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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가 마법사의 회귀-29화 (29/115)

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29

퉁!

퉁!

말 그대로 물감옥이었다.

거대한 물 덩어리가 크루딘과 사티넬을 집어삼킨 채 놔주지 않았다.

꼬르륵.

숨이 차오른다.

폐에 남아있던 공기가 소진되면 그때는 정말 익사다.

‘죽을 바에는!’

사티넬의 눈이 번쩍 떠졌다.

‘축복의 기도.’

그녀가 부모로부터 배운 마나호흡법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표현으로는 마나운용법이다.

태초에 신의 축복을 받은 엘프.

인간과는 애초부터 격이 다른 존재였다. 자연과 자유롭게 소통하였으며 또한 이를 자유롭게 다뤘다. 그들이 신의 수호자 혹은 질서의 수호자라 일컬어지는 이유다.

그러한 엘프들이 신의 축복에 감사해 후대 영원토록 남긴 것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축복의 기도’다. 신께 감사하고, 그 유지를 이어받아 질서를 수호하겠다는 의지. 그것을 마나운용법에 담았다.

신의 손길이 닿은 마나운용법.

당연히 인간의 것과는 비교되지 않았다. 그나마 비슷한 것을 찾자면, 얼마 전 론이 미로에서 본 7서클 마법사가 펼치는 마법 방식정도.

체내의 마나서클을 중심으로 마법을 펼치는 것이 아닌 광활한 자연 가운데 서클을 만들어 무한에 가까운 마법을 펼치는 것.

사티넬이 어릴 적 아빠를 조르고 졸라 한두 번씩 보곤 했었다. 후에는 다른 이들의 눈치가 보여 연습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런 걸 따질 시간이 없었다.

사티넬은 먼저 심장의 마나서클에 집중했다. 체내의 모든 마나를 풀어내는 것부터가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퉁!

퉁!

퉁!

꼬르륵.

그들을 감싼 것은 단순한 물이 아니었다. 마법으로 인해 마나 통제력을 얻은 물감옥은 마나 출력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말 그대로 감옥.

그 어떤 변수도 허용치 않았다.

마나를 광자화 시킬 수 있는 게 아닌 이상 사티넬로서는 마나 출력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제껏 천재들 사이에서 뒤처지지 않으려 그리도 노력했건만, 결국 그녀는 지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아···.’

허탈했다.

남은 거라곤 죽음을 기다리는 것뿐. 아쉬움,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분함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런 그녀의 시야로 론이 보인다.

다급한 상황에서도 눈빛이 죽지 않았다. 어떻게든 해보려는 간절함. 그리고 그것이 그녀에게도 전해져왔다.

‘아!’

고개를 돌리니 크루딘 또한 눈에 불을 켠 채 허우적대고 있었다. 사티넬이 두 손을 꼭 말아쥐었다.

‘그래.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야.’

그리고 그 순간.

콰아앙.

촤아아악!

크루딘과 사티넬을 옥죄던 거대 물감옥이 터졌다.

“크헉! 하아···. 하아···. 고맙다! 론.”

“콜록콜록! 켁! 고마워효오!”

“상대는 최소 5서클. 도주는 오히려 위험합니다. 최대한 피하면서 공격해보죠.”

한달음에 달려온 론이 짧게 요약해 전달했다.

“하아···. 확인.”

“알겠어요.”

론, 크루딘, 사티넬.

삼인방이 자세를 가다듬었다.

수많은 대련을 해왔기에 서로의 마법 스타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말할 틈도 없었고.

전체적인 조율의 론, 근접 카운터는 크루딘, 그리고 이 둘의 보조로 사티넬.

“커헉!! 이, 이새끼 뭔 짓을···.”

검은 로브의 사내가 휘청거렸다.

워터 프리즌. 특정 위치에 물감옥을 만들어 대상을 익사시켜버리는 원격 마법이 파훼 됐다. 마나를 광자화 시켜야 했기에 적지 않은 정신력이 소모됐을 터.

잠시간의 여유가 생겼지만, 그다음이 진짜였다. 다음 마법은 얼마나 더 소름 끼칠지 모를 일이었다.

“후우···.”

사티넬이 긴 한숨 속에 긴장을 같이 덜어냈다. 전과 같이 무력하게 당할 수만은 없었다. 그녀는 미련 없이 모든 마나를 풀어냈다.

딱히 체외 서클 운용법을 연습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를 성공하지 못하면, 자신은 이 싸움에서 아무 쓸모가 없음을. 그리고 이는 곧 모두의 죽음을 의미했다.

그녀는 그 누구도 의식지 않았다.

그저 ‘축복의 기도’에 온몸을 맡겼다.

“라 휘움 디 테르모 티 트로베로···.”

[그 어디에 있건 시간의 강물을 거슬러 당신께 나아갑니다···.]

거창한 의미는 아니었다.

허나 그 말이 잊혀진 엘프의 언어로 이 땅에 뱉어졌을 땐,

온 자연이 그녀에게 반응했다.

구후우우우웅.

온 대기가 진동한다.

“뭐, 뭔 짓을 또?”

검은 로브의 사내가 당황한 순간.

론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그가 최대한의 마나를 끌어올렸다.

결정타는 그의 몫이 아니다.

동료들을 믿어야 할 뿐.

“스톤 필드(Stone field)!”

이전과는 다르게 충분한 마나와 복합마법진이 갖춰졌고, 전방을 향해 바위들이 불규칙적으로 치솟았다. 일회성 마법이긴 해도 치솟은 바위가 내려갈 일은 없었기에 나쁘지 않은 범위 마법이었다.

그 다음은 사티넬.

“어?”

론이 바라본 그녀는 무언가 달랐다. 생소한 방식의 마법 시전. 하지만 그것에서는 강렬한 바람의 칼날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슈욱 슈욱 슈악 슈욱.

하나둘 늘어나던 바람의 칼날이 이내 수십 개에 이르렀다. 평범한 마법이 아니었다.

‘뭐, 뭐야?’

묻고 싶은 것도, 확인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그럴 여유 따윈 없었다.

론이 다음 마법을 준비하는 사이, 크루딘은 이미 검은 로브의 사내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돌벽 하나만을 사이에 둔 순간.

‘결정타.’

“어스 스피어!”

5서클 마법사에게 그리 위협적인 마법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어짜피 어스 스피어는 진짜 공격이 아니었다.

수십 개의 바람의 칼날과 흙 창.

그것들이 오로지 검은 로브의 사내에게 날아갔다. 그리고 이내 모습을 드러낸 크루딘까지도.

“이것들이 보자 보자 하니까!! 스파이럴 토네이도(Spiral tornado)!”

후우웅.

정육각형의 복합마법진.

5서클이었다.

4서클 토네이도 마법만을 재중첩하여 미친 듯이 규모를 늘린 녀석이 이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콰과과과광!

바람의 칼날, 흙 창, 바위, 크루딘.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걸 뒤엎어버렸다.

퍽!

“켁···!”

공중에 휘날리던 부유물에 처맞은 크루딘이 이내 의식을 잃었다.

압도적인 수준 차이다.

론과 사티넬은 망연자실했다.

“젠장!”

욕이 절로 튀어나온다.

더 이상 뒤는 없다.

생명을 깎아서라도 이 상황을 타개치 못하면 그냥 죽음이다.

“후우···.”

그런 그가 떠올릴 수 있는 건 단 하나였다.

플라즈마(Plasma).

고체, 액체, 기체. 세 단계로 구분되는 물질 상태를 넘어 초고온에 이르면, 물질은 제 4의 상태가 되는데 이를 플라즈마라 한다.

구후우우웅.

론이 가슴팍 앞으로 양손을 모았다.

그 사이로 푸른 선들이 그어졌고, 이내 선들이 모여 도형을 이뤄가기 시작했다.

한 줄, 두 줄. 세 줄···.

그렇게 마지막 여섯 줄까지 그어지면 정사면체가 된다.

“로, 론님?”

그런데 여섯 번째 줄이 그어졌음에도 도형은 완성되지 않았다. 계속해서 모서리를 늘려가던 그것이 이내 모습을 드러냈다.

우우웅우웅.

총 열두 개의 모서리.

정육면체 복합마법진이었다.

“미친! 고작 2서클이 따위가! 너 따위가 뭘 안다고!!”

검은 로브의 사내가 뭐라 하던 론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사티넬을 보며 말했다.

“저놈을 묶어주십시오.”

“네!”

사티넬이 밖에서 요동치는 마나 덩어리에 집중했다.

‘한 점. 한 점에 모은다.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찰나의 순간.

그녀가 발휘한 초집중은 그 결과를 만들어냈다. 바로 체외 서클. 하지만 감탄할 틈도 없이 사티넬은 동화된 마나들을 모두 끌어다 마법을 펼쳤다.

“어스!”

콰과과과과광.

고작 2서클의 대지 마법.

허나 그것이 대규모로 펼쳐지니 가히 장관이었다.

수십 채의 건물들을 집어삼키고도 남을 거대한 모래 파도. 그것이 검은 로브의 사내를 커다랗게 에워쌌다.

그리고 이내 곧 모래 파도가 전방위를 장악하자, 그대로 조여버렸다.

솨아아아아.

거대한 구체가 형성되었다.

그 순간.

“프··· 커허억!”

급격한 마나 고갈로 인해 론은 정신이 아득했다. 심장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말할 것도 없었고, 깜짝 정신을 놓으면 그대로 기절이었다. 퀭해진 눈동자를 부릅 떠가며 론이 멈추지 않았다.

“플라즈마 볼!! 컥!!...”

그리고 결국 복합마법진에 푸른 빛이 어렸다.

마법 발현이었다.

“미친! fds℘ɧɳʡ!!!”

쾅! 쾅! 쾅! 쾅!

위기를 느낀 사내가 미친 듯이 마법을 펼쳤지만, 그 짧은 시간에 엄청난 양의 모래를 뚫을 순 없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벌어진 모래 감옥의 작은 틈. 그 사이로 파란 색 플라즈마 볼이 들어갔다.

콰아아앙!!

“크하악!!”

구구구구궁.

비명 따위는 아무렇지 않게 집어삼킨 커다란 진동이 대지를 울린다.

“하아···. 하아···. 하아···.”

털썩.

거친 숨을 내쉬며 론이 주저앉았다.

‘제발···.’

10초, 15초···.

상대 쪽에 반응이 없다.

느껴지는 생명력도 없고.

20초, 21초···.

터억.

론이 쓰러졌다.

‘이겼다.’

***

그가 눈을 떴을 땐 캄캄한 밤이었다.

코로 들어오는 공기가 차가웠지만 그래도 버틸 만했다. 바로 앞에 모닥불이 피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타닥타닥.

춤을 추는 불길 너머로 한 인영이 보였다. 은은하게 빛나는 백금발. 전에도 본 적이 있는 머리카락이었다.

“사티넬.”

“일어나셨군요.”

“산 겁니까, 다들?”

“킥킥, 네. 살았죠. 여기 물부터 드세요. 정신 좀 차리게.”

꿀꺽꿀꺽.

목에 넘어갈 때마다 마른 가뭄에 비가 오듯 시원했다.

“후우! 고맙습니다.”

“뭘요.”

그리고 그제야 옆에 있는 크루딘이 보였다. 그는 아직도 누워 있었다. 마법 파훼와 더불어 물리적 충격까지 받았으니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그를 한참 동안 보던 론이 나직이 말했다.

“엘···프였습니까?”

피식.

사티넬이 미소를 숨기지 않았다.

“아주 조금은요.”

“네?”

모호한 답변에 론의 고개가 기울었다.

“아빠한테 들었어요. 아주 오래전, 선조 중에 엘프가 있었데요. 이에 자부심을 가진 조상분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선조의 유지를 이어받으셨다고 해요. 제 부모님까지도.”

부모님이란 단어 때문이었을까. 밤하늘을 보며 말하던 사티넬의 눈빛은 아련했다.

“그리고 그게 이제는 저한테까지 내려온 것 같네요. 힛. 별로 재미없는 얘기죠?”

어느새 고개를 돌린 사티넬이 생긋 웃는다.

“전혀요.”

회귀 전에는 문자로밖에 접할 수 없었던 그 단어, 엘프. 그런데 이번 생에는 그 엘프의 후손이 눈앞에 있었다.

어떤 느낌일까.

엘프의 후손으로 살아간다는 건.

묘한 감상에 젖어 그녀를 보고 있는데, 뭔가 조금 이상했다. 전과는 다른 느낌.

그 기묘한 느낌에 론이 집중했다.

그리고 곧 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혹시, 2서클로 오른 겁니까?!”

피식.

“바로 알아보시네요?”

“허···.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헷.”

“고난이 사람을 성장시킨다더니···. 틀린 말은 아니군요.”

“딱히 누군가에게 추천하고 싶은 고난은 아니네요.”

“뭐, 그렇긴 하죠.”

생각해 보면 사티넬은 충분했다.

마나 컨트롤 부분이나 원소 마법에 대한 이해는 거의 완성되어 있었다. 3서클 개념식마저 찾아볼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다만, 으레 평민들이 그렇듯 마나의 부족으로 시간이 좀 필요했는데, 아무래도 그 흑마법사와의 전투가 계기가 된 듯했다. 더 정확히는 그 특이한 체외 서클 운용법이.

“쟤 얘기는 재미없으니 이제 론님이나 얘기해 주세요. 어떻게 하신 거예요, 5. 서. 클. 마법을?”

얇게 뜬 그녀의 눈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하하.”

듣고 싶은 것도 많고, 또 자신이 말해야 할 것도 많았다. 뭐부터 해야 할지 고민하던 순간. 부스럭대는 소리에 둘의 고개가 돌아갔다.

“끄응···흥···.”

크루딘이 일어났다.

“으···.”

“크루딘 정신이 듭니까?!”

“므.”

“예?”

“므으.”

“뭐라는···.”

킥킥킥.

사티넬이 소리 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수통이 쥐어져 있었다.

“물 달래잖아요, 물! 론님도 꿀꺽꿀꺽 잘 마셔놓고는.”

“크흠.”

그렇게 물을 마신 크루딘은 얼마 후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눈에 빛을 냈다.

“놈은?”

짤막한 물음.

하지만 못 알아듣는 이는 없었다.

그리고 답변하듯 사티넬이 오른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

사티넬이 가리킨 곳.

아까 싸웠던 공터, 거기에 시커먼 무언가가 널브러져 있었다.

“죽었는지 확인한다고 몇 번이나 봐서 저는 더 못 보겠어요.”

사티넬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를 뒤고 하고 론과 크루딘이 그곳으로 나아갔다.

론은 정신을 잃기 전 상대의 숨이 끊어진 것까지는 확인했었다. 허나 아직 확인할 게 하나 남아있었다.

‘무엇 때문에, 어떻게 해서, 왜 저런 자가 피에타 유적에 있었던 걸까?’

온갖 생각들이 다 들었다.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갔다 왔기 때문일까. 머릿속에선 어느새 최악의 상황까지 상정하고 있었다.

‘제발, 제발···.’

한 걸음,

한 걸음···.

난장판 한가운데.

널브러진 사내 앞에 이르렀다.

엎어져 있는 그를 뒤집었다.

그리고 그를 덮고 있던 커다란 두건까지 걷어냈다.

“아···.”

육성으로 탄식이 새 나왔다.

제발 아니기를 속으로 그토록 빌었건만. 닿지 않는 기도였다.

검은 물방울 문양이 아주 선명히도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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