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63
대륙의 중서부를 가로지르는 로키아 산맥. 이를 등지고 자리 잡은 곳이 바로 마도왕국 아들렌이다.
그리고 그러한 수도의 외곽,
아카데미에 가면 로키아 산맥의 크고 웅장한 지세를 실감할 수 있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이 적색 절벽이었다.
“와아아아아!!!”
“아샨!! 이겨버려!!”
“레밀리, 네 모든 걸 쏟아 버리라고!! 너한테 올인했다!!”
“최고의 신예, 론 스펜서 가즈아!!!”
“어짜피 최종 선발자는 론 스펜서, 크루딘 안데르손!!”
긴 협곡.
적색 절벽을 마주한 곳에는 수많은 인파가 넓게 퍼져 자리 잡고 있었다.
바로 골든스태프 대회 최종 선발전을 위해서 말이다.
그들은 어릴 적부터 함께 한 친구, 아카데미 동료, 연구회 선배, 배팅한 학생 등 각자 자신만의 이유로 환호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참고로 말하면,
어느 대회, 어느 경기든 이를 빌미로 도박판을 벌이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곤 했는데, 아카데미 선발전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도박판에서 현재 배당률이 가장 낮은, 그러니까 최종 선발자로 가장 많은 지목을 받은 학생은 론이었다.
‘그나저나 좀 괜찮아졌나···?’
론은 아직 머리를 짚고 있는 라리사를 슬쩍 쳐다봤다.
흑석 목걸이.
어제까지만 해도 안 차던 것을 오늘 차고 왔었다. 고작 하루, 아니 몇 시간뿐이었지만 그녀는 작지 않은 파장을 받은 듯했다.
본능과 충동이라는 게 그렇다.
회귀 전에도 그들의 궤계에 의해 수많은 이들의 정신이 타락했었다. 평생을 인내와 끈기로 살아온 마법사라 해도 충동의 맛을 보면 대부분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만큼 뇌에 자극적이었고 쾌락적이었다.
론의 기분이 차갑게 식어갔다.
‘이렇게 하나하나 무너뜨려서, 결국에는 다 집어삼키겠단 건가.’
처음 흑석을 발견했던 게 떠오른다.
피에타 유적에서 만난 아이블 마탑의 마법사. 그리고 그런 그들이 원했던 것은 잊혀진 유물, 벨데레르의 유산이었다. 지금은 론이 가지고 있는.
그 유물이 그들의 대계(大計)에 있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방학에도 마냥 대회 준비만 할 순 없겠군.’
회귀 전 그들이 차지했던 수많은 것들. 그것 중에 굵직굵직한 것들을 반드시 먼저 차지해야 했다. 하루라도 더 빨리. 그나마 다행인 건 2학년 때부터는 어느 정도 여유가 있다는 점. 공통수업이 줄어들고 특별 활동 시간이 늘어난다.
그렇게 론은 그들을 향한 분노를 차가운 계획에 차곡차곡 담아내고 있었는데.
그러는 사이,
“파이어 랜스!”
“흩어진 땅들을 모아 네게 힘을 부여하니 날아오르라! 어스 스피어!!”
“파이어 스피어!!”
“워터 스트라이크!!”
준비된 순번의 학생들이 한명 한명 시험대 위에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일전에 사티넬이 그랬던 것처럼 절벽의 지층 구조를 파악하고, 마치 표적을 맞히듯 마법을 펼치는 이도 있었다.
콰아앙,
쾅,
퍼억.
각각의 원소 마법이 펼쳐졌고,
그 결과는 적색 절벽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리고 방금의 일격으로 엄청난 파편을 비산케 한 이는.
“와아, 역시 3학년 수석은 다르네.”
아샨 타슈켄트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4서클 인도형 물 마법인데, 용케 저기까지 보내서 흔적을 남겼군요.”
언뜻 보면 2서클 기초 원소마법과 비슷해 보이지만, 무려 50미터 거리의 표적까지 날아갔다. 밀도와 속도, 장력에 관한 식까지 완전히 소화해야 가능한 4서클 마법이었다. 3학년 수석이란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실력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샨이··· 1등인 건가?”
상태가 좀 괜찮아졌는지 라리사가 말했다.
“네, 그런 거 같아요. 직경 5미터 정도에 깊이는 오목형으로 최대 70센치쯤 될 거 같네요.”
마나를 집중해 안력을 높힌 사티넬이 말했다.
그리고 과연 둘의 말대로 최고기록이 맞는지, 반대편에서 비행 마법을 하던 기록관도 붉은 깃발을 들어 올렸다. 시험 시작 전 럼블이 말하기로 붉은 깃발은 기록 경신, 즉 1등을 의미했고, 노란 깃발은 순위권을 의미한다고 했었다.
“와아아아! 아샨 떡상 가즈아!!”
“아샤안! 너한테 내 전 재산을 걸었다고!!”
“우우우~ 어짜피 우승은 로멜리 아르웬!”
“론 스펜서! 론 스펜서! 론 스펜서! 론 스펜서!”
학생들이 소리쳤다.
응원하는 이유야 다양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베팅만큼 경기에 몰입하게 만드는 건 없는 듯하다.
생각해 보면 자신도 회귀 전에는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베팅을 했었다. 그저 그런 남작가의 삼남에 재능도 없다 보니, 저런 일확천금에 눈이 혹하긴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베팅은커녕 출전자가 되어 이 무대 위에 서 있었다. 포션 사업으로 인해 돈 걱정은 생각도 하지 않았고 말이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무조건 우승해주지.’
그렇게 각오를 다지는 론에게 옆에서 속닥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라리사님, 그런데 마법 시전은 괜찮겠어요?”
사티넬도 어지럼증을 호소하던 라리사의 모습을 봤었나 보다.
얼마 전 애매한 발언과 함께 일행과 어울리기 시작할 때만 해도 잔뜩 경계했었는데, 같이 수련하다 보니 어느새 제법 친해진 것 같았다.
“응, 괜찮아. 그냥 잠깐 현기증이었어.”
“아이, 거 아쉽네. 그대로 누웠으면 경쟁자 하나 쉽게 보내는 거였는데···. 아깝다.”
잠자코 있던 크루딘도 한마디 거들었다.
꿈틀.
라리사의 미간에 주름이 튀어 올랐다.
“오옹, 아까워어?”
그녀가 이마를 짚고 있던 손을 떼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파앙!
“악!!”
술법에 반응한 바람이 크루딘의 이마에 꽂힌 것이다.
“하여간 매를 벌어요, 매를.”
“아으···. 진짜 이래 놓고 출전 못 하기만 해 봐!”
“응, 무조건 출전해.”
‘뭐, 대충 괜찮아졌나 보군.’
열흘이 넘도록 함께 수련한 사이다.
때문에 딱히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실력쯤은 대충 알고 있었는데, 라리사는 3학년 중에서도 상위 그룹답게 크루딘과 사티넬을 가볍게 상회했다.
그리고 크루딘과 사티넬도 이를 인정했고 말이다. 사실 1학년이 최종 선발전에 오른 것만 해도 엄청난 행보다. 실제로 최종 선발전에 오른 1학년은 론 일행 세 명이 전부고, 2학년도 두 명뿐이었으니 말 다 한 셈이었다.
‘이제 좀 다들 평소 같네.’
그런 그들을 보며 마치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마냥 론이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다음 순서였다.
“다음, 5번!”
“아, 네!”
사티넬의 차례.
“떨지 말고 사티넬. 그냥 자신 있게 해.”
“화이팅하라고, 괜히 긴장하면 다음인 나까지 긴장되니까.”
“잘할 겁니다. 미련 없이 펼치고 오십시오.”
“후우, 네! 감사합니다! 갔다 올게요!”
당차게 양 주먹을 쥐어 보이고는 그녀가 시험대 위로 올랐다. 그러고는 늘 그래왔듯이 양손을 뻗었다.
우우웅우웅.
정사면체의 복합마법진은 이제 기본이었고 마법식들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오오!! 1학년이다, 1학년!”
“2학년도 우수수 떨어진 마당에 1학년이 최종 선발전이라니.”
“바보야, 쟤가 그 2차 시험 프리패스 했던 애라고. 크립텍스를 제일 빨리 푼 3명 말야.”
“어찌 됐건 간에 1학년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3서클 마법을 쓸 정도면 확실한 실력 인증이지. 뭐 내가 베팅한 애는 아니지만.”
관전하는 학생들의 말이 맞았다.
게다가 그녀는 평민 출신.
사티넬이 보이는 행보 하나하나가 기록적인 행보였다.
그리고 그런 얘기를 듣는 론 일행은 마치 제 일인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그만큼 사티넬과 친해진 것이다.
“워터 봄!”
투웅!
그리고 그런 그녀의 외침과 함께 복합마법진에서는 거대한 물 대포가 쏘아졌다. 같은 3서클의 에어로 봄(Aero bomb)과 동일한 마법식의 그것이었다. 소재가 되는 원소 변환식만 다를 뿐.
후우우웅.
상당량의 물이 집약된 덩어리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그리고 그것이 날아가 박힌 곳은,
콰아앙!
적색 절벽에서도 유난히 회색빛을 띠는 곳. 사에아 암석으로 이뤄진 지층에 제대로 꽂혔다. 물에 취약한 부분을 잘 노린 것이다.
하지만 그 근처에서 있던 기록관의 깃발은 올라가지 않았다. 아쉽게도 순위권 밖인 것이다.
“후! 저는 여기까지입니다! 남은 분들은 파이팅이에요!”
사티넬의 후련한 외침과 함께 순서가 술술 지나갔다.
6번, 7번이 지나가고,
8번 크루딘의 차례.
3서클 불 마법 파이어볼로 분전해 봤지만, 그 역시 4서클 마법을 펼치는 3학년들 상대로는 아쉽게도 상대가 안 됐다.
‘역시는 역시인가.’
‘그렇긴 하네. 3학년이 압도적이야. 역시 아샨한테 베팅하길 잘했다, 큭큭큭.’
‘아까 사티넬인가? 걔도 그렇고 쟤네가 3학년일 때 대회가 열렸으면 꽤나 볼만 했을 텐데, 아쉽네.’
‘그러니까 골든스태프지. 때를 잘 맞아야 한다고. 어쩔 수 없어.’
‘2차 마법진 배틀 때 론이 그래도 선전했다고 들었는데, 그럼 걔도 여기까지인가? 하아···. 걔한테 베팅했는데!’
‘원래 골든스태프는 3학년들의 무대야. 여기까지 올라온 것만 해도 영광이지.’
크루딘이 차례를 마치자 관전하던 학생들은 마치 1, 2학년들의 순서가 모두 끝나기라도 한 듯 평을 내놓았다. 사실 딱히 치우친 의견도 아니었고, 정석적인 평가였다. 통계적으로도 실제 3학년들이 매번 출전했었으니까 말이다.
다만, 사티넬과 크루딘이 1차 크립텍스 시험을 너무 빨리 통과해버리는 바람에 기대를 받았었을 뿐이다.
그렇게 3차 최종 선발전은 3학년들 내에서의 순위 경쟁으로 굳혀져 가고 있었다.
정오.
한낮의 태양이 가장 높이 떠오르는 때,
선발전은 종반에 다다랐다.
남은 사람은 단 세 명.
“다음 15번!”
“예.”
그리고 이제 론의 차례였다.
“어이, 론 믿고 있는다. 너···.”
“론님 파이팅입니···.”
“뭐 알아서 잘···.”
분명 옆에서 열심히 응원하는 거 같은데, 이상하게 멍하다. 머리에 잘 들어오질 않았다. 떨리는 발걸음으로 시험대 위에 올랐다.
‘긴장··· 한 건가?’
공식적인 자리였다.
수백여 명이 보고 있었다.
그런 그들 앞에서 무언가를 선보이고, 다른 선발자와 경쟁하여 특정 자격까지 따내는 그런 자리.
회귀 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고, 지금도 뭔가 실감이 안 났다.
“론.”
그런 그의 이름을 누군가 부른다.
“론.”
재차 부른다.
긴장해 뻣뻣이 돌아간 시선 끝에는 럼블이 있었다.
“마음껏 한 번 펼쳐 보거라.”
‘그래, 언제까지고 과거에 얽매일 순 없지. 지금의 나는 지금의 나일 뿐이다.’
멍하던 눈빛에 예기가 어렸다.
“예, 총장님.”
론이 무언가를 밭치듯 두 손을 앞으로 쭉 내리뻗었다.
“음?”
이제껏 마법을 펼친 학생들과는 다른 자세에 럼블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우우웅우웅.
그런 두 손 위로 마법진이 그려져 갔다.
‘잉? 자세가 왜 저러냐?’
‘뭐 3학년이 압승이니 반쯤 포기한 거 아냐?’
‘햇볕 쬐더니 아예 맛탱이가 갔나? 하늘을 쳐다보고 있네.’
‘원래 이 대회는 3학년들의 축제라니까~ 여기까지 올라 온 게 어디야.’
‘인정. 아쉽지만 때는 못 타고난 1학년들이여, 잘 가라. 큭큭.’
관전하던 학생들은 다 똑같이 생각했다. 론이 포기한 줄로. 그도 그럴 게 축 내린 손이나 절벽이 아닌 허공을 응시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으음?”
다만 럼블은 그의 마법진에 새겨진 식들을 보고는 부릅뜬 눈으로 목을 빼 내밀었다. 원소 변확식과 밀도, 속도식을 보니 앞선 학생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복합마법진은 완성됐고,
푸른 빛을 발하며 이내 내용물을 쏟아냈다.
‘툼스톤(Tombstone)!’
3서클 어스 스피어의 상위형.
원소는 돌이었고, 해당 원소의 특성을 살려 관통력이 아닌 육중한 무게와 빠른 속도로 찍어버리는 마법이었다. 오죽하면 그 마법명의 뜻마저 묘비석이다.
콰아아앙!
그런 돌기둥이 엄청난 파공음을 내며 쏘아졌다. 대기를 찢어발길 듯한 소리가 구시렁대던 학생들의 소리마저 덮어버렸다.
그런데 더 당혹스러운 것은 그 돌기둥이 날아가는 궤적이었다.
‘포, 포물선이··· 아닌데?’
이를 본 학생들의 공통적인 생각.
적색 절벽까지의 거리는 50미터.
절대 짧은 거리가 아니다.
때문에 질량이 가미된 마법일수록 중력을 생각해 포물선 궤적으로 마법을 시전하는 게 보통이다. 앞선 순서의 선발자들도 그랬고 말이다.
그런데 론은 아니었다.
그저 하늘로 쏘았다.
헌데 그 속도마저 보통이 아니다.
‘미친!! 진짜 실성이라도 한 거야?’
‘아니 시발, 저 정도 속도를 낼 수 있는데 왜 하늘에다 쏘고 지랄이야?! 아 시팔, 내 돈!! 이 미친놈아!!’
‘키야, 돈 들어오는 소리 들려온다~ 아샨 떡상 가즈아!!’
‘으아아아! 안돼애애!!!’
쨍쨍한 하늘,
정오의 태양이 내리쬐는 햇빛 속으로 돌기둥이 치솟아 버렸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후우.”
조용히 이를 지켜보던 론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각도는 대충 잘 맞춘 것 같네, 그럼 이제 한··· 8초쯤 뒤에 떨어지려나?’
뒷짐까지 지며 그가 마음 편히 허공을 응시했다.
최종 선발전, 적색 절벽.
지층이니 뭐니 해서 고려사항들이 있었지만, 결국에는 얼마나 흔적을 남기느냐다.
50미터라는 적잖은 거리가 있기에 사티넬을 비롯한 일행들도 곡사를 펼치곤 했는데, 바로 거기서 론은 착안했다. 굳이 정면으로 뚫어내는 것보다 위에서 떨어뜨리며 비스듬히 깎아내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물론 그만큼 포물선 궤적 계산도, 부위별 밀도 조절도, 감당해야 하는 질량과 속도식도 버거워졌지만 선발전인 만큼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돌기둥의 앞쪽에 밀도를 실어서 낙하 방향을 고정시켰더니 아주 깔끔하게 떨어지고 있다.
‘그래, 가자!’
구후우우우.
마치 운석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게다가 제법 높이 쏘아 올린 탓에 중력가속도도 꽤나 붙었고.
그리고 이것이 다른 학생들의 눈에도 들어왔는지 그들의 아우성도 잦아들었다. 눈이 있으면 알 것이다. 그것이 지금 어디로 향하는지.
그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사, 삼, 이, 일!’
론의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콰과과과광!
적색 절벽의 윗부분부터 미친 듯이 깎아내며 돌기둥이 내리꽂혔다. 쿠웅! 바닥까지.
딱히 마나로 안력을 키울 필요도 없었다. 50미터 거리에서도 훤히 보였다. 절벽을 양분하듯 그어진 선명한 줄이.
베팅이 어쨌고, 3학년이 어쨌고, 골든스태프 대화가 어쨌고 하며 신나게 떠들던 학생들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400여 명을 압도한 고요 가운데,
한 소리가 그들의 앞에 아른거렸다.
바로 펄럭이는 붉은 깃발.
기록 경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