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61
그저 가벼운 확인이었다.
최종 선발전을 앞둔 그녀의 역량을 파악하고 끌어올릴 수 있다면, 끌어올려 우군으로 삼기 위한.
그런데,
콰과과과광.
과연 같은 사람이 맞나 싶었다.
이제껏 통제하던 술법의 금제를 풀자 라리사는 엄청난 바람을 일으켰다.
케스케이드 일족.
과연 마법진으로는 온전히 담아낼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미친! 이게 일족의 술법이란 건가.’
고작 3서클인 라리사는 5서클에 버금가는 바람을 일으켰다.
하지만 론은 사람들 앞에 5서클의 실력을 드러내기에는 시기상조였기에 결국 피할 수밖에 없었다.
우우웅.
더 생각하고 따지고 할 필요도 없이 그가 땅을 짚으며 마법진을 펼쳤다.
‘스톤 필드.’
스톤 월과 동일한 4서클이지만 훨씬 복잡한 식이다. 무엇보다 일단 범위형 마법이었으니까 말이다.
구구구구궁.
일전에 피에타 유적에서 론이 아이블 마탑의 5서클 마법사를 상대로 펼쳤던 그 마법이 다시 재현됐다. 거대한 돌들이 땅을 뚫고 올라왔다.
거기에 론은 하나를 더했다.
튀어나오는 것 말고 들어가는 것까지. 그가 있던 자리가 밑으로 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숨으면 못 찾을 줄 알아!!”
그간에 쌓인 서러움이 꽤나 컸는지 감정적으로 상당히 고조된 라리사. 마치 바람의 신이라도 되는 듯 하늘에 둥둥 떠다녔는데, 그녀가 손을 뻗자 이에 호응하듯 바람이 쇄도했다.
방향은 이미 땅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는 저 어딘가의 론이었다.
콰과과광
콰아앙
쾅.
커다란 암석들이 마치 장난감마냥 날아다녔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바람은 잦아들었다.
“하아, 하아···. 야, 어딨어?”
어깨를 들썩이며 거친 호흡을 내쉬던 라리사가 이내 땅에 착지했다.
과연 방금까지 수련하던 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난장판이 되어버린 공터. 이전의 평평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커다란 돌들이 부자연스럽게 널브러져 있을 뿐이었다.
“하아, 설마··· 아니지? 겨우 이 정도에···.”
그러더니 라리사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열심히 주위를 훑었다.
우우웅.
그러는 사이 어디선가 소리가 들렸다.
마나 공명음이었다.
굳어있던 라리사의 얼굴이 펴지려는 그 찰나.
투웅!
“헤엑!”
커다란 돌기둥이 그녀 앞에 꽂혔다.
당연히 놀란 라리사는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고 그제야 난장판 속의 돌들과 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구궁.
구구구구궁.
겹겹이 쌓인 돌들이 치워지고 내려앉은 지대가 올라오는데 그곳에는 세상 멀쩡한 론이 서 있었다.
“으··· 저 건방진 놈!”
라리사가 주저앉아 있던 땅의 잔디를 콱 움켜쥐었다.
헌데 이를 보는 론의 심경은 복잡했다.
‘뭐지? 이 정도인데 왜 출전하지 못한 거지?’
크립텍스부터 마법진 배틀, 그리고 적색 절벽까지 모두가 회귀 전의 그것과 동일했다.
그리고 라리사가 보여준 실력은 동년배 수준에서는 가히 압도적이었고. 괜히 마법 혈통, 마법 혈통 하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샨 타슈켄트와 더불어 아카데미 대표로 출전한 또 다른 3학년.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둘 중 누구든 간에 라리사만큼은 아니다. 그녀의 마법은 그 규모도 힘도 확실히 4서클 수준이 아니었다. 그 이상이었다.
‘1차 아니면 2차에서 운이 안 좋아 떨어지기라도 한 건가?’
‘그런데 운이 안 좋아서 떨어질 수가 있어?’
‘내가 회귀하기 전부터 이곳의 학생이었으니 분명 참가했을 텐데···.’
‘실력도 운도 아니면···.’
외부세력밖에 없었다.
오랜 기억을 더듬었다.
그럴만한 이유를 찾기 위해.
그리고 떠오른 건 출전 학생을 조정해서 가장 이득을 볼 사람. 단순한 생각이긴 해도 그렇다고 근거 없는 추측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당연히 대회 우승자다.
‘바로 아이블 마탑의 수련생이었지.’
그런 그가 속한 집단은 향후 어둠의 세력의 발판이 된 곳이었고.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참 애매했다.
총장 럼블을 비롯한 엘리트 중의 엘리트 교수진들이 있는 아카데미에 그들이 개입할 여지가 있을까.
시간은 벌써 최종 선발전까지 2주도 남지 않은 시점. 그리고 라리사는 그 최종 선발전까지 진출했다. 부족한 점을 보완해 같이 출전해 보겠다는 말랑말랑한 생각은 이미 저 멀리 날아갔다.
하지만 론의 그런 치열한 추측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눈앞에 불만 가득 찬 눈초리로 라리사가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3차··· 시험은 걱정할 필요는 없겠군요.”
“비겁하게 숨기나 하는 네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후우···. 라리사님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일족의 술법을 이용한 당신의 바람은 4서클 마법마저 상회한다는 걸.”
“쳇!”
그녀도 모르지 않는지 말을 삼켰다.
“그런데 그걸 정통으로 맞을 순 없지요. 전 고작 3서클이니.”
동 서클의 마법으로는 절대 라리사를 상대할 수 없다. 애초에 마법진보다 상위라 여겨지는 술법인데, 범인이 어찌 당해내겠는가. 같은 마법 혈통이라면 모를까.
론은 어쩔 수 없었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하여간 저 입이 문제야, 입이!”
최종 선발전의 꺼림칙함은 둘째치고,
참 신기하긴 했다.
그저 똑같은 사람이다.
평범한 그 나이대의 여자아이였고, 톡톡 튀는 재능으로 열여덟에 3서클에 오른 라리사.
‘그래, 거기까지는 괜찮아. 열여덟에 3서클이면 준수한 재능 정도니까.’
그런데 정말 신기한 건 그다음이었다.
일족의 술법으로 라리사는 오버스펠을 펼치듯 거의 5서클에 이르는 바람을 일으켰다.
마법의 극의에 이르는 또 다른 길.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은 그냥 마나 호흡 좀 하고 최종 선발전 준비나 하자.”
그녀는 대답도 듣지 않고 그대로 명상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기다렸단 듯이 차가운 밤공기가 그녀에게로 모인다.
후우우웅.
마법도 아닌 그저 호흡만으로.
‘소통···.’
론이 마나 호흡법으로 사용하고 있는 정령사의 찬가에는 그런 구절이 있다.
『 쉼 없는 자연의 운행, 이는 태초부터 이어 온 자연의 바람이며 소망이구나. 그들이 이어 온 억겁의 세월, 그 흐름에 찬양하리. 그 세월, 그 노고에 한없는 찬사를 보내리라···.』
‘아···.’
소통의 시작은 상대의 인지로부터다.
그리고 정령사의 찬가는 그런 자연을 인지하고 인정했으며 찬미했다. 그저 그런 현상이 아닌 오래전부터 이 땅을 지탱해 온 거대한 존재로서.
후우웅.
그저 작은 상념이었고,
잠시간의 깨달음이었다.
허나 자연은 마치 이를 위해 억겁의 세월을 기다려 오기라도 한 듯 반응했다.
구후우우웅.
바람이 세차게 불고,
마나를 통해 반응하기는커녕 론의 온몸으로 다가왔다. 마치 자신을 알아준 존재를 샅샅이 파헤치려 듯이.
‘반···가워.’
달그락달그락.
이에 화답하듯 불어오는 세찬 바람에 목에 걸었던 정령석 목걸이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생애 처음 느끼는 기분.
황홀했다.
게다가 라리사가 옆에 있어서였을까.
순간적인 충동이 들었다.
그 어느 때보다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바람. 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내 부름에··· 응해줄 수 있어?’
라리사처럼 마법진도 없이 바람을 일으키는 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다만, 왠지 마법에 바람을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우웅.
손바닥만 한 크기의 평면마법진,
2서클의 기초 원소마법 윈드였다.
허나 그것에서 튀어나온 바람은,
콰아아앙.
그저 그런 기초 마법이 아니었다.
대기를 찢어발길 듯한 강력한 바람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뭐, 뭐야? 방금, 너 설마···.”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걸까.
‘아···.’
엄청난 감각, 새로운 경험, 아직도 믿기지 않는 현실, 한없이 밀려나는 것 같은 인식의 지평선 등 온갖 생각이 드는 상황에서 론이 할 수 있는 말은.
“그러게요. 하하···.”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인 론은 그대로 다시 상념에 빠져들었다. 지금 이 기분, 이 느낌, 깨달음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미친놈···.”
라리사가 뭐라 하든 상관없었다.
***
최종, 3차 선발 시험을 앞둔 2주.
이전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아카데미 커리큘럼대로 똑같이 강의를 들었으며, 저녁에는 론 일행이 모여 마법 수련을 했다. 특히 일전에 파악해 놓은 적색 절벽의 지층 구조를 기준으로 한 두 가지의 마법을 집중적으로만 팠다.
어떻게 보면 그 속만 좀 달랐지, 전체적인 틀은 1학기 때와도 별반 차이가 없었는데,
딱 하나.
“그, 그런데 저분은 왜 또 온 걸까요···?”
사티넬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한쪽을 쳐다봤다.
“응, 걱정하지 마. 그냥 구경하는 거니까.”
“문제는 그 구경하러 왔다는 당신이 우리와 같은 3차 시험 대상자라는 거지. 뭐, 염탐이라도 하게?”
크루딘은 가진 불쾌함을 그대로 내뱉었다. 매사에 털털하고 당당한 그라지만, 지금 준비하고 있는 것은 엄연히 골든스태프 대회 선발전이었다. 누군가는 붙고 누군가는 떨어지는 그런 대전 말이다.
즉, 전력과 전략을 노출당해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하여튼 이상한 것들은 어딜 가나 있어요. 쯧!”
크루딘이 혀를 찼다.
“론! 니랑 다니는 애들은 원래 이렇게 다 싸가지가 없어? 선배한테 당신은 뭐고 반말은 또 뭔데?”
크루딘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목소리.
바로 라리사였다.
“하아···.”
론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 좀 기다리지, 왜 또 와가지고···.”
“얘 말하는 것 좀 봐! 야! 니가 어젯밤에 한 걸 생각해!”
차마 일족의 비밀을 빼갔다는 말로 일을 크게 키우고 싶진 않았기에 라리사는 적당히 둘러 말했다. 실제로 이는 일족의 핏줄에게만 유전되는 특성이었기에 빼가고 말고 할 것도 없긴 했다.
다만, 그러했기에 그녀의 마음은 더욱 의문투성이에 혼란스러웠다.
솔직히 처음에는 잘못 본줄 알았다.
일족의 술법.
이 마법진 너머의 권능은 일반인에게는, 심지어 세간에 천재라 불리는 이들에게도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고작 며칠 붙어 있던 학생이 일족도 아닌데, 바람을 불러냈다. 마법이 아닌 바람을.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해할 수도 없었고.
그래서 알고 싶었다. 대체 그는 뭔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어떻게 지내는지도.
그런 온갖 복잡한 심경이 라리사의 눈빛에 담겼다.
헌데 어째 같이 있던 일행들에게는 그것이 좀 다르게 이해가 됐나 보다.
“뭐, 뭐야···. 어이, 론. 밤에 그, 크흠! 흠. 뭔 짓을 했길래 그래?”
그들의 나이 열여섯. 아직 미성년이라 하나 그런 애정 행위에 대해 모르지 않았다. 크루딘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론을 바라봤고, 사티넬은 귀까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하지만 론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라리사만 볼 뿐이었다.
“하아, 원하는 게 대체 뭔데 그러는 겁니까? 라리사님.”
“라리사?”
“라리사님?”
처음 듣는 그녀의 이름에 모두가 따라 말했다.
“그, 그냥 같이 있게 해 줘. 연습도 같이하고··· 밥도 같이 먹고···.”
말을 하다 말고 라리사가 얼굴을 붉혔다.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이야! 미쳤어!’
라리사, 그녀도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일족의 테두리 안에 있을 땐 언제나 대표로서 아이들을 이끌었고, 아카데미에 와서도 케스케이드 일족이란 타이틀은 많은 이들의 관심과 호의를 일으켰었다.
헌데 어느새 자신이 다른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뭐, 뭐야? 쟤 왜 갑자기 얼굴은 왜 붉히고···.’
그리고 반대로 이를 보는 론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방금의 행동은 그가 봐도 묘하게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했다. 아니나 다를까.
찌릿.
순간 강렬한 시선이 느껴진다.
슬쩍 고개를 돌려 본 곳에는 사티넬의 불신 어린 눈빛이 있었다.
“바, 밤에...”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