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41
론이 도와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사티넬의 몸에 흐르는 엘프의 피는 론과 그녀를 현격히 구분시켜 버렸다.
이제껏 마법에 있어 혈통은 의미 없다고 여겨온 론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오래전 질서의 수호자라 불리던 엘프. 그들이 때가 이르자 신계로 떠나간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 땅과는 격(格)이 달랐다.
가끔 사티넬이 희미하게 느껴질 때가 있곤 했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까마득한 차이였던 건가.’
시간은 흘러 어느새 귀향달의 끝자락.
스펜서 가문의 포션 사업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작업장을 비롯해 인부들까지 구색을 갖췄다.
그리고 론이 그토록 의식하던 이익 배분에 관한 부분만 남았다.
“예, 어르신들의 의견은 잘 들었습니다. 가문의 직계와 방계가 합작한 사업이니만큼 공정한 분배는 당연한 것이지요.”
회의실 상석에 있던 에레드가 참여한 방계 인사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직계와 방계를 통틀어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갈 것이다. 그런 만큼 그들 또한 진심이었는데, 에레드는 고개를 돌려 이 회의장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자신의 자식을 쳐다봤다.
“다만, 저는 이 사업의 단초가 되었던 그리고 제작에 있어 상당한 기여를 한 론 또한 그 분배의 권리가 있다고 봅니다.”
“흐음··· 뭐 동의하는 바이네.”
“인정하네. 그 꼬맹이 녀석이 없었으면 이렇게 사업이란 걸 꺼낼 생각도 못 했을 테니까 말야.”
‘호오, 일단은 성공이군. 아버지, 감사합니다.’
근래 마법 수련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새로운 작업장에서 포션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오늘은 다른 일이 있다며 에레드가 불렀다.
그리고 그 일이란 바로 이것이었다.
“론, 어떻게 생각하느냐?”
에레드의 적절한 설명과 구성원들의 동의로 이미 판을 깔렸다. 남은 건 이제 그의 몫이었다.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껄껄걸, 아주 당돌한 녀석이지.”
“앞으로 사는 동안 드락사보다 더한 인재는 못 볼 줄 알았는데 말야. 대단허지.”
“그래. 아이야, 얘기해 보거라.”
팔십 년 인생을 헛산 게 아니었다.
그들이 저택에 머무는 동안 론은 상당히 신경을 썼다. 사소한 인사와 말투에도 존경과 배려를 담았고, 이는 꽤나 긍정적인 시작을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이고, 돈과 관련된 부분은 확실하게 말해야 했다.
“그냥 간단하게 총매출액의 40퍼센트를 청구하고 싶습니다.”
“크흠!!”
“커험!”
이제껏 훈훈하던 분위기와는 상반되게 갑작스레 정적이 찾아왔다.
“마르지아 일가의 로뮨일세. 늙은이가 귀가 안 좋아서 말야. 껄껄걸, 잘못 들은 거 같은데, 다시 말해주겠나 젊은이?”
“예, 어르신. 총매출액의 40퍼센트를 청구하고 싶습니다.”
로뮨의 쳐져있던 눈썹이 쑥 올라갔다.
“허허, 아이야. 세금이라든지 순이익이라든지 사업에 대해서는 좀 알고 말하는 것이냐?”
“예. 재료비, 작업장 건축비, 인부고용비, 운송비, 출입세, 국세 등등의 모든 비용을 제한 순이익이 아니라 총매출액을 말씀드린 겁니다. 그리고 그런 총매출액에서 40퍼센트를 청구한 것이구요.”
“허어! 정말 당돌하구나!”
“아이야. 그런데 작업장과 인부 그리고 원재료들, 이 모든 걸 우리 돈으로 사들일 건데 그럼 우리는 뭘 가져가라는 거냐?”
‘뭘 가져가냐니. 상급 포션이 무슨 음료수냐? 원가 대비 수익률이 가장 높은 사업 중 하나가 포션이다, 이것들아. 개당 골드 단위로 버는데, 하아···. 나이 팔십도 안 먹은 것들이 진짜···.’
자신을 애 취급하는 몇몇에 론이 심기가 불편해졌다.
“나머지 60퍼센트에서 원가와 부대비용, 세금들을 제하고 투자 대비 비율로 나눠 가지셔야죠. 그런다 해도 충분히 이득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껄껄걸, 에레드.”
“예, 어르신.”
“자네, 아들이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구만. 과하네.”
“그러게 말일세. 아직 성년도 안된 아이네. 그런 아이가 무슨 수익의 반을 가져가겠단 말인가. 아무리 자네 자식이라지만. 과해, 에레드.”
그들은 론이 대화할 수준이 아니라 여겼고, 해서 에레드를 잡고 늘어졌다.
하지만 에레드도 난처하긴 마찬가지였다. 방계와 합작하는 사업이라 하나 론의 권리 또한 부정할 수 없는 건 사실이었다.
그저 적당한 선에서 론이 말을 마치면 에레드가 합당한 비율을 제시하려 했었다. 그런데 론은 구체적인 부분까지 생각한 채 먼저 말을 해버렸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사이,
론이 다시 한번 입을 뗐다.
“그 이하로는 할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어허! 내 가주의 아들이라 좋게 좋게 봐주려 했건만, 네가 선을 넘으려는구나 아주!”
“어떤 선을 넘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어디 감히! 어른이 말하는데!”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하지만 사업과는 동떨어진 가문이어서 그런 걸까? 몇몇 방계 인사들은 고리타분했다.
“그 어떤 사업보다 아이디어가 상당 부분 차지하는 포션 사업입니다. 그런 사업에서 제조법을 제안하고, 막히는 부분에 있어 해결법을 제시했습니다. 이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건 제조법을 무시하고, 그 포션의 가치 또한 무시하는 것입니다.”
‘곱게 봐주려니까 아주···. 그냥 바닥이나 핥아라, 너넨.’
협상의 여지를 없애버렸다.
“뭐, 뭐이?!”
“아, 그리고 말씀하신 초기 자본금은 다른 곳에서도 충당할 수 있습니다. 뜻이 맞지 않으시다는데, 굳이 어르신들과 얼굴을 붉혀가며 할 이유는 없지요.”
이미 론은 에레드와 머라이센이 얘기하는 걸 들었었다.
부르카 일가.
회귀 전에는 그저 적당히 상단을 굴리는 스펜서 가문의 일가라 생각했는데, 오가는 얘기를 들어보니 생각보다 규모가 꽤 컸다.
그리고 그 부르카 일가의 대표, 머라이센이 이번 사업에서 상당량의 지분을 취하려는 걸 에레드가 막았다. 가문의 사업인 만큼 다른 방계도 참여하게 하여 공익을 추구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에레드가 굳이 굽혀 가면서까지 가문을 모은 것이었는데, 저리 나오니 호의를 베풀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조용히 있던 머라이센이 손을 들었다.
“다른 어르신들이 포기한 지분, 모두 제가 사겠습니다. 포션 사업에서 제조법 제공자에게 절반 가량의 수익이 돌아가는 걸 생각하면 괜찮은 조건인데,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군요. 가주님, 제게 다른 분들의 지분권을 주십시오. 다 사겠습니다.”
상인으로 입지를 다져온 부르카 일가의 머라이센이 그리 말하자 장내가 술렁거렸다.
‘오호, 타이밍 봐라.’
“가주님, 그렇다는데 어떻습니까?”
론이 불 난 집에 기름을 붓듯 재촉했다.
“크흠!!”
“커험, 험!”
“큼! 거, 에레드.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게나.”
딱히 의도한 것도, 미리 짠 것도 아니었으나 적절한 시기에 머라이센이 치고 들어왔다.
감사 인사라도 해야 하나 싶어 그를 쳐다보니, 머라이센은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다.
피식.
‘적어도 상대편은 아니란 거군.’
“자네들, 괜한 욕심에 가문의 사업을 망가뜨리지 말게.”
그러는 와중 한 목소리가 회의장을 갈랐다. 이곳에 있는 이들 중 가장 연로한 이.
대장로 리무트 스펜서였다.
“한창 날개를 펴나가는 신예들이 애써 방계까지 배려해줬는데, 고작 한 다는 게 제 잇속 채우는 겐가? 부끄럽지도 않나?”
“자, 장로님!”
“내 그간 허울뿐인 대장로였지만, 감히 직권 좀 써보겠네.”
“리무트 어르신, 무슨···.”
“장로님,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주변에서 뭐라 하거나 말거나 리무트는 에레드를 쳐다봤다.
“가문 회의에서 특정 안건을 두고 가주와 대장로가 동의하면, 이는 과반수와 동일한 효력을 나타내지. 에레드 가주.”
“예, 대장로님.”
“내 이제껏 스펜서 가문이 이렇게 주목을 받으며, 기세를 타는 건 처음 볼세. 자네가 말한 대로 이 사업의 단초가 되었던 자네 아들, 론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네. 그리고 방금 론이 했던 저 말도 지지하겠네. 고로, 자네가 이 회의에 대한 결론을 내게나.”
스펜서 남작가.
그리 큰 가문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명색이 한 지역의 통치 세력이었다.
가문 고유의 가규와 제도가 있었고, 직계 대표 가주와 방계 대표 대장로의 합치는 임시법안이라 해도 다를 바 없었다.
“대장로님!!”
“리무트 대장로님! 너무 섣부른 판단이십니다!”
그 무게를 아는 장내의 구성원들은 소리쳤다. 물론 이제껏 제 잇속을 채우려던 이들 뿐이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리무트는 그저 굳은 얼굴로 정면을 바라볼 뿐이었다.
***
긴 회의가 끝이 났다.
론의 마음 같아서는 배불뚝이 영감들을 다 쳐냈으면 했지만, 에레드는 그러지 않았다.
에레드 스펜서.
그는 그저 하나의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 아니었다. 커다란 가문과 그 가문을 넘어 한 지역을 통치하는 세력의 수장이었다.
완전히 없앨 게 아니라면 포용하는 게 맞았다.
그리고 제 잇속을 챙기려던 배불뚝이 영감들은 애원하다시피 다시 구걸해왔다. 권력 관계상 이렇게 한 번 굽힌 것은 절대 돌이킬 수 없다.
적어도 이번 대(代)에는 에레드도 가문을 이끄는 데에 꽤나 편해지리라.
그렇게 가문 공동 사업은 결론이 났다.
그리고 론도 원하던 대로 총 매출액의 40퍼센트를 갖게 되었고 말이다.
“끄흥···.”
“고생하셨습니다. 아버지.”
방계 인사들은 모두 떠났다.
그리고 저택의 가주 집무실에는 두 부자가 앉아 있었다.
“어째 드락사 때보다 말이 많아. 그때도 무슨 마검사냐면서 그리도 반대하더니만···. 쯧.”
“뭐 그만큼 잘난 동생들이라 그러지요. 하하.”
“론, 그 녀석은 대체 언제부터 그리 당돌해진 건지. 요 몇 년 새 잘 못 먹은 거라도 있는 거 아니냐?”
“하하하, 설마 그럴 리가요.”
“으휴, 이번에 리무트 대장로님 아니었으면, 정말 10년은 더 늙었을 게야. 하아··· 드로고.”
“예, 아버지.”
“역시 네가 가주할래?”
“······”
머라이센을 주축으로 포션 사업이 순탄히 진행되었고, 어느새 아카데미 2학기 시즌이 다가왔다.
“덕분에 잘 있다 갑니다. 감사했습니다.”
“제집에 있다가는 걸 가지고 감사는. 누가 보면 다시 수감 생활이라도 하러 가는 줄 알겠다. 녀석아.”
“뭐 그만큼 잘 쉬어서 그런 거지요, 형님.”
“수감 생활이라면 둘째가 하고 있지. 쯧쯧쯧···. 얼마나 바쁘길래 연초에 인사만 하고 훌쩍 떠나버린 건지.”
에레드가 아쉬운 듯 혀를 찼다.
론이 연초에 브뤼센 영지에 갔다 오는 바람에 둘째 드락사는 보지 못했다. 왕실 마검사단이 별동대처럼 운영되기에 바쁘단 건 알고 있었지만, 회귀 후 지금까지 얼굴을 못 본 건 아쉽긴 했다.
“하여튼 조심히 가거라.”
“예, 아버지.”
“사티넬, 잘 가아~! 편지 꼭 해!”
“네, 레비 아가씨도 건강하세요.”
‘그새 그렇게 친해졌나?’
자신보다 먼저 사티넬에게 인사한 레비. 자신에게는 뭐라 말할지 궁금해 론이 동생을 빤히 쳐다봤다.
“매너 없는 오빠도 잘 가!”
‘역시 바랄 걸 바래야지.’
그렇게 방학도 끝이 났다.
회귀 전에는 전혀 생각도 못 했던 포션 사업. 그리고 3서클의 성취.
고작 열여섯 살이 다 이뤘다고 하기에는 터무니없었지만, 그게 론이 이룬 성과였다.
사실 벨데레르 일지를 얻기 전까지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이를 얻고 사업을 추진하며 그는 생각했다. 흑마법 세력이 버겁고 거대하다면, 자신 또한 세력을 만들겠노라고.
그리고 그 자금은 충분히 확보했다.
남은 건.
‘지금쯤이면 한 삼십 대 중반일 텐데, 4서클쯤 됐으려나.’
회귀 전 동대륙이 쓸려나갈 때쯤,
의외의 인물이 선방했다고 들었다. 고작 5서클의 마법사였지만, 홀로 군대를 거느렸던 자.
“론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아, 그냥 좀 2학기는 어떻게 보낼까 잠시 생각했습니다.”
어느새 둘을 태운 마차는 수에즈 도시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이미 벌써부터 대계(大計)를 실행 중인 어둠의 세력. 아카데미라는 보호장치가 있을 때, 그리고 조금이라도 어릴 때 할 수 있는 것들 해나가는 게 좋을 듯싶었다.
‘언제까지고 아카데미에 있을 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