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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가 마법사의 회귀-60화 (60/115)

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60

골든스태프 대회.

그 역사를 찬찬히 살펴보면 아들렌 아카데미보다도 훨씬 전이다.

수백 년 전 엘프도 신족도 사라진 이 땅에 불세출의 대마법사가 나타났다. 압도적인 신위로 몬스터들을 밀어내면서 그는 만인의 우상이 되었었다.

누군가는 차원을 넘나드는 이계의 존재라 했으며, 어떤 이는 엘프의 피를 이어받은 그 후손, 또 다른 이는 혼란을 부추기려는 마계의 존재라고도 했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말했다고 한다.

‘내 모든 걸 전수할 후인을 구한다.’

그 말에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서로 자신이 그 자격을 갖춘 자라며 아우성쳤고, 그들은 결투를 벌이며 자신을 증명하려 했다.

시간이 흘러 당시 최후의 1인이 대마법사의 유지를 이어받았다 어쨌다 하는 얘기도 있긴 했지만, 그보다 더 굵직한 역사가 그때부터 시작됐다.

바로 골든스태프.

후에 젊은 마법사들이 한데 모여 자웅을 겨뤘던 얘기를 감명 깊게 들은 한 마탑의 탑주가 이를 답습하였다.

일정 주기로 대회를 개최했고, 우승자에게는 당대 최고의 신예라는 호칭과 신진 마법사들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대우했다. 시대가 흐르며 그 의미도 수상 과정도 조금씩 변해갔지만, 최고의 신예라는 명예만큼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최근 골든스태프 대회는 새로운 분기점에 도달했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600여 년 전의 초대 우승자부터 쭉 우승자를 배출하던 마탑의 권위는 300년 전 아들렌 아카데미의 등장으로 내림세를 겪었는데, 우승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7서클 대마도사라는 초대 총장의 위업과 그 유지로 골든스태프의 명예는 아카데미가 독식하기 시작했다. 자그마치 300년을.

바야흐로 마탑의 시대가 저물고 아카데미의 때가 도래한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 10년.

이 대회의 우승자는 아카데미 출신이 아니었다. 수많은 소수민족과 군소 영주가 모인 중립국과 마탑이었다.

초기 300년간 모든 명예를 독식한 마탑 그리고 그 후 300년을 주도한 아카데미 세력. 묘하게도 300년을 주기로 돌아가는 패권에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아들렌의 바이코누르 국왕도 마찬가지였다. 까놓고 말만 하지 않았지, 이번 대회 우승 보상만 봐도 그랬다.

정말로 그 분기점이 다가온 듯했다.

“이번에도 비(非) 아카데미 출신이 우세를 점하려나?”

마치 론의 긴 상념을 내다보기라도 한 듯 크루딘이 말했다.

“글쎄요. 결국 준비된 사람이 우승하겠지요. 그곳이 아카데미든 마탑이든 어디든 말입니다.”

“그런데 거기가 어디든 론님한테는 못 비빌 거 같은데요?”

“크흠! 흠.”

조용히 듣고 있던 사티넬도 한 마디 했다.

“열여덟 이하의 미성년 마법사들의 대회에 과연 4서클 마법을 펼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그중에서 즉시 시전에 가까울 정도의 숙련도를 쌓은 사람은, 론님 말고는 없을 거 같은데요.”

“어허, 사티넬!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그렇게 다 죽어가는 소리를 하면 어떻게 해! 나도 아직 살아 있다고.”

그러면서 크루딘은 팔을 접어 이두를 뽐냈다. 과연 마법사가 맞나 싶다.

론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나저나 절벽에 날릴 마법은 생각해 봤습니까?”

총장 럼블의 3차 최종 선발전 공표가 있고 난 지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기에 론은 구체적으로 동료들에게 물었다.

“뭐 그냥 절벽에 강력한 흔적을 남겨야 하니까 흙이나 바람 마법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지.”

“음···. 사티넬은요?”

평범한 답변이었다.

살짝 고개를 끄덕인 론이 이어 사티넬을 쳐다봤다.

“도서관에서 찾아봤는데 적색 절벽, 그러니까 이 일대의 지층 구조가 퇴적암 지대라 하더라고요. 실제로 아까 점심시간에 직접 찾아갔었는데, 선명한 층리를 이루고 있는 것도 확인했고요.”

“호오.”

“엥? 층리? 뭐야, 그건?”

“큼, 흠흠. 그러니까 그게 뭐냐면요.”

1차 선발 시험 크립텍스 때도 그렇고, 사티넬은 당면한 과제에 대해 주변 지식을 활용할 줄 알았다.

3차 최종 선발 시험인 적색 절벽.

언뜻 들으면 그냥 힘겨루기 싸움인 것 같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각각의 특징을 가진 여러 지층이 모여있는 적색 절벽이기 때문에 이를 알고 모르고의 차이는 분명 존재했다.

실제로 이를 의도한 것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는 사이 사티넬이 손가락을 펴가며 설명을 하고 있었다.

“층리는 절벽 또는 한 지대의 내부 단면을 보았을 때, 나타나는 줄무늬 모양을 말해요. 크루딘님도 본 적 있으실 거예요.”

“어어, 본 것 같아. 줄무늬 모양.”

“그게 바로 층리에요. 뭐 엽리라는 것도 있는데 설명이 길어지니 이건 넘어가고. 아무튼 결국에는 오랜 시간에 걸쳐 퇴적물이 쌓이고 굳어진 지층을 말하는데 결론은 각 지층마다 특징이 있어요.”

“으응? 그게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거야?”

“네, 당연하죠! 특정 지층은 열 또는 물에 취약하거든요.”

“에엥?! 진짜?”

“네!”

“허어···. 사티넬 그런 식으로 안 봤는데, 론이 말 안 했으면 혼자서 이걸···. 읍!”

크루딘이 말을 하다 말고 장난스럽게 입을 틀어막았다. 이에 사티넬의 고운 미간이 꿈틀거렸다.

“안 그래도 어짜피 얘기하려고 했어요!”

“푸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큭큭큭.”

“정말···.”

장난치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절로 입가가 올라간다.

“어이, 론. 너는 알고 있었던 거야?”

“아닙니다. 그런데 재밌는 얘기군요, 지금 해지기 전에 당장 가보는 거 어떻습니까?”

어짜피 오후 일과를 마치고 식당에 가던 길이었다. 타이밍도 나쁘지 않았고 말이다.

“쇠뿔도 단김에 빼야죠.”

**

“와우··· 여기가 적색 절벽이야?”

“예. 그런 것 같군요.”

“네, 그런데 명칭처럼 완전 적색은 아니에요. 군데군데 지층에 따라 조금씩 달라요. 지진 때문이었는지 층이 어그러진 곳도 있고요.”

“그러게. 음? 그런데 저기 저 사람들도 조사하러 나온 거 같은데?”

크루딘이 갑자기 입을 가리며 말했다.

“뭐 그렇겠지요. 뭘 하든 사전 조사, 현장 조사는 필수니까 말입니다.”

“크흠! 그렇지 암!”

그러고 나서 론 일행은 협곡의 아래로 내려가 반대편까지 다가갔다.

우우웅.

퍼억.

화르륵.

물을 소환해 절벽에 적셔보고, 불로 지져보는 등 각각의 지층들에 대해 파악했다.

그러기를 한참.

“결국 뭐가 됐든 간에 원소 마법 하나를 정하든 아니면 특정 지층을 정하든 한 다음 공략해야 된다는 거네.”

정확했다.

지층에 대한 이해도는 거의 필수였다. 동일한 마법이라도 어느 지층이냐에 따라 부서지는 정도가 달랐다. 그 공략 순서의 차이만 있을 뿐.

“그렇겠지요. 동일한 마법이라도 어떤 지층에 맞췄느냐에 따라 파괴되는 정도가 다를 테니까 말입니다.”

“네 맞아요. 특히나 이 사에아로 구성된 지층은 흙이나 바람 마법보다 물 마법으로 공략하는 게 더 쉽게 파낼 수 있어요.”

“문제는, 과연 시험 장소가 어디냐는 거군.”

“예,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그 장소가 어디냐, 더 정확히는 그 장소의 지층이 어떤 구조냐에 따라 결과가 많이 갈리겠지요.”

그렇게 론 일행은 해가 질 때까지 적색 절벽 일대를 쭈욱 돌아다니다 아카데미로 돌아왔다.

시험 장소는 미지정이었기에 해당 장소의 지층 구조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전체적으로 둘러보고 자신이 공략하기에 적합한 두세 가지만 골라 연습하는 게 효율적이었다.

‘뭐 그게 정석이긴 하지···.’

저녁을 먹고 이후 모여 수련을 하는 동안에도 모의시험은 계속됐다.

캄캄한 밤.

아카데미 각 부지를 채우던 학생들은 모두 들어가고, 이를 대신해 어둠이 그 자리에 내려앉았다.

론은 그 고요함을 조용히 만끽했다.

“거기 건방진 1학년. 무슨 야밤에 그렇게 폼을 잡고 있어.”

이제는 저 쌀쌀맞음에도 제법 친근함이 느껴진다. 라리사였다.

일전에 토네이도 마법 수련에서 제법 성과가 있었던 탓인지 그녀의 얼굴은 꽤 밝아진 상태였다.

“2차 선발 시험 합격 축하드립니다.”

“흥! 당연한 거 아냐? 게다가 나는 실력은 물론이고 운도 타고나서 단 1승만으로 통과했지! 흥흥.”

“오, 누가 부전승의 행운을 거머쥘까 궁금했는데 라리사님이었군요. 저랑 같네요.”

“그래, 너랑 같···. 응? 잠깐 그게 뭔 소리야? 너도 부전승으로 올라왔단 얘기야?”

“예.”

웬 시답잖은 소리냐며 한마디 하려 했던 라리사였는데, 론의 표정은 그저 차분하기만 했다. 장난기라고는 살펴볼 수 없는 표정에 도리어 라리사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상대편이 기권하는 바람에 그렇게 됐습니다.”

“하! 일생의 대회를 두고 기권을 한다고?! 참나, 사람이 그렇게 맹해가지고야. 쳇!”

“그럼 졸업시험 연습이나 어서 하죠.”

론이 고개를 돌려 숲속 공터를 향했다.

“거기 1학년. 너 조심해. 3차 최종 선발전은 졸업시험이 아니야. 네가 아무리 잘났다 한들 과연 내 일족의 술법보다 강할 거 같아?”

‘호오.’

발걸음마저 멈춰 세울 정도로 인상적인 도발이었다. 그리고 이는 론도 궁금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궁금하군요. 케스케이드 일족의 바람과 일개 1학년의 마법. 누가 더 강할까요?”

하지만 그리 말하는 론의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라리사의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로 아주 부드러운.

**

“다시!”

론의 차가운 외침이 공터를 갈랐다.

3차 선발은 3차 선발이고, 지금은 졸업시험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라리사의 토네이도 마법진 마법 성공률은 30퍼센트. 서너 번에 한 번꼴로 겨우 성공하는 수준이었다.

“감은 잡았지만 아직도 통제는 미숙합니다. 이런 식으로 실패하면 졸업시험에서 불합격입니다.”

“하아, 하아···. 알아, 안다고.”

벌써 수십 번.

마법진이 만들어지고 온전히 마법으로 발동되기까지 계속해서 무의식적인 술법 발동을 통제해야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점은 케스케이드 일족의 술법은 지극히 감성적이었다. 모든 마법 혈통의 술법이 그런지는 모르나, 그녀는 확실히 그랬다.

서너 번 내리 성공하는가 하면,

반대로 내리 실패하기도 했다.

“불필요한 감정은 집중을 흩트릴 뿐입니다. 다 지우십시오!”

“마도 공학 기계처럼, 톱니바퀴처럼 그저 마법진 대로만 마나를 운용하십시오.”

“마법을 펼치는데 왜 촉감, 바람에 집중합니까!”

“눈 감지 말라고 했습니다! 똑바로 마법진 보십시오!”

“다시! 다시!! 다시!!!”

“으아아아아!!!”

라리사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누웠다.

“쫌만, 쪼금만 쉬자. 너무 신경 썼더니 머리 아파.”

“3차 시험은 어떻게 할 겁니까?”

“왜? 벌써 견제하려고?”

“뭐 그렇다기보다는 그것도 같이 수련하면 좋지 않습니까.”

사실 안타깝게도 회귀 전 그녀는 출전권을 따낸 최후의 2인이 아니었다.

본래라면 자기 자신만 출전하면 되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지만, 본선의 무대와 이것저것을 생각했을 때 지인과 같이 출전하는 게 유리하긴 했다.

물론 그럴만한 실력이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골든스태프 대회의 우승자는 아이블 마탑의 수련생이었다.

세력이 가장 미미하다고 알려진 아이블 마탑에서 우승자가 나오자 회귀 전에도 엄청 떠들썩했었다. 정말 아카데미의 시대가 저무는 것 아니냐면서.

허나 이미 한 평생을 살았던 론은 그간의 일들을 반추해 봤을 때 떠오르는 하나의 가정을 무시할 수 없었다. 바로 어둠의 세력. 그들이 어둠의 원소를 내세우며 양지로 올 때 그 기반이 된 세력이 바로 마탑이었고, 그중에서도 핵심은 아이블 마탑이다.

‘만약 이 모든 게 그들의 계획 하에 진행됐던 거라면···.’

이번 대회의 주최는 지오르 마탑. 이전 대회의 우승자를 배출했기 때문이었는데, 그냥 만만히 볼 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아샨 타슈켄트 같이 모르는 사람보다는 아는 사람이랑 나가는 게 훨씬 낫겠지.’

고개를 돌린 론의 시선 끝에는 ‘아는 사람’, 라리사가 세상 편하게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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