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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가 마법사의 회귀-39화 (39/115)

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39

야심한 밤.

론은 미친 듯이 벨데레르 일지를 뒤졌다.

고작 중급 마나포션 하나 마셨을 뿐인데 3서클로 올랐다. 그간 마나호흡을 게을리한 건 아니었다해도, 이것은 심해도 너무 심했다.

앞서 에레드가 론에게 중급 포션 주며 떨떠름해 했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는 1서클 유저에게나 기대를 볼 수 있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마나석을 연소시키고 그 발생한 기체를 특정 성분의 물에 융화시켜 만드는 마나포션. 이는 제조하는 데 상당한 노동력과 시간이 필요하기에 상급 마나 포션이라 해도 그리 수준이 높지 않다.

즉 1서클이 되기 위해 사용하는 게 하급 마나 포션, 2서클은 중급, 3서클은 상급이란 얘기다.

게다가 횟수가 늘어날수록 마나석 성분이 몸에 익숙해져 효과도 떨어지기에 그저 귀족가에서 자식들을 지원하는 초기 물품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상급 마나 포션도 아니고, 고작 중급으로 3서클에 오르는 건 선 넘었지.”

서클이 오를수록 요구되는 마나량은 그 전과 비교해 곱절이 넘는다.

그런데 지금 론이 사용하는 마나호흡법은 정령사의 찬가. 가문의 그것보다 훨씬 견고하고 덩치가 크다. 이는 곧 필요로 하는 마나 절대치 또한 훨씬 많다는 걸 의미했다.

그런데 론은 단숨에 3서클로 올랐다. 고작 1서클 때나 쓰는 중급 포션으로.

답은 하나였다.

“특급 포션.”

그가 그 직전에 마신 특급 포션, 그것으로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때문에 론이 미친 듯이 벨데레르 일지를 뒤지는 것이었는데,

이윽고 그가 베껴 썼던 ‘특급 포션’ 부분을 찾았다.

『 ······ 필요에 따라 하위형인 라이트 버전을 써도 된다. 다만 제조 시 재료가 더 필요하다. 일반 트롤과 구분되는 만드리안 트롤 특유의 특질을 지우면, 일반 회복 포션이 된다. 추가 재료는 다프라네스의 이빨이다. 배합법은···. 』

“하···! 누가 이걸 보고 하위형 버전을 찾겠냐고.”

처음 발견한 오랜 양피지 상태가 영 아니었단 핑계로 론은 복사본을 만들어 전달했었다. 그렇게 복사하던 와중 이 하위형 부분도 봤었는데, 당시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굳이 질 떨어지는 포션을 재료까지 더해가며 만들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 이유가 있었다 이건가.’

그랬다.

특급 포션은 말 그대로 ‘특급’이었다. 현 포션 시장은 물론이고, 마법 사회에까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 정도로 엄청난 물건.

이를 그대로 출시했다가는 분명 왕실이든 어디든 간에 빼앗으러 올 게 틀림없었다. 지금의 스펜서 가문이 소유하기에는 너무 과분했다.

세상의 규율과 제도는 그저 힘 있는 자들의 편의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편의를 무시하고서라도 갖고 싶은 게 생긴다면, 그들은 별 시답지 않은 이유를 들어서라도 결국 빼앗고 말 것이다.

“그게 바로 인간이란 존재가 만든 특유의 약육강식이니까. 후우···. 최종본은 가문 비전으로만 남기든가 해야겠군···.”

털썩.

힘이 쭉 빠졌다.

열여섯에 3서클.

론이야 5서클에서 회귀했기에 마나량만 충족시키면 됐다고 하지만, 그래도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는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그리고 심지어 2서클에 오른 지 고작 한 달 조금 넘었을 뿐이다.

‘파격.’

론은 생각에 잠겼다.

회귀 전 흑마법 세력이 그토록 고대 유물을 찾아 나섰던 이유.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오랜 과거, 신마 전쟁으로 대륙의 수많은 집단이 사라졌었다. 처음에는 그저 전쟁의 폐해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닌 듯했다.

어찌 보면 적들의 입장에서 위험 변수의 싹을 완전히 밀어버린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벨데레르 마탑의 엘릭서와 특급 포션. 이는 기존 사회의 벨런스를 붕괴시킬 정도의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다다.

“적들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없애야 할 집단이었겠군. 그리고,”

만약에 물러난 어둠의 세력이 다시금 야욕을 드러내기에 앞서 이들의 잔재를 취할 수 있다면,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끊임없는 추측과 생각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어느새 창가로 밝은 빛이 들어왔다.

**

이른 아침,

집무실에서 커피를 마시던 에레드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로뮨.”

“예, 가주님.”

“드로고 좀 불러오게.”

“예, 알겠습니다.”

시종이 물러나자 에레드가 한숨을 쉬며 옆에 앉아 있던 론을 쳐다봤다.

“아무리 내 아들이지만, 정말 말이 안 되는구나. 이게 천재라는 건가?”

“하하···.”

“끄흥···. 뭐 그래도 축하할 일은 축하할 일이지. 3서클에 오른 건 정말 축하한다, 론.”

“감사합니다, 아버지.”

생각이 많아진 에레드는 그저 커피만 훌쩍이며 첫째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가주 집무실에는 스펜서 가문의 삼부자가 모였다.

“3서클이라고?!”

‘어스 실드,’

‘어스 스피어.’

빠른 진행을 위해 론은 정사면체의 복합마법진과 더불어 3서클 마법을 직접 시연했다.

“아니, 론. 분명 2서클에 오른 지 얼마 안 된 거 아니었느냐? 아니, 그냥 반년 전에는 1서클이지 않았느냐.”

“열심히 한다고 하다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하하···.”

“하!”

론은 그저 아카데미에 있는 동안 미친 듯이 수련을 했는데, 상당한 깨달음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후우···. 드락사 때도 그렇고, 내가 딱히 천재라는 것들을 이해하려고 하지는 않았는데···. 론.”

“예.”

“너는 정말···말이 안 되는구나. 말이 안 돼···.”

“뭐 그냥 가문의 복이라고 편히 생각하시는 게 어떨지···.”

에레드와 드로고.

론의 아버지고 형제이기 전에 그들 또한 마법사였다. 그런데 반년 전까지만 해도 1서클이던 셋째가 3서클이 되었다. 그들로서는 재능의 차이를 넘어 박탈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충격에 허우적대는 사이, 론은 서둘러 그게 오롯이 자신의 결과는 아니었음을 밝혔다.

“간밤에 특급 포션을 먹은 다음···.”

긴 설명을 들은 그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그러면 특급 포션이 어떤 각성제 같은 효과도 있다는 말인 게냐?”

“예, 그런 것 같습니다. 트롤의 피인 만큼 회복 효과도 상당하지만, 만드리안 종이라는 그 특유의 성질이 이러한 결과를 만드는 데 한 몫 한 것 같습니다.”

“허어!!”

“그런데 두 분께서도 아시다시피 서클이란 게 단순히 마나만 많다고 해서 늘어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러니까 네 말의 요는 이제껏 3서클 아래의 마법사들이 마나 수급용으로 쓰던 마나 포션을 이것과 같이 쓴다면, 3서클 이상의 마법사들도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말이구나.”

“예. 그렇습니다.”

포션 사업을 추진하기로 한 시점부터 회복 포션뿐만 아니라 마나 포션에 대한 조사도 같이한 두 사람이었다. 덕분에 얘기는 어렵지 않게 흘러갔고, 론은 전하고자 하는 바를 전할 수 있었다.

“흐음···. 아직 효능을 자세히 확인해 보진 않았으나, 네 말대로 파격적인 건 맞다. 그리고 네 녀석이 벌써 3서클에 해당하는 깨달음을 지녔다는 것도 너무 파격적이고.”

“하하···. 그렇죠.”

론이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후우···. 그렇다면 아쉽지만 이건 네 말대로 가문의 비전으로만 남기든가 해야겠구나.”

“예, 그러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아버지.”

두 사람이 어느 정도 수긍하자 론은 기다렸단 듯이 말을 꺼냈다.

“실은 제가 오랜 양피지 조각에서 옮겨적을 때 그냥 지나쳤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

“후우···또 뭐가 있느냐? 론, 그냥 한 번에 놀래키거라. 이 애비 나이가 적지 않다.”

“하하···.”

심신 미약과 다를 바 없는 두 부자에게 론은 간밤에 벨데레르 일지에서 봤던 하위형 라이트 버전에 관해 설명했다. 그리고 이미 그들에게 론은 둘째 드락사마저 아득히 뛰어넘어버린 천재였기에 이견이라 할 것은 없었다.

그저 론의 말이 끝나자 나트람을 불러 새로운 제조법에 쓰일 ‘다프라네스의 이빨’을 사오라 시켰을 뿐이다.

***

시간을 흘러 어느새 다음 달,

귀향 달이 찾아왔다. 얼음 여왕이 긴 여행을 마치고 거처로 돌아간다는 전설처럼 겨울의 끝자락이었다.

그리고 특급 포션의 라이트 버전은 무사히 완성됐다. 시일이 시일인 만큼 이번에는 론도 꼼수를 부리지 않았다. 때문에 완성까지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는데, 정작 에레드와 드로고는 아쉬워했다.

이유인즉 다프라네스의 이빨을 사러 가며 상급 포션도 두 병 같이 샀었는데, 결과가 영 시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론의 선례를 믿고 특급 포션과 마나 포션을 차례로 마셨지만, 결과는 그저 마나의 총량만 늘었을 뿐이었다. 물론 특급 포션의 효과로 상당량의 마나를 수급했지만, 깨달음은 별개였다.

5서클에 이르기 위해서는 상당한 깨달음이 필요했고, 그들은 아직 아니었다.

그렇게 에레드와 드로고가 아쉬운 마음을 다 털어낼 즈음, 스펜서 가문의 저택은 사람들로 붐볐다.

방계 인사들이 찾아온 것이다.

“호오, 네가 이번에 파란을 일으켰다는 론이라는 아이냐?”

“들었던 것 치고는 너무 어린데? 어이, 에레드! 드락사랑 헷갈린 거 아냐?! 어디 가문의 어르신을 거짓 정보로 오라 가라 시켜!”

“껄껄걸, 당찬 아이로구나.”

“반갑다. 덕분에 연초부터 아주 기분이 좋더구나. 허허허. 스펜서 가문이 주목받는 날이 올 줄이야.”

방계이긴 하나 가문 어르신들의 방문이었다. 때문에 론이 마중을 나간 것이었는데, 고역 아닌 고역을 치러야 했다.

‘끙···.’

80세.

먹을 만큼 충분히 먹은 나이였다.

그런데 비슷한 노인네들에게 꼬맹이 취급을 받아야 하니 론으로서는 영 마뜩잖았다.

긴 마중이 끝나고 이어진 티타임.

저택 내 마련된 회의실에서 가문의 사람들이 모였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간단한 안부 인사들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

“으어···.”

그 시간만큼은 론도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런 그가 향한 곳은,

사티넬의 방이었다.

똑똑.

“사티넬 들어갈게. 아···죽겠다.”

“네?! 아아, 네.”

늘 안식처처럼 편안하게 받아주던 사티넬. 그래서인지 론은 저도 모르게 의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열린 문틈 사이로 무언가 빠르게 다가왔다.

“히익! 오빠가 웬일이야! 나가!!”

“응?”

“여긴 품격있는 레이디의 방이라고!!”

“뭐, 뭐야? 레비 너가 왜 여기 있어?”

“레이디의 방에 레이디가 있겠다는데 왜! 오빠는 정말 매너가 없어! 매너가!! 쳇! 나가!! 나가라고오!!”

“아니! 사, 사티넬!”

“하하···. 론님, 아무래도 다음에···.”

쾅!

딸칵.

“어어? 사티···넬?”

황당했다.

쾅 닫히다 못해 잠기기까지 한 문.

허나 론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멍하니 바라보며 말을 더듬을 뿐이었다.

***

“그래서 그 맹랑한 꼬맹이가 말한 방법대로 자네들도 만드리안 트롤을 눕혔다는 겐가?”

“예, 맞습니다. 뭐 정확히는 고서적에서 발견한 정보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허허! 무슨 광장에서 떠들어 대는 음유시인 얘기도 아니고···.”

“재밌구먼. 에레드. 자네가 뭐 재미난 얘기나 하려고 부른 건 아닐 테고 말야. 결국 그 포션까지 만들어 놓고 우리를 부른 거 아닌가?”

“하하, 마르켈 어르신. 예, 맞습니다.”

“어허! 그럼 뭐 하나, 어서 가져와 보게. 진짜 효능이 있을지 궁금하구먼!”

“알겠습니다. 드로고, 시작해라.”

“예, 가주님.”

드로고가 회의실을 빠져나가자 사람들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처음 편지로 들은 내용은 사업구상 안이 있으니 오라는 정도였다. 그런데 막상 얘기를 들어보니 좀 황당했다.

포션 사업을 하자는 것.

그리고 좀 더 정확히는 회복 포션.

회복 포션 시장은 이미 고착화 돼 있다. 특정 몇몇 가문이 세계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데, 여기에 뛰어들자는 건 사실 무모했다.

‘포션 사업이라···.’

머라이센 스펜서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그의 일가는 방계 중에서도 상업을 통해 상당한 부를 쌓은 곳이다. 세간에는 그저 그런 중소규모의 상단을 꾸리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 규모는 그보다 몇 배는 더 컸다.

그리고 머라이센은 그 남는 여유자금으로 새로운 사업을 구상 중이었고 말이다.

때문에 본가의 사업 제안 서신에 흔쾌히 응한 것인데, 지금까지 들은 바로는 상당히 애매했다.

포션 사업이 쉽지 않은 이유는 명료하다.

오래도록 시장을 장악한 가문들이 이미 최적의 배합법은 물론이고, 가문의 비기까지 담아버리는 바람에 끼어들 틈이 없기 때문이다.

페루비아 트롤, 위지언벨리 트롤, 하카디아르. 현재 회복 포션의 주재료로 쓰이는 트롤들이다.

‘그런데 만드리안 트롤로 포션을 만든다고?’

게다가 놈은 상급 몬스터였다.

시중에 상급 몬스터를 재료로 한 포션이 없는 건 아니지만, 상급 몬스터가 상급 몬스터인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머라이센의 미간에 주름이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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