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46
한껏 중급 몬스터 사냥에 대해 질문하던 샤코린이 말했다.
“그런데 그게 론과 크루딘, 그리고 사티넬이라고 하더군요.”
“······”
강의실에 정적이 돌았다.
휘유.
크루딘이 조그맣게 휘파람을 불고는 옆에 있는 사티넬을 툭 건드렸다.
“이렇게 알려지게 될 줄은 몰랐네.”
“그러게 말이에요. 하하···.”
그러나 크루딘은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에게 있어 타인의 시선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같잖게 분위기 조성하는 거 말고 그냥 직접 달려들어 줬으면 좋겠는데.’
그는 방학 동안 미친 듯이 자신을 몰아붙였었다. 폐병을 치료한 것도 치료한 거지만, 무엇보다 마탑 수련생들과의 싸움에서 마지막에 밀린 게 너무 분했기 때문이다.
마법 하나만 보고 가도 촉박한 인생. 다시는 계급이니 권력이니 하는 것들에 목 매는 이들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크루딘이 그런 생각을 하거나 말거나, 샤코린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교수님 그래서 말인데, 그들의 시범을 직접 보는 건 어떻습니까?”
“으음? 흠···.”
제르마가 턱을 쓰다듬었다.
외부 활동 보고서야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밝혀질 일이었다. 딱히 큰 관심도 없었기에 그리 신경을 안 썼는데, 시범은 솔직히 솔깃했다.
교육에 있어서 시범만큼 직관적인 건 없다. 그런데 이를 동기생이 한다면, 학생 간 경쟁심도 고취할 수 있으니 괜찮아 보였던 것이다.
“나쁘지 않군요. 어떤가요? 론··· 아, 그 학생은 오늘 왕실 간담회에 갔지. 크루딘과 사티넬 학생 괜찮습니까?”
‘와우. 이젠 교수님까지 판을 거하게 까시네.’
크루딘이 재밌다는 듯이 실소를 흘렸다.
론이 일전에 말했었다.
괜히 학생들의 시기 질투를 자극하지 말자고. 그래서 그가 총장과 함께 왕실 간담회를 간 것도 비밀로 했는데,
제르마 교수가 아무렇지 않게 말해버렸다. 게다가 삼인방의 언급에 대해 부정하지 않았기에 강의실에 있던 학생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웅성웅성.
강의실이 소란스러워졌다.
‘1학년 수석은 플라츠 아녔어?’
‘그러니까. 국왕 폐하를 뵙는 간담회는 학년 수석들만 가는 거로 아는데···.’
‘론이 거길 왜 간 거야?’
‘이거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니냐? 중급 몬스터 사냥 보고서도 그럼 다 이것 때문에 꾸민 거잖아!’
‘허! 미쳤군. 플라츠는 1등까지 했는데 그냥 공쳤네.’
‘야, 조용히 말해! 저기 플라츠도 있다고!’
정말이었다.
수강 신청 때 론 일행을 흥미롭게 본 플라츠는 수업 몇 개를 론과 동일하게 신청했었다.
그런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마법이론 수업이었다.
‘그놈이··· 왕실 간담회를 갔다고?’
플라츠의 눈 밑이 푸들푸들 떨렸다. 그 모습에 옆에 있던 샤코린이 주춤했다.
플라츠와 샤코린.
겉으로는 그저 동기지만 실은 이미 주군 관계였다.
플라츠는 가주가 되어 그를 크게 임용할 것을 약속했고, 샤코린은 그가 가주가 되는 데 있어 최선을 다해 보필할 것을 약속했었다.
그런데 그런 플라츠가 분개했다.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 감정을 감추려 했으나 샤코린의 눈에는 훤히 보였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샤코린이 수업 분위기를 이렇게 조성한 것은 사실 다 플라츠의 명령 때문이었다.
[론에 대해서 알아봐라.]
[1학년에 남자 둘, 여자 하나의 삼인방은 얼마 없다. 행정 직원한테 돈 좀 찔러주고 그 중급 몬스터 건, 론이 맞는지 확인해 봐.]
[샤코린, 론의 중급 몬스터 토벌 건. 수면 위로 꺼내라.]
가문 후계와는 동떨어진 삼남이자 서출인 론. 그런데 실력이 꽤나 출중하다 보니 플라츠는 욕심이 났다.
그래서 샤코린을 시켜 계획했었다.
론을 난처하게 만들고, 후에 자신이 도움의 손길을 뻗어 거둬들이기로.
“샤코린.”
“예, 플라츠님.”
“망아지 교육 좀 해야겠다. 이래서는 주인을 알아보기도 전에 날뛰겠구나. 저녁에 연구회 소집시켜라.”
“예, 알겠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얘기하는 사이,
크루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수님, 그런데 사티넬은 아직 복합마법진에 미숙해서 말입니다. 제가 해보겠습니다.”
“단일마법진에서 복합으로 넘어가는 게 쉬운 건 아니지요. 이해합니다. 그런데 크루딘 학생은 가능한가 보군요?”
“예, 어떻게 운이 좋았습니다.”
“허허, 좋습니다. 크루딘 학생은 적극적인 수업 태도로 학기말 시험에 5점 추가 점수를 주도록 하겠습니다.”
“상점 감사합니다. 그런데 교수님, 이왕이면 단일 마법진과의 확연한 구분을 할 수 있도록 같이 시연을 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으음? 그거 괜찮군요. 좋습니다. 뭐 특별히 바라는 거라도 있습니까?”
마법과 강의가 최우선인 제르마 교수. 그는 크루딘의 적극적인 태도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
가끔 천재라 불리는 것들을 보면 거만하고 제멋대로인 경우가 많은데, 크루딘은 소통할 줄도 알고 꽤나 인격적이었던 것이다.
제르마의 표정이 한층 더 너그러워졌다.
“네, 이왕이면 저기 질문한 샤코린과 함께 시연해보겠습니다.”
“좋습니다. 샤코린 학생!”
“예?”
플라츠와 대화를 나누던 샤코린은 갑작스런 호명에 당황했다.
“궁금해했던 만큼 직접 확인해 보면,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같이 나와서 시범을 하는 것으로 해보죠.”
“아, 예···. 알겠습니다.”
갑작스럽게 지명에 황당하긴 했지만, 샤코린은 그보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가 론 일행을 조사할 때 알게 된 바에 따르면 저 크루딘은 그냥 반쪽짜리 마법사였다. 선천적인 지병으로 인해 마법에는 적합하지 않은 녀석이었다.
“후우···.”
‘보고서를 썼다고 해서 진짜 그 실력이라도 되는 줄 아는 건가? 아니면, 대충 넘어가려고?’
매수한 행적 직원이 말하기로 내부에서는 이미 허위 보고라 단정 짓고 확인 중이라고 했었다.
샤코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실력도 없고 허세만 가득한 크루딘의 모습에 질색한 것이다.
‘플라츠님도 분노한 마당에 차라리 잘 됐군. 메인 요리 전에 요깃거리 정도는 되겠어.’
크루딘과 샤코린.
그들이 강당의 단상에 올랐다.
원소마법학 강의장처럼 커다랗지는 않았지만, 시범을 보이기에는 충분했다. 그렇게 두 학생이 올라오자 제르마는 학생들 쪽으로 물러났다.
“반갑습니다.”
샤코린이 먼저 아는 체를 했다.
“글쎄, 내가 쥐새끼처럼 뒤에서 찍찍거리는 것들은 별로 안 좋아해서.”
“하!”
하도 어이가 없어 샤코린의 입에서 실소가 튀어나왔다.
“쥐새끼라··· 재밌군요. 그나저나 복합마법진, 그러니까 3서클 마법은 가능하겠습니까? 애써 무리할 필요 없습니다. 허위 보고서야 어짜피 밝혀질 일이잖습니까? 여기서 공개적으로 사죄하십시오. 제가 까짓 것 거들어 드리죠.”
공개 사죄, 그리고 공개 망신.
귀족에게 있어 이보다 더 치욕스럽고 치명적인 것은 없다. 그런데 눈앞의 크루딘의 상황은 외통수였다.
피할 수도, 도망칠 곳도 없는 그런.
“어이, 입은 그만 털고 흙벽이나 만들어. 뭐가 됐든 내가 뚫어줄 테니까.”
크루딘은 들은 체도 않고 단상의 한쪽 끝으로 물러났다.
감정의 동요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그의 행동에 샤코린도 더 이상은 말을 삼갔다.
‘반쪽짜리 마법사라더니 머리도 반쪽인가? 그래, 어디 한번 해봐라. 뚫을 수 있나.’
크루딘과 마찬가지로 샤코린이 반대편으로 물러나자, 제르마 교수는 의아했다.
당연히 학생들 쪽을 바라보며 복합마법진과 단일마법진을 보여주는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저 둘은 마주 보고 있었다. 마치 대련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리고 이를 알아챈 학생들도 흥미롭게 보기 시작했다. 소문도 소문이지만, 일단 싸움 구경만큼 재밌는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파이어 애로우!”
피식.
하지만 그런 긴장감 끝에 튀어나온 마법은 허탈하기 짝이 없었다. 샤코린이 그럼 그렇지 하며 그 또한 마법을 펼쳤다.
“어스!”
우우우웅.
뒤늦게 시전했음에도 샤코린의 흙벽이 먼저 세워졌고,
퍼억!
크루딘의 불화살은 그 흙벽을 뚫지 못했다.
샤코린이 흙벽을 유지한 채 고개를 빼꼼히 내밀며 말했다.
“고작 이걸로 중급 몬스터를 잡았습니까? 너무 약한데?”
명백한 도발이었고, 사람들 앞에서 비꼬는 것이었다.
푸흡!
푸하하하.
킥킥킥.
아니나 다를까 학생들 사이에서는 웃음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크루딘은 마법을 계속 이어갔다.
“워터 애로우!”
슈우우욱.
퍽!
“윈드 애로우!”
슈아아악.
퍼억.
마법 발현 속도만 조금 빨라졌을 뿐 그 어느 마법도 샤코린의 흙벽을 뚫지 못했다.
“교수님, 소문이랑 다르게 너무 보잘것없는데요? 정말 중급 몬스터를 사냥한 거 맞습니까?”
“······”
제르마 교수는 할 말이 없었다.
일전의 호기로운 모습 때문에 크루딘을 내심 기대했었는데, 실상은 아무것도 없었다.
“후우, 조절은 확실히 되는 것 같군.”
하지만 크루딘은 그저 흡족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방학 동안 복합마법진에 대해 수련을 하면서 그가 집중한 부분은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달랐다.
이전까지 서클을 늘릴 수 없었기에 심상적인 측면에 비정상적으로 투자를 했던 그였었다. 하지만 복합마법진은 심상의 영역이 아니었다. 심상에 쏟을 정신력으로 마법진을 더 만들어야 했다.
심상보다 단순하고 정확하며 효율적인 복합마법진 완성을 위해서 말이다.
습관을 고치려고 부단히도 노력했었는데, 크루딘은 방금의 시연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어이, 아직 한 발 남았는데?”
크루딘이 이리저리 떠드는 산만한 샤코린에게 한마디 했다.
“아, 뭐가 남았습니까? 뭐 해보십시오.”
‘야, 또 한다. 큭큭큭.’
‘저래놓고 무슨, 중급 몬스터야. 푸하하하.’
‘캬아, 저 정도로 낯짝이 두꺼워야 거짓말도 하는 거구나. 한편으로 대단하긴 하네.’
‘교수님, 표정이 더 대박인데? 큭큭, 최초로 상점 받자마자 벌점으로 까먹는 학생 나오겠다.’
강의실이 소란스럽건 말건 크루딘은 집중했다. 머릿속에서 마법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을 모두 지워나갔다. 잡생각, 감정, 기분, 욕구 등등.
그러고는 내리고 있던 왼손을 들어 올렸다.
“어스,”
크루딘의 양손 사이로 선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하나, 둘, 셋···.
총 여섯 개.
그리고 이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모양을 구성했다. 정사면체로.
복합마법진이었다.
“어어···.”
“뭐, 뭐야?”
“음?!”
학생도 교수도 모두 당황했다.
이제껏 단일마법진의 마법만 펼치던 그가 완벽한 복합마법진을 만든 것이다.
우우우웅우웅.
정사면체의 복합마법진에 마나가 주입되자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이내 충분한 공급을 받았는지 빛을 발했다.
“크, 크루딘!!”
“스피어!”
슈콰아앙.
제르마 교수가 당황하는 바람에 말릴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원소 변환, 밀도, 크기, 융화.
3서클의 개념식들이 완벽하게 녹아든 어스 스피어가 허공을 갈랐다.
퍼어억!
“컥!”
흙벽이 뚫리는 것은 물론이었고, 크루딘의 흙창이 그 뒤에 있던 샤코린의 주둥이에까지 꽂혀버렸다.
“극! 그르륵···.”
휘유!
“제대로 꽂혔네. 마법사면 마법으로 보일 것이지, 쯧! 당분간 좀 닥치고 있어라.”
그러고는 크루딘이 별일 있었냐는 듯이 양손을 들썩이며 제르마 교수를 쳐다봤다.
“아, 교수님. 참고로 처음부터 보셨다시피 서로 협의 하에 한 겁니다.”
씨익.
환한 미소도 아끼지 않았다.
“허어···.”
제르마 교수가 할 말을 잃었다. 옆에 있던 학생들도 마찬가지였고.
그런데,
뚝!
이를 보고 있던 플라츠는 쥐고 있던 깃펜을 부러뜨려 버렸다.
‘저 미친 새끼가!!’
샤코린 루디오스. 그가 처음으로 영입한 가신이 피떡이 되었다. 그것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플라츠의 눈빛이 차가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