이 쌓여가던 가운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갈까?”

“예.”

럼블이었다.

플라즈마를 발하는 구체, 세 개의 시계가 겹친 특이한 구조물, 온갖 기물이 진열된 장식장.

이전에도 한 번 왔던 곳, 총장실이다.

이제 겨우 두 번째인 어색한 공간에 어째 익숙한 게 눈에 들어왔다.

“받으셨군요.”

“으음? 아아. 네 아버지, 스펜서 남작이 여러모로 신경 좀 써줬더구나. 많이도 보내 줬지, 껄껄껄.”

그의 집무 책상 위에 놓인 붉은색 포션. 겨울 방학 때 론이 제 영지에서 만들었던 그것이다.

“들어보니, 그냥 칭찬하는 게 아니라 전부 네 공처럼 얘기하던데, 사실이냐?”

만드리안 트롤을 기절시키고, 특급 포션의 배합까지 알아낸 걸 말하는 듯했다. 당시 오랜 고서적에서 그 자료를 얻었기에 가능했다고 이미 말했던 내용이다. 그럴듯하게 포장했던 기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이는 부분은 없었다.

“예. 맞습니다.”

“허허···.”

“운이 좋았지요. 오랜 고서적에서 보물 같은 양피지 조각을 찾지 못했다면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정말 불가능했을까?”

“예?”

럼블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본다.

‘저기, 총장님. 요 근래 활약 좀 했다고 너무 올려 치진 마십시오.’

자그마치 특급 포션이다.

각성 효과가 있는.

과거 엘릭서를 만들었던 벨데레르 초대 탑주의 역작 중 하나란 말이다.

물론 럼블에게 준 것은 그 하위형 라이트 버전이지만, 회복 효과만 보더라도 이미 기존의 것들은 가뿐히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걸 고작 십대가 만들었다?

만약 그렇게 소문이 난다면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을 것이다.

잘난 척도 적당히 해야 하는 법.

때문에 총장의 올려 치는 발언을 론은 애써 모르는 척했다.

“뭐 그건 그렇고, 축하한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긴 했는데, 이렇게까지 격차를 내며 출전권을 따낼 줄은 몰랐구나.”

“감사합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그놈의 운은···.”

운.

참 편한 변명이 아닐 수 없다.

귀찮은 논쟁을 피하는 것은 물론이고, 개인의 역량이 아닌 외부 조건으로 그리된 것이라며 겸손을 떨기에도 매우 좋다.

세기의 현자이자 7서클 대마도사에 이른 럼블이다. 때문에 모를 수가 없었다.

론이 선발전에서 보인 툼스톤의 속도식은 절대 요행이 아니었다. 치열한 고뇌와 수련, 그리고 그 열정의 결과였다.

하지만 끝끝내 운으로 치부하는 론을 보며 럼블은 더 이상 그 얘기를 단념했다. 그 또한 과거에 그런 관심쯤은 수도 없이 받아 본 천재였고, 그것이 얼마나 귀찮은지 알았으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이번 2학기는 아주 네 녀석 중심으로 돌아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구나. 플라츠가 이끌던 연구회 일부터 해서, 대표 선발전까지. 끄흥···.”

솔직히 말하면 론이 자신의 손으로 해결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플라츠와 어울리다 보니 어느새 세력 놀이가 되어버렸다. 결국 아카데미 측까지 끌어들였고 총장이 나서게 만들었다.

‘덕분에 통쾌하다 못해 아주 싸할 정도로 놈들을 축출해버렸었지.’

거기다 세습 작위 수여라는 유례없는 국왕의 응원이 있었고, 이것이 플라츠 일행의 선동과 맞물려 아카데미가 떠들썩해지는 바람에 선발 일정마저 앞당겨야 했다.

그런데 국왕이 그 유례없는 보상을 걸게 만든 것도 론 때문이었다.

“크흠, 흠. 열심히 하겠습니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론은 그저 진부한 대답으로 때울 뿐이었다. 그게 바로 학생의 특권 아니겠는가.

탐탁지 않은 눈빛을 보이던 럼블은 이내 본래 부른 목적을 꺼냈다.

“본래는 출전 학생 둘에게 같이 얘기해야 하는데, 라리사는 탈진으로 쓰러져 버렸지.”

“예, 아쉽게도···.”

“뭐 그건 나중에 차차 얘기해도 되니까. 그런데 아까 말이다. 선발전 시험대 앞에서.”

럼블이 말을 하다 말고 론을 유심히 쳐다봤다.

“시험대 앞이요?”

괜히 뻘쭘해 그의 뒷말을 따라 하는 론.

“라리사의 목걸이를 뜯어서 아주 없애버리더구나.”

“예, 그렇···예?!”

너무 갑작스러웠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총장의 발언에 론의 눈이 부릅떠졌다.

“추첨하기 전부터 영 껄끄럽기는 했단다. 그래서 뭔가 싶었는데, 네가 아주 확신에 차서 없애더구나? 실제로 그 후엔 그 꺼림칙한 기운도 사라졌고.”

“아, 예···.”

“뭔가 알고 있는 게냐?”

럼블 아그네스 카운트.

세기의 현자이며 당대 7서클 대마도사다.

과연 그에게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해도 되는 걸까.

론은 회귀 전 그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