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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가 마법사의 회귀-44화 (44/115)

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44

행정 본부의 말단 직원 테일러.

그는 여느 때처럼 업무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게 늘 그렇듯 그의 삶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튀어나왔다.

1학년의 중급몬스터 토벌 보고서.

이는 여느 귀족들이 인맥을 이용해 이따금씩 제출하는 허위 보고서와는 수준이 달랐다.

아카데미 분위기를 이해하지 못한 부모의 잘못인지 아니면 1학년생들의 생떼로 인해 쓰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대로 결재 서류로 올렸다가는 퇴짜 맞을 게 뻔했다. 되지도 않는 보고서를 받았다며 욕까지 먹는 건 덤이었고 말이다.

“하아···.”

그렇게 한숨을 푹푹 쉬던 테일러는 은연중에 친한 직원들에게 하소연했다.

그런데 그는 알지 못했다.

그것이 곧 구르는 눈덩이가 되어 아카데미 전체를 휘저어버릴 거라는 사실을.

‘1학년이 중급몬스터를 사냥했다는데?’

‘에이, 골든스태프 대회 앞뒀다고 너무 오바쳤다. 중급이 무슨 옆집 개 이름도 아니고.’

‘아오! 이런 새끼들 때문에 귀족들이 외부활동 보고서를 허위로 쓴다는 얘기가 도는 거 아냐!’

‘그 맛탱이 간 1학년이 대체 누군데?’

자극적인 내용이었던 만큼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행정 직원 뿐 아니라 그들이 상대하는 학생들에게 까지도.

그렇게 커다란 아카데미 부지가 1학년의 중급몬스터 사냥으로 떠들썩해질 즈음, 어느새 시간은 1분기의 끝자락이 되어버렸다.

“론, 내일은 수업 올 필요 없이 곧장 총장실로 가거라. 총장님께서 기다리실 거다.”

“예, 알겠습니다.”

오전 원소마법 수업이 끝나자 티라우스 교수가 론을 불러다 놓고 말했다. 딱히 무슨 일인지는 말하지는 않았다. 그저 총장실로 가라는 말뿐.

허나 론은 모를 수가 없었다.

바로 왕실 간담회.

결국 디데이는 왔고, 회귀 전에는 없던 국왕 알현을 하게 되었다.

휘유.

허나 크루딘은 휘파람을 불며 장난을 쳐댔다.

“좋~겠네. 서클이면 서클, 성적이면 성적. 뭐 하나 양보하는 게 없어요, 양보하는 게.”

“뭐 론님이 특출난 거죠. 크루딘님, 더 분발하세요. 공부도 좀 더 하시고, 수련도 좀 더 하시고.”

“사, 사티넬, 너마저···.”

“풉!”

“흠···. 일단 나가죠.”

론 또한 그들의 장난에 어울려주고 싶었지만 어째 주변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그들은 곧장 식당으로 향했고,

적당한 자리에서 음식을 먹으며 론이 입을 뗐다.

“요즘 도는 소문 다들 들었죠?”

사실 물을 것도 없었다.

늘 붙어 다녔기에 론이 듣는 걸 그들이 못 들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뭐 중급몬스터 사냥 어쩌고 하는 거?”

“예. 생각보다 일이 커진 거 같습니다.”

“딱히 실명이 오간 것도 아닌데 신경 쓸 필요 있나?”

“문제는 남자 둘에 여자 하나인 삼인방이란 얘기가 떠돈다는 거죠.”

“그, 그렇죠. 하하···.”

사티넬도 이를 아는지 론의 말에 동의했다.

100명이 조금 넘는 1학년 중 그런 삼인방은 많지 않다. 오히려 특정될 수밖에 없었다.

“하여간 실력으로 안 되는 것들이 꼭 입을 털고 다녀요. 쯧!”

자신의 것을 온전히 발휘하기에도 바쁜 생이라 여기는 크루딘이었다. 그런 만큼 그는 남 얘기에 정신 팔려 사는 이들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론은 달랐다.

오랜 세월을 경험한 그는 뭐라 명쾌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묘한 직감 같은 게 있었다.

그리고 이처럼 한 소문이 수면에 오를 정도로 시끌벅적해지면, 어떤 방식으로든 일이 터지고 만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뭐, 그래봐야 고작 하루니까.’

장소도 코앞이었다

분기별 왕실 간담회. 그저 내일 잠시 수도의 왕성에 갔다 올 뿐이었다.

“그래도 괜히 피곤하게 아카데미 생활할 필요는 없으니 불필요한 대응은 삼가는 걸로 하죠.”

“오케이, 알았다고.”

“네, 알겠어요.”

떠오르는 걱정을 애써 밀어내며 론은 식사를 이어나갔다. 과도한 걱정은 심력과 시간만 낭비하니까.

***

“이처럼 마법진에는 이를 구성하는 진과 마법식이 존재합니다. 진의 형태가 원 혹은 정다각형인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마나 분배에 있어 가장 균형적인 형태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시간이 흘러 마법이 발달하고, 실력에 여유가 생긴 이들은 이보다 상위의 것을 발명했습니다. 무엇일까요?”

마법 이론 수업의 제르마 교수가 물었다.

“정다면체 복합마법진입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선진 개념이 등장했을 때 모두가 따른 건 아니었습니다.

당시 콧대 높던 일부 마법사들은 복합마법진 없이도 수준 높은 마법을 펼쳤었지요. 그게 바로 단일 마법진에 심상만을 추가하여 복합마법진과 비슷한 효과를 일으키던 자들이었습니다.”

론이 크루딘을 쳐다봤다.

이유는 달랐지만, 크루딘 또한 단일마법진에 심상만을 더해 상위마법을 펼쳤었다.

복합마법진은 마법진의 개수가 많은 만큼 필요로 하는 마나도 배 이상이다. 때문에 서클에서 출력되는 마나가 많다 보니 상당한 압력과 충격이 가해지는데, 폐병을 달고는 불가능했다.

“알아. 이제는 나도 선진 문물을 받아들였다고.”

론의 시선을 느낀 크루딘이 말했다.

피식.

론이 이내 고개를 돌리며 조용히 읊조렸다.

“축하합니다. 새로운 세계에 온 걸.”

그렇게 짧은 잡담이 지나가고 그들은 다시 수업에 집중했다.

“하지만 결론은 어떻게 됐을까요?”

제르마 교수가 학생들을 쭉 둘러보더니 설명을 이었다.

“이 획기적인 복합마법진으로 인해 인류 마법은 급성장했습니다. 복잡한 개념과 식을 머릿속에 그림 그리듯 할 필요 없이, 약속한 문자와 숫자로 치환함으로써 속도와 정확성이 비약적으로 상승했기 때문이죠.

여유는 곧 다음으로의 도약을 가능케 합니다.

이족보행을 한 인간이 남은 두 손으로 도구를 발명했듯이 선대의 마법사들은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간소화하며 마법 체계를 발달시켰습니다.

즉, 여러분들도 단일마법진을 끝이라 여기지 말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받아들여···.”

제르마 교수가 말을 멈추고 오른손을 내밀었다.

구후우우웅.

그의 손바닥 위로 푸른 선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한 줄, 두 줄, 세 줄···.

각각의 선들이 모여 각과 모서리를 이루기 시작했는데, 이내 곧 그 완전한 형상을 드러냈다.

우우웅우웅.

열두 개의 모서리.

정육면체와 모서리 개수는 같았지만, 수준은 한 단계 위인 정팔면체의 복합마법진이 펼쳐져 있었다.

“평면 세계를 벗어나 입체 세계로 넘어오길 기원하겠습니다.”

수업은 끝이 났다.

아카데미 2회차라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교수법에 따라 학생들의 학업 태도가 바뀌는 듯했다. 그런 면에서 제르마 교수의 언변은 훌륭했고 말이다.

“평면 세계를 벗어나 입체 세계로 오십시오.”

“푸웁! 크루딘님 그러다 걸리면 벌점이에요! 조심하세요.”

크루딘이 잔뜩 목소리를 깔며 제르마 교수 흉내를 내자 사티넬이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경고를 아끼지 않았다.

“뭐야 웃을 거 다 웃어놓고는.”

그렇게 오후 수업도 하나둘 끝이 나고, 이후 마법수련과 마나 호흡까지 하니 하루는 금방이었다.

그리고 분기별 간담회를 하는 당일.

“다녀오세요, 론님.”

“근데 왕성이면 코앞인데 무슨 아침 댓바람부터 가냐. 수업 빼먹고 그러는 거 안 좋은데···.”

“크루딘님, 부러우면 부럽다고 그냥 말하세요.”

“크흠, 흠···.”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왕실의 공식적인 일정은 대부분이 오후부터였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국왕도 집무를 봐야 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론도 이른 아침부터 부른 이유가 궁금하긴 했다. 아카데미가 어디 멀리 떨어진 곳도 아니고, 똑같이 수도에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뭐 저라고 이유를 알겠습니까. 오라고 하니 가는 거지요. 그럼 갔다 와서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래, 잘 갔다 와.”

“다녀오세요! 그럼 저희는 수업 들으러 가볼게요.”

“네 수고하십시오.”

론은 멀어지는 둘을 눈으로 배웅했다.

‘뭐 별일 없겠지.’

최근 아카데미는 삼인방의 외부활동 보고서로 꽤나 시끌시끌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고작 하루.

론은 별일이야 있을까 싶었다.

“아으!”

“푸웁! 크루딘님 그 정도는 피하셨어야죠!”

“아니, 무슨 겨울도 다 끝나가는 마당에 아직도 눈이 안 녹았어?!”

“여기는 그늘이잖아요, 저기 보세요. 바닥에도 눈이 안 녹았다고요!”

“으으, 알았어. 사티넬, 나 요기 목에 좀 털어줘 봐. 자꾸 등으로 들억! 아으 차거!”

피식.

그들을 보고 있으면 괜히 마음이 편안해진다.

‘빨리 갔다 와야겠군.’

론 또한 서둘러 총장실로 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전에 봤던 익숙한 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후우, 그럼 들어가 볼까.”

딸칵.

론이 노크하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제시간에 왔구나, 론. 그럼 바로 가자꾸나.”

“예?”

턱.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다가온 럼블이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우우우웅.

선명한 마나 공명음이 들리더니 이내 그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복합마법진이다.

다만 지금까지 봐 온 것과는 좀 달랐다.

정다면체의 복합마법진이 럼블과 론을 집어삼키듯 그들을 안에 두고 형상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완성된 그 모습은,

정십이면체였다.

지이이이잉.

“메스,”

‘어?’

“텔레포트.”

츄아아앙.

강렬한 빛이 론과 럼블을 집어삼켰다.

“흡!”

“껄껄걸, 뭘 그리 놀라느냐. 워프게이트도 타 본 녀석이.”

“후우···. 텔레포트 아니, 메스 텔레포트는 처음입니다. 총장님, 그런데 공간이동은 왜···.”

“왜긴. 그럼 귀찮게 걸어갈 생각이냐.”

“아···.”

그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전에도 와 봤던 곳.

수도의 워프게이트 관리소였다.

“왕성에 가는 거 아니었습니까? 간담회에 참석하신다고.”

“간담회도 가야지. 그런데 그 전에 가볼 데가 있다.”

“가볼 데라면···.”

“홉고블린 말이다, 이 녀석아. 딱히 네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1학년 치고는 너무 과했어. 행정 본부도 그렇고 학생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다는구나. 처음 듣는 얘기는 아닐 텐데?”

“아···. 예, 그렇긴 하죠.”

“으응? 아는데 모른 체했다?”

“뭐 말한다고 해서 여론이 바뀔 것 같지도 않아서 그냥 그러려니 했습니다.”

“허허···. 머리 좋은 것들은 왜 그리도 융통성이 없는 건지, 쯧쯧쯧···. 꼬맹이들 뒤나 봐줘야 하고 말야. 응?!”

“······”

딱히 의도한 건 아니었으나, 럼블 총장이 이를 확인하고 보증해 준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의외였다.

‘그렇게 소문이 심각했나.’

사실 론은 괜한 분쟁을 만들고 싶지 않아 무시했지만, 학생들의 불만은 적잖이 쌓인 상태였다.

가뜩이나 올해는 골든스태프 대회가 열린다.

우승자에게는 세계 최고의 신예라는 영예가 안기는 만큼 모든 마법 수련생들이 이를 소망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각 기관은 대표를 뽑았다.

기관마다 대표 선정 기준은 조금씩 달랐는데, 아들렌 아카데미의 경우 외부활동 보고서도 어느 정도 참고를 했다.

그런데 때마침 들려오는 소문은,

‘이제 겨우 한 학기를 마친 신입생이 중급몬스터를 사냥했다고 하니···.’

론도 이해는 갔다.

애초에 모두가 인정할 만한 사실이 있었다면, 그들도 응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들려온 것은 늘 말이 많던 외부활동 보고서였다. 귀족들이 인맥을 이용해 허위로 작성한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인 그것 말이다.

그리고 그 보고서 내용이 갓 입학한 신입생이 3학년도 어려워하는 중급몬스터를 잡았다 하니, 그들로서는 괘씸했던 것이다.

“하하···. 감사합니다.”

“끄흥.”

럼블이 잔뜩 귀찮은 내색을 비췄다.

“쯧쯧쯧···.”

허나 그럼에도 그가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껏 론이 보여온 성과만 보더라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중급 몬스터 사냥 건은 물론이고,

골든스태프 대회 참여자로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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