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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가 마법사의 회귀-34화 (34/115)

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34

온 신경을 청각에 집중했다.

그러자 마나들이 불필요한 소리를 제하고 원하는 것들만을 선별하기 시작했다.

‘커허헉!’

‘끄아아아악!!’

‘사, 살려줘···. 컥!’

번쩍!

정말 사람의 비명이었다.

아직 토벌단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러했기에 론은 급했다.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론이 토벌단 대열을 뚫고 영주 앞으로 갔다.

“음? 스펜서 가문의 론이었던가?”

“예, 맞습니다.”

“개전 때부터 자네의 활약은 잘 들었네. 그런데 지금 그 말, 확실한가?”

“예?”

“자네가 아무리 활약을 했다지만, 여기에는 자네보다 수준은 물론이고 경험 많은 마법사와 기사들이 많네. 그런데 그런 보고는 아직 없었네만?”

그제야 론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순간 점령당한 마을에서 사람 소리가 들려 허겁지겁 달려왔는데, 이곳은 엄연한 조직이었다.

불쾌하단 듯이 쳐다보는 눈빛들이 한둘이 아니다. 특히, 저 닙스라는 부관은 노골적으로 째려보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시각이 어떤가?”

브뤼센 영주가 말 고삐를 쥐고 있던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서산을 기는 태양이 온 세상을 주황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저녁···입니다.”

“그래, 저녁이지. 그리고 만약 지금 쳐들어간다면 곧 밤이 될 거고 말이야. 이를 무릅쓰고서라도 가야 할 정도로 확실한가? 책임질 수 있나?”

참 신기했다.

딱히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것도 아니요, 그저 인명이 오고 가는 전쟁터에서 사람 한 명 더 살리겠다고, 그것도 그쪽 영지 사람인데 좀 살려보겠다고 한 건데.

‘그래, 공적에 눈먼 자 취급받으며 나서야 하는 이유는 없지.’

“그저 호기로운 십대의 의견이었을 뿐입니다. 불쾌하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론은 고개를 숙였다.

가치관과 삶의 방식은 힘이 있을 때나 주장하는 것임을 잊고 있었다.

그렇게 미련없이 돌아서려는 찰나,

“1 분대장.”

“예, 영주님.”

“빠른 자들을 추려다 정찰하고 오도록.”

“충!”

1 분대장 대니언이 신속하게 움직였다.

“재밌겠군. 과연 1분대장이 어떤 소식을 가지고 올지 말이야.”

브뤼센 영주는 그러면서도 론뿐만 아니라 부관인 닙스도 쳐다보았다.

아무도 얘기하지 않던 순간,

고작 열여섯의 2서클 마법사가 정보를 제공했다. 만약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상당한 재능이다. 이미 앞선 전투에서 론의 실력을 감명 깊게 살펴본 브뤼센 영주였다.

그렇게 초조한 시간이 흐르고.

‘후우···. 너무 늦는 건 아닌지···.’

분명 론은 사람의 비명을 들었다.

허나 저 마을을 점거한 놈들은 고블린이다. 그 새 남아있던 사람들을 죽인다 해도 이상할 게 하나 없었다.

론의 얼굴이 점점 굳어가고, 반대로 닙스의 표정은 의기양양해질 때쯤, 대니언은 돌아왔다.

“허억! 허억···허억!”

부하도 없이 정신없이 뛰어온 듯했다.

“흐음···.”

평소 같지 않은 모습에 브뤼센 영주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말해보게.”

“하아, 하아···있습니다. 사람이, 있습니다! 근처에 가니 분명하게 비명이 들리고 있었습니다. 마을 주변에 횃불을 밝히고 방책까지 두른 거로 보면 상당한 시간이 흐른 듯한데 이상하게도 분명 사람 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

‘방책.’

집단생활을 하는 고블린인 만큼 그들 나름대로의 생존방식이 있었는데, 방책이 있다는 건 꽤나 머리를 쓸 줄 아는 놈이 있다는 얘기였다.

브뤼센 영주의 생각이 깊어졌다.

그저 아카데미의 재기 있는 학생의 장단에 맞춰 놀아줄 생각이었는데, 일이 커졌다.

영지민이 살아있다는 보고를 모두가 들었다. 차라리 안 들었다면 마음 편히 내일 낮에 싸웠을 테지만, 지금은 불가능했다.

이를 넘어간다면, 저 싸고 싼 용병들이 입이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 게다가 이제껏 과시하던 브뤼센의 부강함은 그저 옹졸한 외침에 지나지 않았다면 소문이 돌 테고.

론도 궁금했다.

과연 브뤼센의 영주는 어떤 결정을 할지. 확실한 임무 완수를 위해 몇몇 백성들의 목숨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할지, 아니면 백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적들을 향해 진군할지.

“후우···.”

브뤼센 영주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그러고는 이내 결정을 내렸다.

“해가 지기 전 마을을 수복한다.”

전과 같은 방식이었다.

마을 인근까지 조용히 접근한 뒤 단번에 기습하는.

브뤼센 영주의 고심과는 달리 전체적인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열흘 가까이 되어가는 일정 속에서 사망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경험이 많은 용병들이 말했다.

이번 토벌단 전력은 역대급이라고. 이렇게 열흘 가까이 되도록 사망자가 없는 토벌행은 처음이라고 말이다.

그 때문에 적진을 앞둔 토벌단은 날카롭게 벼려진 칼처럼 단단하기만 했다. 그리고 브뤼센 영주도 이를 느꼈는지 한시름 놓으며 선공을 개시했다.

콰아아앙!

마을 입구를 막던 조악한 방책이 단번에 날아갔다.

“진격하라!!!”

“마을을 탈환한다!!!”

“씹쌔끼들 다 죽여!!!”

무난한 진격.

며칠간의 합을 통해 토벌단은 영지군, 용병 할 것 없이 한 몸처럼 손발이 잘 맞았다. 그리고 그러한 손발이 더욱 활개 칠 수 있도록 마법사들은 쉼 없이 마법을 퍼부었다.

방책이고 뭐고, 머리 쓸 줄 아는 놈이 있건 없건 토벌단은 그대로 밀어붙였다.

때마침 놈들도 끼니 시간이었는지 마을 한가운데 꽤나 모여 있었는데, 이윽고 놈들과 마주했다.

“키에에에엑!!”

“캬하하학!!”

“케르르륵!”

온갖 괴성을 지르는 고블린들.

허나 그들 사이에서 확연히 구분되는 피부색이 있었다. 인간.

목에 줄이 묶인 그들은 기어다고 있었는데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두 눈은 파여 시커멨고, 온몸의 곳곳이 꼬챙이로 꿰어져 있었다.

‘아···.’

결국 토벌단들도 이를 봤다.

누구 하나 쉬이 말을 뱉는 이는 없었다. 하나같이 이제껏 봐온 눈빛들이 아니다. 더없이 흉흉했다.

그리고 저 멀리 이전과 다를 바 없이 보이는 대장격 몬스터, 고블린 주술사.

모두가 명령만을 기다리는 가운데, 마침내 브뤼센 영주의 입이 떨어졌다.

“전멸. 모두 죽여라!!”

“으아아아아아!!!”

“이 개새끼들아!!”

콰앙!

서걱!

콱!!

놈들의 머리통을 무참히 깨부수고, 베고, 찌르고. 그리고 그 위로 마법들이 날아가 꽂혔다.

기세랄 것도 없는 압도적인 토벌이었다.

“크훼에엑! 카르가아, 키에르그 아그악!”

그런데 고블린 주술사의 괴성이 울려 퍼지고,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무언가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둥 둥 둥 둥 둥 둥.

그와 함께 울려 퍼지는 북소리.

무력으로 찢어발기던 토벌단들도 잠시 멈췄다.

쿵, 쿵, 쿵, 쿵.

육중한 질량을 연상케 하는 발소리가 들리고, 이내 그 실체가 무리 앞에 드러났다.

“호, 홉고블린?”

성인 남성보다 더 큰 덩치의 고블린이었다.

콰아아앙!

“칵!”

놈은 이제껏 소리치던 고블린 주술사의 머리를 단번에 몽둥이로 부숴버렸다. 그러고는 거만한 눈으로 토벌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허!...”

“씨발 뭐야...”

브뤼센 영주는 물론이고 론도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홉고블린.

엄연한 중급 몬스터다.

중급 중에서 하위권이라지만 엄연히 중급은 중급.

단순한 마나 유저로는 안된다.

근접 전투에서 놈의 공격을 받아내려면 전사는 최소 오러를 쓸 수 있어야 했으며, 마법사는 최소 3서클 이상의 것을 써야 피해를 줄 수 있었다.

그런데 당혹스러운 것은 그런 홉고블린이 하나가 아니었다.

“세, 세 마리린데?”

“주여...”

“어쩐지 이번 토벌 너무 잘 풀린다더니만... 하...”

이제껏 그 흉흉하던 토벌단의 기세도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브뤼센 영주라고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는 빠르게 셈에 들어갔다.

‘나를 포함해 중직 마법사들은 4서클. 화력은 어느 정도 된다 쳐도 기사들이···.’

빠듯하긴 해도 얼추 대응할 만한 인원이긴 했다. 다만 문제는 과연 저놈들이 이쪽의 셈대로 쉬이 어울려 주냐는 것이었는데.

그런 고민은 의미가 없었다.

우측에 있던 홉고블린 하나가 무심히 팔을 휘둘렀다.

후우우웅.

퍼석!

선두에 있던 병사의 머리가 그대로 터져버렸다.

툭.

데구루루.

그리고 정적 속에 굴러떨어진 돌멩이 하나.

“그하아아악 하악 가아아!”

놈이 기괴한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허나 그것이 고블린들 사이에 퍼져나갔고, 이내 마을은 기괴한 괴성들로 가득 찼다.

전장에서 소리가 주는 영향은 작지 않다. 그래서 때로는 사기를 북돋우려고 북을 두드린다거나 뿔피리를 불기도 하는데, 저 웃음은 그중에서도 가장 원초적인 해소법이었다.

부하 놈들이 기세를 되찾았다 느낀 것인지 홉고블린 중에서도 가운데 있던 대장 놈이 토벌단을 가리키며 괴성을 내질렀다.

“그와아아아악!!! 가르라 기르카!!!”

해석할 필요도 없었다.

그의 괴성이 끝나기 무섭게 고블린들이 사방에서 뛰쳐나왔다.

“여, 영주님?!”

“쳐라!! 도망치면 다 죽는다! 그리고 명심해라!! 홉고블린이 오면, 오러 유저들이 막고 마법사들은 최우선으로 놈들을 섬멸해라! 용병들은 일반 고블린들을 맡고 절대 밀리지 마라!!! 그리고 마법사들은 화공의 금제를 푼다!”

십 수년간 토벌을 경험한 브뤼센 영주였다. 리더가 흔들리면 토벌단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더욱 눈에 불을 켰다.

그리고 그가 선제공격을 펼쳤다.

후우우웅우웅.

적진 한가운데 정사면체의 복합마법진이 떠올랐다.

“케륵?”

고블린들이 의아해하는 사이,

정사면체가 회전하며 빛을 발했다.

“익스플로젼!”

콰아아아앙.

“키에에에엑!!”

“케헥!”

“크륵···.”

3서클의 파이어볼보다 훨씬 강력하면서도 즉시 발동형 마법으로 4서클 마법이었다.

기세등등하던 놈들의 진형 한가운데 폭발이 일자 놈들은 금세 당황해하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

“죽여!!”

“홉고블린이 오기 전에 최대한 죽여라!!”

모두가 브뤼센 영주의 의도를 알아차렸고, 단숨에 공격에 들어갔다.

창칼이 쉴 새 없이 오가며 녹색 피부 놈들을 찢어발겼다.

그리고 홉고블린들도 마침내 진형에 뛰어들었다.

“홉고블린이다!! 오러 전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빠져!!”

“용병들은 측면에서 일반 고블린들만 견제한다!!”

쉴 새 없는 전투 속.

론 일행은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그들이 목표로 한 놈은 우측의 홉고블린이었다. 오러 전사들 뒤에서 틈을 노리고 있는데, 일전의 그 키르타스가 붙었다.

“거기, 아들렌의 미래들! 같이 하자고.”

“예, 그러십시오.”

“대부분의 몬스터가 불 속성에 취약한 건 알고 있지?”

“예, 뭐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야 그렇다고 모두가 불 속성 마법을 쏴 재끼는 건 오히려 비효율적이야.”

“그렇습니까?”

잠자코 있던 크루딘이 되물었다.

“마찰력이나 압력 외 온도 그 자체로 피해를 줄 수 있기에 불 마법이 선호되는 건 맞지만, 이렇게 마법 자원이 충분할 땐 합공도 나쁘지 않거든.”

맞는 말이었다.

다만, 설명할 시간도, 명분도 없었던 론은 키르타스가 편히 말할 수 있도록 그의 말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키르타스님이 생각하시는 건 어떤 겁니까?”

“내가 놈의 모가지에 불꽃을 쑤셔 박을 테니 바람만 좀 든든하게 넣어줘. 산소가 원활하게 주입되면 초고열은 물론이고 유지력도 높아지니까. 물론, 이건 2서클 마법만 가능한 자들에게 하는 말이야. 3서클이 가능하다면 혼자 마법을 펼쳐도 상관없어.”

일전에 그들의 마법을 본 키르타스는 강요하지 않았다.

“아, 뭔 말인지 이해했습니다.”

“제가 보조할게요. 그럼!”

“허허, 정말인가? 그런다면 고맙지! 좋아 그럼 한번 해보자고!”

그렇게 의논하는 사이 어느새 홉고블린과 오러 전사들과의 싸움은 시작되었다.

콰앙!

“커헉!”

강력한 몽둥이가 기사의 방패를 짓눌렀다. 누가 봐도 마나를 썼다는 걸 알 수 있는 상황. 기사 또한 체내의 마나를 오러로 변환해 방패를 씌웠지만, 근력 자체에서 차이가 났다.

허나 놈은 혼자였고 토벌단은 다수였다. 기사가 견뎌내는 사이 오러를 쓸 수 있는 기사와 병사, 그리고 용병들이 뛰어들었다.

그리고 마법사도.

“번 플레어!”

“윈드!!”

‘오!’

4서클 마법 중에서 가장 뜨거운 초고열 마법. 그런데 거기에 사티넬의 바람까지 합세하니 더없이 강력한 마법이 되었다. 아니, 되어야만 했다. 그런데,

콰아아아앙.

“커···.”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합류하던 기사 하나가 작살이 났다.

“미친···.”

홉고블린 대장이 이쪽으로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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