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59
훈련장이 고요했다.
구경하는 학생만 해도 백 명이 가뿐히 넘는 공간, 하지만 말을 꺼내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론 스펜서, 고작 1학년이었다.
중급 몬스터 사냥에 마탑 수련생과의 결투, 상급생들의 린치를 역으로 받아치는 등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그것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을 선보였다.
즉시 시전.
해당 마법에 대한 완전한 숙련도를 넘어 마나컨트롤 또한 해당 서클의 수준을 완전히 상회해야지만 가능한 것이었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 구경하는 학생들의 수준이 각양각색이었지만 즉시 시전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보고 있던 라비오와 심판 율리안은 그저 입만 뻐끔거릴 뿐이었다.
그리고 그 고요한 정적을 깬 것은,
론이었다.
“다음 마법, 안 하십니까?”
“어? 어어, 어···.”
놀라 주저앉았던 라비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니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정신을 어디에 둔 건지 몇 번이나 휘청거렸다.
그리고 이는 율리안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이, 일학년이 4서클 마법을 즉시 시전···.’
율리안 크레이아스.
그의 나이 서른여섯에 5서클 엘리멘탈 리스트가 되었을 정도로 남다른 재능의 소유자였지만, 그도 열여섯에 저 정도는 아니었다.
아카데미 학생 때부터 마법이면 마법, 외모면 외모, 성격이면 성격 뭐 하나 밀리는 게 없던 그였다.
딱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그의 아카데미 기수는 골든스태프 대회와 시기가 맞지 않았다는 점. 이미 동 나이대에서는 견줄 사람이 없었지만, 골든스태프는 때가 맞아야지만 얻을 수 있는 영예였다.
이룰 수 없었던 업적.
그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골든스태프 대회를 나가는 학생을 볼 때마다 매번 날카로운 잣대를 세웠던 게 말이다. 감히 자신도 못 누린 영예를 감히 너 따위가 누릴 자격이 있냐는 듯이.
그런데 그런 율리안이 할 말을 잃었다.
가히 압도적인 실력.
4서클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열여섯에··· 4서클? 분명 전달받은 명부에는 3서클이었는데···.’
율리안은 심판으로서의 직무도 까먹은 채 멍하니 있었다.
우우웅,
웅.
우웅···
웅.
어디선가 들리는 마나 공명음.
상당히 불규칙적이었다.
“교수님, 저거 언제까지 지켜봐야 합니까?”
“으응? 아아, 아···.”
상념에 잠겨 있던 율리안을 론이 강제로 끄집어냈다.
할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율리안이 허둥지둥 대답하고는 론이 가리킨 방향을 쳐다봤다. 라비오가 넋이 나간 얼굴로 애써 마법진을 만들려 하고 있었다.
허나 그의 그런 바람과는 달리 마법진은 하염없이 흔들릴 뿐이다. 멘탈이 무너진 것이다.
그리고 그것도 이내 끝이었다.
우웅, 웅···.
펑!
“크윽···.”
라비오의 양손 사이에 있던 마법진이 결국 깨져버렸다.
털썩.
그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하···.’
마법 수련생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최고의 영예, 골든스태프. 하지만 압도적인 재능을 목도했고 그를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재능의 차이. 수많은 사람 앞에 까발려진 기분이었다.
지금은 그저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와 비교되는 자신이 너무도 초라했기에.
전의는커녕 눈길조차 마주치지 못하고 라비오는 고개를 떨궜다. 그런 그에게서 론은 어디선가 익숙한 향수를 느꼈다.
‘나도, 저랬었나···.’
피식.
과연 자신이 맞나 싶을 정도로 먼 과거가 되어버린 오랜 향수. 이를 툴툴 털어내고 론은 율리안을 쳐다봤다.
“교수님?”
“어어. 로, 론 스펜서. 승!”
목줄이 묶인 짐승마냥 론이 이끄는 대로 율리안은 판정을 내렸다.
웅성웅성.
‘내, 내가 대체 뭘 본 거냐?’
‘하! 저 나이에 저래도 되는 거냐 상식적으로?’
‘와아···. 열여섯에 4서클···.’
‘아니, 나는 2서클 마법도 즉시 시전하는 게 빡센데, 싯팔!’
‘밀로 걔네 패거리가 줘 터질 만했네.’
하나둘 들리던 관중 소리는 이내 훈련장을 가득 채워버렸다.
‘그나저나 못 하는 척하는 연기도 신경을 써야겠군···.’
하마터면 론은 정말 즉시 시전을 할 뻔했다. 회귀 후 실력이 날로 성장하고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능숙해질 줄은 몰랐다. 오히려 너무 빠르지 않게 조절해야 할 정도였다.
‘그 정도면 5서클도 가시권이니까.’
5서클.
흔히 범인(凡人)을 구분 짓는 경계선이라고들 한다. 5서클은 다중 마법의 시작점. 즉 하나의 뇌로 둘 이상의 마법을 시전한다는 말이었는데, 이에 이르기 위해서는 앞선 단계보다 훨씬 많은 재능을 필요로 했다.
평생을 가도 4서클에 머물러 있는 자들이 수두룩했으니까 말이다. 그만큼 4서클의 즉시 시전은 5서클을 내다볼 정도의 재능이라 봐도 무방했는데,
율리안 교수가 이를 아는지 여전히 멍한 표정이었다.
그런 그를 뒤로한 채
론은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고, 고생하셨어요···.”
“너 진짜 나랑 같이 다니는 그 론, 맞냐?”
“예, 맞습니다.”
크루딘은 말할 것도 없고 이미 피에타 유적에서 5서클 마법을 봤던 사티넬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이 정도로 실력을 드러낼 줄은 몰랐나 보다.
쩝.
사실 외부활동 보고서를 비롯한 오명을 벗었다고는 해도 실력으로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인정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론이 출전하려는 건 골든스태프 대회. 즉, 애매하게 통과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듣느니, 완전히 압도해버리는 편이 나았다. 그래야 깔끔히 인정하고 오히려 응원하는 사람들까지 생길 테니까 말이다.
“아니 무슨 맨날 붙어 다녔는데···. 하! 미로에서 그렇게 연습한 거냐?”
“뭐 그렇습니다.”
크루딘의 말대로 떨어져 있는 시간이라 해봐야 미로에 있을 때뿐이다. 그런데 그사이에 이렇게 격차가 벌어지니 그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올라오라고.’
론은 크루딘의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그 또한 어서 3서클을 넘어서길 바랄 뿐이다.
그렇게 론 일행이 얘기를 주고받는 사이 교수들 쪽에서는 얘기가 끝난 듯했다.
“토너먼트 승리자들은 모이거라.”
율리안을 대신해 다른 교수가 선발자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앞서 말했듯이 여기 제4 훈련장은 부전승이 없는 조다. 때문에 토너먼트가 빨리 끝날 시 2회전까지 치러도 좋다는 얘기를 받았었거든. 너희 의견에 따라 토너먼트를 진행 여부를 결정하려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음? 괜찮은데?’
무슨 얘길까 싶었는데 나쁘지 않았다.
“저는 찬성입니다. 하루 사이에 실력이 바뀌는 것도 아니니, 차라리 일찍 끝내면 여유도 더 생기고 좋지요.”
론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
이유야 앞서 말한 대로 고작 하루의 유예로 결과가 바뀌는 대결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무덤덤한 대답이 다른 이들에게는 꽤나 설득력 있게 들린 듯했다.
“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도 찬성··· 입니다.”
“저도···.”
가뜩이나 1학년 주제에 4서클 마법을 즉시 시전에 가깝게 펼친 론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가히 압도적인 천재나 다름없었으니, 그의 의견에 감히 토를 달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6명의 승자 중 남은 다섯 또한 수긍하자, 담당 교수는 그 자리에서 제비뽑기를 실시했다.
“1번입니다.”
“헉!”
론은 자신이 뽑은 번호를 말하자 뒤이어 신음을 흘린 사람을 쳐다봤다.
‘저 사람 이름이 뭐였더라.’
기억은 안 나지만 좀전의 마법진 배틀에서 3서클 마법진으로 끝내 상대를 제압했던 이었다.
“기, 기권하겠습니다.”
‘음?’
론뿐만 아니라 담당 교수도 잘못 들었다는 듯이 해당 학생을 다시 쳐다봤다.
“제가 3서클이 최대라···.”
“아···.”
그제야 이해가 됐다.
이미 론이 4서클의 마법까지 펼치는 걸 봐버렸으니 결과야 뻔했던 것이다.
“바르보,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아쉽게 탈락이지만, 그래도 2차 선발까지 올라온 것만 해도 자랑스럽게 여겨도 된다. 고생했다.”
“예···. 교수님.”
따뜻하게 격려해 준 교수였지만, 이 자리에서 아쉬워하지 않을 자가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게 바로 승부였다.
참가자의 열정과 마음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외면하며 승과 패로 갈라놓는.
사람들은 말한다.
인생에는 모두 때가 있다고.
성장할 때, 나아갈 때, 물러설 때, 그리고 죽을 때 등등.
그리고 지금은 마법사로서 생애 한 번을 누리기도 힘든 골든스태프의 영예를 누릴 수 있는 때였다. 그 문턱을 넘어서려는 순간이다.
모두가 나아가는 이 순간.
론은 지체할 이유도 마음도 없었다. 그저 가진바 모든 것을 동원해 그것을 취할 뿐이다.
2차 선발 시험 토너먼트 1일 차.
론을 포함한 그의 일행은 전원 통과했다.
***
1차 시험 합격자 57명은 2차 시험 토너먼트가 끝나자 17명으로 줄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마지막 관문이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습니다. 이미 아카데미의 대표라 해도 충분할 여러분들이지만, 아들렌 아카데미가 가진 출전권은 단 두장 입니다.”
럼블이 눈앞의 학생들을 지긋이 쳐다봤다.
하루 일과가 끝난 저녁 시간.
대회 선발자들을 위한 설명이었지만, 이에 관심이 있는 이들까지 막아두는 건 아니었기에 강당에는 수많은 학생이 쳐다보고 있었다.
니칸, 사브르에소, 카를, 다이라···.
회귀 전 이맘때 열심히 같이 다닌 친구들도 있었다.
‘구경하러 온 건가.’
2학기 실기 시험, 원소 마법을 펼치기 위해 그리도 밤을 새우며 애를 썼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아는 사람이야?”
론의 눈빛에 담긴 감정을 읽기라도 한 걸까. 크루딘이 반응했다.
“아닙니다. 그냥 좀 익숙해서.”
“뭐야 싱겁기는. 후우, 그나저나 이제 진짜 마지막이네. 긴장된다.”
“그러게요. 여기까지 올 줄은 정말 생각도 못 했는데···.”
마지막 관문. 이를 앞두고 크루딘과 사티넬이 각자의 소회를 밝혔다.
“그래도 최종 진출자는 밝혀야죠.”
론의 말을 끝으로 그의 일행은 다시 럼블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1차와 2차를 통해 여러분들의 지성과 재능을 보았다면, 마지막 3차는 힘입니다. 오묘하고 방대한 힘, 마법. 이를 온전히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다면, 일국의 군대 또한 막을 수 있는 게 마법이지요. 여러분들이 정말 당대 골든스태프의 영예를 취할 자라면, ‘압도’하십시오.
마지막 시험은 적색 절벽입니다. 아카데미 북쪽 외곽에 위치한 이곳은 지세가 험준해서 사람들이 잘 안 가는 곳이지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여러분들의 실력을 판가름할 수 있습니다.”
‘드디어 나올 게 나왔군.’
이는 회귀 전에도 상당한 볼거리였기에 론은 기억하고 있었다.
“협곡에 위치한 이곳은 양 지대 간 거리가 약 50미터입니다. 원거리 마법의 적정 사거리지요. 가장 강력한 흔적을 남기는 사람이 출전권을 획득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시험은 학기 말 일정을 고려해 2주 뒤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그날, 미련이 아닌 후련함을 새기기를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이를 끝으로 럼블은 물러났다.
‘적색 절벽···.’
이미 론은 당시의 기억은 물론이고 최종 합격자 2인까지 알고 있었다.
‘아샨 타슈켄트와···.’
한명 한명 떠올리던 론은 문득 드는 생각에 합격자들을 둘러봤다.
가장 가까이는 크루딘과 사티넬이 있었고, 저 끝에 밝은 회색깔의 머리카락을 가진 학생도 보였다. 바로 라리사.
‘혹시 그럼,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의 결과까지 바꿀 수도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