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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가 마법사의 회귀-64화 (64/115)

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64

“흐음···.”

럼블이 눈을 가늘게 떴다.

모든 학생이 적색 절벽을 보느라 정신이 팔렸지만, 그의 시선은 오로지 론만을 향하고 있었다.

4서클의 원소변환 돌, 유능한 3서클 마법사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그런 4서클 툼스톤의 크기와 밀도조절, 이 또한 유능한 3서클 마법사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속도는 아니었다.

복합마법진에 쓰이는 속도식은 딱 정해진 식이 아니다. 식 자체는 3서클의 개념이지만, 시전자의 수준에 따라 느릿느릿한 속도가 되기도 하고 또는 광속에 비견할만한 속도를 내기도 한다.

그런데 방금 론이 보인 속도식은 그저 그런 학생 수준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파공음이 들릴 정도였다.

속도식에서 중요한 건 두 가지.

매개체의 회전력과 발사 압력인데,

회전력과 발사 압력 수치를 높일수록 해당 마법의 발사속도는 빨라지지만, 그만큼 발동시키기가 버겁다.

물리적 계산과 더불어 소요되는 마나량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인데, 여기서 더 문제는 이게 바로 정다면체의 복합마법진에 불균형을 초래한다는 거다.

보통이라면 마법이 발동되기도 전에 그 복합마법진이 박살 나야 했다. 3서클은 물론이고 4서클이라 해도 쉽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론은 해냈다.

그가 지금 짓고 있는 저 후련한 표정이 그 증거다. 허나 그렇기에 더 이질적이고 괴리감이 밀려올 수밖에 없었다.

‘허허···.’

이미 동 나이대는 아득히 넘어섰다.

압도적인 균형력, 유지력, 부동심, 마나 컨트롤 등이 그의 마법을 지탱하고 있었다.

‘게다가 발상도 아주 독특해.’

럼블은 그제야 적색 절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적당히 충격을 가해 흔적을 남기는 수준이 아닌, 아예 절벽을 반으로 가르듯 그어버렸다.

“과연 간담회 때 말한 대로 자신 있긴 했었나 보구나, 론.”

“간···담회요?”

갑작스런 간담회 얘기에 론이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 이내 떠올랐다. 그랬다. 그때 그런 얘기가 있긴 했었다. 국왕의 치하를 골든스태프 대회의 우승 보상으로 돌렸을 때, 국왕은 그에게 물었다. 그럼 우승할 자신 있냐고.

그리고 당시 론은 말했었다.

“예.”

지금처럼.

시험대를 내려오자 관전하던 학생들의 온갖 시선이 느껴졌다. 경악, 부러움, 감탄, 자괴감, 기쁨 등등.

“어이어이, 믿고 있었다고오!!”

“우승까지 가즈아!!”

“어짜피 우승은 론 스펜서!”

론에게 베팅을 했던 이들은 1등이 확정이었기에 거의 축제 분위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런 소란 속에서도 알 사람들을 충분히 알 것이다.

‘툼스톤이 떨어질 때 궤적 깔끔했던 거 봤지?’

‘응, 앞쪽에 밀도 물은 것부터 해서 방향 조절까지 다 계산한 거 같던데···.’

‘파공음이 생길 정도의 속도식이면 대체 수준이 얼마나 높은 거야?’

‘저런 애가 어떻게 1학년이지···.’

‘속도식도 속도식이지만, 발상 자체가 진짜···. 그냥 또라이다, 또라이. 아주 미친놈이라고.’

그들에게 론은 그냥 좀 잘난 1학년이 아니었다. 졸업 후 사회에서 마주할 그런 또 하나의 경쟁자 수준도 아니었고.

3차에 걸친 선발전.

아직 차례가 남았지만, 관전하던 모든 학생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론의 마법과 그 실력을.

그러한 관심 세례를 받으며 론은 일행에게로 돌아왔다.

“미련 없이 펼치고 왔습니다.”

“참··· 건방지기만 한 게 아니라 진짜 미친놈이네.”

“하아, 작작 좀 하라고, 작작 좀···.”

라리사와 크루딘.

이들도 좀 충격이었나 보다.

“언제부터 그렇게 할 생각이었어요?”

그나마 사티넬이 웃으며 물었다.

“같이 포물선 궤적을 연구할 때 있었잖습니까, 그때 영감을 좀 받았습니다.”

“아아!”

“하, 참! 그래서 그걸 자기만 쏙 빼서 하셨다?”

크루딘이 끼어들었다.

좋은 친구, 좋은 동료라지만 그의 압도적 마법과 그로 인해 출전하게 될 대회 본선 무대는 부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음에는, 꼭 같이 가죠.”

“칫, 다음 대회 때는 이미 성인입니다아~”

사실 크루딘이라고 모르지 않았다.

심지어 관전하는 학생들보다 가까이에서 론의 마법진을 봤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속도식만큼은 그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천천히 가라고, 좀 천천히···.’

정말 미친 듯이 열심히 하고 있는데, 친구라고 있는 놈은 뛰다 못해 날아가 버리니 초조하고 답답한 것이다.

“골든스태프가 끝은 아니지 않습니까. 저희, 고작 열여섯입니다.”

딱히 크루딘만을 두고 한 말이 아니었다.

사티넬도 라리사도 마찬가지였다.

마법사의 길은 길다.

그냥 긴 게 아니라 결승점도 끝도 없다.

평생 나아가야 할 길인 것이다.

80년 통짜 인생을 마법에 바쳤던 사람으로서 론은 전하고 싶었다.

흔들릴지언정 긴 여정을 보고 나아가라고. 그리고 이렇게 앞서 나가는 이가 곁에 있다는 건 정말 큰 축복임을 그들도 알기를 바랄 뿐이다.

‘언젠가 바통 터치하는 날도 오겠지.’

그날이 되었을 때, 조금이라도 뒤처지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최선을 다해야 했다.

‘고맙다.’

비록 어리다고는 하나 길고 긴 여정의 동료가 되어준 그들을 보며 론이 한껏 미소 지었다.

“흐응,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렇게 말하면 크루딘 같은 애는 못 알아들어.”

“예?”

막 숙연해지려던 찰나,

라리사가 말했다. 아니 끊었다.

“뭐라는 거야, 나 같은 애가 뭔데?”

“너 같은 애가 애지 뭐겠니? 아이고오, 우리 크루딘 애기가 선발전에서 떨어져서 슬펐쪄요? 우쭈쭈~”

“애, 애기?! 이 아줌마가 진짜 미쳤나!!”

“아줌마아? 이게 어디 또 선배한테!”

파앙!

“악!!! 교수님!! 여기 폭력입니다! 폭력!!”

“...”

‘다들 내 얘기 들은 거 맞지?’

그 후 순서는 착오 없이 진행됐다.

16번 학생의 차례가 무던히 지나가고, 마지막 라리사.

“컨디션 괜찮습니까?”

“엉, 괜찮아. 시험 못 치를 정도였으면 벌써 얘기했다.”

크루딘과 장난치는 걸 보고 내심 안심하긴 했지만, 그래도 흑석 목걸이였다. 방심하는 것보단 한 번이라도 더 확인하고, 조금이라도 긴장하는 게 나았다.

“라리사님, 파이팅이요!”

“그렇게 폼을 잡았는데, 알아서 잘하겠지.”

“똑똑히 보라고.”

라리사가 당차게 나아갔다.

‘그래, 저게 바로 라리사지.’

기록관 및 총장의 시작 신호가 떨어지자 라리사는 기다렸단 듯이 마나를 풀어헤쳤다.

아카데미에서 치르는 실기시험 및 졸업시험은 모두 마법진 마법 시험이지만, 골든스태프는 아니다. 온갖 마법사들의 모여 우위를 겨루는 장(場)인 만큼 제한을 두지 않았다.

다만, 그 뛰어난 마법 혈통들이 역사적으로 대회에서 활약하지 못한 이유는 간단했다.

대기만성형.

타고난 그 혈통의 재능은 나이가 들어가며 차차 무르익어갔다. 대부분의 마법사가 5서클의 벽을 넘지 못하고 주저앉을 때, 그들은 시간이 좀 걸릴 뿐 나이 40이 차면 대부분 넘어서곤 했다.

때문에 보통의 마법 혈통 일족은 성년이 되기까지 그 일족의 테두리 안에서 지내곤 하는데, 라리사는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바람과의 소통에 능했던 그녀다. 그런데다 사리 분별에 강단도 제법 있었기에 일족의 족장은 라리사를 이른 나이에 출가시켰다. 명문 아카데미로.

그녀라면 충분히 그곳에서도 잘 적응하며 성장하리라 믿었던 것이다.

‘족장님, 제 목적은 적응이 아니라 골든스태프 우승이라고요.’

시험대에 오른 라리사가 눈에서 빛을 냈다.

구후우우우.

적색 절벽을 마주한 높은 협곡.

지대가 높은 만큼 바람은 물론이고 대기의 흐름까지 선연히 느껴졌다.

그리고 이 자리를 차지한 학생들의 열정까지도. 모두가 멋진 최고의 마법사가 되고 싶어 했다.

‘나도 마찬가지야. 최고의 바람술사, 바람의 마도사가 되고 싶어.’

모든 염원과 이상,

향상심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의 구체화는 인간의 몸을 절로 움직이게 만든다. 그토록 바라고 원하는 것의 위치를 알게 된다면, 그것에 이르는, 그것을 얻는 방법을 알게 된다면,

가만히 있을 자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 라리사는 그것을 조금 본 듯했다.

바로 론과의 수련에서.

더 정확히는 마법진 마법에서.

조건 대 대가의 법칙, 그 너머에 존재하는 그 무언가.

신의 흔적이었을까.

얕은 깨달음이었고,

바람 불면 날아갈 듯한 피상적인 느낌이었지만 라리사는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그녀의 집념이 흑석과 시너지를 일으키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하나의 목적을 향한 간절한 집념은 주변의 모든 것들을 원료로 삼았다. 그리고 흑석이 일으킨 본능까지도.

마법진과 술법 사이에 존재하는 그것.

논리적 추론도 이성적 사고도 치열한 시행착오도 아닌, 오로지 본능과 감각에 의지해 뻗어나갔다.

집념 또한 재능이라면 재능일 텐데,

라리사는 운마저 따랐다.

감히 짐작할 수조차 없는 그 미지의 무언가. 그녀는 기어코 그것에 닿았다.

미묘한 느낌.

감각이 곤두선다.

처음 느끼는 기분이었다.

그 형언할 수 없는 미지의 초경(初境)이 인식의 지평을 한없이 확장시켰다.

그리고 라리사는 이를 잊지 않겠다는 듯이 그대로 자신의 마나, 그러니까 술법에 담아냈다.

구후우우우.

그리고 그녀가 상념 속에 감겨 있던 눈을 떴을 땐, 한낮의 태양은 물러나 있었다. 저 거대한 구름 뒤로.

“뭐, 뭐야?”

“허···. 이게 마법 혈통이라는 건가?”

“론보다 더 미친놈이 있었네, 아 미친년인가···.”

“아니 요즘 애들 수준 진짜 왜 이러냐···.”

단순한 바람이나 강풍 수준을 넘었다.

마치 이 일대의 대기를 움켜쥐듯 끌어모았고, 그 결과가 육안으로 드러났다.

“하악, 하아, 하앗···.”

라리사가 버거운 듯 거친 숨을 내쉬었다.

“허! 라리사,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해!”

그리고 이를 보는 럼블은 걱정에 휩싸였다.

자그마치 적란운이었다.

국지적으로 갑자기 발생하는 구름이라고는 하나, 이것이 만들어지는 데에는 다양한 조건이 받쳐져야 한다.

냉기 외출류, 상승류의 형성, 상승 응결 고도 도달, 자유 대류 고도, 다시 구름 속 하강류 등등.

그 수많은 조건을 꿰뚫는 게 마법이고 술법이지만, 적어도 3서클 혹은 4서클의 그것은 아니었다.

최소 5서클 이상,

고위 마법사 수준은 되어야 한단 말이다.

그런데 라리사의 눈빛은 꺼지지 않았다.

‘그다음!!’

생애 다시 없을 깨달음이란 걸 그녀도 직감했다. 그래서 서클의 마나고 뭐고 아끼지 않았다. 인식을 넘어선 정보와 감각이 두통을 증폭시켰지만 무시했다.

말 그대로 무아지경.

그리고 마지막,

그녀의 의식 속 남아 있던 적색 절벽에 관한 생각마저 무아지경의 재료가 되었다.

적란운 속 물방울과 그사이 생성된 얼음 알갱이들이 쉴 새 없이 마찰을 일으켰고, 이내 그 결과가 사람들의 눈에도 들어왔다.

번쩍!

마른하늘에 번개가 쳤다.

모두가 이게 뭔 상황이냐 의아해하는 순간, 번쩍이던 번개는 적란운 밖으로까지 튀어나왔다.

꽈과과과과광!

대지방전.

벼락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떨어진 곳은,

쩌저저저적.

협곡의 반대편 적색 절벽이었다.

고작 1, 2초.

그저 잠깐 번쩍였을 뿐이다.

오히려 그 소리가 더 길었다.

그런데 빛줄기가 떨어진 곳은 아주 너덜너덜 해져버렸다.

“허···!”

그리고 이를 보는 럼블은 눈썹을 들썩이다 못해 아주 찡그려 버렸고.

론도 그렇고 라리사도 너무 과했다.

이삼십대의 잘나고 잘난 엘리트 마법사도 어려워하는 걸 이들은 해내고 있었다. 바로 저 수많은 꿈나무들 앞에서.

‘이것들이 좀 정도껏 해야지!’

털썩.

하지만 그런 럼블의 의중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지, 라리사는 세상 편한 표정으로 쓰러졌다.

“끄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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