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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가 마법사의 회귀-55화 (55/115)

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55

55화

강당에 있던 학생들이 놀라 쳐다봤다.

3학년 수석 아샨도 어렵게 돌리던 걸 1학년인 론이 손쉽게 움직여버린 것이다.

‘보고서 내용이 사실이긴 한가 보네.’

‘그럼 진짜 중급 몬스터도 잡은 거야?’

‘이제 겨우 1학년인데···. 엄청난 신입생이군.’

‘에이 그래도 아샨이 먼저 했으니까 보고 따라 한 거 아냐?’

‘보기는 개뿔, 저 론이란 애는 그때 아샨의 등만 보고 있었는데 무슨. 그런 식이면 오히려 처음 호명된 애는 총장님이 하는 걸 코앞에서 봤는데 왜 못 했는데?’

소란스러운 강당을 보며 럼블이 소리쳤다.

“이것이 1차 선발 시험입니다.”

무엇을 위한 선발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아들었다. 바로 골든스태프 대회.

“그럼 본격적으로 이 크립텍스의 잠금 해제하는 열쇠 문구를 말하겠습니다.”

학생들의 면면을 최대한 마주해 가면서 럼블이 말을 이었다.

“아침에는 네 발로 걷고, 낮엔 두 발로 걷고, 저녁 무렵에는 세 발로 걷는 동물, 이를 뜻하는 고대 앤글어가 바로 크립텍스를 푸는 문구입니다.”

산 넘어 산.

크립텍스를 움직이는 것조차 아직 미지수인 가운데, 정답인 문자열에 대해서도 문제로 내버렸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 와중에 이를 되뇌며 암기하고 있었다.

벌써 시작인 셈이었다.

5년에 한 번인 골든스태프 대회.

어물쩡거리며 불만 불평을 늘어놓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유수의 가문들에서는 일찍부터 준비시켰을 터였다.

“참고로,”

럼블이 좌중을 집중시켰다.

딱, 따다닥, 딱, 딱, 딱.

그리고 이어서 크립텍스의 다이얼을 몇 차례 돌렸는데,

철컥.

무언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그것이 분리됐다. 럼블은 그 안에 있던 종잇조각을 꺼냈다.

“크립텍스 안에 있는 이 종이는 마법인장이 찍힌 사브렌 종이입니다. 사브렌 종이는 알다시피 마나를 흡수하지요. 대리자를 통해 이 크립텍스를 풀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개개인이 가진 고유의 마나가 흔적으로 남습니다.

전 세계 모든 마법 수련생들이 참여하는 대회이며, 전 세계인들이 축하하는 축제입니다. 아들렌 아카데미 학생으로서 위신을 지키고 당당히 우승을 거머쥐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우승.

그 단어 하나로 학생들의 마음은 고취되기 충분했다.

그리고 그 뜨거워진 대강당에 학년별 주임 교수들이 이어서 들어왔다. 익숙한 티라우스 교수도 보였다.

그녀가 론에게 눈을 찡긋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소란 속에서도 묵묵히 믿어 준 사람이었기에 론도 묵례로 화답했다.

“골든스태프 대회에 참가할 학생들은 지금 앞으로 나오기 바랍니다. 혹 직전 학기에 1서클이었는데, 그 사이 2서클에 오른 학생은 먼저 앞에 있는 학년 주임 교수님께로 가기 바랍니다. 이상. 그 외 학생들은 돌아가도 좋습니다.”

우르르.

그제야 학생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연히 단상으로 나오는 학생들도 있었고, 그와는 반대로 출입구로 나가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대로 자리에 앉은 채 얘기하고 있는 학생들도.

론은 두 사람을 쳐다봤다.

사티넬과 크루딘.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것이었다.

피식.

크루딘이 뭘 물어보냐는 표정이다.

“가자!”

“좋아요!”

그렇게 론 일행은 1학년 학년 주임인 티라우스 교수에게로 가려 했는데,

“너희는 바로 오거라.”

럼블이 중간에 불러들였다.

“사고뭉치들인데, 내가 확인 안 했으려고.”

그의 새하얀 눈썹이 들썩인다.

***

어느새 시간은 네 번째 달인 새싹 달의 중순을 넘어가고 있었다.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땅들이 생기를 뿜어내듯 아들렌 아카데미도 어느 때보다 활기를 띠고 있었다.

‘수수께끼 풀었어?’

‘수수께끼는 무슨. 크립텍스부터 돌리고 나서 그런 말 해라.’

‘하아···. 됐다. 난 포기할래. 내 꺼는 죽어도 안 돌아간다. 망가진 게 틀림없어.’

‘큭큭, 여기 대회 관람객 하나 추가요~’

‘아니 근데 그럼, 이걸 움직인 그 론이라는 1학년은 대체 얼마나 대단한 거냐···.’

‘뭐 1학년에 3서클이니···. 이미 천재지.’

총장 럼블의 공표가 있고 난지 삼 일이 지났다.

헌데 아카데미의 전 부지는 골든스태프 대회 얘기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론이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던 학생들은 제 수준을 깨달은 건지 다시는 론 앞에서 그러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크립텍스를 배부받은 지 벌써 삼 일이나 지났는데,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이들도 수두룩했기 때문이다.

고작 1학년이지만 가진 실력 만큼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우, 아들렌 아카데미의 유망주께서 왜 그렇게 표정이 굳어 있으실까아?”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드니 크루딘의 얼굴이 보였다.

“읏챠!”

론의 옆자리로 크루딘이 앉았다.

“그냥 수수께끼 생각 중이었습니다.”

‘아침에는 네 발로 걷고, 낮엔 두 발로 걷고, 저녁 무렵에는 세 발로 걷는 동물.’

사실 론은 럼블이 말할 때부터 정답을 알고 있었다. 바로 인간이다.

회귀 전 유적관리단에 있었던 만큼 고대 이야기나 전설, 구전 중 유명한 것은 전부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만, 그렇다고 그 즉시 푸는 건 너무 과할까 싶어 상황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삼 일이 지났으면, 괜찮지 않을까 론은 생각했다.

“야, 그래. 말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그 수수께끼 정답, 몬스터 아냐? 발이 그렇게 줄어들었다 늘었다 하는 게 정상적인 동물은 아니잖아. 론, 너 고대 앤글어 사전 있잖아, 한 번 찾아 봐봐.”

“흐음, 예···.”

론은 어느 정도 장단은 맞춰 줘야겠다 싶어 빌려놨던 고대 앤글어 사전을 펼쳤다.

“몬스터, 몬스터, 몬···스···터. 찾았습니다. 문자가 M, O, N, S, T, E, R이군요.”

“아···. 다섯 글자가 아니네, 쯧.”

“저기요~ 론니임! 크루딘니임!”

“어? 저기 사티넬 온다.”

럼블의 사태 진압 이후, 더 이상 시비를 거는 이들은 없었기에 론 일행은 자유롭게 다녔다. 그리고 그사이 사티넬은 수수께끼의 정답을 찾는다고 거의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고 말이다.

그런 그녀가 책 하나를 안고, 론이 있는 동산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헉, 허억, 헉.”

“그래, 그래. 사티넬 숨 좀 쉬고.”

“저, 허어···. 찾은 거 같아요!”

“어이어이, 사티넬. 몬스터라고 말할 거면 이미 늦었어. 내가 벌써 이미 찾아봤다고.”

크루딘이 유감이라는 듯 검지를 들어 올리고 휙휙 가로저었다.

“그게 아니고. 하아, 하. 그러니까. 아침, 낮, 밤은 비유!”

소리치던 사티넬이 손을 가리며 조그맣게 속삭였다.

“비유였어요. 비유.”

‘오오, 사티넬.’

론은 속으로 감탄을 질렀다.

“왜 그런 거죠?”

그가 설명을 촉구했다.

“그러니까 아침, 낮, 밤은 사람의 일생을 비유한 거예요. 여기 시에도 나오더라고요.”

그러면서 사티넬이 가져왔던 책을 펼쳐 고대 시를 보여줬다. 크루딘이 정말이냐는 듯 머리를 처박고 탐독했다.

“그런데 좀 애매한 게 있어요.”

“뭐가, 뭐가?”

크루딘이 눈을 책에서 떼지 않은 채 물었다.

“시의 내용을 참고하면 아침은 유아기이고, 낮은 장성한 시기, 저녁은 노년이거든요. 유아기에는 기어 다니니까 네 발이고, 성장한 다음에는 우리가 두 발로 걸으니 낮도 맞는데, 저녁이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왜 세 발일까요?”

“뭐 알 필요 있을까?”

“예?”

“네? 정확하지 않으···.”

“일단 정답인지부터 봐야지.”

크루딘은 일말의 주저도 없이 고대 앤글어 사전에 손을 뻗었다.

“인간, 인간, 인···간···간. 찾았다. H, U, M, A, N. 오! 심지어 다섯 글자야! 오오!!”

“···”

정답이긴 했지만, 역시 크루딘답다고 해야 할까. 그는 어느 정도 정답의 가시권에 들어갔다고 생각하자, 단정 짓고는 바로 행동으로 옮겨버렸다.

론은 그가 먼저 여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여 잠자코 기다려주었다.

딱, 딱딱, 따따다다닥. 딱, 딱.

며칠 새 제법 익숙해진 크루딘이 잠시간의 집중만으로 크립텍스를 바로 움직여버렸다.

다이얼이 하나씩, 하나씩 맞춰지고 이내 그 마지막 다이얼의 문자도 맞춰졌다.

철컥.

“헉!”

사티넬이 깜짝 놀라 입을 막았다.

사티넬뿐 아니라 모두가 잘 아는 소리였다. 바로 단상에서 럼블이 크립텍스를 열었을 때 나던 그 소리!

“어··· 진짜, 진짜 열렸네?”

이제껏 호기롭던 그의 모습과는 상반될 정도로 김빠진 모습에 론은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크루딘, 어서 꺼내 보십시오.”

“어, 어 그치.”

고장이라도 난 듯 멍한 표정의 크루딘이 주섬주섬 크립텍스를 분리했다. 그러고는 안에서 둘둘 말려 있던 종이를 꺼냈다. 럼블이 보여줬던 예의 그것이었다.

마법인장이 찍힌 사브렌 종이.

사브렌 종이는 쓰임새가 정말 다양해서 론도 잘 알고 있었다. 마나를 흡수하는 종이이기 때문에 회귀 전 유적조사 때도 꽤나 썼던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크루딘이 들고 있는 그것은 이미 마나를 빨아들여 약간 회색빛을 띠고 있었고. 완전 새것은 흰색이다.

“축하합니다. 크루딘.”

“뭐야, 진짜네. 거참···.”

지금껏 그렇게 열을 내놓고는 되레 머쓱한지 크루딘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그를 뒤로하고 론은 크립텍스도 열었겠다 사티넬의 궁금증을 풀어주기로 했다.

“사티넬, 그런 거 아닐까요. 두 발로 걷게 된 인간이 다시 기어 다닐 일은 없지만, 연로한 이들은 몸이 약해져 지팡이를 짚고 다니지 않습니까, 한 몸처럼. 그래서 세 발이 아닐까요?”

“아아!”

“오오, 그렇네! 이야, 역시 론! 믿고 있었다고.”

어째 크립텍스를 풀었을 때보다 격한 반응을 보이는 크루딘에 론과 사티넬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1차 시험을 공표하고 3일 지났다.

차수로 치면 4일 차.

그 4일 차 만에 론 일행 전원은 크립텍스를 풀었다.

사실 크립텍스를 돌리는 난이도는 플라델의 미로에 들어가는 것에 비하면 훨씬 쉬웠기에 론이 생각하기에도 일행들이 그리 오래 걸릴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다만 언제 풀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크루딘과 사티넬이 이렇게 분전할 줄은 몰랐다.

그렇게 론 일행은 점심도 생략한 채 1학년 학년 주임 교수가 있는 원소 마법학 건물로 향했다. 어찌 됐든 1차 합격은 알려야 했으니까 말이다.

**

“교수님! 정말 부탁드립니다!”

원소 마법학 건물의 3층.

티라우스 교수의 집무실에서 한 학생이 애처롭게 소리쳤다.

“정말 제명되면, 저는 가문에서 분명 내쫓길 겁니다! 1학기 때 수석을 했던 성적을 봐서라도 제발 재고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러고는 허리까지 푹 숙이는데 윤기 나는 금발이 이에 맞춰 찰랑였다. 플라츠였다.

“플라츠. 네가 설마하니 가문의 지위를 이용해 그러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플라츠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이번 선동의 처벌 대상이었던 연구회 상급생 중 하나가 억울했는지 비밀을 실토해버렸다.

결국은 럼블까지 나서 한명 한명 질의를 했고, 그 중심에 1학년 플라츠가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정말 큰 문제는 그가 ‘가문의 지위’를 사용해 학생들을 움직이고, 아카데미에 물의를 일으켰다는 점이었다. 바로 가문의 지위. 이는 아카데미 설립 근간과 아주 대척점에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아카데미에서 내세울 시에는 무조건 ‘제명’이었고.

“아···.”

생각이 너무 짧았다.

그저 자신의 체면이 구겨진 것을 못 이겨 주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냉철하게 보지 못했다.

제 기분에 맞춰 행하기 위해 듣고 싶은 정보만을 취합했으며, 제 기분에만 맞춰 사람을 부렸다. 그리고 그 끝은 바로 이 자리였다.

털썩.

플라츠가 무릎을 꿇었다.

4대에 이르는 제명.

근 수십 년간 단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었던 아카데미의 근간이자 선왕의 칙령이 적용된다면, 플라츠는 가문에서도 제명이었다. 축출, 추방이란 얘기다.

“부탁, 부탁드립니다···.”

그 아득한 상상에 절로 힘이 빠졌다.

그런데,

똑똑,

똑똑똑.

누군가 티라우스 교수의 집무실에 노크했다.

“교수님, 론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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