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28
“푸하하하! 야, 론. 왜 그렇게 긴장을 해. 지금껏 제일 잘 아는 것처럼 얘기하더니. 어이어이, 긴장 풀라고.”
“론님, 무슨 일 있으세요? 안색이 안 좋아요.”
“아닙니다. 그냥 좀···.”
회귀 전 유적관리단에 부임하고 처음 겪었던 사건. 현장을 보자 당시의 일이 꽤나 인상 깊었음을 알 수 있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던 게티아 도시와는 확연히 달랐다.
피에타 유적의 외부 구조물 하나하나가 기억 속의 그것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론의 눈동자가 주위를 날카롭게 살폈다.
무의식적인 경계였다.
“일단 각자 좀 돌아보고 좀 있다 얘기해보자고.”
“네! 좋아요!”
“좋습니다.”
“어이, 론. 저거저거 다 와서 병든 닭처럼 저러네. 피곤하면 좀 쉬어.”
“괜찮습니다. 둘러보죠.”
적당히 대답한 론도 발걸음을 뗐다.
건물의 흔적을 살피며 연신 신기하다며 탄성을 내지르는 사티넬, 기둥 곳곳에 남겨진 문양을 보며 생각에 잠긴 크루딘. 그런 그들의 모습에 동조하며 론도 그 주변을 돌아다녔다.
허나 그러면서도 그의 신경은 한 곳에만 집중되었다. 시커먼 공간.
바로 지하 입구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도 발견했는지 크루딘과 사티넬이 손을 흔들며 론을 찾았다.
“휘유. 누가 봐도 이게 하이라이트지?”
“그러게요. 헤헤. 바깥은 고대 룬 문자 말고는 볼 만한 게 딱히 없네요.”
“룬 문자는 역시 봐도 어렵더라. 3학년 때 배운다던데···. 어휴.”
“킥킥킥, 미리미리 준비해야겠어요. 힛”
“여기 글이 있습니다.”
입구 앞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그들에게 론이 말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옆에는 주변 유적과는 이질적인 구조물 하나가 부착되어 있었다.
『 피에타 유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본 유적은 지하까지 이어져 있으니 유의해서 관람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하라는 특성상 산소의 유입이 적습니다. 장시간 관람은 피해주십시오.
※ 아래 마법 조명 구동 버튼을 누르면 지하에 빛이 들어옵니다.
(마나석의 마나 고갈시 구동되지 않습니다. 해당 상황 시에는 왕실 유적관리단에 연락 바랍니다.)
※ 마법 조명 미작동 시 출입을 삼가십시오.
※ 유적 및 유물에 불필요한 접촉을 삼가십시오.
※ 해당 유적 훼손 및 도굴 적발 시 왕국 유물관리법 4조에 해당하는 처벌을 받습니다. 』
딸칵.
딸칵.
안내문을 벌써 다 읽었는지 크루딘이 조명 버튼을 눌러댔다.
“음? 뭐야 불이 안 들어오는데? 맞아, 이거?”
“잠시.”
허둥대는 크루딘을 비켜 론이 버튼 앞으로 다가갔다.
회귀 전 수많은 유적에서 관리했던 장치다. 구동 방식은 단순했다. 내부의 마법 조명이 연결되어 있었는데, 이 버튼이 바로 마나석이었다. 누르면 마나 회로를 통해 마나가 전달되는 방식이다.
우우웅.
론이 익숙하단 듯이 손끝으로 마나를 출력해냈다.
“뭐, 뭐야? 론, 이거 이래도 되는 거야?”
크루딘이 뭐라 말하거나 말거나 론은 밀어 넣은 마나석에 계속해서 마나를 주입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내 시커멓기만 하던 내부에 불이 들어왔다.
“와아! 론님, 대단하시네요!”
“전에 다른 유적에 한 번 간 적 있었는데, 당시 직원이 이렇게 하더군요. 그냥 마나만 주입하면 됩니다.”
“큭큭큭. 그래, 이래야 론이지. 돌아왔구나, 론! 오케이, 그럼 들어가 보자고!”
마법 조명으로 인해 유적 지하는 외부와 다를 바 없이 밝았다.
계단 끝까지 내려가자 왼쪽으로 기다란 복도가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복도를 기준으로 좌우로 뻗어나가는 수많은 갈림길.
론 일행은 천천히 걸어가며 좌우로 뻗어진 곳에 있는 방들을 살폈다.
“오오, 이때에도 침상은 있었나 보네.”
“여기 테이블도 있어요!”
방 곳곳에는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유리 벽이 세워져 있었다. 아무리 5등급이긴 해도 저 방범 유리가 깨지는 날에는 유적관리단에서 조사를 나올 것이다. 엄연히 왕국 소유의 유적을 건드린 것이니까 말이다.
허나 누가 봐도 유물의 가치성으로는 떨어졌다.
로이드 4세의 개혁안으로 박물관 사업이 모두 왕실 손에 들어갔지만, 고대 유물을 거래하는 귀족들은 여전히 존재했다. 그런데 그런 그들 앞에 저런 평범한 침상과 테이블 등의 가구들은 아무런 가치를 제공하지 못한다.
최소 마법의 단서 혹은 특별한 무언가가 묻어나야 그나마 거래 품목으로 책정된다. 물론 그러한 상등품의 것들은 이미 왕실 박물관에 있지만.
론 일행은 천천히 나아갔다.
한 방, 한 방.
계속해서 나오는 방들을 무시하지 않고 관람했다.
마치 나뭇잎처럼 좌우로 뻗어간 길과 방은 많았지만, 전체적인 구조가 가운데의 큰 복도를 중심으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여기가 끝인가.”
“그런 거 같죠? 음···. 저건 제단일까요?”
“제단··· 이라기보다는 그냥 테이블 아냐? 연구 실험대 같은.”
“에?”
본래 유적이라 하면 신 혹은 초월적 존재에 기대는 제단이 있기 마련이다. 때문에 사티넬의 의문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는데, 크루딘은 의외로 단번에 정답을 내놓았다.
그렇다.
모르는 이들이 이곳을 본다면 대부분은 특정 종교의 제단으로 인식하는 게 보통이지만 정확히는 연구 시설이다. 이에 대한 정확한 증거가 저 실험 테이블 뒤로 보이는 문양이다.
“나뭇잎 문양입니다.”
론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옮겨졌다.
이 땅에 존재했던 수많은 집단들. 그중에는 존재했는지조차 모르는 곳도 있고 혹은 현재까지도 입에 오르내리는 곳, 또는 현재에도 존속하는 곳도 있다.
그런데 눈앞의 문양은 마법사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저게 뭔데요?”
“아!”
사티넬은 예외였다.
“아마 저게 벨데레르 마탑의 상징이었지?”
“크흠! 예, 맞습니다. 벨데레르 마탑. 마법사란 명칭보다 연금술의 권위자라고 많이 불렸었죠.”
“와아! 처음 알았어요! 신기하네요, 오오! 연금술을 중심으로 발달한 마탑이 벨데레르 마탑!”
마치 수업 시간이라도 된 듯 사티넬이 되새겼다. 그리고는 이제야 연금술의 단서가 없는지 눈에 빛을 낸다. 크루딘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그러는 사이 론은 고개를 돌렸다.
자신들이 왔던 길.
지금 이곳, 끝 방으로부터 정반대인 시작점이 바로 론이 찾는 그곳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볼 것을 다 본 일행은 자연스럽게 들어왔던 길로 다시 나왔다. 좌우로 난 방이 많다곤 해도 결국 가운데 큰 복도를 중심으로 한 단순한 구조였기 때문이다.
“음? 여기···.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론의 의문에 일행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봤다. 그런 그가 바라보는 것은 그저 꽉 막힌 벽.
“왜 뭐가 있어?”
“뭐 재밌는 거라도 발견하신 거예요?”
그들의 시선이 모이자 론은 우연인 것처럼 벽에 있는 조각들에 손을 뻗었다. 방향은 네 곳. 모서리였다.
드르륵.
“어어? 론. 괜찮은 거야, 그래도?”
크루딘의 염려 따위는 아무렇지 않게 넘기며 론이 모서리에 있는 조각을 돌렸다. 조각을 붙여놓고 봤을 때 온전한 나뭇잎 모양이 되도록 말이다.
우측 위, 좌측 위, 좌측 아래, 우측 아래.
마지막의 것을 돌렸을 때.
구구구궁.
그것은 더 이상 꽉 막힌 벽이 아니었다. 굳건하던 벽이 계단 쪽 벽을 향해 쑥 빨려 들어갔다.
“미친···.”
“허업.”
“어? 이게 이렇게 되네? 하하···.”
론이 머리를 긁적이며 당황한 척했다.
“와 론, 저거 진짜 미친놈이네!”
“론님 정말 2회차 세요?”
이미 계단에 올라가 있던 크루딘과 사티넬이 도로 내려왔다. 미지의 곳이 드러났는데 감히 어딜 간단 말인가.
회귀 전 유적 보수작업을 하며 한 번 봤던 곳. 그곳이 결국 론의 손에 열렸다. 이번 생에는 론이 최초 발견자가 된 것이다.
꿀꺽.
한차례 소란을 피우던 그들도 숨겨진 방 앞에선 조용했다.
이전의 방들과는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누군가 물건들을 회수해 가기는커녕 정말 모든 게 그대로 있었다.
“드, 들어가도 될까요?”
사티넬의 의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론이 그 공간에 발을 집어넣었다. 아니, 넣으려고 했다.
“이야, 꼬맹이들 대단한데? 큭큭큭. 이거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군. 여기. 여기로. 그대로 다 나와. 그 비밀의 방은 훼손되면 안 되잖아. 큭큭큭.”
어느샌가 나타난 검은 로브의 사내. 그가 지하 입구의 계단에서 론 일행을 불렀다.
‘뭐야?’
당연히 회귀 전 기억을 더듬는 론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 도움이 될 거라곤 없었다. 애초에 시기도 다르거니와 어떻게 이 시기에 나타났는지조차 이해가 되지 않았다.
허나 그런 론의 의문은 무의미했고, 사내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우우웅.
그의 손에 펼쳐진 것은 정사면체의 복합마법진. 메인 마법은 3서클의 윈드 스피어였지만, 이를 보조하는 마법식은 절대 3서클 수준이 아니었다.
보통의 그것과는 궤를 달리하는 크기의 개념식. 그런데 그러한 크기에 밀도는 또 엄청나게 높게 식을 설정했다. 즉, 소모되는 마라량도 적지 않을 텐데 마법진은 이미 푸른 빛을 발하며 회전하고 있다.
발사 준비는 이미 마쳤다는 얘기다.
‘최소 4서클.’
허나 론의 직감은 그 이상을 말하고 있었다.
‘저 정도의 윈드 스피어를 막으려면···. 일단 빠른 시전속도는 필수고 상성도 이용해야 하고···.’
맹렬히 머리를 굴려 가며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궁리하는 사이, 어느새 사내의 지시에 따라 지하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유적 외부 건물마저도 지나 공터에 이르자 그 사내가 말했다.
“큭큭큭, 비밀의 공간에 발도 못 들여보고 끌려 나온 소감이 어때?”
“...”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수고했다.”
사내의 복합마법진에서 마법을 발현하는 빛이 나오는 순간.
‘어스 실드!’
온 정신을 단 하나의 마법에 쏟아붓고 있던 론이 속으로 외쳤다.
콰아아앙!
“큭!”
“꺄아악!”
“커흐윽···.”
같은 3서클에 상성까지 있었음에도 론의 마법이 밀렸다. 급조한 것과 미리 준비된 것의 차이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개념식 자체에서 따라갈 시간이 없었다.
‘미친! 대체 어디서 저런 놈이 튀어나온 거야!’
“뭐야? 꽤 하잖아! 캬아.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다가 재미까지 더해준다고?! 큭큭큭. 너 마음에 든다. 좋아, 놀아주지. 차가운 물 감옥은 어때?”
“하아···. 하아···. 물 감옥?”
마법 파훼로 머리가 띵한 가운데 뭔가 불길한 단어를 들은 듯했다. 론이 애써 고개를 들고 자욱해진 흙먼지 속에서 사내 쪽을 쳐다봤다.
“워터 프리즌(Water prison)!”
‘?!’
명백한 4서클 마법.
“하! 물러서!”
타닷.
론이 재빠르게 발을 움직였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주위가 조용하다.
꿀렁꿀렁.
퉁! 퉁!
소름 돋는 위화감이 그를 감쌌다.
론이 슬며시 옆을 훑었다.
‘아!’
커다란 물 덩어리가 크루딘과 사티넬을 집어삼킨 채 그 형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큭큭큭, 드디어 봤네. 말했잖아, 놀아준다고. 근데 필요 없는 떨거지들은 좀 치웠어.”
“하···.”
원격, 원소 변환, 거대화, 형상 고정, 마나 지배까지. 4서클에 이르는 물 마법 중에 최고 수준의 것이었다.
고작 2서클 수준에서 왔다갔다 하는 그들에게 저 물감옥의 마나지배는 결코 이겨낼 수가 없다. 즉, 하위 마법사들에게는 말 그대로 감옥인 셈이었다.
게다가 이 마법을 펼친 저 사내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이유는 하나였다.
다중마법이 가능하다는 얘기.
최소 5서클이라는 말이었다.
론의 머리가 하얘졌다.
피에타 유적.
딱히 나쁜 의도는 없었다.
그저 동료에게 도움을 주는 한편, 후에 등장할 흑마법 세력의 뒤통수를 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이 꼬맹이 정신 차려. 그러고 있다가 쟤들 죽는다? 아! 어차피 다 죽일 거긴 하네! 큭큭큭!”
“후우···. 후우···.”
‘생각하자. 생각하자.’
맹렬히 머리를 회전시켰다.
상대는 완연한 5서클 혹은 그 이상.
자신이 가진바 모든 걸 쏟아내도 4서클이 최대인 론으로서는 일대일은 불가능했다. 무리하면 5서클도 가능하겠지만, 말 그대로 무리해야 된다. 즉 전투 상황에서는 오히려 틈을 내줄 뿐이다.
‘그렇다면···.’
론이 눈앞의 사내를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치솟은 온갖 불안한 감정 생각들. 허나 론은 무심히 이것들을 소거해 나가기 시작했다. 결단을 내린 상황에 그 외의 것들은 모두 방해만 될 뿐이다.
“후우···. 후우···.”
“호오? 준비된 거야?! 오케이! 들어오라고!!”
사내는 오른손으로는 워터 프리즌 마법에 신경 써야 했기에 왼손을 꼼지락대며 론을 약 올렸다.
“겁먹지 마, 죽기밖에 더 하겠어? 푸하하하!”
그가 고개까지 젖히면서 웃는 순간.
론이 내려져 있던 왼손을 뻗었다.
‘윈드 스피어.’
그가 펼칠 수 있는 관통형 마법 중 가장 빠른 것.
우우웅.
슈카아앙!
순식간에 마법진이 형성되었고, 바람의 창이 대기를 갈랐다.
그리고 그것이 향한 곳은,
검은 로브의 사내가 아니었다.
“뭘···.”
콰아앙!
물 감옥 위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그것.
정사면체의 복합마법진이었다.