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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가 마법사의 회귀-52화 (52/115)

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52

“방금 제가 잘 못 들은 거 같습니다만.”

“아냐, 니가 지금 생각하는 그거 맞아.”

씨익.

라리사가 고운 얼굴로 활짝 웃는다. 숫제 제 외모가 예쁜 걸 아는 여자다.

허나 론은 여심에 굶주린 것도 아니었기에 신경도 안 썼다.

“선배님, 저는 1학년입니다.”

“알아, 그런데 3서클 마법이 아주 쉬운 1학년이지. 그냥 도와달란 건 아냐.”

“네?”

“도와주면 나도 웬만한 부탁 하나쯤은 들어줄게.”

“부탁···.”

3학년 선배의 소원권이란다.

론은 그래도 그 성의를 받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과연 그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고.

“그런데 제가 선배님한테 부탁할 만한 게 있을까요?”

“이익!! 이게 진짜, 야! 나 이래 봬도 케스케이드 일족이야! 케스케이드!”

‘케스케이드? 생각해 보니 아까도 뭔가 긴가민가했는데···.’

아까 분위기에 쏠려 대화하느라 잊고 있었는데, 역시 그녀의 성(姓)은 뭔가 낯익었다.

‘분명, 회귀 전에 들었었는데···.’

“뭐, 모르는 사람도 많긴 한데. 우리는 가문이라 안 하고 일족이라고 표현해. 케스케이드 일족. 꽤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거든.”

‘케스케이드 일족, 오래전···.’

“대륙 서부에···.”

“아아!”

갑자기 번뜩이며 떠오른 생각.

“엑?”

놀란 라리사를 론이 빠르게 훑었다. 밝은 회색 머리카락에 청녹색 눈동자.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것과 일치했다.

“마법 혈통의 일족, 케스케이드. 그리고 다른 말로는··· 바람의 일족.”

“어···. 알고 있었네?”

“허! 정말 그 케스케이듭니까?”

“뭔 소리야, 니 입으로 다 말해 놓고. 니가 변태처럼 훑어본 대로 요기 회색깔 머리에, 요기 청녹색 눈동자. 이게 그 증거라고.”

라리사가 부위별로 콕콕 집어가며 부연 설명했다.

“아! 설마 그걸 원하는 거야?”

“예?”

라리사는 론의 대답도 듣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

샤아악.

순간 그녀의 눈동자에 빛이 스미는 듯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갑자기 주위에서 바람이 후웅하고 불어왔다.

뭐 때문인지 파악할 새도 없이 라리사는 그대로 팔을 휘저었다.

그저 단순한 팔 동작이었을 뿐인데,

후우우웅.

강한 바람이 론에게 불어닥쳤다. 그의 붉은 머리카락이 휘날린다.

“허!”

“어때? 이제 좀 도와줄 생각이 들어?”

“네, 뭐···.”

나쁘지 않았다.

바람의 일족 케스케이드.

마법 명문, 마법에 정통한 가문 등의 수식어와는 결이 완전히 다른 집단이었다.

태생부터 특정 마법에 최적화된 신체를 갖고 태어나는 이들을 일컬어 마법 혈통이라 했는데, 이들은 그 특징을 알고 오래전부터 집단을 이루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것이 일족이 되었고.

‘또 한편으론 어둠의 세력이 가장 먼저 손댄 이들이기도 했지.’

회귀 전 이 땅을 재앙으로 물들인 그들은 이 특이한 혈통들을 그리도 찾아다녔었다.

이유야 어느 정도 짐작되긴 했다.

이성보다 본능을 앞세워 펼치는 흑마법은 이런 혈통들에게 훨씬 더 적합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들의 끝없는 구애로 몇몇 일족이 흑마법 세력으로 들어갔었는데, 저 케스케이드. 바람의 일족은 당시 자취를 감췄었다.

전란의 시기. 알아볼 여력도 없었거니와 당시에 말이 많았었다.

거부 끝에 멸족을 당했다느니, 생체 연구로 살아남은 이가 없었다느니, 마계로 갔다느니 등등. 허나 그런 소문들은 다 제쳐두고서라도 론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적어도 저들은 어둠의 세력에게 곁을 주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뭐, 뭐야 그 눈빛은?”

긴 세월과 온갖 감정이 담긴 론의 눈빛에 라리사가 인상을 썼다.

“아닙니다.”

“와, 이것 봐라! 좀 가르쳐달라 했다고 아주 세상 불쌍한 사람처럼 쳐다보네!”

“...”

가만 놔두면 무슨 말을 할지 모르는 여자다.

“후우···. 그래서 시험은 뭡니까?”

“어, 엉?”

“알아야 도와주던가 말던가 하지 않습니까, 그 졸업시험.”

“아아···. 그치 그치! 일단 내가 이래 봬도 3학년 중에서도 상급 학생이거든. 흠흠. 아! 이것부터 설명해야겠구나. 아들렌 아카데미는 3학년, 즉 졸업생이 되면 상중하로 그룹을 나눠.”

이를 조용히 듣고 있던 론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도 아는 얘기였기 때문이다. 회귀 전 이미 졸업까지 했던 마당에 모를 수가 없었다.

물론 안타깝게도 회귀 전 그는 저 중에 ‘하’ 그룹이었지만 말이다.

“상 그룹은 커리큘럼 그대로 따라온 학생들로 4서클 마법을 졸업 기준으로 삼아. 그리고 중, 하 그룹은 아직 3서클에 이르지 못한 이들이 각 수준에 맞춰 시험을 봐. 뭐 아무튼 내가 속한 그룹만 알면 되니까, 일단 내가 할 건은 4서클 마법이야. 총 세 가지.”

그러면서 라리사가 손바닥을 펼쳤다.

“라이트, 스톤 월, 토네이도, 번 플레어, 아이스 포그. 요 다섯 중에 골라야 해.”

“흐음···. 그런데 라리사님, 제가 4서클 마법을 당연히 할 줄 안다고 생각하시네요?”

“얘 봐라. 야, 당연한 거 아니니? 3서클을 마법을 한 손으로 즉시 시전할 수 있는데, 4서클을 못 하겠어? 니 이제 와서 빼기만 해 봐! 앙?!”

‘아···. 괜한 호감에 실력을 드러내는 게 아니었는데 참···.’

허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그렇다 해도 딱히 나쁠 건 없었다. 오히려 희귀한 일족의 사람과 안면을 트게 돼서 좋은 경험이 될 터였다.

“일단, 이 중에서 가장 고난이도는 아이스 포그입니다. 물에서 얼음으로 상태 변화를 한 다음에 다시 승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때 압력과 온도까지 동시해 고려해야 합니다. 이건···. 그냥 재끼죠. 단시간에 승부를 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오오, 역시 잘 아네! 사실 그건 생각도 안 했어. 아, 맞다. 참고로 난 토네이도 마법은 무조건 해야 돼. 교수님이 케스케이드 일족이라면서 그냥 지정해버렸어! 쳇. 이거 완전 차별 아냐?! 하, 진짜···.”

“차별이 아니라 참 교수님 같습니다만?”

“뭣, 뭐?!”

“케스케이드 일족이면, 마법진이 아니어도 토네이도 마법쯤은 쉽게 펼칠 수 있을 테니, 그러면 아카데미에 온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

너무 맞는 말을 한 건지 라리사가 입술만 뻥긋거렸다.

“방금 입술로 욕하신···?”

“에이···. 설마. 아니야, 계속 얘기해.”

라리사가 생긋 웃으며 손을 저었다.

“크흠, 알겠습니다. 뭐 그래서 아이스 포그는 제외하고 토네이도는 확정이니, 남은 셋 중에서 둘을 골라야겠군요.”

“내 생각이랑 똑같네.”

“그래서 뭘 고르셨습니까?”

“라이트랑 스톤 월.”

이에 론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가장 직관적인 것 둘이네요. 좋습니다.”

이미 2학기의 1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학기 말까지는 3개월이 채 남지 않았는데, 그 사이 얼마나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론은 냉철히 생각해 봤다.

“그런데 그 둘은 좀 하긴 해.”

“예?”

“문제는 토네이도지.”

“아아···.”

대충 이해가 됐다.

“케이스케이드는 마법진으로 바람을 일으키는 게 더 번거로우니까.”

“응, 정답. 습관적으로 마법진이 아닌 혈통의 술법으로 자꾸 하려고 해서.”

“일단, 수련할 수 있는 훈련장으로 가죠.”

그들이 얘기하고 있던 곳은 도서관 옆의 산책로였기에 론이 앞장서서 가려는데, 갑자기 라리사가 붙잡았다.

“야, 훈련장은 무슨! 그냥 일로 와!”

그런 그녀가 끌고 간 곳은 전에도 몇 번 와 본 곳이었다.

바로 도서관 뒤쪽의 숲.

그런데 라리사가 이리저리 방향을 틀어가며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도착한 그곳에는 그럴듯한 공터가 있었다.

“이런 곳도 있었군요.”

꽤 커다란 평지와 주위로 높은 나무들이 없어서 달빛이 그대로 스미는 곳이었다. 야밤치고 환했다.

그곳의 한 가운데서 라리사가 양손을 들어 올렸다.

지이이잉.

푸른 선들이 그어진다.

선은 곧 면이 되었고, 면은 모여서 입체도형을 이뤘다.

정사면체의 각 면에 새겨지는 식들.

빛은 모든 원소 중에 가장 직관적이다. 이 세계의 시초라 여겨질 만큼 원리와 원칙에서 벗어난 원소.

사람이 가진 감관(感官)과 심상을 통해 얼마나 인지하느냐에 따라 빛의 마법은 결정된다.

우우웅우웅.

그리고 이내 라리사의 복합마법진이 빛을 발하며 회전했다.

화아아앗.

눈부시게 환한,

새하얀 빛이었다.

“으음···. 네, 그 정도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 저기요? 라리사님? 여보세요?”

라리사는 자신이 펼친 마법에 심취해 있었다.

아카데미에 오기 전.

평생을 바람과 함께 살아온 그녀였다.

세간의 사람들이 말하는 정령사처럼 바람은 그녀의 부름에 응했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을 이해했다.

사람은 사람을 가리지만,

바람은 가리지 않았다.

그런 바람이 좋았다.

바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바람의 의지에, 바람의 마음에 더 다가가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어느새 그녀는 일족의 대표가 되어있었다.

‘라리사. 네가 일족의 아이들 중 가장 영특하니, 나가서 보통의 이들이 펼치는 마법을 견식하고 오거라.’

그렇게 해서 오게 된 아들렌 마법 아카데미.

적지 않은 사람을 만났고,

적지 않은 마법들을 마주했다.

일반 사람을 열등하다고 여기던 일족의 문화와는 다르게 그들의 마법진 마법은 신기했다.

혈통의 선택을 받지 않아도,

자연을 부를 수 있었다.

자연을 마주할 수 있었다.

‘반가워.’

그런 그녀의 마음이 지금의 마법진에 그대로 전해졌다.

화아아앗.

빛이 더욱 강렬하게 뿜어져 나왔다.

“읏···.”

한껏 빛에 심취해 있던 라리사의 귓가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그녀가 서둘러 마나 공급을 중단했다.

“아고, 미안미안!”

마법진을 없애고는 허겁지겁 론의 상태를 살폈다. 빛의 마법이었으니 큰 사고는 없는 듯했다.

“헤헷, 그래도 좀 하지?”

조금 전 빛만큼이나 환한 얼굴이다.

그녀가 자연에게 배운 것.

자연은 늘 생기롭고 활력이 넘쳤다.

“예···. 뭐, 라이트 마법은 이미 충분한 것 같습니다. 어우···.”

론이 연신 눈을 깜빡였다.

빛이 상당히 강렬했기에 마법이 꺼지자 사물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암전이 심하게 느껴졌다.

팡팡!

“뭘 새삼스럽게 놀라고 그래!”

나름 상급생 같은 모습을 보였다 생각한 걸까. 라리사는 우쭐대며 론의 등허리를 쳐댔다.

“그 좀, 후우. 그럼 다음 마법 가보죠.”

“어! 알았어, 알았어.”

라리사는 이내 자리를 다시 벌렸다.

“후우···.”

한 차례 심호흡 한 그녀가 마법을 이어갔다.

우우웅.

이번에도 정사면체 복합마법진이었고, 그 내용물은 ‘스톤 월’이었다.

3서클 어스 실드의 상위형 방어 마법.

“으윽···.”

라리사가 고전했다.

스톤 월 마법은 라이트만큼 직관으로만 가득 찬 마법은 아니다. 베이스가 되는 돌 소환진과 더불어 형태 변화, 밀도 조절에 대한 식들도 고려해야 했다.

당연히 이전 서클에서 적용하던 흙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보니, 미숙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품에 있던 회중시계에는 초바늘이 없어 확인하진 않았지만, 이미 10초를 지난 상태다.

10초.

졸업시험의 커트라인이었다.

이미 한 번 경험한 그였기에 론은 꼼꼼히 체크했다.

‘일단 스톤 월은 시전 속도도 높여야겠군.’

구구구구궁.

그사이 거대한 돌덩이가 라리사와 론 사이로 튀어 올라왔다.

톡톡.

우우웅, 퍼억.

우우웅, 쿵!

손으로 두드려 보고, 3서클 스피어류 마법으로 몇 번 부딪혀 보며 확인했는데,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확인했습니다. 다음으로 가죠. 토네이도 마법.”

“어? 어어.”

라리사가 뭔가 살짝 움츠러든 듯한 반응을 보였지만, 론은 신경 쓰지 않았다.

무던한 태도.

이에 그녀도 이내 다음 마법을 준비했다.

지이이잉.

정사면체 복합마법진을 구성하는 건 볼 필요가 없었다. 3서클 때부터 해오는 것이기에 이 부분에서 더 이상 충고할 건 없었다.

‘그럼 어디가 잘 안되는 거려나?’

론도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로 쳐다보고 있었는데,

‘괜찮은데? 뭐가 문제야?’

그녀가 가장 걱정하는 듯했던 토네이도 마법. 시전 시간이야 일전의 스톤 월처럼 좀 걸리긴 했지만, 이 정도면 연습으로 충분히 단축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우웅,

웅···.

‘음?’

정사면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야? 갑자기 왜 이래?’

후웅.

그런데 어디서 웬 바람이 불어온다.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콰과과과광.

“어엇, 야!”

복합마법진이 채 완성되기도 전. 강력한 바람이 일대를 집어 삼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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