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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가 마법사의 회귀-35화 (35/115)

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35

순간, 일대가 고요해졌다.

꿀꺽.

침 삼키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

번플레어로 홉고블린 하나를 죽이려 했던 키르타스의 계획은 실패였다.

아무리 지성이 낮은 몬스터라지만 마나가 응집된 마법진을 보고도, 그리고 그것이 제 아군을 괴롭히고 있다면 가만히 둘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마법은 진즉에 파훼 되었고, 그 반동으로 키르타스의 안색은 어두워졌다.

“그르르르.”

홉고블린 대장의 거만하고 여유로운 눈빛이 토벌단을 훑었다.

“후우···.”

론이 한숨을 내쉬었다.

몬스터의 위험 등급을 나누는 기준은 다양하다. 마나 사용 수준부터 해서 마법 사용의 여부, 신체 능력, 특이 성질 등등

그런데 홉고블린은 그중에서도 평범한 축에 속한다. 오로지 마나와 힘이 전부인 몬스터. 오러까지는 아니었으나 종(種) 특유의 힘과 민첩함으로 인해 중급 몬스터로 분류된 녀석이다.

그리고 다른 말로는 동급의 마나 전사로는 대항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공략법은 존재했다.

‘하아···. 그렇게 갈굴 땐 언제고, 부관이란 놈이 넋 놓고 앉아 있네.’

일전의 전투를 통해 론은 토벌단의 전력을 확인했었다. 마법사의 경우 가장 높은 수준이 4서클이었는데, 닙스라는 부관도 그중 하나였다.

그런데 어째 가장 나서서 영주를 도와야 할 사람이 멘탈이 나갔다.

‘그나저나 유적관리단 말단 때 뺑이 친 게 도움 될 줄은 몰랐군.’

회귀 전 론은 아들렌 각지의 유적을 다니며 보수작업을 했었다. 말단인 만큼 대우는 없었다. 오지면 오지, 변방이면 변방, 몬스터 서식지면 서식지. 가라는 대로 갔다.

무심코 떠오른 그때의 생각에 론은 차고 있던 정령석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지금이야 잘 걸려 있지만, 회귀 전 파견 중에 몬스터를 만나 박살 났더랬다.

아무튼 론이 이런 회상을 한 이유는 간단했다. 오지게 파견을 나다니며 몬스터 사냥도 만만치 않게 했다는 것.

‘그리고 저 멍청한 닙스인지 칩스인지 하는 놈은 더는 믿을 게 못 된다는 거고. 평범한 아카데미 학생인 척하는 것도 끝이군.’

론이 심상을 정리했다.

홉고블린.

중급 몬스터 중에서도 최하위권이다.

‘침착하게.’

관통형, 밀도, 속도.

‘윈드 스피어.’

우우우웅.

“그르···?”

슈콰아아아악!

놈의 움직임보다 반 박자 빠르게 바람의 창이 날았다.

콰아악!!

“거억, 걱!”

대장 옆에 있던 홉고블린의 왼쪽 눈을 그대로 관통해 버렸다. 상당한 충격이었는지 놈이 쥐고 있던 커다란 몽둥이가 쿵 하고 떨어졌다.

갑작스런 상황에 이제껏 여유롭던 홉고블린 대장의 고개도 뻣뻣하게 돌아갔다.

“허! 무슨 속도가···.”

“아니, 론. 미친···.”

근처에 있던 키르타스와 크루딘.

그들이 감탄을 마지않았다.

특히나 키르타스는 이제껏 자신이 익혀온 마법에 대한 상식이 박살 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2서클, 2서클 마법사라 하지 않았나? 그런데 어째 출력해내는 속도가···.’

빛을 제외한 원소 마법의 투사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를 신경 쓴다. 압력과 회전.

정다면체의 복합마법진 안에서 얼마나 강력한 압력으로 쏘아졌느냐, 그리고 얼마나 빠른 회전력을 가진 채 출력됐느냐에 따라 속도가 결정된다.

그런데 눈앞의 론이란 소년은 4서클인 키르타스의 수준을 넘어섰다.

‘허···. 이게 말이 된다고?’

5서클이 엘리멘탈리스트, 즉 원소마법의 스페셜리스트라 불리는 만큼 모든 원소마법에 대한 이해도는 필수적이다.

때문에 적잖은 마법사들이 4서클에 오르고서는 마나 컨트롤보다 원소 마법의 이해도에 신경을 쓰는데, 키르타스는 추월당했다. 적어도 마나컨트롤 부분에서는.

그리고 그것이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쿠웅.

애꾸눈의 홉고블린이 끝내 쓰러졌다.

그 정도의 회전력과 속도인데 고작 눈알만 파버리고 끝났을 리가 없었다. 바람의 창이 그대로 뇌까지 박살 내 버린 것이다.

충격스러운 상황에 론이 있던 우측 진영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 때문에 영주와 영지 마법사들이 대부분 포진한 좌측 진영의 소리가 선연히 들려왔다.

“으아아아아!! 어떻게 좀 해보란 말이야!!”

그리도 목에 힘을 주며 론 일행에게 눈치를 주던 닙스였다.

이제 좀 멍때리는 것에서 벗어났나 싶었는데, 어째 지휘자란 놈이 패닉에 빠져 허우적댔다.

“미, 미친 칼잽이 새끼야! 막아!! 막으란 말이야!! 파이어 웨이브!!”

우우웅우웅.

우우웅···.

‘으휴···.’

얼마나 멘탈이 나갔는지 복합마법진을 제대로 형성하지도 못했다. 같이 있는 영주가 안타까울 정도다. 하지만 저쪽도 꽤나 많은 전력이 있었기에 론은 이내 신경을 껐다.

“그아아아아!!!”

그리고 때마침 홉고블린 대장도 일갈을 터뜨리며 돌진해 왔다.

쾅!

콰앙!

“크학!!”

“컥!! 피, 피해!!”

몽둥이도 뭐도 없는 빈손.

허나 이를 맞는 기사와 병사들이 낙엽처럼 쓸려나갔다. 거기까지만 해도 쉽지 않은데, 그런 홉고블린의 주먹에는 시커먼 무언가가 씌워져 있었다.

‘어째 갈수록···.’

보통 전사들이 체내의 마나를 가공하여 육신을 단련하고, 그다음 단계로 하는 게 가공한 마나를 다시 몸 밖으로 꺼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출수 된 가공된 마나를 일컬어 오러라 하는데.

“홉고블린이 오러까지 쓰면, 씨이발 어쩌라는 거여!!”

오러 유저로서 홉고블린 상대하던 용병 하나가 악을 박박 써댔다. 그나마 다행인 건 멍청한 닙스처럼 겁먹지 않았다는 점.

“시선만 좀 끌어주십시오! 마법으로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홉고블린 하나를 골로 보낸 장본이어서였을까.

“씨바아알!!! 그래 한 번 해보자!!”

“부탁한다!!”

론의 외침에 대치하던 용병과 기사들이 투지를 불살랐다. 그리고 다른 마법사들도 자신 있게 마법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기세가 살아났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물렁하게 얻어터지는 거보다야 훨씬 많은 변수를 만들어 줄 테니까.

슈아아앙.

슈아앙!

슈아앙.

파이어 스피어, 파이어 애로우, 윈드 스피어 등 여러 마법이 날아갔고, 키르타스와 사티넬의 합작품 번플레어도 다시 피어올랐다.

“그억! 거억, 그아악···.”

용병들이 일반 고블린을 담당하는 사이, 모든 마법사와 오러 전사들이 홉고블린에게 붙었고, 이내 놈도 결국 쓰러졌다.

타닥타닥.

어두운 밤, 모닥불만이 캄캄한 사위를 밝히고 있었다.

마을 수복은 성공이었다.

홉고블린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긴 했지만, 애초에 토벌이란 게 이런저런 변수를 고려해 여유롭게 전력을 구성한다. 다만 그로 인한 결과가 조금 아쉬울 뿐이었다.

화공 금제가 풀리면서 적지 않은 민가가 타버렸다. 그리고 아군 측 인명피해도 적지 않았고.

취침 전 영주의 막사로 각 분대장과 용병단의 리더들이 모였다. 상황 보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우린 왜 불린 거야?’

론 일행도 거기에 같이 불려갔다.

“······. 그렇게 해서 사망한 인원은 기사 하나, 병사 다섯, 용병 일곱입니다. 이동 불가 중상자의 경우 마법사 둘, 기사 셋, 병사 여덟, 용병이 넷입니다.”

“처참하군.”

“이, 이게! 그 망할 홉고블린들만 아니었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겁니다! 영주님, 어쩔 수 없던···.”

“그만! 닙스 부관.”

“옛, 예?”

“토벌이 무슨 애들 장난인가? 늘 예상한 대로만 흘러가는 대본인 줄 아나?”

“아니···.”

“그래서 홉고블린을 보고 그리도 패닉에 빠져 마법 하나 못 쓴 겐가?”

“그, 그게···.”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지. 아주 아군들 사기 떨구는 데 큰 몫을 하더군?”

“죄송합니다!”

“현 시간부로 닙스 토르덴 가르시아, 자네가 브뤼센 영지 내에서 영위하던 모든 직위를 해제한다.”

“여, 영주님! 죄송합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제가 잘 못 했습니다!”

“시끄럽다! 끌어내!”

“예!”

“영주님! 영주님!! 다시 한번만 생각해 주십시오!! 영주님!!”

더없이 화끈한 판결.

아까의 전투를 떠올려보면 당연히 그럴 만했다. 가뜩이나 외부인들도 있는 공식 토벌 일정이었는데, 영지 마법사라고 있는 자가 저리도 칠칠치 못한 행동을 했으니 파면당해 쌌다.

자리하고 있던 영지 소속 기사와 마법사들은 숙연해졌다. 그들도 느낀 것이다. 맡은 바 소임을 못 할 시 자신들 또한 저렇게 되리라는 것을.

그렇게 화끈한 인사 결정 후 몬스터 사체 관련 보고를 끝으로 간부들은 모두 빠져나갔다.

“허허, 이거 아카데미의 귀한 인재들에게 못난 모습만 보였구만.”

이제껏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멍하니 있던 론 일행은 그제야 부름에 응할 수 있었다.

“아닙니다. 영주님.”

“홉고블린은 예상치 못한 몬스터긴 했지만, 전력상 우왕좌왕할 정도는 아니었네. 하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했지. 내 불찰, 내 수하들의 부족함이야.”

브뤼센 영주는 수하의 잘못까지도 자신의 과오라며 스스럼없이 받아들였다. 일부러 저런 호인의 면모를 보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연기건 뭐건 간에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영주님은 정말 분투하셨습니다. 자책하지 마십시오.”

“맞습니다. 모두가 정말 죽기 살기로 싸웠죠.”

“허허, 그대들은 정말 실력도 인성도 탐 나는군.”

“······”

“껄껄걸, 걱정하지 말게. 내 이렇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영입 제안을 할 만큼 염치없지는 않다네. 다만 고맙다는 말은 해두고 싶어서 말야. 자네들 덕분 아니었으면 정말 더 큰 사고로 번질 뻔했어. 정말 고맙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연한 말이긴 하나 내 후히 보상해주겠네. 혹시 더 바라는 것들 있으면 말하게나.”

‘바라는 거라···.’

으레 은혜를 입은 귀족들이 늘 말.

하지만 이렇게 자리까지 만들어 놓고 저러는데 적절한 대답은 해도 될 듯싶었다. 이내 론 일행들의 눈빛이 오갔고, 론이 대표로 말했다.

“그렇다면 영주님, 아카데미 외부활동 보고서에 첨부할 수 있도록 간단한 평이라도 써주실 수 있는지요.”

“으음? 그런 거야 쉽지. 내 몇 장이라도 써줄 수 있네. 허허, 그거 말고는 없는 겐가?”

“예,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합니다. 저희도 덕분에 값진 경험을 했습니다.”

“아쉬워, 정말로 아쉬워. 내 그간 근방의 마탑의 눈치를 보느라 자식들을 마탑으로 보내곤 했었는데, 이제는 그러지 말아야겠어. 아카데미에 이런 보배들이 있다면 보고 배우는 거라도 있겠지.”

연초부터 뒤숭숭한 일을 겪었기 때문일까. 브뤼센 영주는 토벌 첫날의 여유로움은 어느새 사라지고 솔직한 심정을 거침없이 표했다.

이후 브뤼센 영주의 속얘기를 조금 더 듣다가 론 일행은 그의 막사를 나왔다.

이후 토벌단은 사상자의 규모가 규모인지라 더는 일정을 소화하지 않고 그대로 복귀 하였다. 예상보다 처리한 몬스터가 많았기에 사체와 마정석 처리도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열흘이 조금 넘는 토벌 일정은 끝이 났다.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만, 뭐가 됐든 론 일행들에게는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시간이었다.

귀빈용 저택에 머물며 충분한 휴식을 가졌고 이내 곧 브뤼센을 떠나는 날이 되었다.

“조심히 가게나. 그리고 내 충분히 담았네. 성심성의껏 확인서를 썼으니 굳이 뜯어서 확인해 볼 필요는 없을 게야. 허허허!”

“당연히 믿습니다, 영주님. 그리고 덕분에 잘 쉬고 갑니다.”

“잘 쉬긴 왔다가 된통 고생만 했지.”

“아닙니다. 복귀한 뒤로 정말 끼니마다 배가 터질 뻔했습니다.”

“맞아요. 헤헤. 너무 잘 먹고 가요. 힛.”

“껄껄걸, 뭐 그렇다면야 다행이고. 아무튼 조심히 잘 가게나.”

“예, 영주님. 새해 좋은 일만 있으시길.”

“그래, 자네들도 행운을 비네.”

훈훈한 덕담을 끝으로 고급스러운 사두마차는 브뤼센 성을 빠져나왔다. 일전에 론 일행이 상행단을 구해 게티아로 가려는 걸 알아챈 하인이 영주에게 보고하자, 기겁을 하며 마차를 대여해 주었다.

덕분에 론 일행은 보상도 두둑이 챙기고, 확인서도 받고, 마차도 얻어 타며 편히 게티아로 갈 수 있게 되었다.

“후우···. 2서클 올랐는데도 역시 실전에서는 부족하네.”

“아카데미 수준에서야 상위권이지. 세상 밖은 아니긴 하지요.”

“좋아!! 남은 방학 동안 진짜 완전 빡세게 특훈이다! 어이, 론 사티넬. 기대해!”

“분발해야겠네요. 저도 밀리지 않으려면요. 헤헷.”

“그치, 사티넬 너도 분발하라고. 크하하하!!”

그렇게 아카데미에서 사귄 친구들과의 여정은 잘 마무리가 됐다. 사실 외부활동 보고서야 있는 집 귀족 자식들의 경우, 인맥을 이용해 어렵지 않게 제출하긴 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구색을 갖출 필요가 있었다.

‘그나저나 귀가라···.’

아무리 회귀하고 다시 만났다고는 하나, 그래도 오랜 시간 마음에 묻고 있었던 가족이었다.

이래저래 괜히 마음이 설렜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미래를 위해 스펜서 영지에서 할 일도 있었다.

‘만드리안 트롤.’

그렇게 론의 미래를 실은 마차는 힘차게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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