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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가 마법사의 회귀-47화 (47/115)

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47

흰 바탕에 금색 무늬로 채워진 공간.

“흐음···. 역시 차는 로렐리아지.”

고급스러운 접객실에 론은 홀로 앉아 있었다.

‘그런데 언제까지 혼자 있으려나?’

이곳에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럼블은 호출을 받고 나갔다. 론에게 대기하고 있으란 말을 남기고서.

분기별 간담회.

각 부처의 안건 및 보고 사항뿐만 아니라 국가사업이 시행되고 수정되는 자리다.

과거 론도 유적관리단 부단장에 있을 적 분기 말이 되면 보고 자료를 만드느라 늘 정신 없곤 했었다.

실적 보고, 예산 사용명세, 기획안 등 한 번 하기도 벅찬 걸 1년에 네 번씩이나 쥐어 짜내야 했다.

“어휴, 생각만 해도 벌써 질리네.”

그리고 이러한 간담회의 목적은 단순했다.

최대한 어필하여 추가 예산 받아내기, 왕실 사업 권한 받기, 부서 권한 확대하기 등등.

‘아주 열심히들 보고하고 있겠군.’

회의에 들어간 건 아니었으나, 해당 자료를 준비해봤던 사람으로서 대충 모습은 그려졌다.

“그럼 나는···.”

론은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부서별 회의가 끝나고 이어지는 ‘진짜 간담회’ 때 입장할 자신에 대해서 말이다.

아카데미 1학년.

학년 차석.

방학 때 지오르 마탑 기대주와의 대결에서 승리.

토벌 중 중급 몬스터 사냥.

확실히 열여섯 치고는 화려했다.

‘연초에다가 첫 간담회인 만큼 격려와 덕담이 오갈 텐데, 어떻게 이 기회를 써먹을 순 없으려나.’

왕실 간담회.

많은 이들이 이 간담회에 참석하지 못해서 안달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부처별 대표는 물론이고 국왕을 알현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300년 전 아들렌 아카데미가 설립된 이래로 왕권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현시점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시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고.

사회적 통념에서 크게 반하지 않는 이상, 왕의 한 마디는 하나의 시행령이었고 법이었다.

즉, 좋게 보여서 나쁠 게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이 기회를 얼마나 잘 활용했느냐에 따라 역량이 매겨질 수도 있었다.

‘세를 불려야 하는데 말야.’

톡.

톡.

톡···.

론이 테이블 위로 손가락을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

“끄흥···. 고작 3개월마다 하는 보고인데 뭘 그리 할 말이 많은 건지···.”

부서별 보고 회의 마치고 온 럼블이 혀를 찼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무슨. 가서 한숨 자다 왔다.”

“예?”

“원래 이렇게 세속적인 얘기를 하는 날엔 일부러 밤새고 와서 자는 게 정석이야. 너도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써먹거라.”

“······”

확실히 7서클은 범인이 아니긴 했다.

정상이 아니거나.

그렇게 접객실에서 잠시간의 여유를 갖던 론과 럼블은 얼마 뒤 찾아온 하인의 안내를 받고 같이 이동했다.

“들어가면, 부처별로 주요 인사들을 데려왔을 게다. 공적 치하의 명분도 있을 거고, 직위 임명, 개인적인 인맥 차 등등.”

“아···.”

직위 임명이라는 말에서 론은 괜히 씁쓸했다. 유적관리단이면 그래도 왕실 기관 중 하나인데, 과거 부단장 직위를 받을 때 그는 그저 단장에게 임명 받은 게 다였기 때문이다.

“딱히 눈치 볼 필요는 없다, 론. 네가 가장 나이가 어리겠지만, 그만큼 네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게야.”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군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성적도 학년 차석이고, 방학 때 사고도 좀 치고 했으니 자격이야 충분하지.”

“사고···하하···.”

이런저런 얘기들로 이동 시간을 채우다 보니 곧 목적지에 도착했다.

딸칵.

커다란 양 여닫이문이 열리고 거대한 홀(Hall)이 보였다.

가운데 기다란 카펫을 이동 통로로 하고, 그 좌우로 대신들이 앉아 있었다. 대충 보이는 이들만 세어봐도 서른이다.

회귀 전후를 통틀어 왕실 그레이트 홀은 처음이었기에 론의 얼굴에는 긴장이 어렸다. 그만큼 설레기도 했고.

‘이번 생은 뭐 성공하긴 했나 보군. 이런 데도 와 보고.’

조금 전의 접객실도 고급스러웠는데, 과연 그레이트 홀과는 비교가 안 됐다.

왕실 대소사는 물론이고, 외국 인사들도 보는 곳인 만큼 분위기가 가히 압도적이었다. 이 세상 모든 고귀함과 아름다움을 집약한 듯한 장식물과 조명, 천장화.

‘와···.’

하나하나에 위엄이 깃들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정점은 따로 있었다. 왕위 뒤쪽으로 커다란 창이 있었는데, 그 위치가 참으로 오묘했다.

정확히 국왕의 머리 위로 빛이 들어오는 바람에 절로 눈이 부셨다.

“마예스트리아.”

“마예스트리아.”

럼블을 따라 론이 고개를 숙이며 오른손을 머리에서부터 우측으로 뻗어나갔다.

왕실 인사법이었다.

오랜 과거, 정복심이 대단했던 한 귀족의 가주가 이방의 땅을 점령하자 당시의 원주민이 말했다고 한다.

마예스트리아 라고.

그는 이를 예법으로 지정했다.

하나의 가문을 넘어 새로운 땅을 개척한 이. 현재에 이르러 사람들은 그를 아들렌의 건국 왕이라 불렀다.

마예스트리아. 그저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걸 실제 사용하게 되니 론은 기분이 참 묘했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국왕을 비롯해 왕국의 내로라 하는 주요 인사들이 있는 곳. 멍청한 표정을 지어서 좋을 게 없었다. 론은 이내 표정을 다잡고 기다렸다.

그러는 사이 럼블이 간단한 소개를 마쳤다.

“하하하, 드디어 재밌는 순서군. 럼블 경, 내 부탁을 들어줘서 고맙네.”

“충분히 이곳에 올 만한 학생이었습니다. 오히려 폐하의 안목에 놀랐지요. 제가 모르던 것까지 속속들이 알고 계셨으니 말입니다.”

럼블이 말하며 양 눈썹을 들썩였다.

“안목은 무슨. 다 유능한 신하들 덕분이지. 하하하.”

‘호오?’

바이코누르 아들렌.

생각보다 능구렁이였다.

럼블은 일개 학생의 정보까지 알아낸 국왕에 대해 은근히 우려를 표한 것이었다.

허나 바이코누르 국왕은 아무렇지도 않게 제 신하의 공으로 돌리며 이를 빗겨냈다.

“가까이서 보고 싶구나.”

럼블이 옆으로 물러섰다.

“마예스트리아. 폐하를 뵙습니다.”

독대는 아니었으나, 생애 이런 관심은 처음이었기에 론은 다시 한번 인사하며 예를 갖췄다.

“그래, 그대가 론 스펜서인가.”

“예, 그렇습니다.”

“어땠나?”

“예?”

밑도 끝도 없는 질문.

론이 당황했다.

‘아니, 아무리 국왕이라지만 뭘 묻는지는 알려줘야 할 거 아니야? 내가 그것까지 알아채고 대답 해야 돼?’

하지만 속마음은 속마음이었고,

론은 빠르게 눈동자를 굴리며 뭘 묻는 건지 생각했다.

“하하하, 뭘 그리 당황하고 그러나. 앞서 얘기는 들었다. 지오르 마탑의 기대주를 아주 보기 좋게 눌렀다지? 내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통쾌하던지. 안 그런가, 대신들? 하하하.”

“맞습니다. 폐하.”

“그렇지요. 지난 골든스태프 대회에서 우승 좀 했다고 기고만장했는데, 아주 콧대가 제대로 꺾였지요. 하하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폐하, 껄껄걸.”

‘이런 식인가.’

일부러 당황하게 만들고, 그다음에는 사람을 어리숙하게 보일 정도로 무안하게 만들었다.

행보를 치하하는 자리였으니 망정이지, 협상 혹은 계약을 하러 온 당사자였다면 이리저리 휘둘리다 주도권을 빼앗길 게 뻔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군.’

하지만 론은 그냥 치하만 받고 갈 생각이 없었다. 뭐라도 하나는 얻어가야 했다.

“잘했다.”

“감사합니다. 폐하.”

“올해로 나이가 어떻게 되지?”

“열여섯입니다.”

“호오? 1학년이군?”

“예, 그렇습니다.”

“아카데미 1학년 신예가 마탑의 기대주를 꺾었다라. 아주 좋은 모습이야.”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바이코누르 국왕은 그 이야기의 주인공을 보며 다시금 기분을 만끽했다.

그리고 다른 이유도 있었다.

바로 소문의 양지화.

그저 그런 풍문이 아니라, 왕실에서 이를 언급하고 치하했다.

이는 곧 하나의 공식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걸 의미했다. 아카데미의 학생이 마탑의 기대주를 꺾었다는 내용으로 말이다. 아카데미의 기반인 왕실은 드높이고 반대로 마탑은 견제하는 하나의 정치적 도구인 셈이었다.

이후 대화는 부드럽게 이어졌다.

국왕이 묻고 론이 대답하는 식으로 해서 당시에 있었던 일들이 하나하나 풀어져 나왔다.

“흐음? 그렇다면 그 홉고블린 세 마리중 하나는 그대 홀로 잡았다는 건가?!”

게티아의 방문 목적을 얘기하다 보니 자연스레 남부 지역 여행과 토벌 얘기까지 나왔다. 그런데, 홉고블린 대목에서 국왕은 많이 놀란 듯했다.

웅성웅성.

같이 듣고 있던 주요 인사들도 1학년이 중급 몬스터를 잡았다는 얘기에 적잖이 당황했다.

“예, 기사와 용병들 덕분에 마음 놓고 사냥할 수 있었습니다.”

“허허!”

론은 기사와 용병을 들먹이며 겸손을 빼면서도, 자신이 사냥한 것에 대해서는 숨기지 않고 정확히 말했다.

‘이런 건 확실히 인식시켜야지.’

“정말 아들렌의 큰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폐하.”

“폐하, 이번 골든스태프 대회는 기대해도 될 것 같습니다. 하하하!”

“고작 열여섯에 중급몬스터 사냥이라니요, 이건 대륙 어디를 내놔도 견줄 곳이 없습니다. 폐하.”

“허허, 아들렌에 대단한 신예가 등장했군요.”

각 부처 주요 인사들도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었다.

바이코누르 국왕의 눈빛이 깊어졌다.

생각보다 그리고 알고 있던 정보보다 꽤 괜찮은 신예라 여겨진 것이다.

스펜서 남작가.

우직하게 마법만 파는 가문이었다.

이번 일을 통해 들은 거라곤 론의 형제 중 하나가 왕실 마검사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정도.

론이라는 학생이 이 자리에서 굳이 거짓말할 이유도 없었고, 저런 말을 내뱉는데 가만히 있는 럼블을 보니 말 그대로 사실인 듯했다.

물론 확인이야 해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괜찮군.’

연초 기분전환과 더불어 정치적 수단으로 나쁘지 않아 부른 것인데, 생각보다 미래가 기대됐다.

“론 스펜서.”

“예, 폐하.”

“지금 몇 서클이지?”

“3서클입니다.”

“흐음.”

국왕이 럼블을 쳐다봤다.

“사실입니다. 폐하. 서클도 중급 몬스터 사냥도 이미 확인한 바입니다.”

“허허···.”

웅성웅성.

역시나 이번에도 대신들 측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3서클이 중급몬스터라···. 내 이제껏 집권하며 열여섯 나이에 3서클에 이른 자를 처음 본 것은 아니다. 허나 그대의 행보는 참으로 가슴 두근거리게 만드는군.”

“감사합니다. 폐하.”

“내 그대가 이룬 성취와 행보에 격려하고 싶다. 바라는 게 있는가?”

‘됐다!’

론은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저 제 안위를 위해 했을 뿐인데, 바라는 것이라니요.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이미 과분한 격려를 받은 만큼 아카데미와 아들렌의 명예에 금이 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허허! 겸손한고로.”

바이코누르 왕의 눈동자가 어느새 짙은 호감으로 바뀌었다. 천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겸손했다. 으레 재능 있는 것들이라고 하면 그 특유의 자존심과 오만함이 있다.

당장 럼블만 보더라도 세기의 천재인 만큼 대화가 어느 정도 들어가면, 왕이고 뭐고 간에 타협이 전혀 없다.

물론 그러한 올곧은 심지가 있기에 7서클이라는 지고한 경지에 오른 것이겠지만, 눈앞의 론이란 아이는 빛나는 재능을 지녔음에도 주위를 볼 줄 알았다.

“말하라. 내 그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리라.”

바이코누르 국왕이 다시 한번 말했다.

아무리 왕의 말이 곧 법이라지만 나름의 법도가 있다. 무분별한 직권 남용은 그만큼 권위를 실추시킨다. 하지만 지금 만큼은 그 직권을 사용해야 할 때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이를 보고 있는 론은 그저 속으로 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생각보다 얘기가 잘 풀렸군. 예의상 거절은 한 번 했고, 그럼 이제···.’

순간 마주친 국왕의 눈동자.

이번에도 거절한다면 아주 절단이라도 낼 기세다.

‘아이고, 안 그래도 말할 겁니다.’

“폐하의 넓은 아량에 감사드립니다. 그렇다면, 혹시 저희 가문의 사업에 대해 한번 들어봐 주실 수 있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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