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33
브뤼센 성을 벗어난 지 얼마 안 된 시점.
몇몇 보고가 들어왔다.
보고에 따르면 고블린들의 북상으로 남부의 몇몇 마을이 대피했다고 한다.
고블린.
하급 위험 몬스터로 지정된 녀석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놈들의 무리 짓는 습성이었다. 마을 주민이 대피할 정도면 규모가 작지 않다는 말이었다.
현재 토벌단의 규모는 다음과 같았다.
영주를 비롯한 마법사, 기사, 병사 등 영주 측 전력이 48명, 용병이 81명, 지원 마법사와 기사가 8명이었다. 그리고 보급 지원으로 붙은 하인 다섯까지.
“그러면 브뤼센 성의 남은 용병들까지 싸그리 데려가는 게 낫지 않아?”
“허허, 크루딘 안데르손이라 했던가?”
크루딘이 입을 가리고 하는 말을 들었는지 브뤼센 영주가 반응했다.
“예, 맞습니다.”
“토벌이란 게 항상 머릿수가 많다고 해서 수월한 게 아니라서 말야.”
“그렇습니까?”
안 그래도 궁금했던 부분이었기에 크루딘이 쫑긋 집중했다.
“특히나 고블린은 무리를 짓는 녀석들이지. 그런데 말야 어쭙잖은 병력을 동행시켰다가 진형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더 손해네. 공포와 패닉은 확산성이 심한 건 알고 있나?”
“확산···성 말입니까?”
“허허, 내가 이런 걸 가르치게 될 줄은 몰랐구먼.”
설명하는 브뤼센 영주의 표정은 꽤 좋아 보였다. 아무래도 동남부의 잘 나가는 안데르손 자작가의 자식이라 하니 벌써부터 인맥을 생각하는 듯했다.
“그래, 확산성. 사람의 감정이란 게 의외로 잘 퍼지거든. 자네가 여기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도 경험해 봤을 텐데? 누군가의 기분이 전염되는 것 말야. 우울과 공포 같은 감정도 마찬가지야.”
“그렇군요.”
“게다가 그렇게 해서 만약 진형이 무너진다면? 아무리 잘난 실력자가 있다 해도 이곳저곳 모두를 신경 쓸 수는 없네. 즉, 수준 이하의 전력은 집단 몰살의 단초가 될 수 있지.”
“아···.”
크루딘이 수긍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때문에 이렇게 규모를 조금 축소하더라도 정예로 밀어붙이는 게 훨씬 안전하네. 우리가 뭐 하루 마실 나갔다가 돌아가는 건 아니잖나.”
“예, 이해했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단번에 승부를 볼 수 있으면 모르지만, 토벌이라는 게 대련장 일대일 싸움 같은 게 아니다. 매복과 침투 같은 전술적 개념, 그리고 시간적인 부분도 고려해야 하기에 수준 이하의 전력은 절대적으로 ‘방해’가 된다.
조용히 이들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론이 속으로 생각했다. 기본적인 것 외에는 거의 신경 쓰지 않는 스펜서 가문과는 달리 브뤼센 영주는 시시각각 애를 쓰고 있었다.
딱 봐도 연줄을 트고, 인맥을 넓히려는 계산. 하지만 뭐라 할 수도 없는 게 저런 적극적인 행동이야말로 영지의 세를 불려주는 단초가 될 터였다.
슬슬 영주와의 자리가 불편해질 무렵, 점심시간이 되어 자연스럽게 론 일행은 영주 곁에서 벗어났다.
“후우! 우리 원로 어르신들보다 더한데?”
크루딘이 은근슬쩍 턱짓을 했다.
가리키는 방향이야 뻔했다.
“잘만 얘기하더니 친해진 거 아녔습니까?”
“에엥? 전. 혀.”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요, 킥킥.”
“앞으로 내가 저 옆에 가는 일 있나 봐라.”
“그래도 브뤼센 땅인데, 브뤼센 영주님이 좋게 봐주는 건 정말 좋은 거지요.”
“어휴, 모르겠다.”
꼬르륵.
“으으···. 배고프네요. 저희도 어서 가서 먹어요!”
“그래, 빨리 가자. 이래저래 신경 썼더니 더 출출한 거 같다.”
“이쪽입니다. 아무래도 마법사들은 나름 고급 인력이랍시고 따로 대우해 놓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엔 담당 하인이 보울에 검보(Gumbo)라는 지역 특산 요리와 빵을 배급하고 있었다.
“와아, 맛있겠다. 요거는 뭐로 만든 건가요?”
“하하. 예, 아주 맛있는 요리지요. 크로마 채소와 닭고기를 주재료로 해서 만든 스튜입니다. 드셔보시면 한동안 이것만 찾게 되실 겁니다.”
“오오!”
“음? 큰 그릇은 없나? 좀 배고픈데.”
“없다.”
크루딘이 식기 함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웬 차가운 목소리가 그의 질문을 일축했다. 자연히 론 일행의 시선이 그쪽으로 갔다.
짙은 주황색 로브의 젊은 사내.
영지 소속 마법사였다.
“통에는 스튜가 아직 많이 남아···.”
“배식량은 정해져 있다.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그냥 따르도록.”
“아, 예. 뭐 그렇다면야.”
‘뭐지? 굳이 저렇게 딱딱하게 말할 필요가 있나.’
내심 의아해했지만 규율이라니 외부인이 왈가왈부할 순 없었다. 때문에 일행들도 아쉽긴 해도 그러려니 했다.
그렇게 아쉬운 식사가 끝나고 재개된 일정. 그런데 뭔가 조금 이상했다.
‘어이, 거기 아카데미 학생들 자꾸 튀어 나가지 말라니까.’
‘빨리빨리 따라오라고.’
‘아까 말했을 텐데, 이런 협곡에서는 그렇게 뭉치지 말라고.’
‘속도를 맞춰야지.’
언뜻 보면 그럴듯한 이유들.
허나 이를 듣고 있는 당사자들은 아니었다. 부관직을 맡은 닙스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계속해서 긁어댔다.
“뭐 때문인지는 몰라도 꽤나 아니꼬운가 봅니다. 소란을 피워봐야 저희만 손해입니다. 그냥 한 귀로 흘리십시오.”
“후우··· 알았다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썩어가는 크루딘의 표정. 그런 그에게 할 수 있는 거라곤 참으라는 말 밖에는 없었다. 어찌 됐건 론 일행은 외지인이었으니까.
중요한 건 목적이다.
피에타 유적에서 건질 것은 다 건졌다. 그럼에도 브뤼센에 남아 이 토벌 일정에 참가한 것은 ‘공적’이었다.
이래저래 불쾌했지만 이미 토벌 일정은 시작됐다. 취소하고 돌아가는 게 오히려 더 이상했다.
그런데 의외로 둘은 잘 참았다.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이 흘러 토벌단은 목표물 앞에 당도했다. 그리고 먼저 마주한 몬스터는.
“케륵!”
“케헤에에엑!!”
고블린이었다.
아직 숲속에 있었던 토벌단은 조금이나마 적의 동태를 살필 수 있었다.
탁한 녹색 피부에 노란 눈동자, 그리고 턱 아래로 흐르는 타액. 게티아의 리키만 한 덩치의 고블린들이 조그만 마을을 점거하고 있었다.
“1 분대장이 먼저 정찰한 뒤 상황 보고 하도록.”
“예!”
닙스의 명령에 1 분대장 대니언이 부복했다. 약 스무 명의 인원이 빠져나가고, 남은 인원들은 여전히 숲에서 동태를 살폈다.
그러기를 수십여 분.
대니언이 분대원을 이끌고 돌아왔다.
“마을을 점거한 지는 꽤 시간이 흐른 듯합니다. 마을 테두리로 녀석들이 경계를 서고 있습니다. 내부까지 확인하지는 못하였으나, 외부 경계와 내부활동을 구분 짓는 것으로 보아, 집단을 통솔하는 주술사급의 몬스터도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추측 규모는 최소 백 마리 정도입니다.”
“흠···.”
브뤼센 영주가 턱을 쓰다듬었다.
그는 수시로 토벌 일정에 참여하는 만큼 몬스터 사냥 경험이 풍부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고민하던 영주는 토벌단을 쭉 둘러보았다.
영지 마법사들과 기사, 병사. 그리고 용병들. 거기에 귀족 자원들까지.
‘시작은 역시 화끈하게 하는 게 사기 진작에 좋겠지.’
“전 병력, 해가 지기 전까지 카웬 마을을 탈환한다.”
“충!”
토벌단이 카웬 마을 앞으로 조용히 진군했다.
킁킁.
옆에 있는 크루딘이 코를 킁킁거렸다.
“뭔 냄새가···.”
마을이 훤히 보일 정도가 되자 먼저 반응한 것은 사티넬이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 론이었으나, 사실 그 또한 알 수 없는 불쾌함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은 지울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토벌단이 멈췄다.
“본대를 중심으로 진격을 하고, 좌우 1분대와 3분대는 습격을 통해 놈들의 진형을 와해시킨다. 다친 인원은 바로 뒤로 빠지도록. 그리고 마을 탈환이 목적인 만큼 마법사들은 불 마법은 자제하게나.”
브뤼센 영주의 명령에 각 분대장이 전파했다. 그리고 본대였던 론 일행도 부관인 닙스에게 세부 사항을 전달받았다.
잠시간의 고요.
우우우웅우웅.
본대의 선두에서 푸른빛이 떠올랐다.
정사면체의 복합마법진.
“롤러 웨이브.”
개전은 브뤼센 영주로부터였다.
순식간에 생겨난 물이 이내 거대한 파도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향하는 곳은,
경계를 서는 고블린들이었다.
콰과과과광
“크헥!!”
“켁!!!”
“기야아아악!”
개중에 파도에 휩쓸리지 않은 놈이 적의 침투를 알리려는 듯 괴성을 내질렀다.
“진격하라!”
“와아아아!!!”
“죽여!! 싹 다 죽여!!!”
“진격하라아!!!”
마법사가 있는 군대의 편성은 단순하다. 검병을 든 전사들이 전방, 그리고 마법사들이 후방.
전방을 든든히 책임지는 기사, 병사, 그리고 용병 덕에 마법사들은 온전히 마법에 집중할 수 있었다.
“어스 스피어!”
“윈드 스피어!”
“에어로 봄!”
“워터 애로우!”
다양한 마법들이 아군을 넘어 적들을 향해 날아갔다. 가뜩이나 무기를 쥔 전사들은 마나 유저인데, 그 위로 마법까지 날아오니 고블린들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썰려 나갔다.
‘쳇! 덜떨어진 새끼들 뿐인가. 이래서야···.’
거의 일방적이다시피 한 상황에 기뻐할 만도 하건만, 부관 닙스는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는 그 불편한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
“윈드 애로우!”
“워터 애로우!”
“에어로 봄!”
‘허, 고작 2서클 주제에 3서클 에어로 봄을 쓴다고? 애새끼가 전쟁이 무슨 오줌 한 번 갈기면 끝나는 줄 아나.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장에서 무리한 마법을···.’
“에어로 봄!”
“에어로 봄!”
“에어로 봄!”
‘...’
허나 닙스의 그런 생각을 묵살하기라도 하듯 론은 계속해서 3서클 마법을 날려댔다.
콰아앙.
콰아아앙!
쾅!
게다가 조준이 얼마나 잘하는지 고블린들이 막 치고 나오려 할 때마다 놈들의 진형이 무너지곤 했다.
“학생 도련님들 엄청나신데?!”
“역시 아카데미라 이거구만!!”
“칼슨, 십새야! 닥치고 창이나 휘둘러!!! 방금 씨발, 저 도련님들 아니었으면 진짜 뒈질 뻔했다. 너!”
“으하하하하!! 가즈아!!!”
전투는 무르익었고, 기세를 탄 토벌단은 더욱 노련하게 놈들을 제압해 나갔다.
“키라라락! 크후아! 아우리다 마후므!!!”
그리고 도착한 마을 중앙.
역시나 놈들을 이끄는 대장이 보였다. 고블린 주술사.
“씨발! 저거 사람 아냐?”
“아욱···! 웩···.”
모닥불 위로 올려진 돼지와 칠면조 사이로 사람이 보였다. 그리고 놈들은 보란 듯이 모닥불 위의 인간을 핥았다.
토벌단의 눈빛이 흉흉해졌다. 사람들을 죽이고 먹는 놈들이란 걸 당연히 알았지만, 아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천지 차이다.
“아직 전투 중이다. 감정에 잡아먹혀 실수하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해라.”
“충!”
브뤼센 영주도 이를 아는지 토벌단을 다독였다.
“진격!”
“와아아아아!!”
“죽여!!”
허나 그러거나 말거나 토벌단은 미친 듯이 달려들 뿐이었다.
엄청난 기세.
고블린 주술사가 주술을 부리긴 했으나 좌우 분대의 습격부터 해서 토벌단의 공세가 너무 강력했다.
걸리는 것도 없이 그대로 밀어버렸다.
“퉷. 승전치고는 좀 뒷맛이 쓰네.”
“그러게요···.”
“힘이 없으면 어쩔 수 없는 것이죠.”
비단 인간과 몬스터 사이 뿐만이 아니다. 인간들 사이에서도 힘이 없으면 도태되고 이용만 당하다 끝날 뿐이다.
론은 그저 그들이 냉혹한 현실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잃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게 첫 전투는 완전한 승리로 막을 내렸다. 부상자만 있을 뿐 사망자는 하나도 없었다. 마을 수복 그리고 몬스터 사체에서 마정석을 비롯한 챙길 것을 챙기고 토벌단은 쭉쭉 이동했다.
중간중간 커럽트 보어도 사냥하며 며칠을 보내고 나니, 다음 마을이 보였다. 들은 바에 따르면 대피한 마을은 두 곳.
“여기가 마지막 탈환지라는 거군.”
“예.”
“저기···. 그런데, 사람 소리 들리는 거 같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