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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가 마법사의 회귀-42화 (42/115)

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42

추운 겨울이 물러나고, 적막하던 아카데미에는 사람이 가득 찼다.

2학기였다.

학생들은 오랜만에 만난 동기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이는 론과 사티넬도 마찬가지였다.

“어이!!”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소리.

허나 그럼에도 론과 사티넬의 고개는 동시에 돌아갔다.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잠시 후 둘의 입에서 동시에 말이 튀어나왔다.

“잘 지냈습니까, 크루딘?”

“크루딘님, 오랜만이에요!”

“크으, 반갑다! 너무 오랜만에 보는 거 같은데?”

“뭐 가문에서 쥐 잡듯 못살게 굴기라도 했습니까?”

“아니, 완전 정~반대. 내가 폐병 나았다는 얘기 듣고, 글쎄 다들 완전히 딴 사람들이 됐다니까? 어휴 그 띠껍던 원로들 바뀌기 전 모습을 너희가 봤었어야 했는데.”

“잘 지냈나 보군요.”

“그래도 잘됐네요, 크루딘님.”

폐병이 사라졌으니 가문에서도 상당히 놀랐을 것이다.

다만 선천병이기도 했고 갖가지 방법을 써본 가문 사람들이었을 텐데,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론은 궁금했다.

“궁금해하지는 않았습니까? 어떻게 폐병이 치료된 것인지 말입니다.”

“아아, 뭐 그냥 아카데미에서 탈진할 정도로 수련을 몇 번 하니까, 몸뚱이도 지겨웠던 건지 어느새 괜찮아졌다고 대충 얘기했어.”

“예? 정말 그렇게 말했습니까?”

상식적으로 말이 안됐다.

저리 수련해서 모두가 폐병이 낫는다면 이 세상 불치병은 진즉에 사라졌어야 했다.

론이 황당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크루딘이 이어서 깜빡했다는 듯이 말했다.

“아! 그리고, 방학 때 놀러 간 야산에서 이상한 약초 같은 걸 주워 먹었다고 말하긴 했다. 큭큭, 그것 때문에 원로 영감들 지금도 찾아 댕기고 난리야. 푸하하하하! 아 꼬셔, 큭큭큭.”

“······”

“그 원로분들이 크루딘님한테 엄청 힘들게 했었나 보네요. 하, 하하···.”

“으휴, 그 영감들은 고생 좀 해야지. 그렇게 실적 실적 거리는데, 어디 맨땅에서 실적이나 찾아보라고 해야지, 큭큭.”

그와 게티아에서 헤어지기 전, 론은 엘릭서에 대한 사실은 함구하라고 얘기했었다. 당시 크루딘도 걱정하지 말라고 호언장담하길래 그러려니 했는데, 생각보다 쌓인 게 많았나 보다.

“뭐···잘 넘어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럭저럭 넘어가긴 했군요.”

“그렇지. 그나저나 캬아아, 2서클 되니까 정말 좋더라. 마나를 미친 듯이 운용해도 예전처럼 아프지가 않아. 어이, 근데 거기 둘은 방학 때 연습 좀 했어?!”

크루딘의 눈에는 여유가 넘쳤다.

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폐병 때문에 초조해하던 1학기 때의 그가 아니었다.

손자뻘인 동료의 변화에 론의 얼굴엔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이내 뭐라 말해야 할까 고민하는 사이 사티넬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고 보니, 헤어밴드랑 초커는 뺐네...’

저도 모르게 론은 그녀의 외모를 감상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 걸려있는 귀걸이는 잘 어울렸다.

‘레비가 준 거겠지? 레비 녀석한테 뭐라도 사줘야 하나···.’

론이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사티넬이 대신 말했다.

“뭐, 조금요? 힛. 실은 론님이 가문에 초대해주셔서 스펜서 영지에 계속 있었거든요. 그런데···.”

“뭐어?!! 론의 집에 갔었다고?!”

“음? 뭐 잘못됐습니까?”

“하!”

크루딘이 세상 서럽다는 듯 소리 질렀다.

이후 친구 간에 따돌림은 안 좋다는 둥, 동료가 많을수록 시너지가 더 발생한다는 둥, 진정한 친구는 떨어져 있을 때도 서로를 생각한다는 둥 온갖 얘기를 쏟아내며 서운함을 토로했다.

그렇게 크루딘이 방학 기간에 자신만 고생했다며 성토하는 사이 론 일행은 어느새 건물 앞에 도착했다.

1학기 때도 한 번 들렀었던 곳.

일반 마법학 건물의 대강당이었다.

입구에서는 전과 같이 아카데미 직원이 시간표 관련 자료를 나눠주고 있었다.

“그럼 수강신청이나 하러 가죠.”

론을 필두로 삼인방은 대강당을 들어갔다. 1학기 때와 다른 게 있다면, 그때는 없었고 지금은 있는 크루딘 정도.

수업과목은 1학기와 같았다.

애초에 선택과목이랄게 없는 1학년. 그래서 강의 시간만 고르면 끝이었는데, 크루딘 덕분에 그마저도 오래 걸리진 않았다.

“다 됐고, 나는 그냥 론, 네가 결정한 대로 따라 할 거야.”

“어! 그럼 저도 그럴게요!”

“어이, 사티넬. 넌 1학기 때도 그래놓고선 뭘 새삼스러운 척이야.”

“앗, 그랬나요? 헷.”

피식.

론이 가볍게 미소짓고는 시간표를 봤다.

1학기와 다를 게 없는 과목들.

단지 그 과정만 좀 더 심화됐을 뿐이었기에, 굳이 다른 교수에게 그리고 다른 시간에 들을 필요가 없었다.

“아, 그런데 약초학은 바꿔야 하나?”

“하아···. 약초학 하니까, 또 생각나네. 맞다! 아니 나 약초학만 아니었으면 순위권에 들어갈 수 있었다니까. 나 참고로 최종 성적 전교 14등이었다. 엣헴!”

1학기 최종 보스였던 약초학 얘기에 때아닌 성적 얘기까지 나왔다.

“풉!”

“어어? 사티넬, 뭐야. 나 14등이라고, 14등!”

“론님, 뭐 하세요. 빨리 얘기해주세요.”

“뭘 말입니까.”

“뭐긴요, 론님 등수죠!”

크루딘이 우쭐대는 게 재밌었는지 사티넬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뭐 그냥··· 2등 했습니다.”

“어어?!! 2등?!”

“시끄럽습니다, 크루딘. 조용히 하십시오.”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모이는 아들렌 아카데미. 그곳에서 차석을 했다는 말에 크루딘이 깜짝 놀랐다.

덕분에 강당에 있던 학생들도 이를 들었다. 물론 앞뒤 문맥 없이 2등이란 얘기밖에 못 듣긴 했으나, 여기 있는 이들이 그마저도 추측 못 할 바보는 아니었다.

“후우···. 대충 빨리 신청하고 갑시다. 생각해보니 교수님을 바꿔도 시험 자체는 공통이니 바꿀 필요는 없겠군요.”

론은 동기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피해 서둘러 신청을 마치고는 강당을 나섰다.

그런데 강당에 있던 한 무리가 론 일행을 유심히 쳐다봤다.

“호오? 이거 전혀 생각지 못한 인물이군.”

플라츠 예런.

이번 1학기의 전교 1등이었다.

그리고 예런 백작가의 자제였고.

당대 군수보급청 청장이 해당 백작가 출신이었다. 각종 군 관련 물품을 총괄하는 만큼 상당한 뒷돈을 받았는데, 그 때문인지 왕국 어디를 내놔도 부에서는 밀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가풍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플라츠는 어려서부터 엘리트에 대한 욕심이 남달랐다.

그는 생각했다.

군주가 군주로서 오롯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그 혈통과 능력도 있겠지만, 그를 따르는 수족 또한 온전하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수족을 알아보는 것도 군주의 역량이겠지.’

이를 속으로 되뇌인 플라츠가 자신의 우측에 있는 학생을 쳐다봤다.

샤코린 루디오스.

가문 내 영지 마법사의 자식으로 상당한 두뇌를 가진 또래였다. 이를 일찌감치 알아챈 플라츠는 다른 형제보다 빠르게 그를 자신의 수하로 끌어들였는데, 예상 밖의 결과를 맞이했다.

샤코린은 전교 3등을 했다.

당연히 자신의 바로 뒤를 이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사이에 누군가 끼어 있었다.

‘그게 저 론이란 건가? 재밌군.’

앞서 크루딘이 크게 떠든 얘기로 이미 유추를 마친 플라츠였다. 그는 마치 흥미로운 물건을 발견했다는 듯 강당을 벗어나는 론을 유심히 쳐다봤다.

***

본래라면 라울 거리에 가서 회포도 풀고 해야겠지만, 론 일행은 따로 할 일이 있었다.

바로 토벌 확인서.

안 그래도 브뤼센 영주가 영주 인장까지 찍어가며 친필로 써준 것인데, 묵혀 둘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수강 신청을 마치고는 곧장 아카데미 행정 본부 건물로 향했다.

“진짜야?! 사티넬, 정말 너 9등이야?!”

“풉, 네! 9등이에요!”

강당을 나와서도 성적 얘기를 하던 크루딘은 사티넬의 성적에 대해 들었다.

“하아··· 또, 꼴찌냐?”

듣고보니 그랬다.

이 삼인방이 2서클에 오를 때도 우연히 론, 사티넬, 크루딘 순이었는데, 어째 성적도 마찬가지였다.

“공부 좀 열심히 하십시오, 크루딘. 10등 밖은 좀···.”

“하아···.”

론 또한 크루딘을 놀리자 킥킥 거리던 사티넬의 웃음 더 커져갔다.

그렇게 웃고 떠드는 사이,

론 일행은 행정 본부에 도착했고 담당 직원에게 토벌 확인서를 제출했다.

“거기 양식에 맞춰 보고서 작성하신 다음에 제게 주시면 됩니다.”

론 일행이 보고서를 작성하는 사이 담당 직원 테일러는 론이 제출한 토벌 확인서를 읽고 있었다.

‘으음?’

토벌 확인서를 읽던 테일러가 고개를 들어 론 일행을 쳐다봤다.

얼마 안 된 교복.

파릇파릇한 외모.

딱 봐도 3학년은 아니었다.

그런데 토벌 확인서에 따르면 이들이 홉고블린을 사냥했단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현 브뤼센 영주가 인장까지 찍어가며 직접 서술했고.

‘뭐야 이건···.’

간간이 그런 경우가 있다.

외부 활동 사항을 채우기 위해 인맥을 이용해 허위 보고를 하는.

하지만 그 또한 어느 정도 사실을 기반해서 하는 것인데, 홉고블린은 엄연히 중급 몬스터다.

최소 3학년.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4서클은 돼야 안전하게 사냥할 수 있을 텐데, 눈앞의 어린 학생들은 태연하게 보고서를 쓰고 있었다.

‘하아···. 이대로 보고서 올리면, 확인도 안 하고 쳐 받냐면서 뭐라 할 텐데···. 제기랄! 뭐 나라고 안 받을 수가 있나! 귀족이 들이미는데! 하여튼 이 더러운 직장 때려치우든가 해야지 진짜.’

차마 귀족 앞에서 말할 순 없었기에 테일러는 그저 속으로 삭힐 뿐이었다.

“후우···.”

몇 차례 심호흡을 한 테일러가 토벌 확인서를 론에게 내밀었다. 상사에게 조금이라도 덜 까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저기···. 여기 홉고블린을 사냥했다는 내용이 있어서 말입니다.”

“아, 예.”

‘아, 예?’

담담한 그의 반응에 테일러의 눈썹이 순간 꿈틀거렸지만, 이내 침착하게 질문을 이어갔다.

“홉고블린이면 중급 몬스터입니다. 그런데 지금 제출하신 학생분들께서는, 2학···1학년?!”

그들이 작성 중인 보고서 본 테일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말이 안 돼도 너무 안 됐다.

이제껏 아카데미 행정 직원으로 있으며 1학년이 4서클에 올랐단 얘기는 전혀 듣지 못했었다. 커트라인을 낮춰 그들이 3서클이라 해도 중급 몬스터 사냥은 분명 말이 나올 게 분명했다.

“하, 하하···.”

웃는 건지 우는 건지 구분이 안 가는 표정을 짓는 테일러.

“뭐 문제 있습니까?”

사실 론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다만 눈치 보는 게 더 이상했기에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는 거였다.

“그···어···크흠! 음. 1학년분들께서 중급 몬스터를 사냥했다는 보고서는 제가 처음 받아서요. 하, 하하···하하하···.”

횡설수설하던 테일러는 이내 실성한 듯 웃어 재꼈다.

‘시팔, 이젠 하다 하다 1학년이 중급 몬스터까지 잡았다 하네. 계급이 깡패지, 깡패! 시발, 이 보고서 승인되기 전에 내가 먼저 관둔다!’

테일러가 적잖이 당황해하자 론이 두사람을 쳐다봤다.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크루딘, 난처하게 웃는 사티넬.

“······”

하지만 확인서는 사실이었다.

당시의 브뤼센 토벌단이 그 증인이자 증거였다. 그리고 함께했던 브뤼센 영주의 친필 확인서까지. 더 이상 뺄 것도 없었기에 론이 차분히 말했다.

“문제 있으면 나중에 호출하십시오. 브뤼센 영주님의 확인서 내용 그대로니까. 그럼.”

보고서까지 제출한 론 일행은 뒤도 안 돌아보고 행정 본부를 나왔다. 뒤에서 궁시렁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같은 시각,

아카데미 총장실.

럼블이 미간을 찡그리며 한 서신을 바라봤다.

고급스러운 재질부터 해서 왕실 인장까지. 2학기가 시작하는 새싹달이면 항상 오는 왕실 서신이었다. 내용이야 늘 그랬듯이 분기별 부처 안건 보고 및 간담회였는데,

전에는 없던 추신이 있었다.

『 럼블 경. 내 흥미로운 사실을 들었네. 아카데미의 학생이 지오르 마탑의 기대주를 보기 좋게 꺾었다더군. 론 스펜서라고 했지? 간담회 때 함께 봤으면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

“······”

국왕의 친필 추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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