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48
“사업?”
전혀 생각지 못한 단어였는지 국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습니다, 폐하. 저희 가문에서 새롭게 추진하는 사업이 있는데, 이것이 왕실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되어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허허.”
바이코누르 국왕은 재밌다는 듯이 론을 쳐다봤다.
열여섯에 3서클에 이른 신동.
집에만 처박혀 수련하는 보통의 마법사와 달리 전국을 누비고, 마탑 수련생과 결투도 벌이고, 중급몬스터까지 처치하는 등의 활발한 활동.
그리고 이제는 가문의 사업에 대해서까지 말하고 있다.
마법, 그 하나만 파더라도 촉박하고 어려운 게 마법사의 길이다. 그런데 저 론이라는 학생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외의 것들도 살피며 나아가고 있었다.
‘마법사 쪽보다는 행정관이 어울리는데···.’
하지만 뭐가 됐든 아직은 일렀다. 고작 열여섯이었으니까 말이다.
“재밌군. 그래, 자세히 말해 보아라.”
“예, 폐하. 실은 올 초부터 저희 스펜서 가문에서 포션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흐음···.”
포션.
그 단어에 국왕이 침음을 삼켰다. 허나 그러거나 말거나 론은 계속해서 설명해 나갔다.
“적잖은 기연과 각고의 노력이 있었고, 저희 가문은 끝내 만드리안 트롤로 포션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만드리안 트롤.
국왕의 미간 사이로 없던 주름이 생겼다. 그리고는 그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재상. 내 기억하기로, 만드리안 트롤은 상급 몬스터 중에 가장 재생력이 뛰어나긴 하지만, 포션과는 맞지 않는 종이라고 알고 있는데 아니었나?”
국왕의 우측에 있던 노년의 재상, 멕카시 바이르잔이 대답했다.
“맞습니다, 폐하. 만드리안 트롤의 재생력은 상급 몬스터 중에 가장 뛰어나지요. 하지만 그 피에 내재된 독성이 강하여 포션 사업에서는 일찍이 제외된 종입니다.”
“허허···. 이거 점점 이야기가 재밌어지는군.”
국왕이 론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둘 중 하나겠군. 이제껏 아무도 개발하지 못한 회복 포션을 만들었거나, 아니면 이 국왕을 상대로 사기를 치거나.”
상당히 위협적인 말이었다.
허나 론의 표정은 그저 차분하기만 할 뿐이었다.
‘호오? 이것 봐라.’
그 모습에 국왕이 미소를 지었다.
“더 얘기해 봐라. 론 스펜서.”
“예, 폐하.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만드리안 트롤은 강력한 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 가문은 그 피에 내재된 독성만을 말끔히 제거해 포션을 만들었습니다. 제 아버지께서 직접 임상실험 하셨으며, 후에 영지민들에게도 배포하여 상당한 효과를 보았습니다.”
“상당한 효과라···.”
“외상 전문 회복 포션인 라우리카 포션 이상이었습니다.”
“라우리카 포션 이상? 허!”
바이코누르 국왕이 눈을 감고는 턱을 쓰다듬었다.
마도왕국 아들렌.
아들렌 아카데미를 필두로 수많은 고위마법사를 배출하며 마법 선도국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게 하나 있다면, 바로 포션이었다.
포션 또한 마법약의 한 분야이건만 지금까지 마도 왕국 아들렌에는 이렇다 할만한 포션이 없었다.
그런데 저 스펜서 가문의 포션이 라우리카의 그것을 상회한단다.
“확실한가?”
“그렇습니다, 폐하.”
더없이 진중한 론의 눈빛.
허나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것 하나로 충분했다. 나머지는 신하들이 확인할 일이었다.
“의전관.”
“예, 폐하.”
“지금 즉시 가서 확인해 보도록.”
“예, 알겠습니다. 폐하.”
의전관이 물러나자 바이코누르 국왕은 다시 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10년. 내 10년간 해당 포션에 대해서는 세를 물지 않겠다.”
“폐, 폐하! 10년간 면세라니요!”
“포션 사업의 수익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금액입니다!”
신하들의 첨언에 바이코누르 국왕의 얼굴이 굳었다. 그러고는 그들 중 한 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라르젠.”
“옛? 예. 폐하.”
“고작 세금 몇 푼에 왕국의 명예를 실추하고 싶은가?”
“아닙니다. 제가 어찌···.”
“그럼 그대가 라우리카 포션을 상회하는 포션을 만들 수 있나?”
“아, 아닙니다.”
“그러면 그대는 아들렌 왕실에 이보다 더한 명예를 안겨줄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가?”
“...아닙니다.”
“할 수 있는 것 하나 없이 그저 입만 나불거렸군.”
“죄송합니다.”
라르젠이 허리를 푹 숙였다.
“그대는 왕국의 명예를 도모하는 간담회와 맞지 않아.”
“예?”
“머리 좀 식히고 오게.”
“폐, 폐하! 제가 실언하였습니다!”
잠시간의 소란이 지나가고,
바이코누르는 다시 론을 쳐다봤다.
이전의 불쾌한 기색은 사라졌다.
“원하는 건 당연히 왕실 독점 납품이겠지?”
“그렇게 해주신다면야 황송할 따름입니다. 폐하.”
일전의 일 때문인지 국왕은 더없이 직설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론에게 나쁘진 않았다.
왕실 독점 납품.
단순히 왕실에만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왕실에서 운영하는 군부를 비롯해 궁내부는 물론이고 각종 부서에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와···이걸 한 번에 해결할 줄은 몰랐네.’
론은 해당 포션의 장점과 가격 안을 두고 어찌 말하면 좋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기우였다.
“좋다. 스펜서 가문의 사업이라고는 하나 그들 또한 아들렌 안에서, 그리고 아들렌 아카데미에서 수학했던 자들. 그 포션이 확실하다면, 내 책임지고 밀어주겠다.”
“감사합니다! 폐하.”
‘왕은 왕이란 건가.’
국왕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그리고 여타 귀족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명예를 중요시했다.
그저 왕국의 명예를 드높인다는 이유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왕실 독점 납품에다가 10년 면세권까지 얻어낸 것이다.
‘아버지와 드로고 형님도 좋아하시겠군.’
얘기가 매우 잘 풀렸다.
그렇게 이제껏 진중하던 론의 표정도 한 층 누그러지려는데,
“헌데 그것은 굳이 네가 아니었다 해도 그리 진행했을 일이다.”
“예?”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하라.”
‘엥? 뭔 소리야 이건?’
왕실 납품과 면세권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끝이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론은 벙쪄 버렸다.
“허허, 당황할 것 없다. 포션 사업 건은 그저 네 가문에 속한 일이지 않으냐. 네가 이곳에 불려온 건 나이에 맞지 않게 대단한 성취와 왕성한 활동을 한 것을 격려하기 위함이다.”
“감사합니다. 폐하.”
“그래, 그러면 말해 보거라.”
‘뭐 얼마나 좋게 봤길래···허허···.’
론은 속으로 실소를 흘렸다.
딱히 큰 것을 바라고 온 게 아니었다. 그저 자신에 대한 관심과 정보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러 온 게 반이었는데, 어째 국왕의 태도는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애초 계획했던 왕실 납품은 당연한 것이니, 이제는 본인이 원하는 것을 말해 보란다.
‘잘 말해야겠군···.’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론이 고개를 들었다.
“폐하, 먼저는 폐하의 넓은 아량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저는 일개 아카데미 학생일 뿐입니다. 그런 학생의 개인적 활동에 성은을 베푸신다면 적잖은 이들이 아쉬워할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드리는 것이 온대, 차라리 이번 골든스태프 대회의 우승 보상을 후히 해주시는 건 어떠신지요. 그리해주신다면 저뿐만 아니라, 왕국 내 모든 수련생 그리고 온 백성이 폐하의 격려에 깊이 탄복할 것입니다.”
“허···!”
한 차례 헛웃음을 뱉은 국왕을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하하하! 론 스펜서.”
“예, 폐하.”
“고작 아카데미 학생인 그대가 여기 있는 대신들만큼이나 생각이 깊도다!”
“과찬이십니다, 폐하.”
“그대의 말대로라면 짐은 그대뿐 아니라 왕국의 모든 수련생을 독려하게 되는 것일 터. 허나 그리된다면 자네는 도리어 아무것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은가?”
“제가 얻지 못한다면 거기까지가 제 실력인 것이지요. 이 자리까지 와서 폐하를 알현한 것만으로도 이미 후한 영광이었습니다.”
“허허···.”
바이코누르 국왕의 눈빛이 깊어졌다.
말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 욕심을 드러내기는커녕 오히려 제안한 국왕을 칭송하게끔 만들어 버렸다.
육십을 바라보는 바이코누르 국왕.
20년이 넘는 집권기를 지낸 그는 그 누구보다 마법과 문명의 발달을 피부로 느껴왔다. 그리고 그런 그가 절실히 느끼는 것은 인재였다.
그 어느 때보다 인재가 귀한 때. 그런데 이보다 더 나은 신예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괜찮은 소년이 눈앞에 나타났다.
“하하하하.”
바이코누르 국왕의 입에서 커다란 웃음이 터져 나왔다.
“허나, 네가 그리 말하는 이유는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거겠지?”
바이코누르가 론을 정확히 쳐다보며 말했다. 콕 짚어 무엇을 말하는지는 얘기하지 않았지만, 론은 알아들었다.
우승할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예.”
그리고 이는
단 한 마디면 충분했다.
어차피 론도 졸업 후의 행보를 생각했을 때 골든스태프 대회의 우승은 필요한 타이틀이었다. 그 답 없는 유적관리단에 또다시 갈 생각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이미 동 나이대에서는 가히 압도적인 수준. 골든스태프 대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씨익.
론의 짤막한 대답에 국왕의 얼굴에는 더욱 화색이 돋았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패기군.’
가끔 럼블과 독대할 때나 느끼는 그런 기분에 국왕은 기분이 좋아졌다.
“근 10년간 아들렌은 마도왕국이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골든스태프 대회에서 성적이 부진했다.”
“폐하···.”
몇몇 대신들이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근 2회, 그러니까 10년이 넘도록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한 것이다.
“그만큼 세계 각국의 마법 수준도 상향됐다는 뜻일 터. 허나 10년이면 되찾아 올 때도 됐지. 좋다! 이번 골든스태프 대회에서 우승하는 자에게는 남작위의 세습 작위와 그에 해당하는 봉토를 하사토록 하지.”
그러고는 국왕이 대신들을 둘러보더니 말을 이었다.
“그대들의 가문에도 자랑할만한 자식들이 있는 것으로 아네. 이번 기회에 제대로 경쟁해 보게나. 보상은 내 후히 걸어뒀으니까 말야.”
그 후 잔잔한 덕담이 몇 차례 더 오가고 론의 순서는 끝났다.
뒤이어 들어온 사람들의 공적 치하와 작위 수여, 직위 임명 등등을 옆에서 지켜보는데, 과연 국왕과의 알현이 얼마나 귀한 자리인지를 론은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다.
하나같이 고관대작들이었고, 회귀 전이었다면 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이들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긴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론은 왕성에서 나올 수 있었다.
“하아···. 진이 다 빠지는 것 같습니다.”
“으응? 폐하를 상대로 그리 담대하던 니가 할 말은 아닌 거 같다만?”
“예?”
“예는 무슨. 그나저나 사업 얘기는 사실이냐?”
“아, 예.”
생각해보니 럼블에게는 브뤼센 영지의 토벌에 관해서만 얘기했지, 가문의 포션 사업에 대해서는 말한 적이 없었다.
“허허···. 스펜서 가문에 대단한 인재가 이리 많았었나.”
“뭐 그렇지요. 하하···.”
“그건 그렇고, 골든스태프 건은 정말 의외더구나.”
“어떤 게 의외라는 것인지···?”
“뭐긴 이 녀석아! 상급 포션이든 아티펙트든 성장에 도움이 될만한 기념품을 바라는 게 보통 학생들이건만. 네 녀석은 전혀 딴말을 내놓지 않았느냐.”
“아···.”
“뭐···그게 훨씬 좋긴 했다만···.”
말은 그리하면서도 럼블의 눈빛은 그다지 호의스럽진 않았다.
‘정말 이게 열여섯이라고···? 무슨 애늙은이도 아니고···.’
마법이면 마법, 대화면 대화. 하나같이 그 나이대의 어리숙함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의뭉하기만 할 뿐.
“그나저나 이 총장 것도 좀 부탁하마.”
“예? 무슨 말씀을···?”
“크흠, 흠! 그 만드리안 트롤로 만들었다는 포션이지 뭐겠느냐. 네가 편지 좀 쓰면 빨리 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
“······”
사람들이 7서클 7서클 하지만,
럼블도 역시도 마법사였다.
세간에 없던 발견과 발명은 그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거는 좀···.”
“뭐, 뭐이?!! 내가 직접 브뤼센까지 가서 네 놈의 뒤도 봐줬건만!”
“하하하, 농이었습니다. 농.”
“허어, 쯧쯧쯧···. 교권이 땅에 떨어졌도다!”
론은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긴 하루였다.
정말 하루가 맞나 싶을 정도로 긴.
이른 아침, 분명 수도에 있었는데 어느새 게티아를 거쳐 왕국 최남단 브뤼센에 갔었다.
그곳에서 잠시간의 일정을 소화하고는 다시 또 돌아왔다. 수도로. 그러고는 왕실 간담회에 참여했다.
생애 첫 국왕 폐하의 알현.
생각지도 못한 얘기들을 하고 나왔다. 사티넬과 크루딘에게도 들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뭐야? 뭔데 이렇게 눈빛들이 흉흉해?’
다시 돌아온 아카데미.
론을 쳐다보는 학생들의 눈빛이 심상치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