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 마법사의 회귀-56화 (56/115)

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56

티라우스 교수.

원소 마법 담당이자 1학년 학생 주임이다. 그리고 이번 플라츠 일당의 선동 사태 때 론에게 변함없는 지지를 해줬던 이였고 말이다.

만약 친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티라우스 교수와 나이가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인지 론은 그녀가 편하고 친근했다.

때문에 어서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

똑똑.

티라우스 교수의 집무실.

노크를 했는데 반응이 없다.

“음···. 아직 점심 식사 중이신가?”

“안 계셔?”

“예, 자리를 비우신 것 같습니다.”

“에이, 아쉽네. 그나저나 우리가 일등 아냐? 큭큭.”

“1학년에서는 확실히 1등일 거 같긴 해요.”

그렇게 론 일행은 아쉽지만 돌아서려는데 안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부···ri···드ÛⅠ리tasa···.”

“어?”

“뭐라 얘기하신 거 같은데···.”

“뻔하지, 들어오라는 얘기겠지. 빨리 들어가자!”

그랬다.

티라우스는 교수는 이제껏 면담이나 질문을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기에 론 일행은 별생각 없이 문을 열어버렸다.

끼이익.

“하하하, 교수님! 제가 일등입니다, 일등! 드디어 골든스태프 대회에서···.”

호기롭게 외치며 들어가던 크루딘.

“어···음···.”

그가 말을 잇지 못한 채 더듬거렸다.

“아! 너희들 왔구나. 이런 내가 정신이 없어서 신경을 못 썼다.”

난처한 표정을 짓는 티라우스 교수.

그런 그녀 앞으로 한 사람이 더 있었다. 무릎을 꿇은 채 초라한 뒷모습을 보이는 학생. 그의 금발이 훤히 보인다.

플라츠였다.

플라츠 예런. 얼마 전 아카데미를 선동하며 론과 그 일행을 난처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장본인 말이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후로 관련된 학생들 모두 강의도 안 들어오고 있다는 등 중징계가 있을 거란 얘기가 파다했다.

그리고 눈앞의 플라츠는 그런 일당의 수장이었고.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참···.’

론이 앞으로 좀 더 나아가자, 비스듬하긴 해도 플라츠의 얼굴이 좀 보였다.

가관이었다.

부릅떠진 눈동자는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곱게 봐줄 론이 아니었다.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

누군가를 매장하려 했다면, 도리어 그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인생은 실전이야, 예런 꼬맹아.’

론은 더 이상 그를 플라츠로 보지 않았다. 그 뒤에 있는 예런 백작가까지 염두에 두었다. 그리고 사실 그 또한 별로 무섭지 않았고 말이다.

“교수님, 다름이 아니라 저희 세 명 모두 크립텍스를 풀었습니다.”

풀썩.

이미 더 주저앉을 것도 없는 플라츠였지만, 그의 어깨가 축 늘어지며 옆으로 휘청거렸다.

‘아···.’

플라츠는 정신이 멍해졌다.

1학년 수석. 변함없는 자신의 성적이었다. 예런 백작가의 차남이긴 하나 형과 나이 차도 별로 나지 않았다. 게다가 조용한 형보다 더 뛰어났으면 뛰어났지, 뒤진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래서 눈에 띄고 싶었다.

잘나고 싶었다. 관심을 독차지하고 싶었고, 가문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수많은 가신에게 우러름을 받는 예런 백작가의 가주 자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저 별거 아닌 서출이라 생각한 론. 그는 정말 나이에 맞지 않은 엄청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국왕의 눈에까지 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골든스태프 대회의 1차 선발도 통과하려 하고 있었다.

무릎 꿇고 있는 자신과는 극명하게 구분됐다.

“하하···.”

잠시간의 상념.

플라츠의 입에서는 그저 실소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허나 론은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분리된 크립텍스와 그 안에 있던 사브렌 종이를 티라우스 교수에게 내밀었다.

“정말···이구나, 너희들.”

골든스태프 대회.

마법 아카데미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관심을 두는 공식 행사인 만큼 티라우스 교수는 이를 지체할 수 없었다.

“그래, 이리 주렴. 크립텍스는 기념품이니 그대로 가져가면 된단다.”

“아 네, 알겠습니다.”

론 일행이 차례로 사브렌 종이를 제출했다.

“뭐 너희도 짐작했겠지만, 1학년 중에는 너희가 당연히 1등이다.”

“와우, 역시! 교수님 그러면 전 학년에서는요?”

크루딘이 탄성을 내지르면서도 다음 질문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글쎄?”

“네? 그게 무슨 말씀···.”

“어제까지는 아무도 없었거든, 오늘은 취합 중이고 말야. 당연히 다른 학년 주임 교수님 얘기도 들어봐야겠지?”

“아아!”

1차 시험인 크립텍스를 푸는 사람은 이를 담당 교수에게 전달해야 했는데, 그게 학년별 주임 교수였다.

“현재 시각 열두 시 사십오 분. 기록해 두마. 너희 셋 중에 누구를 먼저···.”

“크루딘이 가장 먼저 열었습니다. 교수님.”

당연히 론일 줄 알았던 티라우스는 의외라는 듯 동그랗게 오므렸다. 하지만 이어서 크루딘이 가슴을 팡팡 두들기며 우쭐해 하자 그녀는 이내 피식 웃었다.

“그래, 축하한다. 1학년 학생 주임으로서 아주 자랑스럽고 기분이 좋구나. 이따 교수 회의 때 다른 학년 교수님 얘기도 들어보마. 일단은 가보거라. 교수님은 할 일이 남아서 말이다.”

“아, 네 알겠습니다. 교수님, 그럼 고생하십시오.”

그렇게 론 일행은 사브렌 종이를 제출하고 돌아섰다.

얼마 전까지 그렇게 말썽을 피우던 플라츠의 얼굴이 훤히 보인다.

표정이 아주 제대로 구겨져 있다.

흥.

론 일행은 일말의 아는 체도 없이 그대로 지나쳤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

“푸하하하! 봤어? 다들?”

“뭘 말입니까?”

“뭐긴 뭐야! 당연히 플라츠지! 난 무슨 땅에 박힌 신종 몬스터인 줄, 큭큭큭. 뒤에서 몰래 쥐새끼처럼 그러더니만 아주 볼만 하더라. 하하하!”

“그런데 그 사람이 그렇게까지 반응할 정도면 총장님께서 단단히 진상을 밝히셨나 보네요.”

“예, 아무래도 가만두지 않을 것 같더군요.”

확실히 그랬다.

귀족의 무릎은 결코 가볍지 않다. 때로는 목숨값보다 비싼 게 그것인데, 플라츠가 그리 행동했다는 것은 럼블이 그 또한 쉬이 넘어가지 않을 거란 얘기였다.

“인내의 열매는 달다더니, 캬아! 좋다~ 좋아. 같잖은 쥐새끼들은 소탕되고, 1차 선발 시험은 1등으로 딱! 통과해버리고, 크으!”

이제껏 봐온 그의 모습 중 가장 통쾌해 보였다.

크립텍스를 푼다고 점심까지 재낀 그들이었지만, 크루딘은 그럼에도 기분이 고조되어 있었다.

“플라츠 건은 그렇다 치고, 선발 시험은 겨우 1차인데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닙니까?”

“어허! 론, 뭘 모르는군. 그 ‘겨우 1차’를 잘나고 잘난 우리 형님들은 통과도 못 했다고. 푸하하하!”

“으음?”

“에? 정말요?”

심심할 때면 가문의 형제와 원로를 씹는 크루딘이었다. 허나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들의 실력이었는데, 그런 그들이 선발 시험조차 통과 못 했단 얘기는 좀 충격이었다.

“응, 그렇다니까~ 첫째 형 때는 아예 대회 기간이 아니었고, 둘째 형은 나랑 똑같이 1학년이었는데, 당시 1차가 뭐였는진 몰라도 아무튼 통과 못 했었거든. 큭큭큭.”

“오, 그건 좀 의외군요.”

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뭐 가문에서는 1학년이 어떻게 선배들을 앞서겠냐면서 우쭈쭈 해줬는데, 아이고! 난 통과해버렸네? 푸하하하. 아, 빨리 돌아가서 원로들 얼굴 벙찌는 것 좀 봐야 돼는데, 큭큭큭. 편지라도 써서 보낼까?”

저 정도면 거의 가문의 원로들을 놀리는 데 재미 들린 게 틀림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씹어대던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론이 물었다.

“그나저나 다들 학기말 시험은 괜찮습니까?”

요새 한창 라리사의 졸업시험 준비를 봐주는 그였기에 문득 이들은 어떤지 궁금했다.

“학기말 시험이요?”

“어허, 론. 선수끼리 왜 이럴까? 3서클이 코앞인 사람들한테 고작 1학년 수업을 묻는 건 ‘실례’라고.”

1학기 때와는 달리 2학기에는 실기 시험이 추가된다. 그리고 그 항목은 1학년의 경우, 2서클 마법 세 가지다.

물론 3서클 마법을 연습 중인 크루딘이나 사티넬에게는 어울릴 질문이 아니었지만, 골든스태프 선발이 앞당겨지는 바람에 상급생들 몇몇은 상당히 버거워하고 있었다.

필기시험, 실기시험, 그리고 거기에 일생일대의 대회 선발까지.

실은 그게 바로 라리사였다.

피식.

괄괄대던 그녀 모습이 떠올라 론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어어? 사티넬 방금 봤지? 론 비웃는 거. 와아, 론 이거 간담회 함 갔다 왔다고 아주 상전이 다 되셨네.”

“푸훕, 왜 그러세요, 크루딘님.”

“크흠, 흠. 뭐 아무튼 이번엔 이래저래 신경 쓸 게 늘어났지만, 다들 시험 잘 치십시오. 그래도 10등 밖은 좀 그러지 않습니까.”

“억! 론, 너 설마 지금 나 저격한 거야? 엉? 와, 나 진짜 너 그렇게 안 봤는데. 하!”

크루딘이 옆에서 계속 뭐라뭐라 떠들어댔지만, 론은 무시하고 쭈욱 걸어갔다.

“어우, 크립텍스 푼다고 점심까지 재꼈더니 엄청 허기지네요. 사티넬, 빨리 강의 듣고 저녁 먹으러 가죠.”

“푸흡! 네!”

킥킥킥.

한쪽에서는 정신없이 떠들고 또 한쪽에서는 웃어대느라 아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 소란스러움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

아카데미의 자정.

아직 시험 기간도 아니었으나 아카데미는 활기를 띠고 있었다.

이유야 뻔했다. 2학기 때마다 치러야 하는 실기시험과 더불어 골든스태프 대회 선발 시험이 겹쳤기 때문이다.

“거기 아주 잘난 1학년생. 좀 늦었다?”

도서관 외곽에 숲속.

그 깊숙한 곳의 공터에서 라리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저는 항상 정한 시간에 옵니다.”

론이 품에 있던 회중시계를 쳐다보며 말했다.

“라리사님이 일찍 왔을 뿐.”

“그게 그말이지이! 흥.”

라리사가 팔짱을 끼고 도도하게 쳐다본다.

“그렇게 원하시니 그럼 바로 하지요.”

우우웅.

론이 손을 펼치기 무섭게 마법진이 그려졌다.

“헉! 얘는! 그만그만! 무슨 애가 순서도 없니?!”

이전의 도도한 표정은 어디 갔는지 라리사가 허둥지둥 팔을 휘저어댔다.

“뭐 빨리 연습 하자는 거 아니었습니까?”

“하아, 진짜···.”

깊은 한숨을 내 쉰 그녀가 잔디 위로 풀썩 누워버렸다.

“아 몰라. 요새 미치겠어.”

“···”

라리사의 심경이 꽤나 복잡해 보였다.

“하, 막 학기인데 진짜···. 아니 그 미친 밀로인가 뭔가 하는 꼴통은 왜 돼도 않는 짓거리를 해가지고, 쯧!”

“아···.”

“원래는 졸업시험 치고, 깔끔하게 선발 시험 치렀으면 딱 좋았잖아. 그 미친 꼴통 새끼 때문에 왜 나까지 이렇게 피해를 봐야 되냐고오!!”

거의 절규에 가까웠다.

“······”

‘이 정도면 굳이 제명이 아니어도 3학년들한테 매장당할 수준인데?’

플라츠 일당의 선동으로 아카데미 분위기는 상당히 어수선해졌고, 그 때문에 대회 선발자를 뽑는 일정이 당겨졌다. 덕분에 2학기 때 가장 바쁜 3학년들은 아주 죽을 맛이었고.

그리고 그 원흉인 밀로는 당연히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럼 라리사님도 크립텍스를 받아 가셨겠군요.”

“당연하지. 일족의 체면이 있는데.”

“호오, 그래서 풀었습니까?”

“아니이. 졸업시험 준비하랴 정신없다, 이 선배님은. 어짜피 기한은 일주일이잖아.”

“네, 근데 그 일주일에서 이제 반이 지났죠.”

“크립텍스 정답쯤이야 마지막에 가면 다 소문이 돌 거라고. 그때 가서 해도 돼. 돌리는 거야 할 수 있으니까.”

“오.”

효율적인 발상이었다.

확실히 시간이 지날수록 1차 시험에 통과하는 사람은 늘어날 테고, 이러나저러나 소문은 돌 수밖에 없다.

즉, 라리사는 안 그래도 없는 시간이니 그런 소문까지 이용하겠다는 얘기였다.

칭얼칭얼 거리기에 못이기는 척 크립텍스 힌트를 줄까 했는데,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역시 케스케이드 일족은 다르군요.”

“흥! 뭐 이 정도쯤이야!”

론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라리사가 허리를 튕기며 일어났다.

“하여간, 꼴통들 때문에 피는 봤지만 내가 반드시 해낸다!”

그녀가 양손을 움켜쥐며 각오를 다졌다.

“그럼 바로 시작할까요?”

“어? 바, 바로?”

“요 며칠 짧기는 해도 마법진 완성까지는 했으니, 슬슬 발동까지 시도해 봐야죠. 시간이 얼마 없지 않습니까.”

“어어. 그, 그렇긴 하지···.”

라리사가 괜히 어물쩍거렸지만 론은 손을 뻗었다.

우우웅.

순식간에 마법진이 생기고,

투웅.

투웅.

투웅.

여러 개의 암석들이 라리사의 머리 위로 아슬아슬하게 떠 있었다.

“크윽···!”

시작은 역시 라리사의 마나 빼기.

즉, 암석 받치기부터였다.

잔뜩 찌푸린 얼굴로 마나를 방출하고 있는 라리사를 바라보며 론이 무덤덤하게 한마디 던졌다.

“집중 안 하면 머리 깨집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