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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가 마법사의 회귀-38화 (38/115)

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38

사실 론은 적잖이 고민했다.

벨데레르 마탑의 정수가 담긴 일지를 손에 넣었으나, 이를 실용적인 선상에 올려놓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특히나 이는 소실되었던 과거 자료다. 그런 만큼 이를 공개할 땐 적당한 운을 가장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고민한 끝에 론이 내놓은 결론은 그저 우연한 발견이었다.

학기 중 수도 번화가에서 여가를 보내던 자신이 적선하듯 사버린 오랜 고서적. 그런데 그 책에는 웬 양피지 조각이 있었고, 아카데미에서 고대어를 조사해 본 결과 포션 제조법이었다는 그런 이야기.

이곳저곳 엉성하기 짝이 없지만, 소설이나 풍문에 흔히 등장하는 기연이었다.

딱 그 정도면 됐다.

다만, 보다 극적인 전달을 위해 론은 가문에 바로 알리지 않고, 먼저 만드리안 트롤을 찾아갔다.

그리고 지금 그런 론 앞에는 만드리안 트롤이 누워있었고.

“로, 론님. 도망가야 하지 않을까요?”

사티넬이 차마 가까이는 오지 못하고 거리를 둔 채 말했다.

“무슨 도망을 갑니까. 다 잡은 놈인데.”

“아···그, 그쵸. 하, 하하···.”

사티넬도 거대한 트롤이 맛이 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놈이 심상치 않은 놈이란 걸 증명이라도 하듯 녀석이 숨을 쉴 때마다 주변의 마나가 진동하는 듯했다.

그녀가 만드리안 트롤에 대해 들은 건 없지만, 직감적으로 몬스터의 수준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이어진 론의 행동은 사티넬의 그런 염려를 박살 내버렸다.

“흡!!”

우우웅.

서걱 서걱 서걱.

“그억. 그어억, 으어어억···.”

놈의 아가리를 벌리고는 툭 튀어나온 송곳니를 쥔 채 마법을 발동시켰다. 바람의 칼날이 여러 차례 오갔음에도 놈은 환각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추아악.

결국 팔뚝만 한 놈의 송곳니 하나가 뽑혀 나왔다.

“히익!!”

놀란 사티넬이 입을 틀어막으며 뒤로 물러섰다.

“후우,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목적 달성이다.

애초부터 거창한 계획이 아니었다.

론의 나이는 이제 열여섯. 그 어떤 논리적인 주장과 제안을 펼친다 한들 나이의 벽은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럴듯한 이야기와 이를 뒷받침 할 적당한 증거만 제시할 수 있다면, 그로서는 할 것을 다 한 것이다.

론과 사티넬은 그렇게 검은 협곡을 빠져나왔다. 그 후로 다행히 몬스터를 만나진 않았고, 하루 노숙 끝에 무사히 가문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

“드로고.”

“예, 아버지.”

“요새 자꾸 그런 생각을 해.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하하, 아버지 저도 참 이게 꿈인 것 같지만··· 현실이 맞습니다. 하하···.”

“허허허.”

“하하하.”

스펜서 가문 저택의 가주 집무실.

에레드와 드로고가 멍한 표정으로 말을 주고받았다.

“그러니까 론, 네가 미시피 산지 깊숙이 있는 검은 협곡에 가서 그 여식과 만드리안 트롤의 송곳니를 뽑아왔다는 거냐?”

“예, 맞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네가 발견했다는 양피지의 내용대로 오르파 잎을 태우니 향에 취해 맛이 갔었기 때문이고?”

“예.”

“하!”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다.

“드로고.”

“예, 아버지.”

“너가 그냥 가주 할래?”

“예?”

“아니 지금 셋째가 무슨 전설 속에나 나올법한 모험을 하고 있지 않으냐! 내가 인생을 헛산 게 틀림없다! 아아! 젊음이여!!”

“아버지, 진정하십시오! 론, 뭐 하느냐! 아버지 좀 말리거라!”

예상한 것과는 상당히 다른 쪽으로의 격한 반응.

“아, 예···.”

론 또한 당황했다.

회귀 전 기억을 떠올려 보면 사실 아버지는 늘 열정적이긴 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60이 넘은 나이에도 흑마법 세력에 대항해 전쟁에 참여했다는 것.

한바탕 소란이 지나간 후,

언제 그랬냐는 듯 차분해진 에레드가 입을 열었다.

“드로고.”

“예, 아버지.”

“상단 운영을 하는 방계 어르신들께 편지 드리거라. 다음 달에 모임을 하자고.”

“다음 달. 예, 알겠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철저히 검증한 다음 확실하면.”

에레드가 지긋이 론을 쳐다봤다.

“우리도 크게 사업 한 번 벌려봐야지.”

입으로는 검증이니 뭐니 했지만 에레드의 생각은 이미 확정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의중을 론 또한 모르는 게 아니었고.

“하하···.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잠깐.”

“예?”

에레드는 집무실 뒤쪽 보관함에 가더니 고급스러운 병을 하나 가져왔다.

“네 것이다. 가져가거라.”

“이게···.”

“입학 전에 네가 꽤나 성취를 보여서 사놓은 건데, 벌써 2서클에 오를 줄은 몰랐다. 뭐 지금 먹는다고 해도 효력이 나쁘진 않을 테니 가져가거라.”

에레드에게 건넨 것은 중급 마나 포션이었다. 상당 시간의 마나호흡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마나를 단번에 채워주는 고가의 물약.

트롤처럼 재생력이 남다른 몬스터의 피를 개조해 만드는 회복 포션과 달리 마나 포션은 제조 방식이 번거롭다. 특정 성분의 물에 오랜 시간 마나가 깃들어야 하는데, 이게 제조법의 특수성보다는 투입돼야 하는 노동력과 시간이 상당했다.

‘이걸 벌써 받네···. 몇 년을 앞선 거지?’

회귀 전에도 에레드는 론에게 중급 포션을 챙겨줬었다. 하지만 그건 론이 3학년이 되었을 때였다.

그런데 그것을 2년이나 앞당겼다.

게다가 이미 론은 2서클이었고.

당연히 이를 준비한 에레드는 머쓱해 했다. 있는 집 자식들이 가문의 도움을 받아 쑥쑥 커나갈 때 론은 그저 알아서 커버렸으니까 말이다.

“나쁘지 않다니요. 지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버지. 잘 사용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감사한 건 감사한 것이었다. 이는 서출이든 아니든 자식을 똑같이 대해준다는 의미였으니까.

론이 허리 깊이 숙여 감사를 전했다.

“너무 혼자만 하려 하지 말고, 어려운 게 있으면 얘기하거라. 이 애비가 너무 무안하지 않게 말이다.”

좀 전까지 소리치며 열정을 내뿜던 에레드가 맞나 싶을 정도로 그는 담담히 말했다. 진심이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론은 괜히 가슴이 먹먹했다.

“예, 아버지.”

론이 가문에 제공한 것은 벨데레르 일지의 일부였으나, 그는 전혀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다음에는 가족들을 믿고 의논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래, 나 혼자 하는 게 아니야.’

향후 닥쳐올 흑마법 세력.

대륙의 절반을 집어삼켰던 그들인 만큼 막막한 건 여전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의지할 만한 곳이 있다는 건 더없이 론을 든든하게 만들었다.

이후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가족들은 론이 제공한 정보를 토대로 서둘러 일에 착수했다. 적어도 가문의 방계 인사들이 왔을 때, 그들이 납득할만한 결과물이 나와야 했다.

오르파 잎을 이용해 만드리안 트롤을 유인 및 기절시켜 피를 추출했고, 쓰인 제조법에 따라 포션을 만들기 시작했다.

덕분에 스펜서 영지에서는 전혀 취급하지 않던 심층수석이나 랄펜 거미의 독을 구하느라 다시 수에즈 도시까지 갔다 온 것은 덤이었다.

다만 포션 사업 특성상 제조법의 기밀 유지가 필수였기 때문에, 제조 단계부터는 에레드, 드로고, 론. 이 셋이서만 해야 했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아니, 론. 대체 어떻게 했길래, 너는 배합이 되고 우리는 안되는 거냐?”

에레드가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그도 그럴 게 요 며칠간 아들 드로고와 제조법대로 했지만, 결과가 나오는 것은 오직 론뿐이었다.

“그러니까 이게···.”

사실 이는 제조법의 문제가 아니었다.

‘번역의 문제였지.’

애초에 처음 발견한 오랜 양피지는 너무 헐어서 간신히 옮겨적고는 아카데미 기숙사에 보관 중이라 했다. 때문에 가족들이 받은 것은 고대어로 쓰인 벨데레르 일지의 번역본이었는데, 문제는 그 과정에서 생략된 부분이 있었다.

딱히 가문의 사람들을 골탕 먹이려는 건 아니었지만 사실 론에게는 명분이 필요했다.

제조법이 포션 사업에 있어 아무리 핵심이래도 그냥 줘버리는 건 너무 임팩트가 없었다. 뭐라도 좀 더 해서 기여도를 높여야 차후 이익에 대해서도 발언권이 생길 터였다.

‘따로 돈을 쓸데도 있고 하니···.’

아직 십대긴 해도 엄연히 론이 제안한 사업. 앞으로 투입될 자본과 인력은 제 것이 아니겠지만, 그래도 제조법과 원천 기술값은 충분히 받아내야 했다.

그 일환으로 론은 제조법의 일부를 생략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막히는 부분을 직접 해결해 보이려는 것이었고.

“심층수석을 갈아 넣고 증류할 때 그냥 두지 마시고, 마나를 동화시킨 다음 이를 같이 분리한다는 느낌으로 해야 하더라고요. 그래야 후에 랄펜 독을 투입했을 때 트롤의 피에 남은 독성도 중화됩니다.”

“뭐, 뭐?”

“음?”

상당히 구체적인 답변에 에레드와 드로고는 당황했다.

“참··· 정말 대단하구나, 론.”

“허허···. 내 그래도 마법을 놓지 않고 살았건만, 자식 녀석에게 밀리는 날이 올 줄이야.”

“아무래도 론이 포션이나 연금술 쪽에 재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

“녀석!”

그래도 에레드는 어린 자식이 대견한지 론의 머리를 헝클 듯이 쓰다듬었다.

“뭐···그냥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그렇게 미완성이던 제조법은 완성됐다.

“정말, 잘했다. 제조법을 구해온 것도, 애매한 배합식의 정답을 찾아낸 것도 네 덕이다. 이거 포션 이름에 론 이름이라도 넣어야 하나?”

“그거는 좀···.”

‘론 포션.’

아무리 생각해도 임팩트가 너무 없다.

‘뭐 그래도 대충 이 정도면 발언권은 좀 생긴 건가.’

그렇게 며칠간 제자리걸음이던 연구가 끝이 났다. 론에 의해서.

**

모두가 잠든 고요한 새벽,

명상을 하던 론이 천천히 눈을 떴다.

정신없이 포션 제조를 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마법수련과 마나호흡을 멈추지 않았는데, 오늘은 조금 특별한 날이었다.

그의 눈앞에는 유리병 하나가 있었다. 요근래 만들어 보겠다고 그렇게 애를 썼던 특급 포션이다.

벨데레르 일지에 다양한 포션 제조법이 있지만, 특급이라는 명칭이 붙은 것은 이것 하나였다. 특급. 단순한 회복 포션도 아니고, 상당한 노동력을 투입해 만드는 마나 포션도 아니었다.

딱히 효능에 관한 서술은 없었기에 회복 포션의 일종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왜냐면 트롤의 피가 주재료였으니까 말이다. 다만 론은 저 ‘특급’이라는 명칭이 궁금했다.

허나 생각으로는 끝이 없었다.

직접 시험해보기로 했다.

딸칵.

유리병을 열고는 붉은 포션을 그대로 입에 넣었다.

첫 느낌은 차갑고도 진했다.

식도 구석구석을 훑으며 넘어간 포션은 그대로 흡수가 돼버렸다.

‘아···.’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 감각이 활성화됐다. 신경이 날카로워졌고, 나아가 깊어진 감각만큼이나 마나 또한 짙게 느껴졌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일시적인 각성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떠오르는 생각에 론은 그대로 마나 호흡을 이어갔다.

“후웁, 후우···, 후웁, 후우···.”

역시나 빨아들이는 마나의 양이 다르다. 감각도 다르고 느낌도 달랐다.

‘설마?’

순간 번뜩이는 생각에 론은 호흡을 멈추고, 옆에 있는 서랍을 벌컥 열었다. 중급 마나 포션. 론은 그마저도 입에 털어 넣었다.

꿀꺽.

‘허어···.’

목구멍에서부터 온 세포가 마나 포션을 해체하듯 빨아들인다. 그러고는 마치 맑은 물에 푸른 잉크가 퍼지듯 온 몸에 마나가 퍼져나갔다.

‘미친!’

플라델의 미로 때와는 다른 풍부함. 놀라웠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그가 해야 할 것은 정해져 있었다.

정령사의 찬가.

깊은 마나호흡법이 흩뿌려진 마나들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얼마나 지났을까.

론은 믿기지 않았지만, 과감히 심장에 서클을 하나 더 만들기 시작했다. 이미 5서클까지 올랐던 그였다. 깨달음은 충분했고, 그저 마나량만 부족했을 뿐인데, 직감이 왔다. 가능할 것 같다고.

우우웅우웅.

공명음이 귀에 들리듯 선연하게 울려 퍼지더니 이내 세 번째 고리가 완성됐다.

“허어, 허어··· 허어!!”

론이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고작 한 달 새 서클을 올렸다는 감탄 따위는 없었다.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그가 외쳤다.

“미쳤군! 절대 이대로 출시하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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