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62
2주.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어떤 성과 혹은 결과를 만들어 내기에는 촉박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촉박한 시간 속에서도 유의미한 결과를 반드시 만들어 내야 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아카데미 대표 선발전을 치르는 자들이었다.
밤이 깊어가도록 그들은 땀 흘리며 애를 썼다.
콰아아앙.
“거기 근력 운동하는 마법사, 그리해서 3차 시험 통과하겠어?”
라리사다.
그리고 이 말을 들은 크루딘의 미간 사이는 주름이 가득 차올랐다.
“뭐라는 거야! 방금도 한 발자국 밀려났으면서!”
“스읏! 또 반말하네.”
척.
라리사가 마법진도 없이 그저 손가락을 크루딘에게 가리켰다.
그런데,
슈웅.
팍!
“악!!”
“내가 분명 반말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래, 존대한다 존대해! 이 아줌마야!!”
“아, 아줌마?! 이익!!!”
슝
슈웅
슝
퍽 퍼벅 퍽!
“끄아아악!! 여기 3학년이 사람 잡는다!! 아이고, 나 죽어!!”
“······”
훈련장이 무슨 자기들 사유지인지 아주 소리를 빽빽 지르고 난리도 아니다.
“치, 친하니까 저러는 거겠죠?”
“하하, 하···.”
난감해하는 사티넬의 물음에 론은 애써 웃음 지을 뿐이었다.
크루딘과 사티넬 그리고 론.
이 셋이 저녁마다 늘 함께하던 수련에 동참 인원이 한 명 늘어났다.
이유는 일전의 일 때문이었고.
우연이라면 우연이고, 필연적 노력의 산물이라면 산물이라 할 수 있는 자연과의 소통으로 론의 마법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자연에 대한 인지, 인정, 소통은 단순히 자연을 마법식으로만 대하던 것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마법에 있어 엄청난 안정감을 더했다.
보다 강력한 힘은 물론이고, 더욱 빠르게, 그리고 보다 복잡한 마법식도 무리 없이 펼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기연을 맞이하게 해준 소중한 인연, 라리사.
그러했기에 관심을 갖고 다가오는 그녀를 매몰차게 밀어낼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의외로 일행들과도 잘 어울렸다.
참고로 이들과의 첫 만남 때 라리사가 했던 묘한 발언에 대한 해명은 이미 했다. 한동안 사티넬의 눈빛에 의심이 가득했지만 말이다.
“아니, 론! 여기 미친 아줌마가 폭행까지 저지르고 있다고! 신고해!!”
“이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퍽 퍼벅 퍽!
“켁!”
그 혈기 왕성한 크루딘이 어느새 바닥에 축 늘어졌다. 그런 그를 깔고 앉으며 라리사가 씨익 웃는다.
“선배님 해 봐, 선배님~”
‘잘 어울린다는 말은 취소해야 하려나···.’
“뭐, 그래도 훈련 하나만큼은 확실히 잘 되고 있으니···.”
“그건··· 그렇긴 하죠.”
말 그대로였다.
과격하기는 해도 라리사의 합류로 인해 일행의 마법 수련에 속도가 붙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보며 론도 슬슬 마음의 준비를 했다. 사티넬이 체외 서클의 힘을 발휘하지 않는 이상 라리사의 출전은 기정사실로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체외 서클, 아쉽지 않겠습니까?”
“네, 괜찮아요. 괜히 나서서 관심을 받고 싶진 않네요. 그리고 그게 단순한 관심일 것 같지도 않고요.”
대놓고 물어본 질문이었다.
그런데 사티넬은 담담히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과도한 관심, 그녀가 자세히 말하진 않았으나 그 정도는 론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날고 긴다 하는 고위 마법사들은 체외 서클을 시작으로 결국에는 그녀가 엘프의 후손이라는 것도 밝혀낼 것이다. 사라진 줄 알았던 존재의 후손. 아마 전 세계가 떠들썩할 것이다.
아니면 정반대로 특정 세력이 그녀를 독점하기 위해 강력하게 언론과 여론을 탄압하거나.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사람마다 그 처지와 입장은 다 다르다.
누군가는 부모의 덕으로 걱정 없이 편히 사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부모도 모른 채 힘겹게 살아간다.
하지만 그게 인생이다.
시작이 어떻고 주어진 게 어떻든 간에 살아가야 한다. 어떤 이는 운빨 현실이라며 낙심해 우울한 삶을 살기도 하고, 혹자는 없는 와중에도 당차게 개척해 나가기도 한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 간섭할 수 없다.
각자의 인생관이다.
허나 한 평생을 살고 돌아온 사람으로서 론은 떳떳하고 싶었다. 다시 마주할 그 죽음 앞에서.
‘나는 무엇을 했는가.’
사티넬과는 다른 인생이다.
그렇지만 함께 하는 이로서 서로를 응원할 뿐이다. 그 나름대로 모두가 열심히 나아가고 있으니까.
그렇게 시간은 훌쩍 지나가고,
모두가 기다리던 최종 선발전 날이 밝았다.
5년에 한 번 개최되는 세계적인 대회. 젊은 마법사들의 꿈의 무대이자 전 세계인들의 축제. 그 어떤 미사여구를 갖다 붙인다 해도 그 의미는 퇴색되지도 그렇다고 과하지도 않았다.
바로 골든스태프.
그런 대회의 최종 대표 선발전이었다.
때문에 아들렌 아카데미는 오전 모든 일과를 휴강으로 돌리고 선발전을 개최했다.
장소는 일전에 말한 대로 아카데미 부지의 북쪽 외곽, 적색 절벽이었다. 장소가 장소인 만큼 교수진 및 행정직원들이 이동 통제를 했고, 곳곳에 마도 공학 상영기를 배치했다. 지형 때문에 직접 볼 수 없는 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400여 명, 전교생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입니다. 골든스태프 대회에 출전할 아들렌 아카데미의 대표 학생. 오늘 이 자리에서 뽑도록 하겠습니다.”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로 총장 럼블의 목소리가 퍼져나갔다.
“와아아아!!”
휘이익!
적색 절벽을 마주한 협곡에 환호와 휘파람 소리가 가득 찼다.
“2차 시험까지 통과한 학생들은 앞으로 나오기 바랍니다.”
내로라하는 엘리트 중에서도 선별된 17인.
그리고 그 안에 자신과 함께 하는 동료들, 크루딘과 사티넬 그리고 라리사가 있다는 건 상당히 감개무량했다.
회귀 전에는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어울리며 실기시험을 준비하랴 바빴었다. 그런데 지금은 함께 하는 이들과 골든스태프 대회의 최종 선발전을 앞두고 있다.
“참···.”
괜히 미소가 지어진다.
최종 진출은 두 명뿐이지만 여기까지 올라온 것만 하더라도 개개인들에게는 소중한 경험과 자산이 될 것이다. 자그마치 3학년들까지 있는 경쟁에서 살아남은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럼 가시죠.”
“좋아! 한번 해보자고!”
“네! 저도 안 밀릴 거예요!”
“같잖기는. 우월함이 뭔지 보여주지.”
“선, 배, 님. 그래도 긴장 좀 하시죠. 만만하게 보다가 큰코다치는 수가···.”
“근육 돼지, 시끄러우니까 좀 닥쳐.”
“...”
‘음?’
최종 선발전이라 그런 걸까.
라리사는 평소보다 날이 잔뜩 서 있었다.
하지만 뭐라 반응할 새도 없이 럼블이 선발전을 진행했다.
“역시 순서는 제비뽑기로 해야겠지?”
선발자들을 보며 럼블이 눈을 찡긋했다. 흥미진진해 하는 총장의 기분이 물씬 풍겨 온다.
“순서가 적힌 종이가 들어 있단다. 그냥 순서일 뿐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뽑아 보거라.”
“네!”
“예, 총장님!”
“넵!”
럼블이 한명 한명 다가오는 학생들에게 커다란 주머니의 입구를 벌려주었다.
“오, 9번.”
“난 13번이군.”
“2번.”
“7번이네.”
각자 뽑은 제비를 펼쳐보며 한 사람씩 적힌 번호를 말했다. 그리고 론의 번호는.
“15번이군요.”
사티넬은 5번, 크루딘은 8번, 라리사는 17번이었다.
“맨 끝이라니, 쳇! 실력도 안 되는 것들 꼬라지를 마지막까지 쳐 봐야 하잖아, 참···.”
기우가 아니었다.
점점 심해지는 말투에 안 되겠다 느낀 론이 그녀 앞으로 나섰다.
“라리사님.”
“왜?!”
역시나 날카롭다.
아무리 최종 선발전이라지만 과하다.
“여기 있는 모든 학생들이 초조하긴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런 식··· 어?”
‘뭐, 뭐야 저건?’
2주간 계속 함께 훈련했던 라리사였다. 때문에 매일 같이 보곤 했었는데, 그런 그녀의 목에는 전에는 없던 게 걸려 있었다.
“그, 그 목걸이··· 어디서 난 겁니까?”
“흥!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왜 이제야 좀 눈에 들어오니?”
아카데미 대표를 뽑는 최종 선발전.
고조된 분위기와 학생들의 함성 속에 있느라 주의가 산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라리사를 가까이서 똑바로 마주한 론은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그 이질감을.
분명 일전에도 한 번 느꼈던 것이었다.
‘미친! 흑석이 왜 여기서 나오는데?’
라리사가 걸치고 있는 목걸이 끝에 달린 것은 분명 흑석이었다. 세공을 거쳐 제법 고급스러운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그것이 흑석이라는 것은 감출 수 없었다.
본능과 충동을 이끌어내는 마계의 물질, 흑석 말이다!
‘아···.’
그제야 좀 납득이 갔다.
왜 그녀가 회귀 전 활약을 못 했는지.
회귀 전 아카데미 대표 선발전을 치를 당시에도 꽤나 떠들썩한 일이 있었다. 선발자들 간에 시비가 붙어 큰 싸움으로 번졌는데, 그중 한 명이 거의 빈사 상태가 되어버렸다. 결과는 두 학생 모두 출전 금지 처분이었다.
과하긴 했어도 일생일대의 대회인 만큼 과열된 양상의 일부로만 생각했는데, 그 이면에 흑석이 자리 잡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말도 안 돼···.’
그런데 그 모든 상황에 흑석이 있었다고 가정하면 수긍이 된다. 중요한 선발전을 앞두고 싸움을 벌인 거나, 누구 하나가 빈사 상태가 될 때까지 싸운 거나.
그들로서는 아주 편했을 것이다. 그저 흑석만 던져주면 알아서 치고받고 싸울 테니까.
‘그래서, 여기까지 개입을 한다고?’
화가 났다.
이렇게까지 사람을 망가뜨리며 얻는 게 뭐란 말인가.
‘대체 언제부터, 누가 노린 거지?’
‘결국 이것도 시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벌어질 일이었단 건가.’
‘전부터 노리고 있었던 사람···. 전부터 노리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
“대표로 선발되는 날인데 그냥 나올 순 없잖아? 나를 받쳐줄 만한 게 있길래 걸어봤어. 엄청 예쁘지? 활력 증진 효과도 있데.”
‘하···. 지금 손 떨리고 있는 것도 모르네.’
대답을 종용하듯 라리사가 목걸이를 쓰다듬으며 론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런 그녀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가끔 대도시 규모의 경매에 가면 활력 증진 아티펙트가 나오긴 하지만, 저건 명백히 흥분과 충동 그리고 본능을 증폭시키는 요물일 뿐이었다.
‘그런데 요새 제일 파란을 일으키고 다니는 건 난데, 왜 라리사지?’
‘의외성이나 실력이나 충분히 그들에게는 변수일 텐데, 왜?’
‘아니면 내게도 접근했었는데 내가 모르는 건가?’
“쯧쯧쯧, 하여간 스펜서 그 변방 촌구석 출신 아니랄까 봐 이것도 못 알아보니?”
치열하게 이어가던 추측을 라리사가 끊어냈다.
‘아···. 이러면 굳이 나한테 줄 필요가 없구나.’
그제야 깨달았다.
그렇다. 괄괄한 성격의 라리사에게만 줘도 꽤나 기대해볼 만했을 것이다. 근래에 쭉 붙어 다녔으니까 말이다.
하마터면 회귀 전 라리사와 싸워 출전 금지를 받았던 그 사람이 이번에는 바로 자신이 될 뻔했다.
이제야 상황이 매끄럽게 이해됐다.
남은 건 저 흑석 목걸이뿐.
‘그래도 처리하긴 해야겠군.’
이미 암중 세력의 의도가 대충 보이긴 했지만, 그대로 놔뒀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후우···.”
론이 심호흡을 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어? 저게 뭐지?!”
론이 부릅뜬 눈으로 라리사 어깨 너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름 신경 쓴 억양과 표정 연기까지 더해지자 그녀의 고개는 가볍게 돌아갔다.
그 순간,
론은 내밀었던 손을 그대로 라리사의 목을 향해 뻗었다.
투둑.
바로 목걸이 잡아 뜯었다.
우우웅.
슈아아악.
샥.
슈악.
순식간에 발현된 마법진.
즉시 시전이었다.
날카로운 바람이 목걸이의 흑석 부분을 분쇄해 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아무것도 없는데 뭐냐는 눈빛으로 라리사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땐,
화르륵.
부서진 목걸이가 막 불타 사라지고 있었다.
“응? 뭐 하는 거야?! 윽···.”
이를 막으려던 라리사가 갑자기 휘청거렸다.
“괜찮습니까?”
“잠깐, 으윽···. 그냥 좀 현기증이야.”
비틀거리는 라리사를 부축하며 론이 조용히 물었다.
“라리사님, 방금 그거 어디서 난 겁니까?”
딱히 설명을 부연하지 않았다.
바람과 소통할 정도의 예민함을 지닌 그녀라면 목걸이의 아름다운 외관뿐 아니라 그것이 가진 묘한 기운도 눈치챘을 것이다.
“그냥··· 정기적으로 오는 일족의 서신들이랑 같이 있길래... 당연히 누군가 응원하는 겸 보낸 줄 알았어. 끄흥···.”
“아···.”
론이 듣기에도 방심을 유도하기 괜찮은 방법이었다. 늘 받아오던 서신 뭉치였으니, 경계심이 옅어질 수밖에 없다.
“동봉된 편지에도 활력 증진 효과가 있다면서 힘내라는 글이 적혀 있었고···. 으으···. 일단 이따, 이따 끝나고 얘기하자.”
후유증이 좀 있는지 라리사가 이마를 짚으며 대화를 미뤘다.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좀 쉬게 해야 할 듯싶었다.
하지만 추첨하느라 조금 떨어져 있던 크루딘은 이를 알 리가 없었다.
“뭐야? 선배랍시고 그렇게 떵떵거리더니만, 어디 아파?”
“조용히 해. 머리 아프니깐···.”
“갑자기 왜 이래?”
아까부터 이상한 그녀의 반응에 크루딘이 론을 쳐다봤지만, 그는 그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선발전이고, 보는 사람도 너무 많았다. 게다가 이를 드러내기에는 아직 온전한 세력을 일군 것도 아니었고.
그러고는 잠시 주위를 둘러봤다.
혹시라도 이와 관련된 자가 있다면 어떻게든 반응하지 않을까 싶어서.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그걸로 파악하기에는 좀 애매했다. 몇몇 의아하게 쳐다보는 이들이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누가 범인이라고 특징지을 순 없었다.
‘젠장···.’
여기서 더 티 나게 행동해봐야 놈들의 관심을 받는 건 자신뿐이었기에 론은 이내 시선을 거뒀다.
그렇게 론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하는 사이 그런 그를 주시하는 이가 한 명 있었다.
총장 럼블.
‘흐음···.’
수많은 학생과 교수들이 우러르는 총장이었다.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에 이목이 집중되는 위치임을 알기에 럼블은 일찌감치 시선을 뗐지만, 떠오르는 생각은 멈출 수 없었다.
입학하자마자 비상식적으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신예. 첫 학기 때 플라델의 미로 진입이라는 유례없는 행보를 보이고, 방학 전에는 2서클, 방학 후에는 3서클이 되어서 나타난 학생이다.
이외에도 간담회를 비롯해 중급몬스터 토벌, 마탑 수련생들과의 대결, 가문의 사업 등 기이한 것은 차고 넘치는 아이.
그리고 지금은 묘하게 신경을 자극하던 그 무언가를 단번에 알아채고는 바로 없애버렸다. 마치 그것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이다.
‘뭔가, 아는 거라도 있는 게냐, 론.’
하지만 자신을 쳐다보는 학생들이 너무 많았다.
“그럼 아들렌 아카데미의 최종 선발전을 실시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